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8)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28화
128화 나카르 사막 (6)
“처음에는 단순한 소문이었당.”
“소문?”
디라일라의 물음에 미라슈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께서 성녀를 내려 주셨다는 소문이었당.”
“성녀라…… 하.”
셰인은 그 말을 듣고 무심코 웃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새삼 타인의 입에서 듣는 성녀란 칭호가 우스웠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많은 부족들이 자신을 성녀라 주장하는 그 여자를 신성 모독으로 죽이려 했다냥. 그렇게 많은 부족이 토벌을 하러 갔는데, 오히려 반대가 되어 버렸당.”
“반대라면…… 다 죽어 버린 거야?”
디라일라의 물음에 미라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당. 그게 아니라 그 성녀에게 홀라당 넘어가 버린 거당.”
“넘어갔다니? 그럼…….”
“맞당. 그들은 토벌전에 실패하고 돌아와서는, 그녀가 진짜 성녀가 맞다고 각 부족에 호소했당. 몇몇 부족들은 그들을 마찬가지로 신성 모독이라 판단하고 처형했지만, 어느 한 부족의 부족장은 직접 확인하겠다고 나섰다냥.”
그리고 그 결과, 총 7개의 부족 중 처음으로 성녀 측에 넘어간 부족이 생겨났다.
“도대체 뭘 보고 그렇게 넘어간 거지?”
“아직 정확히 밝혀진 건 없당.”
“잉? 그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넘어간 거 아닌가?”
“그렇기는 한데…… 단순히 아니라고만 판단하기에는 애매하당.”
그러면서 미라슈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성녀가 이룬 기적은 다양하당. 성녀가 기도를 하니 끝없는 호수가 펼쳐졌다는 녀석도 있었고, 잠시나마 과거의 푸른 숲이 돌아왔다고 하는 녀석도 있었당.”
“어, 그건…….”
“맞당. 우리는 그 성녀라는 존재가 실은 환술사가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냥.”
하나같이 꿈같은 이야기이지 않나.
끝없는 호수라든가 과거의 푸른 숲은 이곳 나카르 사막의 본래 모습이었으니.
그러나 미라슈의 이어지는 말에 디라일라는 오리무중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게 또 반드시 허황된 말이라고만은 볼 수 없었다냥. 실제로 성녀는 직접 중앙에 갔다왔으니깡.”
“중앙? 그게 뭔데?”
“이 나카르 사막의 중심부에는 성역이 있다.”
디라일라의 말에 셰인이 끼어들며 말했다.
“성역이 뭔데요?”
“이 사막에 존재하는 유일한 오아시스이자, 과거의 잔재이지.”
“끄응…… 어디 가서 과거의 잔재 같은 말은 하지 마랑. 과거의 영광이당.”
“어차피 들어가지도 못하는 장소이지 않나.”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않냥! 우리 사막 부족들의 감수성이당.”
“존중하지.”
“흥냐. 아무튼 말을 이어서 하자면, 성역에는 우리의 신, 용께서 잠들어 계신 곳이당. 그곳은 우리가 사는 이곳 사막과 다르게 푸른 숲이 펼쳐진 장소다냥.”
미라슈의 설명을 들어 보면, 그 성역이라 불리는 오아시스는 참으로 기묘한 곳이라 한다.
“일단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존재가 없었당. 정확히는 누구든 성역에 함부로 발을 들인 이후로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냥. 우리는 그 이유가 아직 용께서 분노를 거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당.”
“어라, 근데 아까 성녀라고 불리던 존재가 멀쩡히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나?”
“맞당. 그래서 우리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거당. 뿐만 아니라, 성녀는 직접 성역에서 다양한 물건을 가지고 왔당. 이른바 성물이라는 녀석이다냥.”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둬도 스스로 물이 흐르는 돌이라든가, 불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악령이 물러나게 하는 향초 등.
말만 들어 봤을 때는 정말 성물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걸 듣고 있던 디라일라는 어깨를 잠깐 흠칫거리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셰인은 그런 디라일라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금 미라슈에게 시선을 돌렸다.
“몇몇 부족은 여전히 신성 모독이라 여기고 있지만, 실상 부족민들은 그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냥. 심지어 부족장 중에서도 몇몇은 그러한 소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냥…….”
성녀의 존재는 그만큼 파급력이 컸다.
사실 다른 소문은 제쳐 두더라도, 어느 누구도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성역에 갔다가 생환해 온 것이 가장 컸다.
사막의 부족들에게 용의 존재는 그만큼 거대한 것이었으니.
‘그래서 전생에 무명이 라비아타를 죽일 수밖에 없었지.’
이곳 나카르 사막에서 용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신성시하게 받아들여지는 마당에, 그 용의 후손이 등장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나카르 사막을 집어삼키려는 무명의 계획에 걸맞지 않았다.
때문에 무명은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타락한 드래곤 하트를 통해 라비아타를 폭주시켰고, 세상에 남은 마지막 용의 후예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이다.
셰인이 그렇게 전생에 관해 생각하고 있을 때, 미라슈는 자기가 할 말은 거기까지라는 듯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일행은 잠시 침묵 속에서 모래사막 위를 걸었다.
뜨거운 햇빛만이 내리쬐고 있었다.
* * *
늦은 밤.
셰인은 생각을 정리할 겸 찬 캠프 밖으로 나와 사막의 찬 공기를 맞고 있었다.
밤의 사막은 낮과는 전혀 다르게 차가웠다.
진득하기 그지없던 바람은 냉기를 품더니 살을 엘 것처럼 날카로워져, 방심하다간 그대로 얼어 죽을 환경을 만들고 있었다.
이처럼 변덕이 심한 사막에서, 셰인은 지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그러던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기요.”
뒤를 돌아보니 디라일라가 핫초코가 담긴 보온병을 들고 있었다.
“헷. 진짜 호화스럽네요. 사막을 횡단하면서 이렇게 여유롭다니.”
그러면서 디라일라는 핫초코가 담긴 보온병 뚜껑을 셰인에게 건넸다.
동시에 그녀는 셰인의 가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는데, 아마 먹는 모습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먹는 과정에서 셰인이 가면을 벗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저렇게 얼굴에 표정이 빤히 보이는지.’
저런 부분은 전생의 디라일라와도 다를 게 없었다.
당시의 그녀 또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으니.
“…….”
“……!”
그렇기 때문일까, 셰인은 문득 그런 디라일라를 골려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가면을 벗자, 디라일라의 두 눈이 하늘에 뜬 보름달처럼 커다랗게 변했다.
“우와악?!”
기겁한 디라일라가 뒤로 넘어지며 방금까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보온병이 떨어져 모래를 적셨다.
그 모습을 보자 과거 아카데미에서 자신이 놀려 먹은 클라인이 떠오르는 듯해, 셰인은 무심코 입꼬리를 올렸다.
“훗.”
“우, 웃었…… 아니, 그보다 다, 당신은!”
가면을 벗은 셰인의 얼굴은, 검은 머리카락과 로즈베리 눈동자는 어디로 가고 갈기 같은 머리카락에 다부진 눈동자를 한 중년의 남자.
저지먼트 기사단의 대니얼이 되어 있었다.
“어, 어떻게?!”
“뭘 그리 놀라지?”
“허억?!”
셰인이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자 이번에는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사망한 황실의 호위 기사단, 도미닉의 얼굴이 떠올랐다.
“위, 위장 마법? 그런 건가? 아오, 씨! 놀랐잖아요!”
“내 얼굴을 그리 쉽게 보여 줄 것 같으냐.”
“에이, 차라리 평소처럼 하지 왜 사람 놀라게! 진짜 성격 이상하네…….”
평소에 셰인은 식사를 할 때도 가면을 벗지 않고, 탐욕의 오리진을 일으켜 음식을 섭취하곤 했다.
이번에도 내심 그러지 않을까 하다가 된통 당한 디라일라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엎어진 보온병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다 집어 들었다.
“우 씨, 아까워라…….”
“난 됐으니 이건 네가 마셔라.”
“이게 병 주고 약 주고라는 건가? 밀당 좀 하시네. 흥.”
그래도 단 게 좋은 건지 디라일라는 거절하지 않고 핫초코를 받아들었다.
“딱히 널 놀라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이제 슬슬 신분을 드러낼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
“신분…… 이요? 아니, 애초에 가면을 쓰고 있는데 무슨 신분을 드러내요?”
“이제 무명에겐 이 가면 자체가 나라는 걸 상징하는 신분이지 않나.”
“듣고 보니 또 그러네. 흠흠…….”
그러면서 디라일라는 핫초코를 한 모금 삼키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어우 씨, 깜짝이야. 또 얼굴은 언제 바꿨대.”
디라일라로선 처음 보는, 이종족 남자의 얼굴로 변한 셰인이 피식 웃었다.
“언제부터 허락 맡고 물었나. 물어봐라.”
“그…… 메자이아 대수림도 그렇고, 이곳 나카르 사막도 그렇고…… 왜 초기화가 안 되는 건가요?”
그런 디라일라의 의문은 충분히 가질 만한 것이었다.
요람은 던전의 집합체다.
그 말은 곧 던전이 초기화 과정을 거쳐 죽은 몬스터나 파괴된 지형이 원상 복구가 되는 것처럼, 본래라면 요람 또한 마찬가지여야 한다.
실제로 메자이아 대수림이 개방되기 이전, 인류가 스스로의 힘으로 개방시켰던 다른 두 요람은 일정 시기마다 초기화를 했었다.
“인간들에게 있어 신은 아카샤뿐이겠지만, 실상 이 세계를 이끌어 가던 존재들이 있었다.”
“음……?”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세계를 지속시켰지. 드래곤과 용이 거기에 포함된다.”
“…….”
드래곤과 용은 모든 생명체의 정점에 있는 존재들이었으며, 또한 군림하는 존재였다.
“때문에 아카샤의 봉인 또한 허물어지는 것이다. 바깥과의 시간상 경계선이 무너지지 않아 몬스터나 이종족이 밖으로 나오진 못하겠지만, 자신들만의 시간은 드래곤이나 용에 의해 허락을 받지.”
“아하…… 한마디로 메자이아 대수림에서는 드래곤이, 이곳 나카르 사막에는 용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건가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이곳 나카르 사막의 용은 이미 죽었으니까. 이곳의 시간이 되감기지 않는 이유는 무명 때문이다. 놈들에게도 세계를 지속시키는 존재가 있다.”
“어…….”
그러자 디라일라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도대체 이 남자는 정체가 뭐길래 무명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걸까?
그 의문 어린 표정을 잠시 보던 셰인은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로 시선을 옮겼다.
그 모습에 결국 디라일라가 의문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시간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그렇다면 갈라진 시간선에는 어떻게 갈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신이 아닌 필멸의 존재가 과연 그 시간의 사이를 건너뛰는 게 가능한 건가?”
“……네?”
갑자기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디라일라가 그러한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셰인을 바라보자, 셰인은 다시금 디라일라와 눈동자를 마주했다.
“지금은 알아듣지 못할 거다. 언젠가 이런 내 의문도 알아서 해소되겠지.”
“……아니 뭐. 혼자 말하고 혼자 납득하면 이쪽은 뭐라고 해요.”
“그냥 기억해 둬라. 너는 머리가 나쁘지 않으니. 필멸의 존재는 시간선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다. 그걸 억지로 붙잡고 있어 봐야 어리석은 미련에 불과해.”
“…….”
진짜 뭔 소린지.
디라일라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셰인이 하는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니, 애초에 인간인지도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혼자 무언가 잔뜩 알고 있는 존재다.
디라일라는 셰인의 말처럼 방금 그가 했던 말을 되새기며 한쪽에 기억해 뒀다.
* * *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보이는 것이라고는 불규칙한 모래 언덕과 지평선이 전부였던 사막에 그 외의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무렵이었다.
“도, 도착했당!”
나카르 사막의 일곱 부족 중 묘족의 도시.
아르가토 수원지가 저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