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1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19화
119화 떠나는 자, 돌아가는 자
“누구…… 라니요?”
“뭐, 말해 주기 싫으면 됐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올리시아의 말문이 막히자, 엘라인은 본론으로 돌아와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 거래 장부들이라는 거구나.”
“네, 그렇죠.”
“확실히 골칫거리긴 하다. 그런데 해결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네? 정말요?”
올리시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건 정말 대형 폭약이었으니까.
그에 엘라인이 큰 목소리로 웃었다.
“크하하, 그렇지. 너에게 그런 조언을 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붙잡고 있어라. 현명한 녀석이로군.”
“아…… 네. 감사해요. 그런데 해결 방법이라는 게 뭔가요?”
“뭐긴 뭐겠냐. 망나니에게 칼춤 좀 춰 보라는 거지. 그 거래 장부, 전부 나에게 넘겨라. 해결은 내가 알아서 하마. 너는 중재하는 역할만 하면 돼.”
“설마…….”
“진부한 방법이지. 악마 선임과 천사 선임. 하하핫.”
그 말에 올리시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엘라인이 말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 * *
처음 엘라인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경험이 많은 노회한 귀족들은 반드시 황실에 피바람이 불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그대로 적중했다.
올리시아와 엘라인이 만남을 갖게 된 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자, 잠깐! 그게 도대체 언제 적 일인데 이제 와서……! 아버지, 아버지!”
“놔라! 이거 놓으란 말이다!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이대로 끌려갈 수는 없어! 폐하를 알현해야겠다!”
황실에 혈겁이 불었다.
지상으로 나와 버린 거래 장부.
엘라인은 자신이 내뱉은 말처럼 정말 망나니가 되어 수많은 귀족들을 고발했다.
“이대로 가다간 제국에 귀족이 남아돌지가 않겠소!”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해결하긴 뭘 어떻게 해결해! 다름 아닌 그 엘라인이라고! 황실의 망나니!”
난리가 난 귀족들은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조차 잡지 못했고, 몇몇 젋은 귀족들은 오히려 엘라인에게 덤벼들기도 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지하도시에 있던 인간이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고발을 하느냐는 식이었다.
“뭔 헛소리냐. 나도 날 고발했다.”
“뭐, 뭐요?!”
“칼질을 하려면 내가 베일 것도 생각해야지. 안 그래? 크하핫!”
“이, 이 미친 작자가!”
“오냐, 어디 이 미친놈한테 물리면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알려 주마!”
그날, 엘라인에게 덤볐던 귀족은 거래 장부 건 이외에도 다양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렇게 그들은 왜 닳고 닳은 귀족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엘라인이라는 미친놈은 자기가 물어뜯겨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귀족들은 지금의 태풍이 지나가기만을 조용히 기다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켜만 보고 있던 것은 아니다.
“……하여, 이러한 이유로 황녀님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이 못난 노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러 귀족들 중 대표로 나선 늙은 귀족의 말에 올리시아는 평소처럼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로, 제플란 경께서는 이번 사태가 조금 진정됐으면 하는 바람이신가요?”
제플란 S 발룸.
제국의 시작과 함께 성장한 유서 깊은 백작 가문으로, 그는 여태 중립으로 있던 귀족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중립이라고는 해도 그가 가지고 있는 연륜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의 수도 결코 적지 않았다.
한마디로 원로 귀족 중 한 명이라는 것인데, 그의 위치는 황녀인 올리시아도 가벼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올리시아는 제플란이 먼저 저자세로 나오니, 일단 이야기는 듣겠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맞습니다. 가뜩이나 최근 제국에는 홍역이 많지 않았습니까. 이 이상 갔다간 일반 국민들에게도 영향이 끼쳐질까 두렵습니다.”
“흐음. 하지만 그 부분은 제 숙부께서 도맡고 계세요. 또한, 이는 폐하께서도 허가하신 일이죠. 제멋대로 행동할 수는 없어요.”
“물론 그렇습니다. 하여, 이 노회한 몸을 이끌고 폐하께 상소문을 올려 볼까 싶습니다.”
“상소문이라…… 제가 거기에 서명하길 바라시는 건가요?”
“예. 정확히 보셨습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수많은 귀족과 황녀인 올리시아가 올리는 상소문이라면 황제도 적당한 체면이 설 테니,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완전 무죄는 불가능하다는 거, 알고 계시겠죠?”
“물론입니다. 어찌 귀족이라는 자들이 죄를 짓고 넘어가길 바라겠습니까? 다만 저희는 그로 인한 혼란이 빚어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귀족 사회는 굉장히 복잡하다.
서로의 가문을 위해 정략 혼인을 시키기도 하고, 후원을 통해 몸집을 불리는 등 서로 간에 얽혀 있는 끈이 많다는 말이다.
그 끈은 귀족들이 서로를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 수단인데, 그게 이번 사태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단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그게 좋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귀족들의 영향력이 적어지면 그만큼 황제의 힘도 커지겠지만,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생기는 법.
‘그랬다간 제국이 이기주의로 물들겠죠.’
다 함께 연결되는 끈이 있기에 귀족들은 서로 조율하며 나라의 일을 본다.
한데 그게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그저 각자에게 이익이 되는 일만 골라서 할 게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모든 행정 처리가 늦어지게 된다.
아무리 황제의 영향력이 큰 제국이라 하더라도 황제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제플란이 이렇듯 중재를 요청해 오는 것이었다.
“좋아요. 제 이름을 거기에 올리도록 할게요. 하지만 그전에 상소문의 내용부터 알 수 있을까요?”
“여기 있습니다, 황녀님.”
“고마워요. 음…… 어머나.”
제플란이 내민 상소문은 새하얀 백지에 불과했다.
그 의미를 파악한 올리시아는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었다.
“정말 당해 낼 수가 없네요.”
“남은 부분은 황녀님께서 채워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알겠어요. 제플란. 이 일은 따로 기억해 두겠습니다.”
직접 상소문을 작성하면 그만큼 이번 일로 피해를 덜 보게 된 귀족들은 모두 올리시아에게 빚을 지게 된다.
명분이 중요한 귀족사회인 만큼, 이는 올리시아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었다.
‘슬슬 오스튼을 다시 불러들여야겠군요.’
이번 테러 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을 제국에 제출하고 있는 그를 떠올리며 올리시아가 미소를 지었다.
바쁜 오스튼이었지만, 이런 일에 제격인 사람은 역시 그뿐이었으니까.
* * *
마치 우주에 펼쳐진 도서관이라 하면 될까.
무한하게 펼쳐진 책장의 세계.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한 셰인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끌려갈 것만 같은 그 풍경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어서 오십시오, 셰인 님.”
중년의 사내가 멋들어진 집사복을 입은 채 허리 숙이며 인사를 건네왔다.
이곳 아카식 레코드를 담당하고 있는 존재, ‘사서’였다.
“오늘도 찾아오셨군요. 최근 자주 뵙는 것 같습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으니 이럴 때라도 이용을 해야지.”
“허허, 이 늙은이로써는 고마울 따름입니다만, 너무 자주 방문하시면 좋지 않으실 겁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정신력이 소모된다.
사서는 혹여나 셰인이 한계 이상으로 머물다 영혼이 손상되는 일이 생길까 싶어 걱정한 것이다.
“주의하도록 하지.”
아카식 레코드.
온 우주의 지식이 담겼다는 전설처럼, 이곳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수준의 지식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중 대부분…… 아니, 전부라 해도 좋을 영역은 셰인이 다다갈 수 없었다.
검은 안개로 가로막힌 그곳은, 셰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끌려갈 것 같은 위협이 느껴졌다.
[참고로 본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에는 가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 말이지요.]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무렵 사서가 했던 말을 떠올려 보면, 이는 괜한 위험이 아닐 것이다.
셰인은 굳이 그런 멍청한 선택을 할 생각이 없었기에, 자신에게 허락된 공간만을 돌아다녔다.
이 무한한 서재에 비하면 먼지 한 톨보다도 작은 수준의 공간만이 셰인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다.
‘그런 수준이라 하더라도 인세에 존재하는 그 어떤 서재보다 크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그 ‘먼지 한 톨’이 제국 황제가 거하는 황성보다도 더욱 거대한 공간이었다.
“니카르 사막에 관련된 정보를 보고 싶다.”
“음, 그건 열람할 수 있는 자료로군요…… 여기 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불러 주십시오.”
“고맙군.”
“별말씀을.”
셰인이 부탁한 책을 가지고 온 사서는 한쪽 책장에 배치되어 있던 바이올린을 꺼내 들어 연주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취미 생활이라고 했던가.
언제 한번 이곳에 있는 것이 지루하진 않으냐 물었더니, 음악이란 깊고 심오해서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만큼 음악에 있어서는 진심이라는 건가.’
들려오는 고풍스러운 연주 소리를 들으며 셰인은 나카르 사막에 관한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전생, 아직 무명의 말단이었을 당시 자신이 활약했던 무대에 숨겨진 변수는 없는가 하는 마음으로.
* * *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치료를 마친 셰인은 오랜만에 대수림 밖으로 나섰다.
몇 개월에 걸친 치료 덕분일까, 몸은 전에 없을 정도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컨디션은 아룬비다에 도착하고 단 일주일 만에 소진되고 말았다.
“음.”
“……또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나스타샤가 다가와 셰인의 어깨 근처에 코를 힐끗거리며 가져다 댄다.
“이제 좀 없어진 것 같군.”
“뭐가 말입니까?”
“숲 냄새. 왠지 모르게 불쾌하게 느껴졌거든. 이제야 사라진 것 같아서 만족스럽다.”
“……그렇습니까. 아무튼, 준비는 끝나셨습니까?”
“그래. 이제 여길 떠날 때가 왔군.”
그러면서 아나스타샤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표정을 한 채 테라스로 시선을 돌렸다.
삭막하기 그지없던 아룬비다는 전에 없던 활기를 품고 있었다.
낡은 건물들은 허물어져 보수가 이루어졌고, 거칠기만 하던 주민들 사이에서는 제법 미소가 피어오르고 있다.
추위에 잘 버티는 가축들을 들이고, 몬스터의 부산물을 팔며 이곳에선 구하기 힘든 식량을 구매해 집으로 돌아가 풍족한 식사를 즐긴다.
하나같이 아나스타샤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처음 볼 때뿐이랴, 당장 2년 전에도 이런 풍경이 펼쳐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건만.
이 모든 게 눈앞에 있는 사내가 이룬 업적임을 떠올리면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아나스타샤의 생각을 읽었기 때문일까, 셰인이 말했다.
“시작이 있었고, 그것을 이끌어오던 황녀님 덕분에 펼쳐진 광경입니다. 자랑스러워하셔도 될 일이지요.”
“……그런가.”
아쉽지 않냐면 그것도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아나스타샤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황실의 총사령관이 바로 그러했다.
아나스타샤는 그간 아룬비다를 성장시킨 것에 더불어 2년 전 제국의 북부를 지킨 공을 앞세워 황실로 돌아갈 발판을 만들었다.
본래라면 이곳 아룬비다를 떠날 생각이 없었으나, 앞서 일어난 테러 사태 이후로 이곳에만 머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새뮤얼의 흉수를 막아 내고, 무명으로부터 제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이곳 아룬비다만큼, 그녀는 제국을 사랑했으니.
“그래도 숙부님이 오신다니 다행이지.”
거기에 갑작스러운 엘라인의 등장에 아나스타샤는 퍽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현재 엘라인은 지하도시에 거두로 존재했던 죄목으로 이곳 아룬비다의 좌천이 정해진 상황이었다.
물론 좌천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고, 엘라인은 오히려 황실과 떨어져 있는 이곳 아룬비다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처음에는 그가 과연 이곳에 잘 정착할 수 있을까 싶었으나, 최근 몇 달 동안 황실에서 보였던 그의 행보를 본다면 이곳 아룬비다를 훌륭하게 통치할 수 있을 터.
“셰인, 넌 이제 어찌할 예정이냐.”
“이제 슬슬 요람으로 발을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요람이라……. 전에 말했던 나카르 사막인가?”
“예. 그렇습니다.”
“잘 다녀오길 바라지. 대신.”
“……?”
아나스타샤가 셰인의 뺨을 어루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이전처럼 다치지는 말아라.”
“……황송하군요.”
“훗.”
똑똑─
그때, 밖으로부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황녀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래. 이만 일어나지.”
그녀의 충신이자 보좌관인 미미르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둘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