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02)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02화
102화 명분과 권한
“그대도 그렇고 그대 동생도 그렇고…… 정말이지 바람 잘 날이 없군.”
늦은 오후.
식사를 마치고 티타임을 가지고 있던 아나스타샤는 자신이 읽던 신문을 셰인의 앞에 내려놓으며 그리 말했다.
신문에는 대서특필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무차별 살인사건을 막은 황룡의 클라인!] [연합국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종족의 무차별 살인 사건! 사건의 중심에 귀족 살해자와 연관이 있는지 수사 당국에서 발표!]제목 그대로 연합국의 수도 한복판에서 이종족의 살인사건이 일어날 뻔한 것을 클라인이 막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다만 클라인이 있던 장소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운이 좋았다.
그 외에 비슷한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이종족에게 살해당한 이들이 상당수 있었으니.
연합국은 비교적 모험가가 많은 나라였기에 금방 제압이 되긴 했으나, 이미 여론은 안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흐음…… 이게 고작 시작이라…….”
새삼 아나스타샤는 무명이라는 조직의 대범함에 혀를 내둘렀다.
비록 셰인이 연합국의 귀족들을 살해하는 것도 막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이는 그저 셰인이 철저했을 뿐이다.
그러나 단체로 움직이는 무명은 분명 꼬리가 밟힐 터.
“아마 무명이라면 지금쯤 오히려 꼬리가 밟히길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음? 그건 왜 그러지?”
“놈들이 원하는 건 결국 인간들 간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런가. 그렇군.”
셰인의 말을 금세 이해한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연합국의 한복판에서 그러한 사건을 일으킨 것이로군.”
“맞습니다.”
조직은 자신들의 행적이 꼬리를 밟히되, 그 방향은 자신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로 돌릴 것이다.
셰인이 보기에 현재 그 희생양은 하이엘 왕국의 국왕이다.
“제국은 아직 흔들기 힘들 테지만, 하이엘 왕국은 위치상 무명에게 가장 먹음직스러웠을 겁니다.”
하이엘 왕국은 지리적으로 제국 다음으로 연합국과 가장 근접한 나라다.
그런 만큼 연합국에서의 입김이 결코 적은 편은 아니었으니, 그런 하이엘 왕국에 테러의 죄를 뒤집어씌운다면 인류의 중심인 연합국부터가 흔들릴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놈들도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겼겠습니다.”
“변수라……. 그게 뭐지?”
“클라인입니다.”
“음? 그대의 동생이 있던 자리에 인명 피해가 없긴 했지만, 그래도 테러를 막은 건 다른 곳도 마찬가지인데?”
아나스타샤의 물음에 셰인이 답했다.
“조금 다릅니다. 생포에 성공한 것은 클라인이 유일합니다.”
그러고 보니 신문에서는 유일하게 클라인만이 폭주한 이종족을 제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군. 생포한 건 그대의 동생이 유일해.”
“안 그래도 지금 그 악어 수인은 이미 수사 중에 있지요. 본래 조직이 생각했던 그림은 폭주 후 사망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겁니다. 그래야만 연합국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무명이 인위적으로 남긴 흔적을 쫓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유일한 생존자가 생겼군.”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무명이 너무 안일했던 것 아닌가? 그만한 사건을 일으켰으니 당사자들을 생포하려는 움직임도 충분히 대비했어야 할 텐데.”
아나스타샤가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왔으나, 셰인은 클라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인쇄된 신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비는 충분히 해 뒀습니다. 실제로 여기를 보면 생포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례가 있지 않습니까.”
셰인의 말대로, 다른 한 수인은 폭주가 끝난 이후 홀로 피를 토하며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사도 함께 실려 있었다.
“폭주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죽도록 만든 것인가?”
“예. 그리고 증언도 있습니다.”
“어제 그대가 데리고 온 흑마법사로군.”
“그렇습니다.”
아나스타샤는 어제 셰인이 비밀리에 데리고 온 흑마법사들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제대로 못 먹고 살아온 것인지 비쩍 마른 그들은 지금 지하에 마련된 방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그대의 동생만이 생포에 성공한 거지?”
“이건 저도 예상치 못한 결과입니다만…… 클라인이 재미있는 짓을 했더군요.”
그러면서 셰인이 품에서 한 구슬을 꺼냈다.
“그건?”
“때마침 그 근처에 있던 기자가 가지고 있던 영상 기록구입니다.”
“운이 좋았군.”
“클라인을 따라다니던 기자라고 합니다.”
영상 속 클라인은 거구의 악어 수인과 대치하며 몇 차례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2년 전 전장에서 봤던 그때와 다르게, 클라인은 공격에 무척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클라인은 처음부터 제압을 목적으로 두고 전투를 이어 가는 듯했다.
주변 시민들로부터 악어 수인을 죽이라는 외침이 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소극적으로 움직이던 클라인은 어느 기점을 시작으로 주변에 마력의 실을 퍼뜨리기 시작하더니, 일순간 그것을 터뜨렸다.
그러나 터진 마력은 물리력을 담지 않고 있었는데, 대신 주변 대기 중에 섞여 있는 마력을 순식간에 불살라 버리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음? 이건…….”
한순간 공간 자체에 마력이 존재하지 않게 되자, 해당 공간은 세계의 의지에 따라 주변으로부터 마력을 급히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악어 수인의 몸으로부터 혈마력이 흘러나오고, 동시에 클라인은 다시 한번 마력의 실을 퍼뜨려 그 마력마저 불태워 버렸다.
“저를 따라 한 겁니다.”
2년 전 전쟁 당시, 셰인이 엘더 샤먼이 펼친 주술의 주도권을 강탈해 올 때 썼던 방식이었다.
물론 그때보다는 훨씬 단순무식한 방법이었으나, 그저 본 것만으로 저렇게 따라 한 것이다.
덕분에 본래라면 폭주와 함께 악어 수인을 죽였어야 할 힘마저 함께 소실되어 버린 탓에, 악어 수인은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게 셰인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데.”
“예. 저도 처음 봅니다. 제가 타인의 것을 터득한 적은 있어도 반대의 위치가 되어 본 적은 없습니다.”
“아니, 그대의 그 표정을 처음 본다고 했다.”
“예?”
“흐음. 여자도 아닌 그대 동생에게 질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
도대체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길래 아나스타샤가 저런 말을 하는 걸까.
[인간들의 감정에 따르면, 굉장히 흐뭇하다는 표정을 짓고 계셨습니다, 주인님.] [네. 딱 그 표정이었어요.]그러자 주인의 곤경을 알아본 아르카네와 에블린이 조언을 건네줬으나 딱히 도움이 되진 않았다.
셰인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 아나스타샤가 피식 웃었다.
“지금 짓는 그 표정도 그렇군. 이는 나만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걸로 만족하도록 하겠다.”
“……?”
이번에도 무슨 표정을 지었던 걸까?
셰인은 자신의 이해력으로도 연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는 사실에 혼란함을 느꼈다.
도대체 뭘까.
혼자 질투했다가 혼자 납득하는 이 상황은.
도저히 상황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던 셰인이 결국 헛기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일 될 겁니다. 이번 일은 무명이 일으킨 일이지만, 또 반대로 황태자가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기도 합니다.”
“오라버니가?”
“예. 그러니 이쪽도 서둘러 움직여야만 합니다.”
“내 누이를 불러야겠군.”
올리시아는 현재 클라인이 제압한 악어 수인을 심문하기 위해 연합국으로 직접 찾아간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날 저녁.
심문을 마친 올리시아가 아룬비다로 직접 행차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제법 반가운 사람이 껴 있었다.
“오랜만이군, 오스튼.”
“바, 반갑습니다. 셰, 셰인 님. 자, 잘 지내고 계신 듯해서 다, 다행입니다.”
베른슈타인 가문의 차남이자 다신 없을 지략의 천재. 그가 올리시아와 함께 아룬비다에 찾아왔다.
* * *
오스튼은 황실의 귀족들 사이에서 최근 주가가 상당히 높아진 인물이었다.
그는 아카데미에서 팀을 이루고 던전을 탐사하기보다, 올리시아가 올린 파견 임무에 맞춰 지난 2년 동안 이어져 온 오크들과의 전쟁에서 상당한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비록 잔당이긴 했지만 올리시아의 밑에서 그는 직접 군대를 지휘했고, 놀랍게도 그가 이끈 군대는 단 한 번의 패배 없이 철저하게 오크의 엘더 샤먼, 카르가토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변덕스러운 아룬비다의 날씨에 더불어 끊임없는 몬스터의 습격 속에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덕분에 오스튼이 이끈 군대는 최소한의 피해로 막대한 결과를 만들어 냈으니, 황실의 정치 귀족들 사이에서 상당한 이슈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반대로 말을 더듬는 행위 때문에 그런 오스튼을 얕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룬 업적이 있음에도 무시할 수 있겠냐 하겠으나, 사실 귀족 사회에서 겉으로 보이는 카리스마 또한 정치에 중요 포인트로 적용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오스튼은 사람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으니,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런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말을 더듬을 필요가 있나?”
“그쵸?! 이 사람 말 안 더듬죠? 왜 저한테까지 숨기고 있던 거예요?!”
“아, 하하.”
올리시아의 그 물음에 오스튼이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올리시아를 섬기며 이제는 오스튼도 그녀를 신뢰하고 있었으나, 이는 순전히 오스튼의 짓궂은 성격이 한몫하고 있었다.
“재미있었거든요. 언제 제가 말을 편히 할지 지켜보는 황녀님의 모습에 그만.”
“이이잇!”
그 모습에 올리시아가 약 오른다는 표정으로 오스튼을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아. 아무튼, 악어 수인에 대한 심문은 끝냈어요. 안타깝게도 그럴듯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지만요.”
“정신이 멀쩡하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네. 대부분 횡설수설하는 말이었죠.”
비록 클라인의 활약 덕분에 악어 수인을 생포하는 것은 성공했으나, 도핑제의 여파 때문인지 악어 수인은 제 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했던 말이 있었습니까?”
“동족, 납치, 붉은 약, 두려움, 지하 등의 말을 단편적으로 내뱉었습니다.”
“좋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할 듯하군요.”
충분?
고작 저 정도 말에 뭐가 충분하다는 걸까 싶었으나, 오스튼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아 올리시아도 뒤늦게 이해를 마쳤다.
“더 정확한 증거는 만들면 된다는 건가요?”
“예, 맞습니다.”
“무슨 소리지?”
아나스타샤가 보다 설명을 요구하자, 오스튼이 입을 열었다.
“셰인 님께서 취득한 정보에 의하면 현재 무명이라는 조직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이종족에 대한 인류의 혐오 분위기 조장입니다. 이미 그 작전은 반쯤 먹혀 들어갔다고 봐야겠죠.”
“두 번째는 지금과 같은 이종족의 테러를 일삼아 인류 간의 연합을 뒤흔드는 것입니다. 실상 이 또한 하이엘 국왕의 어리석은 욕심에 의해 반쯤 성공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 저희의 목적은, 이미 반쯤 실행된 무명의 계획의 여파를 최소화시키는 것에 있습니다.”
“다만, 정공법으로는 이쪽이 명백하게 불리하다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지요.”
일목요연한 오스튼의 설명에 대충 감을 잡은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악어 수인의 증언을 통해 수사 범위를 넓혀 간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본래라면 연합국의 특성상 아무리 두 황녀님의 의견이 있더라도 수색의 속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황태자도 이를 방해하는 데 일조하겠지요.”
실상 연합국은 다국적으로 만들어진 국가인 탓에 민주주의 성향이 강하지만, 그만큼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신속함이 부족한 경우가 있었다.
왕의 명령에 의해 돌아가는 다른 왕국과 달리, 연합국은 각 국가별로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귀족들 간의 신경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악어 수인이 한 증언은 중요한 명분이 되어 줄 것입니다.”
“대충 끼워 맞춘다는 것이로군.”
“예.”
예컨대 악어 수인이 한 증언 중에 ‘지하’라는 단어가 있으니, 지하도시에 대한 수사의 명분과 권한이 생긴다는 말이다.
“그렇군. 우리는 수사를 하는 척하면서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토대로 더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건가?”
“맞습니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로 인해 좁혀질 시간의 간격은 무명이라는 조직이 가장 경계하고 있을 대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적이 그걸 알고 먼저 행동에 나서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것도 불가능할 겁니다.”
“음?”
그 말에 답한 사람은 오스튼이 아닌 셰인이었다.
“제가 데리고 온 흑마법사들의 말에 의하면 아직 그만한 물량의 도핑제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했으니, 저쪽에서도 다시금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미스 슈의 저택에서 발견한 서류에 의하면 주문이 들어온 도핑제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제하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생명학파의 흑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약이 복용자에게 미칠 영향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들이라는 것도 있었다.
때문에 최대한 일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뤄 둔 덕에, 현재 제조된 도핑제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시간은 벌었다는 것이로군.”
“예.”
하지만 그럼에도 현재 무명에서는 작전을 감행했으니,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의미일 터.
시간이 완벽히 이쪽의 편은 아니었기에,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시간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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