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2화
12화 학과 시험 (5)
벤자민은 제법 흐뭇한 기분이 들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음을 깨달았다.
어느덧 시험이 치러지고 3일이 지난 시점.
방금 막 마지막 생도가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왔다.
그사이 던전을 클리어 하지 못한 생도도 많았지만, 클리어한 생도 또한 그 수가 결코 적지는 않았다.
그뿐이던가.
무엇보다 벤자민을 흐뭇하게 만들면서도 세월의 야속함을 느끼게 만드는 이유는, 상단에 있는 3명의 생도들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클레이튼 R 셰인.
당장 아카데미를 떠들썩하게 만들 정도로 경이로운 속도를 보이며 던전을 클리어한 생도였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울진대, 올해 20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벤자민의 던전 클리어 기록을 깨뜨린 생도가 둘이나 더 나왔다.
먼저 베른슈타인 오스튼.
마력불능자라는 이유로 가문에서 배척받던 생도는, 셰인보다 4시간 늦게 던전을 클리어했다.
놀랍게도 그의 던전 클리어 방식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셰인과 닮은 점이 많았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발광이끼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뿐일까.
오스튼 또한 고블린을 죽여 얻은 마취제를 분연구에 넣어 고블린들을 단체로 마취시키고 수월하게 토벌하는데 성공했다.
다만 셰인과는 다르게 발광이끼를 통해 시간 단축을 하지 못해 셰인보다 4시간이 더 걸렸다.
심지어 지휘를 하는 것만 보았을 때, 그 누구보다 노련하고 예측에 가까운 지휘 실력을 선보이며 던전을 클리어했다.
남은 한 명은 그런 오스튼보다 3시간 늦게 클리어했다.
과거 벤자민보다 몇 시간 차이 나지 않았지만, 그런 벤자민보다도 빠른 속도로 던전을 클리어한 것이다.
린트베르크 J 아네이스.
그녀는 셰인이나 오스튼처럼 던전의 지형지물을 활용하지는 않았으나.
탁월한 지휘력으로 던전을 돌파했다.
특히 무엇보다 탁월했던 것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골렘의 수준을 빠르게 분석하고, 그를 토대로 지휘함에 있어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히 지휘에 있어서 카리스마는 모든 생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셰인은 싸울 일 자체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오스튼은 어마어마한 예측으로 미리 작전을 구상해 뒀다면.
아네이스의 경우에는 실시간으로 전장을 파악하고 그때그때 맞춰 명령을 내리는 타입이었다.
전체적으로 전장을 보는 눈은 과거 20년 전의 벤자민보다 우월하다는 증거였다.
“스승님의 말씀이 맞았군.”
이 정도의 인재풀이면 지금의 지휘학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황금기가 맞았다.
당장 지휘학과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과에서도 역대급으로 뛰어난 생도들이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세월의 흐름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런 시기에 그들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어찌 보면 교수로서 최고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륙의 평화를 가지고 올 인재들이지.”
“어머, 그런 인재라면 저도 귀가 솔깃해지네요, 벤자민 기사단장님.”
“……언제 오신 겁니까.”
어느새 문을 열고 들어온 백금발의 소녀에게 천천히 고개를 돌린 벤자민이 낮은 한숨과 함께 그리 물었다.
딱히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별 신경은 쓰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굳이 지금의 감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기품 있는 발걸음은 그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에이, 그래도 기왕 온 건데. 그런 질문보다는 차부터 내주지 않겠어요?”
싱글싱글 웃고 있는 얼굴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얼굴을 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제 막 청순하게 핀 꽃처럼 사람의 마음을 어딘지 모르게 치유하는 미소였으나.
벤자민의 마음은 메마른 고원처럼 딱딱하기만 했다.
“황녀님께서 직접 아카데미에 행차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칫, 정말 쌀쌀맞으신 건 황궁에서나 여기서나 마찬가지네요. 자유의 몸이 되셨다길래 조금은 사람이 유해졌나 했는데.”
당연하지만, 황녀에게 이러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도 벤자민쯤 되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도 지금 둘의 상황에서 벤자민은 황녀에게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당신의 머릿속에는 제 동생만 가득한가 보죠?”
“황실 기사단으로서 저는 두 분 모두에게 아무런 정치적 도움을 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동생에게 인재라도 보내 주려고 아카데미에 오신 거 아니에요? 절 너무 얕보고 계시네요.”
“…….”
제국의 두 송이 꽃.
제페르 디 아르샤 올리시아는, 청순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 대화의 본질을 꿰뚫었다.
분명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건만.
벤자민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아, 세상이 참 야속하기도 하지. 동생에게는 당신과 같은 인재가 가득한데, 왜 저에게는 승냥이 같은 것들 밖에 없을까요?”
“잘 모르겠군요.”
“흥, 아무튼 제게 도움이 되기 싫다는 말씀이시네요.”
흥이 식었다는 듯, 그녀는 볼을 뾰로통하게 부풀리고는 고개를 픽 돌렸다.
저런 모습 하나하나가 남자의 심리를, 더 나아가 사람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는 것을 벤자민은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사람을 홀리기만 해서?
아니다.
사람으로부터 본능적으로 호의적인 감정을 느끼게 만들고 그 사이에 만들어진 틈을 노리는 것이다.
그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했고, 사람의 심리를 읽는데 있어서 그녀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은 여태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거 하나만큼은 좀 알려 줘요. 오늘 길에 재미있는 두 사람을 봤거든요.”
“저도 아카데미에 온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에이, 진짜. 그래도 좀 들어 봐요. 보아하니 단장님의 제자 같던데.”
“…….”
더 이상 단장이 아니라고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벤자민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이쯤 되니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클레이튼 가문의 형제를 봤어요. 소문으로 듣던 것처럼 둘 다 모두 훤칠하던걸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특히…… 검은 머리의, 그러니까 형인 셰인이라는 남자 말이에요. 뭐 하는 사람이에요?”
그 말에 벤자민도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이 황녀님의 눈에, 과연 그 무기질적인 표정의 소년이 어떻게 비춰졌을까.
벤자민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저 소문으로 판단할 생도는 아니라는 것 정도입니다.”
“헤. 단장님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재능에 있어서는 괜찮다는 거네요.”
황실 소속의 기사단장이었을 무렵부터 벤자민의 인재를 보는 눈은 정확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그런 그의 말이니만큼, 황녀도 두 눈을 빛내며 복도에서 봤던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의 외모에 자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청순한 외모를 어떤 식으로 휘둘러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그녀다.
여태껏 그녀의 외모에 연정을 품지는 않을지언정 호감조차 느끼지 않는 남자는 없었다.
적어도 첫 인상에는.
하다못해 일말의 변화라도 있어야 했건만.
그 남자는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벽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그 눈은, 올리시아로 하여금 심장을 떨리게 만들 정도로 심유했다.
그저 냉혹하다거나 냉철하다, 따위의 말이 아니다.
그 이상의 무언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도 않지만, 물건처럼 여기지도 않는다.
이따금 사람을 물건처럼 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물건을 품평할 때 감정이 동반되듯 미세한 변화가 찾아온다.
올리시아는 그런 것조차 놓치지 않고 파악하는 눈을 가졌으나.
그 남자는 도대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걸까.
그런 호기심이 들었던 것이다.
“음, 아무튼 알겠어요. 일단 단장님이 무슨 목적으로 아카데미에 왔는지 알았으니 그걸로 됐어요. 동생 쪽은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벤자민은 그 말에 작은 안심을 느꼈고, 올리시아는 그런 감정조차도 놓치지 않았다.
언제나 청순한 외모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홀리는 올리시아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제 동생이 부러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카데미에도 관심을 좀 쏟아 봐야겠네.’
한편, 벤자민으로 인해 온 아카데미였지만 황녀는 벌써부터 벤자민보다는 이 아카데미 자체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아직 정치계에 발을 들이기 너무 어린 병아리들이라 벌써부터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아까처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만약 복마전과 같은 황실의 정치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를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벌써부터 흥미가 일어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조심스럽게 움직여야지요. 탐욕스러운 오라버니는 뭐든 다 먹어치우려 할 테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며, 올리시아는 자신의 흥미를 애써 밑으로 가라앉혔다.
* * *
일주일은 금세 흘러가, 어느덧 필기시험일이 찾아왔다.
“그, 형님. 괜찮으십니까?”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더냐. 저들의 눈치 볼 거 없다. 어차피 알아볼 사람들은 금방 알아보니까.”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조교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 나가던 셰인의 신기록이 아카데미 전체로 확산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생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몇몇 교수들은 그런 소문을 헛소문 취급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것은.
“진짜 제 실력으로 한 게 맞을까?”
“그걸 믿냐? 그 셰인이야. 열등감에 쩔어 있는 놈이 어떻게 지휘학과 시험에서 최고 기록을 세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 교수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게 가능할까…….”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이러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셰인은 거기에 별 신경은 쓰지 않았다.
“어차피 필기시험까지 끝나고 점수가 공개되면 더 이상 저런 말도 못 꺼낼 거다.”
필기시험의 경우에는, 한 명의 교수가 내는 것이 아닌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문제를 가지고 시험 당일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당일 날, 선택된 몇 개의 문제들만이 선정되는 형태의 시험.
아무리 돈으로 사람을 매수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카데미에서도 정말 몇 명만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어디에도 알리지 않고 내는 문제를 돈으로 매수해서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심지어 학과장이라 하더라도 그 문제의 출처를 모두 알지는 못하기에, 컨닝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불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적어도 나는 머리를 쓰는 일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참견이었군요.”
“뭘 또 사과까지.”
그렇게, 셰인과 클라인은 함께 시험장으로 들어섰고, 그곳에는 어느새 50명으로 줄어든 생도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 왔나? 왔으면 자리에 앉도록.”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해 조금은 수척해진 벤자민이 시험장에 들어오자 시험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다들 알겠지만, 이번 시험은 일주일 동안 치러진다.”
필기시험이 무려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부여됐다.
이것만으로도 도대체 얼마나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걸까.
작년과 다르게 실기 시험부터가 불지옥 난이도였기에 그 난이도에서 살아남은 생도들은 조금씩 긴장을 머금었다.
어찌 보면 실기가 가장 중요한 시험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휘학과 시험은 실기보단 필기에서 더 많은 수의 생도들이 탈락한다.
그 이유는…….
“이 시험지에는 총 다섯 문제가 적혀 있다. 그동안 너희는 도서관과 지정된 시험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를 인지하고 행동에 임하도록. 괜히 쓸데없는 관심이 의심을 살 수 있다는 것 또한 잊지 말아라.”
고작 다섯 개의 문제가 일주일이라는 시간 필요할 정도였고, 그 문제의 해답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작은 규모의 논문급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험지가 배부되었고, 시험이 시작됐다.
배정받은 시험실 책상 앞에 앉아 그런 시험지의 내용을 천천히 훑어본 셰인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이건…….’
문제의 난이도가, 셰인에게 다른 방식으로 고민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