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1)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21화
121화 섧게 우는 들꽃 (2)
왜 저자가 여기있는 걸까.
혹시 저 사람도 자신이 만든 환영은 아닐까.
그런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뭐가 두렵냐고요? 그냥 전부, 이 좆같은 상황이 전부 무서워요. 무력한 제가 그냥 존나 싫다고요.”
“…….”
처음에는 그저 혼자만 잘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가족을 찾는 것도 힘겨운 마당에 누가 누굴 신경 쓴단 말인가.
당장 2년 전만 해도 디라일라는 제 코가 석자였다.
그런데, 왜 이젠 그게 마음처럼 되지가 않는 걸까.
“타인의 감정을 겪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제 몸을 마구 휘젓는, 아주 개 같은 기분이에요. 그런데 저는 거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어요. 정리도 안 되고, 지울 수도 없는.”
“타인의 감정이 그리도 힘들더냐.”
“네. 제게 아니니까, 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근데 비겁하게도 그 새끼는 제 마음을 멋대로 움직여요.”
그런데 그걸 버릴 수도, 지워 버릴 수도 없었다.
마치 진득한 늪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은 기분.
그게 끊임없이 디라일라를 괴롭혀 왔다.
셰인은 그런 그녀에게 담담히 말했다.
“글쎄.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단지, 그 기억이 너를 멋대로 휘두르는 게 아니라, 그저 네가 방치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 무슨 소리예요?”
디라일라의 물음에 셰인은 시선을 돌렸다.
“저게 두렵나.”
“네?”
그곳에는, 뭔지 모를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종족 소녀, 엠마가 서 있었다.
“…….”
디라일라는 그런 엠마로부터 시선을 피했다.
두려움 때문일까, 죄책감 때문일까.
“두렵나.”
다시 이어지는 그 질문에 디라일라는 잔득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 목소리에는 스스로를 향한 혐오가 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굳이 끌어안고 있지? 저 괴물을.”
“괴물……?”
그러자 디라일라의 두 눈에 적의가 깃들었다.
“이 이종족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몰라서 아주 말이 쉽게 나오시는 모양인데, 저건 당신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제가 겪었을 미래라고요!”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 하더라도 저 말만큼은 잠자코 들을 수 없었다.
저들이 괴물이라면, 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자신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 애초에 괴물은 따로 있었다.
“이들을 이런 꼴로 만든 놈들은 내버려 두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은 이들이 괴물이란 말이에요? 그건, 그건…….”
“…….”
“너무 잔인하잖아요…….”
힘이 다한 듯 디라일라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는 고개를 들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디라일라를 향해 셰인이 말했다.
“계속 회피하려고만 하고 있군. 뭐, 아무래도 좋다. 애초에 저 괴물은 지금의 너로서는 죽일 수 없으니.”
“죽인다니……!”
그 말에 발끈한 디라일라가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디라일라는 어느새 시야에 펼쳐진 풍경이 달라진 것을 깨달았다.
어둡고 퀴퀴한 지하실은 어디로 가고, 드넓은 하늘이 펼쳐졌다.
디라일라는 저 붉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옥죄는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그리고, 그런 하늘 아래 펼쳐진 성의 왕좌에는 방금까지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자와 똑같은 사람이 죽은 듯 앉아 있었다.
“이, 이봐요. 괘, 괜찮아요?”
디라일라는 그런 가면의 사내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방금까지 가지고 있던 적의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좌에 앉아 있는 가면의 사내의 가슴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검이 꽂힌 상태였으니.
“저, 저기요……?”
“어느 한 머저리가 있었다.”
“으헉!”
갑자기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디라일라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 머저리가 가지고 있는 질투는 곧 증오로 바뀌어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하기 시작했지.”
“가, 갑자기 무슨 말을…….”
“결국 세상을 뛰어넘어 자기 자신마저 증오하기 시작한 머저리가 맞이한 결말을 보여 주마.”
“엇……?!”
또다시 풍경이 뒤바뀌었다.
피로 물든 건물.
그 내부로 사람들이 보였다.
디라일라는 이상하게 그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마치 인지부조화에 걸린 것만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두 아이가 한쪽 구석에 덜덜 떨며 전방을 주시했다.
언제나 무한한 사랑을 주던 부모님들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여기저기 파먹힌 흔적은, 언데드에게 당한 흔적이다.
남매는 그런 부모의 시체를 덜덜 떨며 지켜봤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그들과 눈이 마주친 남매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들은, 더 이상 자신의 부모가 아니라는 것을.
절망과 극도의 두려움이 뒤엉킨 그 광경에, 누나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성급히 뒤에 있던 창문을 맨손으로 깨부쉈다.
누나의 손에 상처가 생기고, 그로 인한 피 냄새가 한때는 부모였던 언데드들의 야성을 일깨웠다.
서둘러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동생만을 내보내자, 창문 밖으로 내동댕이 쳐진 동생은 그런 누나의 뒤로 이빨을 들이밀고 있는 언데드를 볼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풍경이 뒤바뀌었다.
아이들은 끝내 언데드들의 손에서 살아남았다. 도시를 빠져나와 숲으로, 깊게, 더 깊게 들어갔다.
야밤의 숲은 너무도 위험한 곳이었지만, 적어도 언데드로 가득한 저 도시보다 더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불행일까, 행운일까.
죽은 자들의 기운을 느낀 것인지 숲에서는 짐승이나 몬스터는커녕 벌레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겨우 쉴 수 있을 만한 동굴을 발견하고서야 남매는 안으로 기어 들어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과연 저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이 이야기에 그런 희망적인 이야기는 조금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탈출하는 도중에 누나가 언데드에게 물린 것이다.
그 상처로부터 지독한 독기가 흘러나오며, 이내 곧 누나마저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동생은 멍한 눈으로 그런 누나를 바라봤다.
쓰러진 채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누나의 품에 안겼다.
모든 것을 포기한 동생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절망도, 공포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공허했다.
그런 동생의 눈동자에는 이내 곧, 자신을 향해 이빨을 벌리는 누나만이 비춰질 따름이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세상은 그대로 정지됐다.
정지된 세상 속.
한때는 어린 남매였던 것들의 앞에 한 청년이 다가와 섰다.
펼쳐진 풍경은 이 청년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청년도 이 풍경 속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으나, 디라일라는 그가 겪고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감정을 느낄 수 있는데, 느낄 수가 없다.
마치 본능이 그것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저 감정을 이해하려고 드는 순간, 너는 반드시 망가진다고.
그러한 경고를 해 오는 것 같았다.
청년은 남매였던 것들의 앞에 서서 두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또다시 풍경이 뒤바뀌었다.
저렇듯, 언데드에 죽어 가는 무수한 생명들이 디라일라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생명이 사그라들 때마다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마치 그 풍경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했다.
“도대체, 도대체 나한테 뭘 보여 주려고 이러는 거예요……? 네……? 저기요, 뭐라고 말 좀 해 주세요, 제발─!”
무수한 죽음이 스쳐 지나간다.
그에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던 디라일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자, 풍경은 다시금 붉은 하늘과 왕좌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변했다.
“증오로 가득 찼던 머저리에게, 더 이상 증오도 남지 않는 공허만이 남겨졌을 때. 그 머저리의 앞에 펼쳐진 풍경은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뿐이었지.”
“…….”
디라일라는 그의 말을 듣고 무언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저게, 당신이 겪었던 일이에요……?”
“…….”
“이, 이런 사태가 벌여졌다는 건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흑마법사 토벌 사태 때도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디라일라가 봤던 사내의 기억들 속에서는 비극뿐인 남매의 죽음 이외에도 수많은 죽음들이 스쳐 지나갔다.
도대체 이자는 이러한 경험을 어떻게 했다는 걸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저 머저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단 하나뿐이었다. 자신이 한 선택으로 인해 일어난 저 무수한 결과들을, 결코 잊지 않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요?”
간절함을 담아 디라일라는 가면의 사내로부터 해답을 갈구했다.
물론, 사내가 겪은 일과 디라일라가 겪은 일은 결이 다르다.
사내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일어난 결과를 받아들였던 것이고.
디라일라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겪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디라일라는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상황은, 저 사내가 말하듯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라는 사실을.
그래서 물었다.
그런 그가 가진 결과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법을 배운다면, 자신도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해답 따위는 없다. 다만, 머저리는 단 세 가지만큼은 명심하고 결코 어기지 않았지.”
“세 가지……?”
“외면하지 않는 것. 뒤돌아보지 않는 것. 멈춰 서지 않는 것.”
“…….”
“그러니 너도 외면하지 말고, 뒤돌지 말고, 멈추지 마라. 그리한다면, 어느 순간 계속해서 걷고 있는 스스로를 볼 수 있을 테니.”
“…….”
“그러니 이제 그만, 괴물을 죽여라.”
그렇게, 풍경이 다시 한번 뒤바뀌었다.
* * *
다시금 지하실의 풍경이 펼쳐졌다.
디라일라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어린 이종족 소녀를 바라봤다.
“괴물이라.”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언니?”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
디라일라의 혼잣말에 엠마가 양손으로 어깨를 감쌌다.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의 보호 본능이 만든 자세다.
“내가 좀 감정적이고 입이 험하긴 하지만 이래봬도 마법사야. 그것도 연합국 아카데미에서도 무려 수석인 몸인데, 나한테 처해진 상황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거든.”
“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힘들었나 봐. 응. 많이 힘들어서 그랬나 봐. 너무 많이 달려와서, 그냥 좀 쉬고 싶었어. 그렇잖아? 사실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내가 그 무거운 짐을 들고 갈 이유 같은 거, 눈 씻고 찾아 봐도 없잖아.”
“언니…… 저 무서워요…….”
“사실 핑계였지. 내가 이대로 무너져 내려도, 그냥 네 탓으로 미뤄 버리면 되니까. 그도 그렇잖아? 어둠의 정령에게 먹혀 버렸다고 하면 누가 뭐라 할 수 있겠어?”
“…….”
어둠의 정령.
다른 생명체로부터 탁한 감정을 먹고 사는 그 존재를 거론하자, 주변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자신들의 미래도 모른 채 안도감이 섞인 한숨을 내뱉은 이종족들도.
한쪽에서 이후 작전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동료들도.
방금까지 두려움을 호소하던 엠마도.
모두가 숨소리조차 멈춘 채 디라일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이대로 쉰다고 해서 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 어깨가 너무 무겁거든…….”
“…….”
“그러니, 이제 그만 가라.”
디라일라가 한 손을 들어 주먹을 움켜쥐자, 그간 그녀를 가두어 둔 지하실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 꿈에서 깨야 할 시간이 찾아왔다.
* * *
“저기…… 감사합니다. 또, 구해 주셔서요.”
늦은 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한적한 광장을 거닐던 디라일라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셰인에게 말을 걸어왔다.
“내가 해 둔 건 예방일 뿐이다. 직접 일을 해결한 건 너야.”
“음, 그래도요. 뭐랄까, 여태 저한테 이렇게 신경 써 줬던 사람은 아빠밖에 없었거든요. 요즘, 그 테러 사태 이후로 주변 시선들이 많이 안 좋아졌잖아요.”
“…….”
“하아…… 밤공기 좋네…….”
괜하 말하고 스스로 어색함을 느낀 디라일라가 말을 돌리듯 주변의 풍경을 둘러봤다.
그 사건 이후로 밖으로 나오기 꺼려했던 디라일라는, 일단 사람이 없는 시간에 무작정 거리를 거닐기로 했다.
트라우마 극복의 첫 시작이라 해야 할까.
“왜 그렇게 생각하지?”
“어떤 거요? 주변 시선들이 안 좋아졌다는 거?”
“그래.”
“아니, 뭐. 그렇잖아요. 가뜩이나 이 이빨 때문에 그렇게 좋은 기억은 없는데, 그 사건 이후부터 이종족은 대놓고 기피하는 것 같으니…….”
“그런 시선이 늘어나기는 했지.”
“그쵸?”
“근데, 예전에도 말했지만 너는 좀 더 주변을 둘러봐야 한다. 여전히 편협하군.”
“네……? 예전……?”
내가 이 사람한테 이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나?
그런 의문을 해소하기도 전에, 디라일라는 어느덧 분수대 앞에 도착했다.
“어라. 저건 뭐지. 처음 보는 석판인데.”
이전에는 제법 자주 드나들던 광장의 중앙 분수대 앞.
그곳에는 전에 없던 커다란 석판과 함께, 다양한 꽃과 편지, 먹을 것 등이 올려져 있었다.
“‘무고한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 이게 어…….”
“네 동료 마법사가 만든 석판이더군. 도시에 행정부에 따로 요청까지 넣어서, 시민들의 모금을 받아 제작된 거다.”
“아르티아가…….”
석판에는 이번 사태로 인해 희생당한 이종족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다면 생김새라도 적어 둔 정성이 느껴졌다.
“하, 하하…… 아, 젠장. 이 병신 같은 년. 도대체 넌 뭘 하고 있던 거야…….”
그러면서 디라일라는 자신의 머리를 쾅쾅 내려찍었다.
“존나 혼자 센치한 척, 있는 척 다 해 처먹고, 이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하, 진짜…….”
“…….”
“하아…….”
잠시 스스로를 책망하던 디라일라는, 이내 고개를 들더니 주변 수풀로 향했다.
가로수 아래 피어 있는 호박색 들꽃이, 이젠 제법 추워진 날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다.
“닮았네. 그 아이랑…….”
디라일라는 마력을 일으켜 흙으로 꽃병 모형을 만들고, 꽃과 함께 뽑아 석판 앞에 내려놨다.
“……난 네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녀석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노력해 볼게. 그때 네가 바라보던 나랑 조금은 닮아지도록.”
마지막으로 들꽃을 감싼 꽃병 모형의 흙을 영구적으로 강화시킨 디라일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셰인을 바라봤다.
“제가, 또 뭘 하면 될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