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05)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05화
105화 광대의 지루함
“제게 의뢰를 한다는 말씀…… 입니까?”
“네, 맞아요.”
클라인의 물음에 올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올리시아가 셰인에게 따로 부탁했던 것은, 바로 클라인을 황실의 일에 끌어들여도 괜찮냐는 물음이었다.
사실 황녀가 모험가에게 의뢰를 맡긴다는데 허락을 구할 필요가 있겠냐마는, 옛날의 소문과 다르게 셰인이 클라인을 극진히 아끼지 않던가.
평소에는 무심하던 남자가 동생에게만큼은 나름 표정이 풍부해지니, 셰인을 중요한 인재로 보고 있는 올리시아로서는 그래도 예의상 물어봐야만 했다.
이제 와서는 예상치 못하게 클라인이 테러를 한차례 막은 덕에 아예 연관이 없던 것도 아닌지라, 올리시아는 편안하게 클라인을 부를 수 있었다.
한편 클라인은 각자의 사정으로 팀원들이 흩어진 상황이라 팀을 임시로 해체하긴 했으나, 여전히 모험가의 신분으로 충분히 의뢰를 받을 수 있는 상태였다.
“지난번에 막은 악어 수인을 기억하시나요?”
“아…… 예.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그 사건으로 인해 기자들에게 얼마나 시달리고 있던가.
덕분에 최근에는 아카데미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들과 얽힌 내막의 꼬리를 어느 정도 찾아내는 데 성공했어요. 문제는 병력이죠.”
“음.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에요. 현재 테러의 주동자는 하이엘의 국왕으로 밝혀졌어요.”
“예?!”
시작부터 너무 거대한 사안이 튀어나오자 클라인이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걱정 마세요. 이곳 아룬비다에는 당신의 형제분께서 특별히 관심을 쏟는 곳이거든요.”
“아…… 그렇군요.”
셰인의 성격이라면 그 누구보다 보안에 철저히 신경 썼을 테니 걱정하는 게 바보 같은 일이었다.
“다만 하이엘 국왕 또한 어느 한 조직에 의해 움직이고 있을 뿐이랍니다. 하이엘 왕국 전체가 국왕의 뜻을 따르는 건 아니에요.”
“그, 그렇습니까.”
다행이었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클라인이었지만, 국왕이 연합국에 직접 테러를 일으켰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전쟁의 징조였으니.
“따라서 하이엘의 2왕자와 현재 교섭 중이에요.”
“그건 다행이로군요.”
“네. 하지만 많은 병력을 활용하기에는 장소의 특성상 어려움이 있어요. 일단 연합국은 법적으로 사병을 운영하지 못하잖아요?”
“아, 그렇죠. 의회 소속 군인이나 호위 수준이 아니라면…….”
“네. 대신에 모험단을 용병으로서 고용하는 것은 가능하죠.”
“그래서 저를 찾아오신 거군요.”
“맞아요. 테러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고, 또 그를 대비하려면 시간이 중요해요. 연합국은 특성상 속도전에서 불리하니, 적들이 대비하기 전에 몰아치기가 힘들죠. 그래서 유명한 모험단을 섭외하고 있답니다.”
“그런 의뢰라면…… 예.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팀원들의 의견도 들어 봐야겠습니다만, 상황의 여의치 않다면 저 혼자라도 참여하겠습니다.”
원래부터 심성이 선한 클라인이기도 했거니와, 일전에 상대했던 악어 수인이 매우 고통스러워하던 그 모습을 잊지 못했기에 그는 흔쾌히 올리시아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좋네요. 보상과 관련된 부분은 클레이튼 가문에 정식으로 의뢰를 넣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전력에 있어서 가장 든든한 인물을 포섭했으니, 올리시아는 안심한 표정으로 클라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아룬비다에서 아나스타샤와 결전을 치렀다가 패배한 웅족 수인, 카르후의 근육이 터질 듯 팽창했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특수 제작이 되어 어지간한 기사들조차 들 수 없는 아령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근육을 펌프질하니 그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진다.
매번 운동을 할 때마다 흘리는 땀은 그에게 있어서 포상과 마찬가지였지만, 오늘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2년 전부터 이렇듯,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평소의 생각 따위 하지 않고 되는 대로 일을 벌이는 카르후답지 않은 모습.
“후우…….”
하지만 이는 카르후를 잘 모르는 이들이나 하는 생각이다.
카르후는 언제나 머릿속에 다양한 전투를 떠올린다.
매번 시뮬레이션을 돌리며 자신이 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상대가 자신에게 어떻게 대처할지 등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태까지 그의 고민은 길어져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 전.
아나스타샤에게 당한 인생의 첫 패배로 인해, 카르후의 시뮬레이션은 처음으로 막다른 길에 들어섰다.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아나스타샤를 이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무조건 힘 하나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인가.’
분명 당시 아나스타샤의 복부를 쑤시고 들어간 주먹으로부터의 느낌은 수많은 승리를 맛봤을 당시 느꼈던 감 그대로 데미지가 들어갔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굳건하게 버티고, 오히려 반격을 해 왔다.
거기에 분명 펠리스의 워 해머도 카르후에게는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나스타샤의 공격에 카르후는 전신의 뼈와 내장이 박살 나는 결과를 맞이했다.
도대체 그 차이란 무엇인가.
아직 오리진에 대한 지식이 없던 카르후는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열심히 하시는군요.”
그런 카르후에게 다가온 것은 토끼 신사였다.
“음. 광대의 토끼로군. 이번에 밖으로 나갔다고 들었는데.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가 있었나?”
“제 주인님께서는 어느 명령도 받지 않으십니다. 그저 주인님께서 그곳에 있던 어느 인물에게 흥미를 가지셨던 것뿐이지요.”
“그하하, 그렇겠지. 언제나 제 뜻대로 움직이는 녀석이니. 그래서, 무슨 일로 찾아왔냐.”
그 광대가 다른 사람의 임무를 재미있겠다고 멋대로 뺏어 가던 게 어디 한두 번인가.
오로지 혼돈을 찾아 움직이는 녀석의 본능은 이번 지하 경매에서도 발동하여 저 토끼 신사를 보낸 게 분명하다.
“최근 카르후, 당신도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엉? 아, 그렇지. 영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말이야.”
“의외로군요.”
“뭐 임마. 나도 생각은 하고 살아.”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당신이 이토록 오래 고민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요.”
“음, 그건 그렇지. 그런데 ‘당신도’ 라니, 광대한테도 무슨 고민거리가 생긴 모양이지?”
분노의 군단에 소속된 카르후와 다르게, 토끼 신사의 주인인 앨리스는 독자적으로 구분된 전력이다.
아니, 애초에 전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록 무명이라는 조직이 단합력에 있어서 약한 부분이 있기는 했다.
군단장끼리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있으며, 애초에 서로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게 태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다 같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이는 상부의 지시를 따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일하게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또 그럴 권한을 가진 것이 바로 토끼 신사의 주인, 앨리스였다.
“예. 카르후, 당신처럼 무언가를 매일같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십니다.”
“그런데 그게 특별할 게 있나? 어디를 가서 더 개판을 잘 쳐야 소문이 날까 매일 고민하는 게 녀석인데.”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조금 결이 다른 것 같더군요. 2년 전, 당신과 함께 혹한의 대지에 다녀온 이후부터 그렇습니다. 혹시 뭔가 아시는 게 있습니까?”
그 말에 카르후는 잠시 더듬더듬 기억을 떠올려 봤다.
이미 수천, 수만 번이고 재생해 본 아나스타샤와의 전투 이후.
생각해 보니 전신의 뼈와 내장이 박살이 나고서 어떻게 됐더라?
“그러고 보니 그걸 잊고 있었군.”
“그거…… 말입니까?”
“그하하핫! 그 광대도 결국 전사이긴 전사였는가!”
“……갑자기 왜 혼잣말을 하고 계신 겁니까?”
“별 거 아니다. 너의 주인 또한 생애 첫 패배를 맛보고 나처럼 그걸 되새김하고 있는 것이겠지.”
“패배……? 제 주인님께서 패배를 하셨다고요?”
당시에 무명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탓에 앨리스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토끼 신사는 참여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저 당시에 임무를 실패하고 돌아왔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사실 임무의 실패라 할 것도 없었다.
카르후에게 맡겨진 임무를 앨리스가 그저 독단적으로 따라간 것뿐이었으니.
“그래. 으음, 전신이 쑤신 상태였던지라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내가 알기로 인간들 중에 그……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있다. 우중충하게 생긴 놈. 그놈과 한판 붙었지. 근데 내가 처맞…… 아니, 격렬하게 싸우고 있던 도중에 대뜸 광대가 내게 돌아오더니 그 인간을 향해 ‘괴물!’이라고 소리치더군.”
“주인님께서 인간을 향해 ‘괴물’이라 외쳤단 말입니까……?”
“맞다. 제법 생긴 대로 내지른 비명이었지. 그하하하핫!”
그 뒤로 카르후는 원래 패배하며 성장하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넘어갔지만, 토끼 신사의 표정은 풀릴 줄을 몰랐다.
그에게 있어서 앨리스는 존재의 이유이자 정신적 지주였기에.
그런 주인이 흔들리는 모습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거기다 최근 타인에게 관심을 갖지 않던 그녀가 가면의 사내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한편, 정작 장본인인 앨리스는 토끼 인형으로 가득한 방에 앉아 몇 번이고 떠올렸던 당시의 상황을 되새기고 있었다.
“인간이 어떻게…… 시간에 간섭할 수 있지?”
앨리스.
세로로 가른 듯 검은색 반, 흰색 반의 머리카락을 소유한 이 소녀는 2년 전에 만났던 어느 소년을 떠올리며 그리 중얼거렸다.
당시 셰인을 가두었던 검은 벽, 앨리스가 서커스장이라 명명한 그곳은 앨리스가 직접 창조한 공간이었다.
이 세계와 완벽하게 분리된 그곳에서 앨리스는 자신의 능력, 현실 조작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한 명의 인간이 같은 시간대에 2개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니. 말이 안 되는데…….”
앨리스는 주로 그곳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훑어보고, 그 기억을 멋대로 조작하여 혼란을 느끼도록 만든다.
가령 예를 들면,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믿도록 하거나.
그 반대의 일도 가능했다.
그로 인해 일어나는 혼란을 앨리스는 좋아했기에, 셰인에게도 같은 수를 써 보았으나,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애초에 셰인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했을뿐더러, 그 기억을 읽는 것조차 셰인이 허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앨리스는 모르지 않았다.
그렇게 오히려 본인이 혼란한 와중에 셰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앨리스를 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 네가 있는 그 자리는 혼란이 가득한가, 광대여? 아니면 그 자체가 이미 정해진 길이고, 그대는 그 길을 걷고 있을 뿐인가.]그 말이 앨리스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언제나 다른 존재의 혼란을 즐기던 소녀가 처음으로 혼란에 빠진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길…….”
소년의 말에 의하면, 그리고 그의 기억에 의하면 현재 무명이 일으키는 혼돈과 혼란은 이미 정해진 결말이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결말 속 혼돈과 혼란은, 정말 혼돈과 혼란이 맞을까?
아니.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무엇 하나 제대로 정해지지 않은 것이 바로 혼돈이며 혼란이다.
그렇기에,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소년의 말은 너무도 달콤하게 다가왔다.
[이미 만들어진 혼란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지 않나?]이미 만들어진 혼란을 엉망으로 만든다?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가 아닌가.
여기서 토끼 신사와 카르후가 한 가지 착각하는 게 있다면, 앨리스는 고민 따위 하고 있지 않았다.
소년이 제시한 미래가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그저 너무도──
“지루해~.”
지루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재미있다고 느꼈던 조직의 임무도 그녀에게 큰 감흥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
그저 소년이 말한 시간이 길게 느껴졌으니.
앨리스는 그 소년이 가지고 올 혼돈을 기대하며, 두 눈을 감았다.
* * *
잠에 빠진 셰인은 꿈속을 거닐었다.
별다를 바 없는 꿈이다.
회귀 전 자신의 모습.
자의식이 생긴 질투에 의해 스스로의 내면에 봉인되었던 그 시절.
당시는 한참 조직과 인간의 전쟁이 시작됐던 무렵이었다.
인간의 연합을 붕괴시키고, 서로가 서로를 향해 칼을 뽑아 든 그 순간 조직은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침공을 당한 것은 하이엘 왕국이었다.
제국과 연합국, 그리고 다른 국가들 사이에 껴 있는 하이엘 왕국은 타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통로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기억 속 질투의 자의식이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녀가 움직였으니, 하이엘 왕국의 멸망도 그리 멀지 않았군.”
그녀.
1군단장이었던 셰인을 다음으로 2군단장이 된 존재.
정령왕 엘퀴네스(Elquiness).
본래 조직에서도 대표적인 보수파였던 그녀는 인간을 공격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종족, 정령을 지키는 데 더 집중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녀는 인간을 증오하게 되었다.
정령왕의 분노는 인간들이 감당하기 힘든 것이어서, 가장 먼저 그 타깃이 되어 버린 하이엘 왕국은 아마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하이엘 왕국은 고작 며칠 만에 완벽한 폐허가 되었다.
당시 질투의 자의식은 그런 정령왕이 만들어 낸 광경을 바라봤다.
대지가 분노한 듯 정상적인 지형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은 더 이상 사람들을 보듬어 주지 않고, 닿는 모든 것을 날카롭게 잘라 낸다.
화염도 그 거대하던 왕성을 한낱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물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모든 4대 정령이 분노하여 하이엘 왕국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인간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한 채 다가오는 모든 생명체를 멸살시키는 광경.
자연 그 자체가 인간이라는 종족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무(無)로 되돌리는 그 풍경이란.
만약 정령왕이 칩거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굳이 셰인이 나설 것도 없이 제국 또한 무너져 내렸으리라.
꿈속, 질투의 자아는 그런 풍경을 바라보며 무관심하게 돌아섰다.
그에게 있어서 정령왕의 분노가 어찌 됐든, 이후 하이엘 왕국을 안정화시키고 통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기만 하면 될 뿐이었으니.
그러나 그 꿈속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셰인은 지금 이 장면이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뭐지?”
여태까지 전생과 관련된 꿈을 꾼 적은 몇 차례 있었으나, 그때는 반드시 전생과 관련된 존재와 만나거나 떠올렸을 때만 그러했다.
전생에 한 번도 대화를 나눠 본 적 없던 2군단장과 관련된 꿈을, 지금 꿔야 할 이유가 없던 것이다.
“내가 무엇을 보여 주려 하는 것이냐.”
그제야 셰인은 이 꿈을 해석하기 시작했고, 끝내 이해했다.
“신성. 산왕의 신성이로군.”
신성이, 무언가를 읽어 셰인에게 보여 주고 있던 것이다.
지금, 자신이 무언가 정령왕과 관련되어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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