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6)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26화
126화 나카르 사막 (4)
정령이라는 존재는 굳이 따지자면 혼령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때문에 정령을 느끼기 위해서는 영혼을 느끼는 힘, 영혼 감응력 자체를 타고나는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영혼 감응력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분야였고, 그렇기에 인간들 사이에서도 정령사는 극도로 희귀한 존재로 취급되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가 어떻게 정령과 계약을 했는지 알지 못하니 후학을 양성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셰인의 경우에는 정령을 느끼게 해 줄 수는 있으나, 마찬가지로 말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마저도 영혼 자체가 평범하다면 정령을 느끼게 만들수도 없었으니.
그렇다면 디라일라는 어떠할까.
“단도진입적으로 말하자면 너의 경우에는 재능이 아예 없지는 않다.”
“엇. 정말요?”
“그래.”
“어떤 면에서요?”
“어둠의 정령. 녀석이 너에게 기생했던 것 자체가 그 가능성이 남들보다 높다는 것이지.”
“아…….”
어둠의 정령도 들러붙을 숙주가 영혼 감응력이 낮다면 감정을 흡수하는 총량이 적어지기에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과거 셰인이 아카데미로 가는 길목에서 마주했던 어둠의 정령처럼, 스스로의 목숨이 경각에 달해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숙주를 고르는 기준이 있다는 말이다.
“이상하네. 그런데 왜 녀석들이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사실 디라일라는 셰인에게 이곳에 대지의 정령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그들을 느끼는 게 불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의 종족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셰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반적인 정령사도 스스로의 의지가 없는 상태의 정령과 교감은 어렵다. 그들은 아무리 부른다 한들 스스로를 정의하지 못하기에 자신을 부르는지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럼 이곳 몬스터들은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데요?”
“진화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오는 차이지. 애초에 인간은 정령을 다루기 위해 진화한 종족이 아니다. 단순히 강한 영혼에 이끌려 정령이 먼저 다가오는 것뿐이지.”
“아하…….”
“반대로 이곳의 몬스터는 형용할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이곳에서 생존하며 자신들이 먼저 정령을 느끼려 노력했다. 그 차이가 고작 며칠의 노력으로 해결되진 않겠지.”
그럼 아예 방법이 없는 걸까?
디라일라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반대로 내가 그들을 부르려면…… 어떤 강제력이 필요하다는 건데.”
우연찮게도 디라일라는 이와 관련된 강의를 한 차례 들어 본 적 있었다.
바로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라비아타에게 전수받았던 속성에 대한 지배력이 바로 그러하지 않던가.
어르고 달래서 부를 수 없는 존재라면, 지배라는 강제력은 통하지 않을까?
‘근데 그게…… 맞는 걸까?’
지배.
어감부터가 껄끄러운 그것에 디라일라는 별로 정감이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이종족 노예들이 어떤 지배를 받았는지 두 눈으로 톡톡히 봐 오지 않았던가.
디라일라에게 지배란 그런 괴물이 되어 가는 과정 중 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디라일라의 걱정을 사전에 차단하듯, 셰인이 입을 열었다.
“지배의 방식은 여러 가지다.”
“여러 가지요……?”
“네가 보기에 라비아타가 불의 정령을 탄압하고 억제하는 것 같았나?”
“아…….”
메자이아 대수림 탐사가 끝바지에 들었을 무렵 등장했던 불의 정령.
그는 라비아타와 계약을 했으나, 그렇다고 지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본래 사람이 3명만 모이더라도 그 사이에 크고 작은 권력이 깔린다. 그 또한 지배의 방법 중 하나라 할 수 있지. 그렇다면 그 또한 탄압과 억제인가?”
“그건…… 아니죠.”
당장 디라일라만 하더라도 클라인의 팀에 있었을 무렵, 팀장인 클라인을 따르긴 했어도 그가 탄압과 억제를 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그런 종류의 지배에는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지?”
“……아! 카리스마요?”
“그래.”
“아, 이런 바보 멍청이. 한 번 배웠던 건데 까먹었네요.”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라비아타에게 받았던 가르침 또한, 자신의 카리스마를 보여 대지의 믿음을 얻어 내라 하지 않았던가.
그걸 이제 와서 까먹고 있었으니.
스스로에 대한 책망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래 배움이라는 게 그렇다. 한 번 가르침을 받았다고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는 게 아니지.”
“뭐…… 그건 그러네요. 음. 그런데 카리스마를 보인다 하더라도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상대가 이지가 없는 존재이다 보니 인형에 대고 ‘나를 따르라!’고 하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대지가 아닌 정령은 또 다른 것이라, 디라일라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 부분은 내가 도와주도록 하지.”
“엇, 정말요? 와. 진짜 못하시는 게 없으시네.”
“그런데, 흐음.”
“……? 왜요?”
셰인은 잠시 디라일라를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앞서 한 번, 타인에게 정령의 존재를 느끼게 해 준 경험이 있었다.
우연찮게 그때도 대지의 정령과 계약을 성사시켰는데, 그게 바로 제국의 2황녀이자 두 생을 통틀어 셰인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가르쳐 준 아나스타샤였다.
아나스타샤의 오리진, ‘부동’을 가장 적합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바로 대지의 정령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무리 셰인이라 한들 타인이 다른 영혼과 교감을 통하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최적의 조건이 필요했는데, 그 조건이 셰인으로 하여금 망설이도록 만들었다.
인간적인 면모가 상당히 마모된 셰인이기에 예전에는 상관없었으나, 아나스타샤를 만난 이후 이성을 대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개념은 잡힌 상태였다.
즉, 영혼이 가장 정령과 교감하기 쉬운 ‘나체’ 상태를 이성에게 하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아나스타샤도 셰인을 믿었고, 셰인 또한 거기에 다른 마음을 품을 사람이 아니었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셰인은 언제 한 번 아나스타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만약 나 이외에 다른 여성의 나체를 보게 된다면 죽을 줄 알아라.’
…….
물론 아나스타샤의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참으로 섬뜩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뒤로 이어진 말 또한 있었다.
‘더불어 불가피하게 다른 여성의 나체를 보게 된다면 반드시 나에게 보고하도록. 알겠나?’
음. 그렇다면 저건 허락한다는 말일까.
만약 셰인이 여기서 조금만 더 현명했다면, 당시 아나스타샤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것만으로도 며칠 동안 그녀가 아룬비다의 기후보다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던 것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있다시피 셰인은 인간적인 면에서 상당히 마모되었고, 아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칠 정도는 되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흐에에에에에에엑─?!”
설명을 들은 당사자가 가장 경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그것은 마치 닿을랑 말랑 애를 타게 만들던 애완동물이 친근감을 나타냈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돼, 됐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진 모르겠으나, 대지의 정령과 교감에 성공한 디라일라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대지의 정령과 교감에 성공한 직후,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을 축복해 주는 것만 같은 감각.
그에 디라일라는 저도 모르게 희열에 떨며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드디어!”
“일단 옷부터 입지.”
“헤에엑!!”
방금까지 셰인의 도움으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디라일라는 비명을 지르며 곧장 옷을 차려입었다.
“커, 커험! 저기…….”
“왜 그러나.”
“흠흠. 아녜요. 고맙다고요. 크흠.”
뭐랄까. 눈앞에 있는 남자의 도움으로 지난 보름 동안 매일같이 대지의 정령과 교감을 했던 디라일라는 참 목석 같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게, 이쯤 되면 오히려 자신에게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지, 아니야. 이 사람은 누가 오든 표정에 변화가 없을 것 같은데. 나도 나름, 모험가 길드에서는 인기가 없던 것도 아니고…….’
테러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디라일라에게 호감을 표하던 몇몇 모험가도 있었더랬다.
물론 그때까지도 누군가를 믿을 수가 없던 처지였던지라 받아들이진 못했지만 말이다.
“알긴 알아서 다행이군. 아무튼, 어떤가. 정령들과 교감한 느낌은.”
“어, 뭐라고 해야 할까. 되게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처음에 교감이 성공하자마자, 얘들이 한 번에 몰려드는 것 같아요.”
“지하인이라 그런지 확실히 대지의 정령이 잘 따르는군. 흐음.”
한편, 셰인은 전생의 디라일라과 지금의 디라일라를 비교하며 생각에 잠겼다.
전생의 디라일라는 폭력적일 정도의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대지의 정령을 다뤘다.
때문에 당시 그녀를 따르던 정령들도 공격적인 성향이 강했는데, 지금의 디라일라는 그와 정반대의 성향을 띠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디라일라가 자기들의 부모라도 되는 양 따르는 듯했으니.
‘어떤 쪽의 효율이 좋은지는 미지수로군.’
뭐가 됐든 디라일라가 나카르 사막에 보다 잘 적응하게 된 것은 나쁠 게 없었다.
남은 일은 다음 날 그 성능을 보는 것뿐.
목표를 이룬 둘은 바로 취침을 취하기로 하고 각자의 침대로 향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늦은 새벽. 셰인이 두 눈을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디라일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둘의 기감에 무언가 걸려든 것이다.
“…….”
“엇.”
침대에서 일어난 둘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동시에 밖으로 나갔다.
“냐아아아악─!!”
캠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디라일라가 펼쳐 둔 방법 마법이 발동되어 그 안에서 발버둥 치는 존재가 보였다.
“무, 무울…….”
밝은 갈색의 털을 지닌 묘족 수인이 그곳에 있었다.
* * *
“푸, 푸하……! 사, 살았다냥. 정말 고맙당…….”
다급히 물을 마시며 자신을 미라슈라 소개한 묘족 수인은 귀를 쫑긋거리며 셰인과 디라일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 괜찮으세요?”
“냐냥. 걱정해 줘서 고맙당. 덕분에 괜찮당. 으음, 그런데 너희는 이곳 주민이 아닌 것 같당?”
“네에. 뭐…….”
메자이아 대수림에서도 그렇지만 던전 내에서 살아가는 이종족과 대화를 하는 것이 마냥 신기한 디라일라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디라일라와 미라슈는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셰인이 엘프들의 대화 수단을 참고하여 만든 마법을 걸어 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까지 혼자 온 건가?”
“맞당. 일행이 있었는데, 도중에 메가 샌드웜의 공격을 받고 갈라졌당. 일행들이 잘 있을지 걱정이당…….”
“흐음…….”
그러면서 셰인은 미라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봤다.
밝은 갈색의 털을 베이스로 머리에 3개의 선이 그어져 있는 묘속 여인.
눈동자는 마치 태양빛을 담은 모래처럼 진한 금빛을 띠고 있었다.
“왜, 왜 그러냥?”
“아니, 별거 아니다. 그보다 메가 샌드웜이라면 이곳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을 텐데.”
“맞당…… 3일쯤 거리가 떨어져 있었당. 내 낙타도 도중에 탈진해서 놓아줄 수밖에 없었당. 착한 녀석이었는데…….”
“도주에 성공한 게 용할 정도로군.”
“은밀함 하면 묘족 아니겠냥.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당. 문제는 녀석이 너무 집요했다는 거당.”
확실히, 메가 샌드웜은 이곳 나카르 사막에서도 굉장히 강한 몬스터에 속한다.
그 크기가 어지간한 오우거도 한입에 삼킬 크기이니.
그런 녀석이 소리도 없이 모래 아래를 헤엄쳐 다니기에, 녀석의 다른 이름은 사막의 거대한 사신이라 불릴 정도였다.
“퓨우…… 이번 상행에 실패했으니 손해도 이런 손해가 없당. 아, 그래도 목숨이나마 건진 걸 다행이라 생각해야겠당.”
그리 혼잣말을 하던 미라슈가 힘없이 베시시 웃었다.
“그런데 이렇게 도움을 받은 것도 미안한 일이지만, 혹시 목적지가 어디인지 물어봐도 되겠냥?”
“아르가토 수원지로 갈 예정이다.”
“아앗! 마침 나랑 가는 길이 같당! 혹시 이것도 인연이라면 나도 중간까지 함께 갈 수 있겠냥?!”
“신분을 증명할 만한 물건은 가지고 있나?”
“물론이당!”
“그렇다면 조건이 있다. 가서 우리의 신분을 보증해 줬으면 좋겠군.”
“으음……?”
그러자 미라슈가 잠시 셰인과 디라일라를 번갈아 바라봤다.
“어렵진 않당. 대신, 3일을 넘기지는 못한당. 그전에 신분증을 만들어야 하는데, 괜찮겠냥?”
“들어갈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좋당! 거래 성립이당!”
미라슈가 내민 두 손에 셰인과 디라일라는 금세 마주 잡고 흔들었다.
‘우와. 고양이 젤리. 까칠한데 또 말랑거리니까 엄청 묘하다.’
그렇게, 디라일라의 감상평과 함께 셋의 동행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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