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0)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20화
120화 섧게 우는 들꽃 (1)
츄으으읍─
미약한 탈력감을 느낌과 동시에 목에서의 옅은 통증을 감내하던 셰인이 눈을 떴다.
“푸하.”
핏빛으로 물든 소녀가 오랫동안 굶주린 배를 채운 짐승처럼 눈을 빛냈다.
“다 마셨나.”
“네. 역시 주인님 피가 제일 맛있어요.”
“…….”
만족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에블린이 셰인의 무릎에서 내려왔고, 셰인도 코트를 챙겨 입었다.
그걸 지켜보고 있던 올리시아는 어딘가 붉어진 얼굴로 그 장면을 지켜보며 혼자 조용히 중얼거렸다.
“절대 샤샤에게 보여서는 안 될 장면이네요.”
“무슨 말이라도 하셨습니까?”
“아뇨, 아무것도. 그나저나 나카르 사막이라…… 먼 곳으로 떠나네요.”
“예. 조직의 전력 강화를 막으려면 그곳으로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
올리시아는 그런 셰인을 잠시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 젋은 청년은 도대체 뭘까.
이 청년을 보고 있노라면 그간 가지지 않았던…… 아니, 정확히는 가지지 않으려 노력했던 의구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느꼈다.
어째서 이 청년은 누구도 알지 못했던 무명이라는 단체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걸까.
어째서 이 청년은 무명이라는 단체를 막으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이 청년은 그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저리도 섬뜩한 표정을 짓는 걸까.
그러나 이번에도 올리시아는 목 끝까지 올라온 ‘어째서’라는 질문을 간신히 참아 냈다.
왜인지 그것에 대해 파고드는 순간, 저 청년이 눈앞에서 사라질 것만 같았으니까.
“……언젠가 때가 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들과 저에 관한 이야기를.”
그런 올리시아의 시선을 눈치챈 셰인이 말을 건네자 올리시아는 잠시 뜨끔한 표정을 짓고는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그때가,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적어도, 그 이야기를 듣게 될 때면 세상이 지금보다 평화로워져 있을까.
올리시아는 그리 웃으며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일전에 말씀하신 이종족은 저희 측에서 잘 보호하고 있어요. 다만, 아직까지 그 정체를 밝히지는 못했어요.”
“그렇습니까?”
폐광산에서 발견한 무지개 눈동자를 지닌 신비로운 존재.
지난 몇 개월 동안 올리시아는 바쁜 시간도 쪼개 가며 여러 마법사를 비밀리에 초빙하고 그 존재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지만, 아직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외견만 인간처럼 보이지, 채혈도 불가능하고 신체 조직도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체모도 없는 데다 심지어 생식기도 없어서 성별 구분조차 불가능했어요. 셰인, 당신은 그 존재에 대해 알고 있나요?”
“어느 정도는 유추하고 있습니다. 다만 확신할 수는 없으니 말은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루치페는 마지막에 죽기 직전, 마력을 일으켜 셰인이 아닌 그 무지개 눈동자를 지닌 존재에게 뭔가를 하려 했었다.
다행히 무언가 일을 저지르기 직전에 목이 베였기에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으나, 당시 셰인의 내부에 깃든 산왕의 신성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었다.
마치, 루치페가 하려던 행위를 절대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듯이.
그럼 도대체 아이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장 단순하게 떠올릴 만한 추측이 하나 있긴 했다.
‘만약 그 아이가 알려지지 않은 엘퀴네스의 자식이라면?’
그렇다면 전생에 보수적이던 엘퀴네스가 어째서 갑자기 하이엘 왕국을 멸망시켰고, 그대로 칩거에 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전생에도 분명 무명은 비밀리에 엘퀴네스의 자식으로 추정되는 존재를 죽였을 것이고, 그 죄를 하이엘 왕국에 덮어씌웠을 터.
자신의 복수를 마친 엘퀴네스는 조용히 칩거에 들어갔다고 정황상 추측할 수 있었다.
‘차라리 내 쪽에서 보호를 하고 싶다만…….’
당장은 그게 불가능했다.
나카르 사막으로 가는 여정에 어린아이마저 지켜 줄 여유는 없다.
차라리 엘퀴네스를 찾아가면 어떨까 싶지만, 현재 엘퀴네스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는 상황.
때문에, 지금은 특별한 대책 없이 이대로 황실에서 보호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다.
그 외에도 셰인은 올리시아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눴다.
이후 황실의 정치를 어느 방향으로 이어 갈 것인지, 주의해야 할 부분이나 대비해야 할 일 등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렇게 필요한 대화가 끝이 나고, 셰인은 마지막 본론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곧 있으면 베첼리 왕국에서 기사의 선언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 말에 올리시아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머. 정말요? 거의 10년만인가요?”
“예. 그곳에 클라인을 보내 주십시오. 목표는 물론 우승입니다.”
기사의 나라, 베첼리.
타국과 다르게 배타적인 성향이 강한 국가이지만, 기사의 나라라고 불리는 만큼 대륙 차원에서도 기사의 수준이 단연 압도적인 국가다.
그런 베첼리 왕국의 문호가 대대적으로 개방되는 때가 있었는데, 바로 ‘기사의 선언’이라 불리는 일종의 무술대회가 개최될 때였다.
분명 클라인이 그곳에 간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배움은 부차적인 문제지. 진짜는 우승 상품이다.’
십수 년에 한 번 열리는 기사의 선언에서 우승할 시, 배타적이기로 유명한 베첼리 왕성에 입성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왕성의 보물고에서 하나의 물건을 선택해서 들고 올 수 있었는데, 그곳에 바로 셰인이 원하는 물건이 있었다.
훗날, 클라인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물건이었다.
“클라인이 그곳에서 우승을 한다면, 상품으로는 반드시 가장 이끌리는 물건을 고르라고 전달해 주십시오.”
“가장…… 이끌리는 물건이요?”
“예. 녀석도 그곳에 도착하면 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게 될 겁니다.”
“음. 알겠어요. 그 정도라면 어렵지 않은 일이죠.”
올리시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셰인은 그제야 할 말을 모두 마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녀님을 잘 부탁하겠다, 에블린.”
“네. 알겠어요. 대신 빨리 와요.”
“될 수 있으면 그리 하마.”
* * *
디라일라가 머무는 주택은 여러 마법이 뒤섞인 방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셰인은 별로 어렵지 않게 그것을 뚫고 내부로 들어왔다.
이미 몇 개월이나 청소를 하지 않은 듯, 집 내부는 깔끔했던 이전과 다르게 여기저기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그 풍경을 확인한 셰인은 두 눈을 찌푸리고는 2층에 있을 디라일라의 침실로 시선을 향했다.
“이 멍청한 녀석이…….”
듣던 것과 다르게, 디라일라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 * *
디라일라는 수없이 반복되는 이 풍경이 두려웠다.
수명이 다 되어 가는 발광석에 비춰지는 어두운 지하.
곰팡이가 잔뜩 낀 벽면에 더불어 인분(人糞) 따위가 너저분하게 퍼져 더러운 공기가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없던 병마저 생길 것 같은 이 공간에, 다양한 감정들이 스며든다.
절망과 두려움.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증오.
암울하기만 한 감정들이 휘몰아친다.
그러는 와중에도 저열한 우월감과 잘못된 행위로부터 느끼는 더러운 배덕감 따위가 그러한 감정들을 집어삼키고, 내뱉기를 반복한다.
가히 지옥의 한복판에 온다면 이러한 느낌일까.
괴롭다.
당장이라도 이 감정들을 토해 내고,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럼에도 디라일라는 제 가슴에 닿는 이 감정들을 끝까지 끌어안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미안, 미안해요…….’
이미 수백 번은 더 본 듯한 풍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괜찮니?”
“네…… 헤. 괜찮아요.”
고양이 귀를 가진 어린 소녀가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더러운 지하실에 갇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탓에 피골이 상접해 있었지만, 아이는 그럼에도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분위기에 민감하다.
때문에 어른들의 눈빛에 피어오른 희망이라는 열기를 느꼈고, 생애 처음으로 느껴 보는 그 감정에 아이는 어쩔 줄 모르는 듯했다.
그 모습이 디라일라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헷. 언니가 우리를 구해 주러 오신 건가요?”
“으, 응? 어. 뭐 그렇지.”
“언니도 우리랑 비슷한 사람인가 봐요. 저도 언니처럼 될 수 있을까요?”
“그야 물론이지!”
지하실에 디라일라의 목소리가 퍼지자 이종족 노예들의 시선이 몰려들었다.
순간 그 시선을 눈치챈 디라일라가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너랑 비슷할 때가 있었어. 그래도, 살다 보니까 볕들 날이 오더라.”
“헤……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온다는 거네요. 오늘처럼.”
디라일라는 지저분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래. 똑똑하네. 너는 이름이 뭐니?”
“엠마예요. 엠마.”
“아주 예쁜 이름이네.”
“언니는요?”
“내 이름은 디라일라야.”
“언니 이름도 예뻐요. 헷…….”
“그, 그래? 하하…… 고마워.”
자신과 같은 이종족과 이런 대화를 나눠 본 게 얼마 만일까.
디라일라는 한쪽에서 부르는 동료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그런 디라일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게, 디라일라가 본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 *
“이, 이럴, 이럴 생각이 아니었어. 난, 나는……!”
아르티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질척거리는 혈마력이 느껴지며 뒤편에서 아르티아가 일으키는 마력의 파동에 본능적으로 흙벽을 일으켰다.
이윽고 클라인이 지하실로 황급히 돌아오고, 흙벽이 무너지며 건너편의 풍경이 펼쳐졌다.
한때 멀쩡히 살아 있던 이들이 새카만 숯덩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유난히도 작은 숯덩이가 보였다.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
한때 작은 희망을 품은 아이가 갖게 된 그 마지막 풍경이, 디라일라의 모든 것을 부정했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 할 건데?’
‘이들의 최후를 봐.’
‘절망 끝에 희망을 품었지만 그 결과는 어떻지?’
‘과연 너라고 이들과 다를까?’
‘결국 너도 이들과 다를 게 없어.’
‘넌, 인간이 아니니까.’
‘어차피 종족이 다르니까.’
‘우린 저들에게 괴물에 불과하지.’
또다시 풍경이 바뀌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디라일라를 반겨 주던 모험가 길드에서의 시선이 점차 바뀌어 갔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쟤도 이종족이라던데.’
‘엄청 강하다고 했잖아. 아무런 능력도 없는 수인족이라 해도 폭주하면 막는 게 그렇게 힘들다던데, 저런 게 폭주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한두 명 죽는 걸로는 안 끝나겠지.’
‘저대로 내버려 둬도 되는 건가?’
긴장과 옅은 두려움, 그리고 진한 혐오감이 디라일라의 뒤통수를 날카롭게 째고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또다시 풍경이 뒤바뀐다.
새까맣게 그을려지기 전의 지하실이다.
‘어쩌면 이게 네 미래일까?’
‘지금처럼 노력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아버지가 너를 받아 주실까?’
‘혹시, 아버지는 너를 버린 게 아닐까?’
제발, 제발 닥쳐 줬으면 좋겠다.
저 목소리를 잘게 찢고 지워 버리고 싶다.
그러나 그러려면 아이의, 엠마의 미소까지 지워야만 했다.
망각해야 한다.
망각은 축복이었으니.
그런데 내가 저 아이를 잊으면, 그들을 잊게 되면 도대체 그들이 가졌던 희망은 누가 기억해 주지?
그러한 생각이 다리일라의 심장을 파고든다.
마치 영혼이 잘게 찢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풍경은 또다시 재생됐다.
다시 아이에게, 엠마에게 다가가는 자신의 뒷모습이 보인다.
멈추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과거의 자신을 막는다면, 엠마가 가졌던 자그마한 희망마저도 사라질 것만 같아서.
그 희망이 사라진다면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희망조차도 잊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렇게, 디라일라는 몇 번이고 봐 왔던 그 풍경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때.
“왜 두려워하고 있지?”
“어……?”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새하얀 민무늬 가면을 쓴 존재가 서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