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08)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08화
108화 교만과 정의 (1)
다크엘프 아르웬의 보고에 따라 목적지를 향해 걷던 셰인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명에서 승부수를 던졌군.’
가면을 쓴 셰인은 무명의 입장에서 본다면 눈엣가시일 것이다.
메자이아 대수림에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다크엘프를 빼돌려 대계에 재를 뿌리고.
아룬비다에서는 15만 몬스터 대군을 활용한 카르가토의 주술을 무력화시킴과 동시에 대족장 파가부탄의 목숨을 취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더해 무명과 손을 잡고 있던 황태자 또한 살리에르 백작을 잃어버리면서 이종족 노예에 대한 수급이 늦어졌고, 추가적으로 그의 거래 장부 때문에 곤욕을 치르게 됐다.
그 결과 오랜 시간 무명이 준비하던 밑그림들이 하나둘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무명은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 시점에서 가면의 사내가 이끄는 다크엘프를 살려 보내고, 찾아올 수밖에 없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드디어 무언가 깨달은 모양이지.’
한편, 무명의 입장에서는 가면의 사내가 가지고 있는 저의가 무엇인지 확신하기엔 힘들었을 것이다.
정황상 올리시아에게 협력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나, 제대로 된 증거는 보이지 않았으니.
그러나 앞서 다크엘프인 아르웬이 발각되면서, 그제야 무명은 확신했다.
가면의 사내와 올리시아 사이가 협력 관계라는 것을.
‘아르웬이 들킨 시점은 3차 테러가 일어나기 하루 전. 그러니 3차 테러는 나에게 혼자 오라는 시그널로 해석할 수 있겠군.’
4차 테러를 막고 싶다면 최소한의 병력으로 찾아오라는 것일 터.
‘저쪽도 병력은 많지 않을 거다.’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시점이 아니라 생각한 무명에서도 병력은 최소한으로 보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이번 일을 쉽게 볼 수는 없었다.
분명 조직에서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셰인을 죽일 궁리를 하고 있을 테니.
그렇게 광산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셰인은 직감했다.
‘최소 군단장급.’
마치 자신의 존재를 숨길 생각이 없다는 듯, 광오하게 내비치는 존재감.
‘분노와 음욕은 지금쯤 니카르 사막에서 활동 중이고, 아직 나태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를 토대로 셰인은 지금 시점에서 운신이 가능한 군단장을 떠올려 봤다.
여러 가능성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던 와중, 딱 하나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교만.’
제3군단장이자, 전생의 디라일라 이전, 교만을 담당하던 존재.
“호오. 진정 홀로 찾아왔군.”
루치페(Lucife).
그가 오만으로 가득 찬 같은 눈동자로 셰인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 * *
‘1황녀 올리시아가 흑마법사와 내통하고 있다!’
이러한 소문이 제국에 널리 퍼지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몇몇 신문사들은 용감하게도 그와 관련된 내용의 기사가 담긴 신문을 배포했다.
대부분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한 폭로라는 것을 확실히 밝히며, 아직은 이 제보에 대한 신빙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는 두루뭉술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사람이 두 명 이상 모이는 곳에서는 흑마법사와 테러, 그리고 올리시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덴 충분했고.
그렇게 소문이 커지기 시작하자 몇몇 황색 언론에선 마치 그 내용이 진실이라는 것마냥 기사를 내기도 했다.
“확실히, 오라버니의 실력도 참 대단하네요.”
이 모든 일이 고작 이틀 사이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올리시아는 이러한 사태가 일어날 것을 미리 예측이라도 하고 있던 것인지, 여전히 차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현재 그녀는 황궁에 불려왔다.
소문의 진의에 대해 해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리시아가 테러를 일으켰든 아니든, 자신의 이름이 거론됐으니 직접 해명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올리시아의 주변으로는 평소 함께 다니던 오스튼도, 또 다른 측근들도 남아 있지 않았다.
“홀로 이겨 내야 한다는 거겠죠.”
이는 올리시아가 직접 선택한 일이었다.
새뮤얼이 원하는 것은, 이러한 정치적 공방을 통해 올리시아의 발걸음을 잡는 것일 테니까.
때문에 오스튼은 무명이 일으킬지도 모를 4차 테러 사태를 대비하러 떠났고, 다른 측근들 또한 그런 오스튼을 보조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다만 그 덕분에 올리시아는 어느 누구의 보조도 받지 못한 채로 청문회에 발을 들여야만 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이렇듯 올리시아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이미 이와 같은 수법을 과거에 한 번 봤기 때문이었다.
9년 전.
아나스타샤가 아룬비다로 좌천당했을 당시, 새뮤얼은 이와 비슷한 형태로 아나스타샤에게 정치적 죽음을 선사했었다.
이후, 올리시아는 자신도 같은 수에 당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 방안에 대해 떠올리고 있지 않았던가.
거기에 더해, 당장 위험에 처한 것은 올리시아뿐만이 아니다.
이미 자신을 위해, 더 나아가 제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전선에서 뛰고 있는 이들이 있지 않던가.
직접 지휘를 위해 황궁 밖으로 나간 오스튼부터 시작해서 아나스타샤 또한 지난 전투 이후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또다시 일어날 테러에 대비하고 있었다.
클라인과 그의 팀원들도 부상자를 제외한 채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였고, 연합국의 의장 마일드도 지금쯤 사방에서 들어오는 정치적 공격에 넝마가 되어 가고 있을 터.
그리고 무엇보다.
‘적어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부담에 비하면…….’
무명의 함정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떠난 셰인.
아룬비다에서 황궁으로 떠나기 전, 그의 전언을 가지고 찾아온 애덤은 올리시아에게 자신이 듣게 된 전언을 남겼다.
전언의 내용은 혹시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시 대처할 방안이었다.
셰인 또한 작전의 일부가 실패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다.
모두가 열심히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고자 목숨을 걸고 임무에 임하고 있다.
그러니 고작 이런 위험에 위축될 수 없었다.
그렇게, 올리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기품 있는 발걸음으로 청문회장의 문턱을 밟았다.
-정당하고 고귀한 1황녀 제페르 디 아르샤 올리시아 님께서 입장하십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회장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이미 물고 늘어질 준비를 마친 하이에나들의 시선이 단번에 그녀를 향해 날아들었다.
* * *
짙은 회색의 머리카락에 흑요석 같은 눈동자가 셰인을 내려다본다.
“교만의 루치페.”
“호오. 나를 아나?”
제법 흥미가 동한 얼굴로 그리 묻는 루치페를 향해 셰인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셰인은 그에 대해 완벽히 파악해 둔 상태는 아니다.
셰인이 군단장이 되어 무명이라는 조직을 알기 시작했을 무렵, 교만의 군단장 루치페는 이미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듣기로 그는 자신의 이명처럼 교만하며, 또 그에 걸맞은 힘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에 그가 사망한 이유는 스스로의 힘을 믿고 무명의 가장 위에 군림하고 있는 자에게 도전했기 때문이다.
즉, 반란이었다.
하지만 그의 반란은 끝내 실패했고,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다만 그렇다 하여 그의 가치를 폄훼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도전할 만큼 힘이 있었기에 그러한 미래를 맞이했던 것뿐.
루치페는 강적이 분명했다.
“물론. 무명의 3군단장이자 스스로가 가진 격을 인정하지 못하는 머저리지.”
“……궁금하군. 말하는 걸 보면 교만하기는 나보다 더 한 것 같다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나에 대해 웬만큼 알고 있는 모양이야. 넌 도대체 누구지?”
“네가 알 필요는 없다.”
“크큭, 그렇지. 오히려 그렇게 나와 주길 바랐다. 기왕 이렇게 나온 거, 몸이라고 풀고 싶었으니. 듣기로는 네놈이 내 계획을 무산시켰다고 들었거든.”
루치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셰인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마법진이 펼쳐졌다.
느껴지는 마력의 양만 보더라도 가히 7서클의 마법이 담긴 파괴적인 기운이었다.
그만한 마법을 물 흐르듯 영창 없이 사용한다.
데드 라이징(Dead rising).
피잉-
닿는 모든 것을 원자 단위로 분해해 버리는 죽음의 레이저가 눈 깜짝할 사이에 셰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죽음의 빛은 마치 거울에 굴절되듯 교묘하게 셰인을 피해 갔다.
“오. 역시. 너도 제법 마법에 대한 이해가 있는 모양이군. 그건 룬 마법인가? 그 마녀가 쓰는 것과 비슷한데. 원래 우리 조직에 있던 놈이냐?”
“…….”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는 거군. 심심한 녀석이야. 뭐, 널 데려가면 어차피 다 알 수 있겠지.”
교만, 루치페는 셰인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말이 많은 자였다.
하기야,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놈이지 않나.
충분히 그럴 만했다.
이번에는 같은 계열의 창이 마법진 너머로 튀어나와 셰인을 향해 날아들었다.
데드 라이징 성질 변환.
데드 스파이크(Dead spike).
파멸의 기운이 담긴 창은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셰인의 굴절 룬 마법조차 무시했다.
셰인의 룬 마법 패턴을 읽고 굴절을 파훼하기 위해 즉석해서 개조한 마법이었다.
다만 그로 인해 속도는 아까보다 느려진 터라, 셰인은 그 경로를 읽고 창을 피해 냈다.
“흡.”
그 과정에서 창에 꿰뚫린 옷자락이 분해되어 사라져 갔다.
닿는 즉시 모든 것을 분해해 버리는 그 파괴적인 힘은 과연 위협적이었다.
동시에 셰인은 검은 칼날을 소환해 냈다.
즐겨 쓰던 윈드 커터가 아닌, 4서클 마법 플레임 블레이드(Frame blades)를 룬어로 압축시키고 회전력을 더한 수십 개의 칼날.
루치페를 향해 정교한 검로를 그리며 날아든다.
그러나 루치페가 휘저은 간단한 손짓 한 번에 해당 경로에 있던 모든 불의 칼날이 사라졌다.
어느새 소멸의 힘이 담긴 원판이 정확히 불의 검이 날아든 경로에 생성된 것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법의 유연함.
소멸의 힘이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마법에 의해 발현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원자 단위로 분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게 상반되는 마력 원소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분해하는 힘 따위는 없기에, 눈앞에 있는 루치페는 셰인이 다루는 마법을 한눈에 알아보고 전혀 상반되는 마력 원소를 부여해 소멸시킨 것이다.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수준의 마력 컨트롤.
그러나 루치페는 이를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내고 있었다.
“확실히, 그 종족다운 능력이로군.”
“…….”
한 차례의 공방이 오가고서야 셰인이 입을 열자, 그 수다스럽던 루치페가 입을 다물었다.
굳이 말하자면 그의 역린과도 같다고 해야 할까.
저 오만한 존재가 마지막까지 오만하기 위해 무명의 지배자에게 덤벼들었던 이유.
“드래고니안은 다르다 이건가.”
“흐, 그렇지. 내 창조주가 바로 드래곤이니. 하등한 인간 따위가 만든 마법이 감히 내게 통할까.”
드래고니안.
드래곤이 스스로의 피로 창조해 낸 생명체.
마력의 지배자라 불리는 드래곤의 피가 흐르는 그에게 있어서 마법의 변환식 따위는 말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펴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교만할 자격이 있었다.
모든 생명체의 지배자로서 군림했던 드래곤의 피를 이은 종족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증명하듯, 또다시 셰인을 향해 루치페의 마법이 쇄도해 왔다.
방금까지는 그저 탐색에 불과했다는 듯, 사방에서 다양한 형태의 파멸이 다가왔다.
대지의 원소를 품은 방어막은 원소 간 간격이 넓혀져 파훼되고.
윈드 커터는 철의 힘이 담긴 검에 분쇄되며.
불의 장막은 냉기를 품은 칼날에 꿰뚫린다.
셰인의 모든 마법이 발현 즉시 사라지자 더 이상 방해받을 게 없어진 파멸의 마력이 셰인을 향해 쇄도해 왔다.
“쯧.”
어떤 마법으로도 막을 수 없는 파멸의 빛을 바라보며, 혀를 짧게 차며 다시 한번 회피 동작을 펼쳤으나.
[주인님!]아르카네가 비명과 같이 셰인의 이름을 외쳤다.
아까 셰인의 움직임을 이미 한 번 봤던 탓인지, 루치페의 마법이 끝까지 셰인을 추적해 온 것이다.
“너만 좌표 수정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실시간으로 마법의 좌표 수정까지 끝마치는 연산 속도마저 셰인의 생각 이상으로 빨랐다.
그에 루치페가 이루어 낸 파멸의 빛이 셰인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자, 셰인의 피부가 빠르게 가루가 되어 갔다.
“큭.”
마력을 일으켜 상처 부위를 막은 셰인이 낮게 깔린 눈으로 루치페를 바라봤다.
“인간 주제에 반응 속도도 제법이군. 자, 선택해라. 너 따위가 아무리 발버둥 친들 내 마법에 대항하진 못한다. 이대로 순순히 끌려갈 건가? 아니면 더 해 볼 테냐. 내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더 버텨 주면 좋겠군. 아직 손도 제대로 안 푼 상황에 너무 싱겁게 끝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여전히 오만함이 느껴지는 루치페의 눈을 마주하며, 셰인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험 삼아 마법을 활용해 봤으나 역시 드래고니안 종족을 마법으로 이긴다는 것은 주제넘은 판단이었다.
“네놈의 바람대로 해 주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디 끝까지 해 보도록 하지.”
셰인으로부터 퍼진 어둠이 일렁거리자, 루치페의 눈동자에 보다 강한 호기심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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