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12)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12화
112화 무명의 제1군단장 (1)
오스튼이 부른 병력은 셰인이 전투 중인 6번 출입구와 거리가 먼 4번 출입구로 향해 들어갔다.
아나스타샤를 선두로 램퍼트 모험단이 방패를 들어 사주를 경계하고, 클라인을 비롯한 하얀나무 모험단이 혹시 모를 적의 기습에 대비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밑으로 내려갔을까.
버려진 채굴 장비들이 모여 있는 구역에 들어서던 와중, 알 로스가 조용히 일행들에게 알렸다.
“어, 저기! 저기 이종족들이 있습니다!”
한쪽 구석에 모여 있는 수십 명의 이종족 노예들. 척 보기에도 상태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행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앞서 저들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폭주했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다가가서는 안 됩니다, 황녀님.”
일렉사의 걱정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클라인에게 물었다.
“클라인. 어떻지? 할 수 있겠나?”
“……일단, 확인해 보겠습니다.”
악어 수인 때처럼, 클라인의 마력이 공간을 메우기 시작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전보다는 훨씬 조심스럽게 기운의 발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아직도 그날의 사건 이후로 디라일라는 정신적 데미지를 치유하지 못했고, 알렉스도 사경을 헤매던 끝에 부상을 치료 중이며, 아르티아는 한동안 전투에 나설 생각이 없다며 빠져 버렸으니.
더군다나 클라인도 당시 이종족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기에, 그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황금빛 마력을 뻗었다.
‘조심, 조심스럽게.’
이미 온갖 고초를 겪은 탓에 이종족들은 클라인의 마력에도 피하지 않고 그저 두 눈을 꼭 감기만 했다.
다가오는 고통에 대비하는 듯한 그들의 몸집 하나하나에 클라인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전처럼, 희망을 품었던 이들이 눈앞에서 허무하게 생명의 빛을 잃어버리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기에.
그렇게 한참을 집중하던 끝에, 클라인은 그들의 체내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굉장히 끈적거리면서도 불쾌한 느낌이었다.
거기서부터 강인한 생명력도 느껴졌다.
‘이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혈마력의 기운이 이종족의 몸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저 혈마력이 뭉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게 형님이 말씀하신 기생충인가?’
이곳에 오기 전, 셰인이 올리시아에게 남긴 전언이 있었다.
이전과 다르게 이종족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폭주하게 된 계기는, 적들이 이종족에게 심어 둔 혈마법의 변화에 있을 것이라고.
셰인의 의견을 들은 생명학파의 흑마법사들도 개탄하며 외쳤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학파의 마법사들이 이러한 방법을 쓴 것을 본 적이 있었소. 다만 그때는 아직 실험 단계였고, 토벌 사태 이후로 완전히 유실된 줄 알았는데…….]그걸 무명이라는 조직이 이어서 받은 모양이다.
생명학파 흑마법사의 설명에 의하면 네크로 버그(Necro bug)라는 이름의 벌레라고 했던가.
주로 사체를 파먹고 사는 이 벌레는 원체 흑마력이나 혈마력을 잘 받아들이는 벌레 중 하나라고 했다.
‘거기에 에너지를 농축시키는 데 특화된 녀석들이라고 했지.’
클라인은 이어지는 흑마법사들의 설명을 떠올렸다.
[본래 네크로 버그를 활용한 흑마법은 복용자에게 미리 먹여 두고 그 복용자가 죽었을 시에 특정 마력을 신호로 보내어 바로 언데드화시키는 역할이었소.] [아마 그걸 혈마법으로 변형시켜 만들었을 것이오. 혹여 그들이 이 네크로 버그를 활용한다면, 결코 이전과 같은 방법을 써서는 아니 되오.]네크로 버그는 어둠의 정령이 다른 존재의 감정을 먹고 그것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듯, 흑마력이나 혈마력을 흡수하고 자신의 에너지로 바꾼다고 했다.
그러니, 이전처럼 소유권이 없는 에너지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대로 폭주를 하거나, 끔찍한 고통을 토해 내며 죽어 갈 테지.]그렇기에 그에 대한 해결법에 대해 물었으나, 흑마법사들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오. 아주 천천히 놈들의 몸에서부터 마력을 중화시키면 될 일이지. 다만, 그 과정에서 숙주의 고통이 상당하다는 것이 문제요. 숙주에 따라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소.] [그게 아니라면, 정확히 좌표를 지정해서 놈을 냉각시키는 법이 있지. 놈들도 추위가 찾아오면 동면을 하니까. 그러나 이 방법에도 문제가 있소. 숙주의 신체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마법사가 필요하지. 둘 다 이전처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오.]그러면서, 흑마법사들은 자신들에게 연구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해결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했으나, 당장은 그걸 해결할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해답이 없는 걸까.
클라인은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종족들을 바라보며 결국 두 눈을 감았다.
이대로는 저들에게 두려움과 고통만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인도적인 선택이 아닐까.
그렇게 클라인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자, 아나스타샤가 입을 열었다.
“해결하기 힘든 모양이군.”
“……예.”
“그거면 됐다. 그대는 판별만 하면 돼. 선택은 지휘관인 내 몫이니.”
아나스타샤도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매한가지였으나, 결국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나스타샤가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신이 일으킨 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포기하지 않는 자들에게 내린 하나의 기회인 것일까.
클라인은 저 위로부터 거대한 마력의 파장을 느꼈다.
“어……?”
아주 잠깐.
마력에 극도로 예민한 클라인은 방금 아주 잠깐이지만, 세상이 멈춘 것 같다는 기이한 현상을 겪었다.
그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기에 뭐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으나, 클라인은 느낄 수 있었다.
방금, 무언가 저 위에서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뭐였지? 아니, 잠깐.’
그러던 그때, 클라인은 방금까지 자신이 지켜보고 있던 이종족에게서 특이점을 발견했다.
방금까지 농후한 혈마력을 내뿜고 있던 네크로 버그가 모든 활동을 멈춘 것이다.
‘왜지?’
무엇 때문에 저 벌레들이 모든 활동을 멈춘 것일까.
혹시나 싶던 클라인은 서둘러 다른 이종족들도 살펴봤다.
그 결과, 역시나 다른 벌레들마저 모두 일제히 활동을 멈춘 상황.
마법에 대해 문외한인 클라인이었지만, 벌레들의 이상행동은 방금 위에서 느껴진 거대한 마력의 파동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아무것도 안 해 보는 것 보단…….’
적어도 흑마법사들의 의견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좋은 현상이었다.
네크로 버그들은 수면기에 들어가지 않는 한, 꾸준히 활동한다고 했었으니까.
“황녀님. 이종족들의 신체에 기생충들의 움직임이 멈췄습니다.”
“음? 왜 그러지?”
“저도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이라면 놈을 안전하게 빼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흐음…….”
그러자 아나스타샤가 고민에 휩싸였다.
과연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저 위험한 이종족들을 살리기 위해 도박을 해 봐야 할까.
그러자, 옆에 있던 하얀나무 모험단의 단장, 말셀러스가 입을 열었다.
“황녀님. 일단 이 청년의 말대로 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경계는 저희가 철저히 하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아나스타샤도 이를 허락했다.
“여러분. 저희는 연합국에서 왔습니다. 여러분을 구출하기 위해서 찾아왔으니, 잠시 협조 가능하겠습니까?”
“여, 연합국?”
“구출하러 왔다고……?”
클라인의 말에 이종족들이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쉽사리 일행들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모두 인간에 의해 납치되어 지금의 상황까지 이어진 것이었으니.
이에 클라인은 보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어떻게든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아나스타샤가 대신 입을 열었다.
“너희들의 몸에는 현재 강제로 수인족의 피를 폭주시키는 벌레들이 잠들어 있다. 이제부터 그걸 제거해야 하니, 일렬로 줄을 서도록.”
“벌레?”
“놈들이 그때 우리에게 먹인 게 그거인가?”
“가, 강제로 폭주시킨다니.”
“아아…….”
이종족들 사이에서 더욱 동요가 일어났으나 아나스타샤는 이를 두고 볼 시간이 없었다.
“서둘러라! 지금 너희 몸속에 잠든 벌레들이 깨어난다면 언제 너희가 폭주하게 될지 모른다. 그럼 우리는 너희를 전부 사살하는 수밖에 없어!”
“……!”
강압적인 아나스타샤의 말에 몇몇 이종족들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들 또한 폭주한 이종족이 어떻게 죽어 갔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하나둘씩 일행들 앞으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나마 제일 건장해 보이는 견족 수인이 앞장섰다.
“……정말, 저희를 구해 주시는 겁니까?”
“그런 질문을 할 시간에 어서 준비나 해라. 더 늦었다간 구할 수 있는 이들조차 놓치는 수가 있어.”
“아…… 알겠습니다.”
견족 수인은 끝내 클라인 앞에 섰고, 클라인은 조심스럽게 그의 몸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함부로 네크로 버그를 죽여서는 안 된다.
놈은 그저 잠들었을 뿐이지, 그 안에 내재된 혈마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
“안에 있는 기생충을 빼내려면, 배에 충격을 가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레가 죽을 수도 있으니 자칫 위험해지는 수가 있어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당신의 몸에 제 마력을 흘려보낼 겁니다. 그 마력으로 녀석을 감쌀 텐데, 그 과정에서 이질감이 느껴져도 견디셔야 합니다. 제 마력을 거부하시면 안 돼요. 아시겠습니까?”
“어어, 예. 알겠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배에 벌레를 빼내야 한다 하지 않나.
견족 수인은 얼떨결에 클라인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말셀러스는 언제 사태가 심각해질지 모르기에 손을 검의 손잡이에 올려 두고 상황을 지켜봤다.
‘대단하군.’
얼핏 클라인이 쉽게 말하긴 했으나 저건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검에 마력을 입히는 것부터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는 마당에, 타인의 뱃속에 있는 기생충을 마력으로 감싼다?
어지간히 마력의 컨트롤이 좋은 수준으로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으.”
“참으세요. 이제 배에 충격을 가할 텐데, 구토감이 느껴지면 참지 말고 내뱉으셔야합니다.”
“아, 알겠습…… 우읍, 우웨엑!”
“……! 나왔다!”
“그으으…….”
견족 수인의 입에서 튀어나온 벌레는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견족 수인은 공포 어린 눈으로 그런 네크로 버그를 바라봤다.
“이, 이런 게 내 몸에 있었다니…….”
“히이익…….”
이를 뒤에서 지켜본 다른 이종족들도 공포에 휩싸인 표정으로 자신들의 배를 어루만졌다.
“모두 멈춰. 지금은 놈의 움직임이 멈췄는데 괜한 자극을 주지 마라. 그냥 조용히 여기로 와서 기다려. 알겠나?”
“아아, 알겠습니다.”
그러자 이종족들은 서둘러 줄을 섰다.
안전이 확인되자마자 그들은 가장 어린 이종족부터 앞으로 내세웠고, 일사불란하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일행들의 표정도 밝아졌다.
이대로 죽일 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방법을 찾아냈으니.
몇 차례 같은 작업을 반복한 클라인은 이제 아예 양손을 다 써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저게 정말 가능한 건가?”
“괴물 같은 재능을 가졌다더니…….”
“유명세를 괜히 얻은 게 아니란 말이지. 대단하군.”
하얀나무 모험단과 램퍼트 모험단의 일행들이 그런 클라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척 보기에도 굉장히 섬세함이 필요한 일을,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었으니.
그러는 와중에 알 로스는 괜히 자신의 친구가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들을 가죽 주머니에 담았다.
이걸 가져간다면 이후 같은 상황에서 클라인이 찾아낸 해결법 외에도 다른 방법을 찾을지도 모를 테니.
한편 아나스타샤는 오스튼에게 전해 들었던 어떤 존재를 찾기 위해 둘러보던 찰나, 한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 중성적인 외모와 더불어, 새하얀 눈썹을 제외하면 체모는 단 한 가닥도 보이지 않는 특이한 외형의 아이.
이제 겨우 7~8살쯤 됐을까 싶은 아이는 다른 이종족들과 다르게 가장 구석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리고 동시에 아나스타샤는 직감했다.
저 아이가, 바로 오스튼이 말했던 존재라는 것을.
“클라인. 저 아이에게서도 혈마력이 느껴지나?”
“아, 저 아이 말입니까? 음…… 이상하게도 느껴지질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부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
아이의 무지갯빛 눈동자와 마주한 아나스타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차례 셰인과 영혼이 겹쳐지면서 산왕과 마주했던 경험이 있던 아나스타샤는 어느 정도 다른 존재의 격을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런 와중에 저 자그마한 아이에게서부터 느껴지는 존재감은 실로 거대했다.
아나스타샤는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뒤에서 따라오려는 램퍼트 모험단에게는 대기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인간의 말을 알아듣느냐.”
“……네에.”
“이리 오거라. 여기는 위험하니, 우리를 따라오너라.”
“……안 돼요.”
“왜 그러지?”
“그럼 위험해져요.”
“우린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다만.”
“아뇨, 여러분들이 위험해져요.”
“……? 무슨 말이냐.”
“저도 잘 몰라요. 그런데, 위험해질 거예요.”
“……?”
위험해진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아나스타샤는 이 범상치 않은 아이가 하는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놓고 갈 수도 없는 노릇.
올리시아에게 듣기로 셰인도 지금 이 광산에 찾아온 상태가 아니던가.
바로 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괜찮다. 위험을 각오하고 온 것이니.”
“…….”
무지갯빛 눈동자가 아나스타샤를 바라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읽히지는 않았으나, 이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나스타샤의 손을 붙잡았다.
“아……!”
“……?!”
그러던 순간.
아이의 옅은 신음 소리와 동시에, 위에서부터 거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더없이 거친 그 마력을 느낀 순간, 아나스타샤는 오리진을 일으켜 아이와 자신을 보호함과 동시에 외쳤다.
“전원! 충격에 대비해라!!”
그 외침과 동시에, 찢어질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며 광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