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999
이천매도 곧 떠날 예정이었다. 파천종 스승으로부터 긴급 소집 옥패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스승의 어조로 보아 심각한 상황에 처한 듯했다.
이천매로서는 스승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파천종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스승은 그녀를 키워주었다.
그녀는 한제에게 작별인사만을 고한 뒤 무극종 전송진으로 들어섰다. 몇 차례 전송 지점을 거쳐 파천종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항상 여유로웠던 스승님이 이토록 다급하게 소환하시다니, 상황이 정말 좋지 않은 모양이야.’
그녀는 불길함에 몸을 떨었다.
두 여인이 떠나고 한제는 무극종주와 두 명의 태상장로를 비롯한 몇몇 장로들과 함께 8급 성역 종파 시합이 열리는 곳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곳은 운해성역의 진정한 의식이 열리는 곳이었다.
무극종주는 이번에 자신들이 1등을 차지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자호가 참가하는 이상 패할 리가 없다!’
그들은 시합이 끝나고 나머지 종파 사람들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본디 예측할 수 없는 법.
그들이 출발 채비를 거의 마쳤을 때, 돌연 무극종으로 한 갈래 긴 빛이 놀랄 만한 기운을 품은 채 곧장 종주에게로 날아왔다.
빛에서는 어떤 노인이 나타났다. 한제로서는 처음 보는 자였지만 노인의 몸에 한 가닥 빛 고리가 번득이는 것으로 보아 천쇠에 이른 듯했다.
안색이 어두운 노인은 말없이 불쑥 옥패 하나를 무극종주에게 건넸다.
종주는 옥패를 받아 훑어보더니 대번에 표정이 변했다. 급격하게 어두워지고 극도의 분노가 드러나기까지 했다.
그는 차게 코웃음을 치더니 옥패를 곁에 있는 두 태상장로에게 건넸다. 차례대로 옥패를 확인한 두 노인의 표정도 종주와 비슷하게 변해갔다.
“신종이 이리 거만하게 굴다니!”
한제와 맞붙었던 태상장로가 빠드득 이를 갈며 소리쳤다.
“8급 성역에서 수만 년을 이어온 의식을 취소하다니! 대체 어쩌서인가!”
무극종주와 장로들은 분노했지만 그보다는 불만이 더 짙게 느껴졌다. 그들은 모두 높은 수준의 수련자로서 자부심이 있었고 무극종 역시 결코 우습게 볼 종파가 아니었다. 허나 옥패로 내려온 신종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무극종주는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됐네. 신종에서 명령을 내렸다면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다만 우리에게 이유를 알리지 않은 것일 게야.”
그는 웃더니 한제에게 포권을 했다.
“여 도우, 이번 시합은 신종에 의해 취소됐네. 난 다른 장로들에게 이 상황을 알리러 가볼 테니 도우는 귀원종과 함께 돌아갈 준비를 하게. 때가 되면 7급 성역으로 이주시켜주겠네.”
덤덤한 표정이었지만 한제는 왜인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뭔가 거대한 운명과도 같은 일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옥패, 나도 좀 봐도 되겠는가?”
한제의 요청에 태상장로 중 하나가 곧장 옥패를 그에게 넘겼다.
옥패 안에 기록된 것은 짧은 문장 하나에 불과했다.
신종에서 전하노니, 이번 8급 종파 시합은 취소한다!
한데 옥패를 확인한 순간, 한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기세가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신식을 거둔 한제는 옥패를 무극종 사람에게 돌려준 후 그들에게 포권을 하고는 떠나갔다.
“이천매는 파천종의 옥패를 받고 황급히 떠났고 모은미를 데리고 떠난 이비선은 무언가 서두르는 기색이었어. 이번 시합의 취소와 어떤 연관이 있을 거야. 혹시 운해성역에 엄청난 일이 닥치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는 사이 한제는 어느덧 귀원종 처소에 도착했다. 그는 곧장 모두를 불러모아 전송진을 이용해 5급 성역의 막라대륙으로 이동했다.
“최대한 빨리 귀원종의 모든 것을 정리하도록. 사흘 후 나는 너희들을 데리고 7급 성역으로 데려다 놓은 뒤 곧장 떠날 것이다!”
막라 대륙에 도착하자마자 한제는 이 말만 남기고 밀실로 들어갔다.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심장이 쿵쾅댔고 이 느낌은 갈수록 또렷해졌다. 좌선을 해도 불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신식을 원신 깊은 곳으로 가라앉힌 한제는 천운자의 혼백과 마주했다. 천운자의 능력을 이용해 미래를 예측해볼 생각이었다.
한 가닥 살길
같은 시각, 9급 성역 파천종. 전송진을 이용해 종파에 돌아온 이천매는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광경에 평소의 침착함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파천종의 10대 장로 중 세 명이 그녀를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 장로가 이루고 있는 진이 전송진으로 흘러 들어가더니 진의 기능을 전송에서 봉쇄로 바꾸어버렸다.
그때, 1만 년의 폐관수련을 마치고 나온 스승이 진 밖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말했다.
“오늘부터 세 달 동안 진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올 수 없다. 이를 어길 시, 종파의 규율로 엄히 다스릴 것이다!”
★ ★ ★
신종에서 시작된 은밀한 행사가 운해성역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면서 일련의 사람들을 방해했다.
이천매의 스승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제자를 직접 가두기 위해 1만 년의 폐관수련을 깨고 나왔다. 제자의 안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모은미는 자세한 상황은 몰랐지만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신종에 도착하자마자 이비선의 스승이자 신종의 최고 권력자인 대장로 수도자를 만나기는커녕 자유를 제한당하고 갇혔다.
신종에서는 수준을 회복할 수 있는 단약을 제공했지만 밖으로 나오는 것은 엄격히 금했다.
만약 8급 종파 시합이 취소됐다는 사실까지 알았다면 뭔가 의심을 품고 실마리 정도는 찾아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종이 8급 성역 종파의 시합을 취소시켰다는 것은 심지어 이천매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은밀한 움직임은 그렇게 운해성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막라 대륙에서는 여연종과 장로들이 귀원종 제자들을 급히 소집했고 사흘에 거쳐 이주 준비를 했다.
이들은 까마득히 오랜 세월 동안 자신들의 터전이었던 5급 성역, 막라 대륙을 떠나 무극종이 새로 개간한 귀원종으로 갈 예정이었다.
한제는 귀원종 어느 밀실에서 홀로 가부좌를 튼 채 천운자의 혼과 융합했다. 그 상태로 그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려 심신을 하늘 끄트머리까지 펼쳤고 한나절이 지나 세상과 융합시켰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곧 하늘이고 하늘이 곧 자신일 정도로 세상에 섞여들었다. 덕분에 그와 천운자의 혼은 전에 없이 밀접하게 융합했다.
이제 천운자의 혼에 깃든 예지력을 이용해 무엇이 그토록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지 알아볼 시간이었다.
심신 안에서 한제의 시야는 끝없는 안개로 뒤덮여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한 줄기 강력한 기운이 온 세상을 뒤덮은 듯했다.
하지만 한제는 포기하지 않고 체내의 원력을 가동해 천운자의 혼과 더욱 강하게 융합했다.
융합이 밀접해질수록 점차 무언가를 잊어갔다. 자신이 수련자임을 잊었고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었다. 그 무엇도 생각나지 않았다.
심신에서 짙은 안개는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 안에서부터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쌍의 거대한 손이 빠른 속도로 안개를 흩어 회오리로 만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회오리가 나타난 순간, 한제의 심신에서만 들리는 목소리가 안개에 내리꽂혔다.
안개로 형성된 회오리는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 흩어졌다. 동시에 안개에 가려졌던 장면이 떠올랐다.
한 쌍의 눈과 그 눈을 바라보는 수련자가 있었다. 무정하고 냉정한 눈은 하늘에서 나타나 대지와 함께 그 수련자를 냉랭하게 훑었다.
그 순간, 한제의 심신이 바르르 진동했다. 백만 개의 벼락이 귓가에 내리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장면은 흩어지더니 곧바로 안개 회오리에 다시 가려졌다.
한제는 밀실 안에서 두 눈을 번쩍 떴다. 안색은 매우 창백했다.
“이럴 수가! 분명 그 대지는 막라 대륙이고 그 수련자는⋯⋯ 나였어! 그리고… 그 눈의 주인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 자야!”
한제의 눈빛은 밀실의 천장 너머 티 없이 맑은 막라대륙의 하늘을 보는 듯했다.
“천운자의 혼과 융합해도 미래를 보는 데에는 아직 한계가 있군. 허나 아직 실망할 필요는 없지. 다시 해봐야겠어!”
한제는 결인을 그린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린 뒤 입을 벌렸다. 입에서 어스름한 빛이 나와 눈앞의 허공에서 봉선인이 됐다.
봉선인은 급속도로 회전하면서 웅웅 울렸다. 이 소리는 심신으로 전해져 듣는 사람의 심신을 진동시켰다.
한제는 결인을 그린 손으로 봉선인을 찍었다. 순간 봉선인은 우뚝 멈추더니 어스름한 빛을 번득여 어둑한 밀실을 환히 비췄다. 그리고 그 빛 아래, 봉선인에서 튀어나온 천운자의 혼이 한제 앞에 섰다.
“살두성병(撒豆成兵), 혼백귀위(魂魄歸位), 천지무급(天地無極), 용납봉천(容納奉天)!”
지금 발휘하려는 신통술은 깊은 도의(道意)를 품은 살두성병이었다.
한제가 주문을 왼 순간, 허공에 떠 있던 천운자의 혼이 두 눈에서 밝은 빛을 번득였다. 그러더니 맹렬히 튀어나와 한제의 몸을 관통했다. 이어서 몸을 돌려 한제와 같은 방향을 보고 가부좌를 틀었다.
천운자의 혼이 한제의 원신이 된 듯 둘은 구별할 수 없게 됐다. 한제의 몸에서는 격렬한 변화가 일어난 듯 때로는 천운자가 됐다가 다시 그 자신이 되기도 했다.
이는 좀 전에 심신을 봉선인 안에 녹여 진행한 융합과 달리 진정한 융합으로 한제의 심신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자욱한 안개가 나타났다.
지난번보다 더 짙은 이번 안개 역시 회오리가 되어 빠르게 회전하면서 한제의 심신 안에서 흩어졌다.
흩어진 안개 뒤쪽으로 또다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좀 전과 다른 점이라면 이번의 장면은 더 생동감 있게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한제는 피를 토해냈다. 막라대륙 위, 그의 육신은 거의 무너져 내린 상태였고 원신 역시 금방이라도 흩어져 사라질 듯했다.
장면이 전환됐다. 이번에는 귀원종 안, 지금 그가 앉아 있는 밀실이었다.
한제는 고개를 들고는 망설임 없이 튀어나가더니 곧장 우주를 향해 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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