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2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29화
129화 아르가토 수원지 (1)
드넓은 사막 한가운데 있는 도시는 놀라울 정도로 사막에 잘 어우러져 있었다.
사막의 모래와 같은 색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우후죽순 세워져 있고, 그 가운데 수많은 야자나무에 가려진 거대한 호수가 보였다.
“냐앙…… 드디어 도착했당.”
간단한 검문을 끝내고 도시 내부로 들어온 미라슈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도시는 꽤나 북적였다.
나카르 사막의 대부분을 횡단하며 다니는 종족이니만큼, 수많은 행상인들의 다양한 호객 소리만 빼면 평화롭기 그지없는 도시였다.
“흥냐…….”
“표정이 왜 그래?”
어딘가 기가 빠진 듯한 미라슈의 한숨에 디라일라가 묻자, 그녀는 뒤를 돌며 말했다.
“허무해서 그렇당. 너희랑 여기까지 오는 게 그렇게 편할 수가 없지 않았냥?”
“어…… 그런가?”
“물론이당! 원래 사막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단 말이당!”
아무리 사막에서 사는 부족이라고는 하지만, 나카르 사막에서 완전히 안전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저 사막의 생태를 이해하고 거기에 숙달되어 왔을 뿐.
당장 미라슈만 하더라도 예정에 없던 메가 샌드웜의 등장으로 인해 상단이 통째로 공중분해당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셰인과 디라일라와 함께 다니다 보니 허탈함이 느껴진 것이다.
“그 마법 캠프도 마법 캠프지만, 너희들도 괴물이당.”
“으음……?”
“지저인들은 원래 그렇게 무식하게 강한 거냥? 무슨 땅을 한 번 뒤집으니까 안에서 자이언트 샌드웜이 쪼그라져 죽어 있질 않나, 원통 벌레를 터트려 죽이지 않나! 아주 무섭다냥!”
“그, 그럼 좋은 거 아닌가?”
“좋은 건 좋은 거고 너무 사기 아니냥!”
실제로 디라일라는 이 대지에서 셰인이 말한 이지가 없는 정령─원시 정령과의 교감을 이룬 이후부터 기감이 굉장히 날카로워졌다.
디라일라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가 조금이라도 주변에 있다면 득달같이 달려와 경고를 해 대니, 사막에서 디라일라에게 기습이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다.
“나도 나 말고 다른 지저인은 안 만나 봐서 모르겠는데.”
“냐냥…… 그러냥. 미안하당.”
“어, 갑자기 웬 사과?”
“가족이 없다는 거 아니냥.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아니 생각해 보니 말이 그렇게 되네.
“아, 아무튼 그냥 허탈해서 그랬당. 우리한테도 그런 기술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여태까지는 애써 괜찮은 척했으나, 이 사막에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흩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미라슈는 모르지 않았다.
미라슈 또한 만약 셰인 일행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사막을 떠도는 악령이 되었을지 누가 알까.
‘아니, 얘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난 분명 죽었어.’
그러다 보니 메가 샌드웜의 등장으로 뿔뿔이 흩어진 다른 상단의 일행들도 살아남길 바라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편하게 도시로 생환해 온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생겨났다.
“미안하당. 그냥 좀, 예민해서 그랬나 보당.”
“뭐…… 그럴 수도 있지. 흠흠.”
대충 미라슈가 왜 저러는지 눈치챈 디라일라도 헛기침을 했고, 이내 미라슈는 셰인과 디라일라의 손을 잡았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당. 혹시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우리 상단으로 와랑. 수원지를 기준으로 7시 방향에 있다냥.”
“어어, 그래. 조심히 들어가고.”
“고맙당! 신분증을 받으려면 저기 보이는 두 번째로 큰 건물로 들어가랑. 가면 몇몇 시험이 있겠지만, 너희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당!”
지난 한 달 동안 이곳에 오기까지 함께 동행했던 미라슈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둘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취를 감췄고, 디라일라는 괜스레 헛헛해진 마음에 코를 긁었다.
“쩝. 다시 둘이 됐네요.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예정대로 신분증부터 발급받아야지.”
“아까 들어 보니까 시험이 있을 거라던데.”
“말이 시험이지, 정확히 말하자면 도시에 기여도를 쌓는 것이다. 상단을 호위해 주거나, 몬스터를 토벌하는 게 주된 임무지.”
“아하…….”
“나머지는 직접 가서 확인해 보도록 하지.”
“옙. 알겠습니당.”
미라슈의 말투를 따라 하며 디라일라가 앞장서서 걸어갔고, 셰인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어디 보자…… 우와. 이게 다 뭐래?”
건물은 거대한 술집 겸 길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다양각색의 이종족들이 술과 음식을 시켜 먹고 있었고, 몇몇 이들은 임무 게시판 앞에서 각자의 팀을 짜는 작업을 진행 중이기도 했다.
살아 생전 이만한 숫자의 이종족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걸 본 적이 없던 디라일라는 두 눈을 빛냈고, 그런 디라일라의 모습에 셰인은 피식 웃으며 임무 게시판으로 향했다.
“처음 맡는 냄새인데. 외지인인가?”
“그렇소.”
그때, 임무 게시판 근처에 있던 종업원의 물음에 셰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부족은 어디요?”
“그냥 떠돌이 용병이요. 사막 출신은 아니지.”
“그렇구먼. 이 바닥에 좀 오래 굴렀나? 차림새가 멀끔하구만. 사막 출신이 아닐 텐데, 보통이 아닌 것 같으이.”
“모험은 많이 다니는 편인지라.”
“핫핫. 그렇군. 임무 신청소는 저쪽 카운터이니, 필요하면 가 보시오.”
몽구스처럼 눈 주변이 검은 남자는 껄껄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고, 그에 디라일라가 다가오며 물었다.
“오, 생각보다 외지인에 친절한 편이네요? 엄청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정보를 수집해 간 거다. 처음 보는 외지인이 오는 곳이 대부분 여기다 보니, 녀석의 임무인 셈이지.”
“아…… 그렇구나. 난 또.”
이종족이라 해서 인간 사회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럼 어디 보자, 임무는…… 아. 나 글 못 읽는구나.”
의사소통도 셰인의 마법 덕분에 하고 있는 마당에 글을 읽을 수 있을 리가 없던 디라일라는 멀뚱히 셰인을 바라봤다.
“글은 못 읽겠지만 대충 보는 법은 알려 주지.”
“넵.”
임무지는 나카르 부족의 글자와 함께 그림과 임무 완수금, 그리고 별도의 숫자와 불꽃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보니까 무슨 몬스터인지 알 것 같고, 저 숫자랑 불꽃은 뭐예요?”
“숫자는 임무 완수 시에 모이는 포인트다. 저 포인트를 100점까지 모으면 시민권이 나오지. 불꽃은 임무의 난이도고.”
“아하…… 모험가 길드랑 거의 비슷하네요.”
이런 시스템에 나름 익숙한 디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였고, 셰인은 천천히 임무를 살펴봤다.
임무는 난이도별로 정해져 있었는데, 막무가내로 높은 포인트가 지정된 임무를 받지는 못했다.
어중이떠중이가 임무를 맡아 봐야 민폐만 될 뿐이기에, 높은 난이도가 적힌 임무는 그만큼 포인트가 어느 정도 쌓인 상태에서만 할 수 있었다.
상단 호위의 경우에도 안전상 일정량의 포인트가 쌓인 이들만 받기에, 지금 시점에서는 막연히 받기에도 힘든 상황.
결국 낮은 1~5점 수준의 포인트가 담긴 임무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결국 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거네요. 음, 얼마나 걸리려나.”
“당장은 의식주에 필요한 수준만 하면 되겠군. 어차피 큰 의뢰는 곧 들어올 거다.”
“네? 그건 어떻게 알아요?”
“그런 게 있다.”
“뭐지. 예언가였나?”
디라일라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을 때, 셰인은 묵묵히 하급 임무지 하나를 뜯어 카운터로 향했다.
* * *
묘족의 도시, 아르가토 수원지를 다스리는 부족장 파리마슈는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은 미라슈를 향해 말했다.
“일어서라. 목숨을 걸고 성물을 가져오지 않았더냐.”
“예, 부족장님.”
“그래. 상단에 꽤 큰 피해가 있었다고?”
“그렇습니다아…….”
“애써 발음을 교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튼,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파리마슈의 말에 미라슈는 그간 자신이 겪었던 일을 설명했다.
“흐음. 메가 샌드웜의 습격이라고?”
“맞습니당. 분명 녀석들의 서식지를 빙 돌아서 갔음에도 나타났습니다냥…….”
“그 외에 특이 사항은 없었나?”
“그렇습니당.”
“혹, 어쩌면 메가 샌드웜의 습격이 이 성물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파리마슈가 자신의 손에 들린 붉은 비늘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그리 말하자, 미라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샌드웜은 과거, 지금은 사라진 리자드맨 부족에서 다루던 몬스터였지.”
“아…….”
그리고 그 리자드맨은 과거 그들의 신, 용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종족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니 메가 샌드웜이 용의 비늘에 반응했다는 것은 충분히 그럴듯한 가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 이후에는 습격이 없었을까요?”
“글쎄…… 그리 지독하게도 너희 상단을 쫓아오던 메가 샌드웜이 멈췄다면, 그사이에 일어난 변화에 초점을 둬 봐야겠지. 가령 너를 구해 줬다던 그 두 명의 외지인이라든지.”
“냐앙……? 굉장히 희한한 장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없었는데요? 물론 강하기도 했지만냥…….”
“그건 차차 두고 볼일이지. 이곳의 시민권을 준비하고 있다 했나?”
“그렇습니다냥.”
“외지인이 어떤 활약을 할지 두고 봐야겠군. 이해하거라. 본래라면 너를 무사히 데리고 온 보상으로 곧바로 시민권을 지급해도 모자람이 없으나, 이 물건은 그리 쉽게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될 물건이지 않으냐. 지금 같은 상황에 외지인에게 곧바로 시민권을 준다면 분명 낌새를 느낄 이들이 나올 거다.”
“무, 물론입니당…….”
한편 내심 셰인과 디라일라에게 시민권을 지급해 주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려던 미라슈는 그 말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고생이 많았다. 내 딸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당, 부족장님.”
“그래. 들어가서 여독을 풀어라. 너무 늦긴 했다만…… 하다 못해 상단 동료들의 유품이나 비슷한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임무를 올려 주마.”
“……! 감사합니당!”
오랜 기간 이 삭막한 나카르 사막에서 이 정도로 거대한 도시를 이끄는 수장의 인정보다도, 메가 샌드웜의 공격으로 흩어진 동료들의 유품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미라슈를 더욱 기쁘게 만들었다.
그렇게 미라슈가 자리를 벗어나고, 홀로 남은 파리마슈는 손에 들린 용의 비늘을 보며 나직이 말했다.
“과연 이게 현 상황을 타개하는 황금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쓸데없는 분란을 일으킬지는 두고 봐야겠군…….”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이 용의 비늘을 구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 돈이 들어갔던가.
그럼에도 파리마슈는 애써 딸 앞에서는 숨겨 뒀던 불안감을 내비칠 수밖에 없었다.
“용께서 보살펴 주시기를.”
* * *
“우, 우와. 이게 진짜 그 전갈 고기라고요? 대박.”
아르가토 수원지에 들어오고 이틀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셰인과 디라일라는 소소한 토벌 임무를 받아 소정의 돈을 받고 근처에 값싼 숙소를 잡아 생활하고 있었다.
이번에 일당도 받았겠다, 셰인은 정보도 수집할 겸 사막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디라일라의 의견을 받아들여 식당에 찾아왔다.
여기에는 주민들 이외에도 제법 많은 부족들이 찾아와 각자의 정보를 주고 받았는데, 셰인은 귀에 감각을 집중해 그들의 목소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었다.
“우욱?! 맛있어!”
그렇게 나온 음식 중 자이언트 전갈의 고기를 맛본 디라일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징그러운 거대 전갈의 고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육즙과 부드러움이 입 안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하하, 젊은 아가씨가 먹성도 좋군.”
“원래 노동 후에 먹는 음식이 일품이지!”
“으하하, 맞는 말이야!”
용병으로 보이는 몇몇 이종족들도 그런 디라일라처럼 각자의 음식을 손에 들며 왁자지껄 소리쳤다.
나카르 사막 내부에서만 활동하는 그들이다 보니 대부분 한 다리 건너 아는 사이인지, 그들은 다른 테이블에 앉는 것도 스스럼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때마침 식당에 들어온 한 일행이 셰인과 디라일라가 앉아 있던 식탁으로 찾아왔다.
“안녕하십니까? 못 보던 얼굴인데 최근에 오신 외지인인 모양이군요. 합석, 가능하겠습니까?”
털이 수북한 회색 묘족의 수인 남자가 얇은 눈을 뜨며 그리 묻자 셰인은 잠시 그런 남자를 바라봤다.
“어, 혹시 일행이 있으실까요? 하하.”
“아니, 없소. 앉아도 되오.”
“이거 감사합니다!”
그렇게 자리에 합석한 남자가 뒤에 있던 다른 두 일행들을 불렀다.
한 명은 늑대처럼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견족 수인 여성과 비대한 덩치의 우족 수인이었다.
그리고 셰인도 그런 두 명에게 잠시 시선을 맞추고는 눈인사와 함께 자리를 내줬다.
“고마워.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자기소개나 할까?”
“후허허. 만나게 돼서 반갑소. 난 미타노스라 하오.”
차례로 자리에 와 앉은 그들은 친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셰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신경 쓸 거 없소. 자리는 넓으니. 그리고…….”
“그리고?”
이렇게 제 발로 찾아와 줬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는 건 이쪽 아니겠나.
“아무것도 아니오. 이것도 인연이니 사막 돌아가는 이야기나 하는 게 어떻겠소?”
“후허허! 보기보다 호탕하시군.”
전생에, 무명에서 함께 지내던 동료들을 보니 여간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게 아니었다.
‘보통 인연이 아니지. 전생과 더불어 너희는 또다시 내 손에 죽게 될 테니.’
셰인은 옅은 웃음을 본 디라일라는 저도 모르게 등줄기에서 소름이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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