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95
“과찬이군.”
한제 또한 안색은 창백했으나 덤덤한 얼굴로 포권을 하며 답했다.
그때, 무극종 종주가 길게 웃음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기쁜 얼굴로 다가와 수백 척 떨어진 곳에 이르더니 포권을 했다.
“여 도우는 무척 겸손하군. 자네가 보여준 모습은 나는 물론 이곳의 모든 사람이 잊지 못할 걸세. 여 도우의 신통력에 크게 감탄했네.”
한제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포권을 할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여 도우 같은 수련자가 속한 귀원종을 5급 성역에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백발노인이 자신의 종주에게 말했다. 평생을 수련에만 몰두하며 세상일에 나서지 않던 그가 종주에게 이런 건의를 했다는 것만 봐도 한제와 얼마나 친해지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무극종 종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류 장로의 말이 옳아. 여 도우처럼 걸출한 수련자를 배출해낸 귀원종을 5급 성역에 두는 것은 온당치 못하지. 여 도우, 귀원종을 7급 성역으로 옮기려 하는데 어떤가?”
한제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포권을 했다.
“그렇게 해준다면야 고맙지.”
“고마울 것 없네. 응당 해야 하는 일이니까. 다만 아까 했던 이야기 말인데⋯⋯.”
무극종 종주는 소매를 휘두르며 온화하게 웃었다.
“8급 종파의 시합 말인가? 물론 출전하겠네. 다만 아직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니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
“그래? 뭐가 필요하나?”
한제의 말에 무극종의 태상장로인 류 장로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여 도우가 말만 한다면 내 능력이 닿는 한 무엇이든 돕겠네. 물론 8급 성역의 시합이 없더라도 도왔을 게야.”
무극종 종주가 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한제는 가볍게 웃더니 신념을 통해 무극종 종주와 류 장로에게만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 순간, 두 사람의 표정이 변하더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여 도우, 이곳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군. 분종 시합은 끝났으니 자리를 옮겨 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어떻겠나?”
무극종 종주는 약간 걱정스러워하며 포권을 했다.
“종주가 그리 원한다면 그리하겠네.”
한제도 포권을 하며 웃었다.
무극종 종주는 풍해를 돌아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풍 장로 이번 시합은 끝났으니 마무리하게. 허나 무극종의 시합은 며칠 남았으니 수련자들을 좀 더 머물게 해.”
그의 목소리에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며칠 뒤 8급 성역 종파 간의 시합 전까지 한제의 존재가 외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종파에서 기습을 해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종주는 아예 그때까지 수련성을 봉쇄할 생각이었다.
종주의 뜻을 파악한 풍해는 눈을 번득이며 포권을 했다.
무극종 종주는 뒤이어 이천매와 이비선 등에게 차분히 포권을 한 뒤 몸을 날렸고 한제와 류 장로가 뒤를 따랐다.
류 장로는 좀 전의 갈등 따위는 완전히 잊은 듯 한제에게 무극종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무극종은 시합이 열린 곳이 아니라 다른 수련성에 있었다. 종주의 안내에 따라 세 사람은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고 머지않아 무극종의 본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8급 성역 종파인 무극종의 본채는 하나의 수련성을 통째로 사용했는데 곳곳에는 화려한 건물과 누각, 광장이 있었다.
한제는 수련성 전체에 걸친 금제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공간의 균열도 수백 개가 있었는데 각각에는 별개의 세상이 있을 터였다.
“무극종에는 총 372개의 공간이 있다네. 그중 111개를 제외한 공간에서는 무극종의 강력한 수련자들이 폐관수련을 하고 있지.”
류 장로의 설명을 들으며 세 사람은 수많은 건물과 누각을 지나쳤다.
도중에 마주친 무극종 수련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공손하게 포권을 한 뒤, 세 사람이 떠난 뒤에야 일을 이어갔다.
머지않아 전방에 구름을 뚫을 듯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사방이 구름으로 뒤덮인 산봉우리에서는 은은한 선기가 느껴졌다.
한제는 그 산으로부터 어떤 경지를 느꼈다.
‘검의 깨달음!’
한 자루 예리한 검처럼 땅에 꽂힌 눈앞의 산을 본 순간, 한제는 우뚝 멈춰 섰다. 심신에 요란한 진동이 일어났다.
“이 산의 이름은 노숙, 일찍이 세상이 열렸을 때 우주에서 한 자루 검이 떨어져 이곳에 꽂힌 것이 산이 되었다는군!”
무극종의 종주가 웃으며 설명했다.
“노숙이라… 좋은 이름이군. 그 이름은 누가 붙였나?”
한제는 심신이 진동했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충격을 준 것은 산봉우리로부터 서사가 삼지창을 던져 산봉우리에 응집했던 혼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봉우리에 가까워진 순간, 그의 미간에 숨겨진 고대 신의 반점이 빠르게 회전했다.
“무극종 1대 종주이신 주운송이라는 분이 붙이셨네. 그분은 이 산봉우리에서 말년을 보내시면서 꿈속에서 깨달음을 얻으셨지. 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거대한 검이 떨어져 산봉우리가 되던 그때, 노숙이라는 두 글자를 외치는 웅장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꿈을 꾸셨다는군!”
나머지 설명을 이은 것은 류 장로였다. 그의 눈에는 짙은 공경심이 담겨 있었다.
‘노숙, 노숙⋯⋯ 녹솔! 그래, 무극종 초대 종주는 녹솔을 노숙으로 잘못 들은 거야!’
한제의 눈에서 번득이던 기이한 빛이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의 심신은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떨려왔다.
녹솔은 고대 신의 언어에서 또 다른 뭔가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쉽게 말해 수련성을 제련해 만든 검을 뜻하는 것일 터였다.
한제는 산봉우리에 다가갈수록 그 안에 숨겨진 고대 신의 기운을 더욱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왕족 고신이 아니었다면 절대 느낄 수 없었을 기운으로 어떤 왕족 고신이 발산한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세월의 흐름도 느껴졌다. 서사보다도 훨씬 긴 세월이었다.
더구나 이 산봉우리의 기운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약해지고 있어 이렇게 가까이 오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터였다.
한제는 몰랐지만 운해성역에 왔던 탁삼도 이 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두 발이 산봉우리에 닿은 순간, 한제는 산 전체가 바르르 진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 안의 혼이 그의 방문으로 서서히 깨어나기라도 한 것 같았다.
황량한 기운을 뿜어내는 혼은 이곳에 영겁과도 같은 세월동안 묻혀 있었던 듯했다.
한제는 숨을 깊게 들이마셔 심신의 진동을 애써 억누르며 산봉우리에 우뚝 솟은 누각으로 향했다.
누각으로 들어가니 혼은 점점 더 짙게 느껴졌다. 허나 그 존재는 한제만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사방의 원력과 선기가 전보다 더 짙어졌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혼의 기운에 한제의 미간에 숨겨진 고신의 반점은 더욱 빠르게 회전했다. 이에 칠채계에서 흩어졌던 여섯 번째 반점이 조금씩 응집될 조짐을 보였고 한제는 얼른 고개를 숙여 자신의 표정을 숨겼다.
다행히 무극종 종주와 태상장로는 그런 그의 모습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리에 앉자 무극종 제자들이 차를 내오고는 공손히 물러났다.
“여 도우가 부탁한 극음의 혼을 무극종은 분명 가지고 있네. 허나 대부분은 분산되어 여러 분종에서 배양하고 있지. 게다가 그것은 무극종이 아니라 신종의 소유야. 신종은 8급 성역의 각 종파에 이를 나누어 배양시켰다네.”
무극종의 종주는 한참 고민하다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제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심신의 진동을 감추었다. 그는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이 얻는 이득이 커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꼬리를 밟힐 가능성도 높아졌다.
더구나 이곳에서 느릿하게 깨어난 기운은 끓어오르는 물처럼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도 그 변화를 눈치챌 수도 있었다.
‘이 산봉우리 아래에는 대체 어떤 검이 숨겨져 있는 걸까! 또한 고신의 별을 아끼지 않고 쏟아부어 한 자루의 검으로 만들어낸 그 왕족 고신은 도대체 몇 성급이란 말인가!’
한제는 조용히 생각에 잠긴 채 찻잔을 내려놓았다.
돌아왔다
“여 도우가 극음의 혼을 원하는 것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함이겠지? 허나⋯⋯.”
무극종 종주는 말없이 한제를 보더니 다시 태상장로와 눈을 맞추었다. 태상장로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음… 그렇다면 통용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두 사람 역시 한제가 극음의 혼을 원하는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극음의 혼은 부상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었기에 그런 의심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한제처럼 강력한 수련자면 부상을 치료하는 데 단약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신종은 극음의 혼을 우리에게 준 이래 단 한 번도 돌려달라고 한 적이 없으니 괜찮네. 게다가 그간 적지 않게 축적해놨으니 일부를 준다 해도 신종은 알아차리지 못할 거야.”
생각에 잠겨 있던 무극종 종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한제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신종으로부터 받은 것을 넘기려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그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거짓도 아니었다.
한제는 감격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포권을 하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나의 치료를 위해 신종에서 내려준 물건을 주겠다니, 이 감격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군. 8급 성역 시합에서 내 필히 전력을 다해 임하겠네!”
그러는 와중에도 산봉우리에 숨어 있던 고신의 기운은 한제의 두 다리를 타고 체내로 녹아들어 미간으로 몰려들었다. 덕분에 무너져 내렸던 여섯 번째 반점은 빠른 속도로 응집됐다.
미소를 지으며 한제를 바라보던 무극종 종주는 허공에서 옥패를 하나 소환했다.
그 안에 신념을 각인한 뒤 던지니 옥패는 곧장 타오르면서 누각 바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여 도우, 극음의 혼을 가져오라 지시했으니 잠시만 기다리시게.”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사실 조금이라도 더 이곳에 머물고 싶었으니 기다림은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 짧은 시간에도 부서졌던 여섯 번째 반점이 다시 생겨날 조짐을 보였다. 이 산봉우리에 있는, 고신의 반점으로 이루어진 검에는 두려울 정도로 강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9성급 왕족 고신의 검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