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37)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37화
137화 성녀와 성물 (1)
한 마리의 메가 샌드웜이 내뱉은 피어가 사막에 울려 퍼졌다.
첫 번째 공격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일까?
메가 샌드웜은 파리마슈가 머물던 천막과 함께 금세 모래를 파고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
그때가 될 때까지도 토벌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가장 먼저 움직인 이들은 파리마슈의 호위들이었다.
그들은 메가 샌드웜에게 빼앗겼던 시선을 돌려 셰인이 향한 방향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 파리마슈를 근처에 눕힌 셰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파리마슈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여, 여긴……?”
“실례했소. 너무 급한 상황이었던지라.”
“……?!”
그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파리마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셰인을 경계했다.
셰인은 두 손을 들어 더 이상 공격 의사가 없음을 표했고, 턱으로 천막이 존재했던 방향을 가리켰다.
“뭐, 뭐지? 천막이 어디로…….”
“부족장님!!”
“무사하십니까!”
그사이 바람처럼 달려와 파리마슈의 앞에 도착한 호위들이 각자의 무기를 셰인에게 향했다.
“방금,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그런 호위들의 당황한 기색을 알아차린 파리마슈가 자신이 기절한 사이에 일어난 일에 대해 물었다.
“또 한 마리의 메가 샌드웜이 출현했습니다. 방금까지 부족장께서 머물던 천막은 놈에 의해 삼켜졌지요.”
“……!”
그 말에 파리마슈는 이제야 왜 토벌대의 표정에 절망감이 어렸는지 파악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기로 하겠소.”
“…….”
파리마슈의 말에 셰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셰인도 또 하나의 메가 샌드웜이 등장한 것은 예상외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용의 비늘이 가진 기운이 메가 샌드웜을 유인한다 하더라도, 두 마리나 엮일 정도인가?’
앞서 토벌된 메가 샌드웜이 용의 기운을 이곳까지 쫓아 올 수 있던 이유는, 녀석이 앞서 한차례 그 기운을 느껴 봤기 때문이다.
미라슈가 옮기던 당시에 그 기운을 두 마리가 느꼈다면 모를까, 이곳까지 쫓아온 것은 한 마리뿐.
그렇다면 다른 한 마리에는 어디서 나타난 걸까.
사건의 발단에 대해 셰인이 고민하던 사이, 파리마슈는 혼란에 빠진 토벌대를 진정시키기 위해 소리쳤다.
“주목!!”
마력이 담긴 그의 외침에 토벌대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전 병력은 전열을 지켜라!”
“……!”
“주술사들은 다시 한번 토템을 가동시키도록!”
그제야 패닉 상태였던 전장에 질서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파리마슈의 명령대로 토벌대는 감정을 갈무리하고 각자의 무기를 든 채 또 다른 메가 샌드웜의 기습에 대비하기 시작했고, 주술사들도 마력을 일으켜 아까처럼 토템을 가동시켰다.
그러나 이번에는 메가 샌드웜이 한 차례 더 빠르게 움직였다.
쿠오오오──!
놈은 마치 제 동족이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력이 집중되는 토템의 밑으로 튀어나왔다.
“큭……!”
그 모습에 파리마슈가 입술에 피가 나도록 씹었다.
메가 샌드웜은 그 위험성만큼이나 조심성이 많은 생물이다.
저만한 크기가 될 때까지 동족의 죽음을 목도해 온 탓에, 같은 수법에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제도 쓸 수 없고, 놈을 모래 밖으로 끄집어낼 토템도 모조리 박살이 났다.
앞서 메가 샌드웜을 잡을 수 있던 핵심 중 2개가 줄어든 것이다.
거기에 놈은 토벌대에 의해 자신의 동족이 공격당했던 것 또한 지켜봤을 테니, 결코 정면 대결을 할 생각이 없을 터.
그러자 셰인도 비슷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실상 여기서 디라일라를 투입시킨다면 토벌이 한결 쉬워지겠지만, 그랬다간 그녀의 존재가 너무 눈에 띄게 된다.
고작 모래를 다루는 대지술사와, 메가 샌드웜을 상대하는 대지술사의 존재감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된다면 무명에서도 디라일라의 존재에 대해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내버려 두자 하니 아르가토 수원지에 너무 큰 피해가 생겨날 지경이다.
그렇게 된다면 파리마슈의 명성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부족 사회에서 그의 발언권이 낮아지는 것 또한 뒤따라오는 수순.
그것은 셰인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셰인과 파리마슈의 고민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풀어졌다.
* * *
이 거대한 사막에서 푸른 나뭇잎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형형색색 다양한 색을 갖춘 꽃잎은 어떠할까.
나카르 사막에서 볼 수 있는 꽃잎이라고는 수년을 기다려야 결실을 맺는 선인장의 꽃이 전부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내리는 이 무수한 숫자의 꽃잎은 도대체 무엇일까.
셰인은 이와 비슷한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지하경매장에서 다크 엘프들과 함께 등장했을 때 보였던 연출이지 않나.
셰인은 교만의 오리진을 일으켜 양쪽 눈에 집중시켰다.
한편.
토벌대들은 다시 한번 혼란에 빠져들었다.
살아생전 이만한 숫자의 꽃잎을 볼일이 없던 그들은 이 기현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하느 한 수인의 중얼거림에 몇몇 토벌대원들이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드, 들어 본 적이 있어. 그분이 모습을 드러낼 때면, 마치 시간이 과거로 돌아가는 듯한 현상이 펼쳐진다고…….”
“그분?”
“설마…….”
누군가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고, 또 누군가는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경건한 표정을 지었다.
“용께서 일으키신 분노를 잠재울 마지막 희망…….”
“서, 성녀님이다!!”
수인족 중 한 명이 허공을 가리켜 손짓하자, 일제히 그곳을 향해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작열하는 나카르 사막의 태양을 등진 채 한 여인이 허공에서 유유히 내려오고 있었다.
성녀.
나카르 사막에서 유일하게 용의 축복을 받았다 알려진 여인이, 꽃잎으로 이루어진 길을 거닐었다.
그런 그녀의 주변으로 푸른 풀과 새싹이 돋아나며 마치 그녀의 길을 비추는 듯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첫인상만큼은 성녀라는 이름에 전혀 어색함이 없는 모습이다.
“성녀…….”
“지, 진짜 성녀라고……?”
“세상에…….”
마치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온 세상에 알리듯, 존재감을 뿜어내는 그녀로부터 토벌대원들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지금 자신들의 발밑에 메가 샌드웜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그녀에게는 눈길이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무형의 기운이 풍겨지고 있었다.
그런 성녀가, 토벌대 앞에 도착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과거, 수많은 생명체를 유혹했다는 하피의 목소리가 이러했을까.
혹은 물의 정령이라 알려진 바닷속 세이렌의 노랫소리가 이러했을까.
그저 단순한 인사 한마디만으로도 모든 토벌대원들은 전의가 상실되는 것을 느꼈다.
독이 묻은 무기가 모래 위로 떨어지고, 메가 샌드웜의 피로 더럽혀진 손톱을 다급히 숨긴다.
그 모든 것들이 눈앞에 있는 성녀를 향한 모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제나 냉철함을 간직하고 있는 파리마슈마저, 멍한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로지 유일하게, 셰인만이 냉철한 눈빛으로 그런 성녀를 바라봤다.
자.
어떻게 해야 할까.
“…….”
잠깐의 고민이 오갔으나, 셰인은 끝내 들끓어 오르는 전의를 분출하지 못했다.
다른 이들처럼 그녀에게 성스러움을 느껴서가 아니라, 아직 때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셰인은 천천히 눈에 띄지 않도록 기척을 죽여 가며 파르마슈의 뒤로 다가갔다.
“오랜 과거, 우리의 신. 용께서 흘리신 피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던 지렁이의 몸에 흡수되었다고 하죠.”
또다시 천상의 목소리가 토벌대에게 퍼져 나갔다.
그들은 마치 성전(聖典)을 읽듯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녀에게 귀를 기울였다.
“용께 피를 하사받은 지렁이는 이내 지룡이라는, 또 하나의 용으로 승격하였습니다. 용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직 승천의 때가 도래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는 내가 승천하는 그 날, 나와 함께 우주로 돌아갈 것이다.
“그저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것이 삶의 전부였던 지룡은 용께서 하신 말씀에 깊이 탄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지룡은 이 대지를 더욱 비옥하기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을 보내 왔죠.”
신성하다.
그저 저 보랏빛을 머금은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토벌대는 경건함을 느꼈다.
“그러나 용께서 지상에 분노를 보이신 이후, 지룡도 그 분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답니다. 그들 또한, 지금도 용께서 남기신 흔적에 목말라 있는 것이지요.”
“…….”
“저 아이도 마찬가지랍니다. 그저 두려워하고, 갈망하는 것뿐이에요. 용께서 돌아오실 그날을. 어쩌면 이곳에는, 용께서 남긴 흔적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용께서 남긴 흔적……?”
“성물을 말하고 있음인가!”
그 한마디에 토벌대가 흔들렸고, 파르마슈는 어느새 평소와 같은 냉정한 표정으로 그런 성녀를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제가 그 성물을 정화하고 싶습니다만, 이는 소유자의 뜻을 따라야 하는 일이지요. 그 대신이지만, 지룡의 후예인 저 아이는 제가 잘 달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 말한 성녀가 손을 뒤로 올려 들자, 놀랍게도 모래 속으로 몸을 숨겼던 메가 샌드웜이 천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건물도 한입에 집어삼킬 괴물은, 자신의 이빨 하나보다도 작은 성녀의 앞에 온순한 양이 되어 그녀의 손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댔다.
사막의 거대한 사신이라 불리는 메가 샌드웜이 한 행동이라고 믿기지 않는 그 모습에, 몇몇 토벌대원들이 무릎을 꿇었다.
매일 아침 자신들의 신인 용에게 기도를 드리듯, 성녀를 향해 자신의 경건한 마음을 보이려는 듯했다.
그 모습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대로 토벌대가 무릎을 꿇고, 이어지는 성녀의 행동을 바라봤다.
“아이야. 본래 네가 있을 곳으로 돌아가도록 하렴. 용께서 지상에 내리신 분노는 아직 거두어지지 않았단다. 머지않아 그 시기가 찾아오면, 용께서는 너희를 잊지 않고 반드시 앞에 모습을 드러내실 거야.”
여태까지 이어진 이 현상이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듯, 메가 샌드웜은 정확히 두 번. 그 거대한 머리를 끄덕이고는 보란 듯이 몸의 절반을 모래 위로 드러낸 채 모래를 가로질러 서쪽을 향해 움직였다.
“여러분. 자비로운 용께서는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의 희생에 눈물을 흘리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올려 주세요. 그리하면 곧 용께서 다시금 이 메마른 땅에 수많은 생명을 내리실 겁니다. 마치, 이렇듯.”
성녀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기적이 펼쳐졌다.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모래사막 위로 새싹이 돋아났다.
새싹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벗어난 듯, 그 뿌리를 메마른 모래 사이로 넓혀 가고, 이내 자그마한 묘목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묘목은 점차 성장하여 성목이 되었고, 언제 이곳이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이었냐는 듯 영역을 넓혀 갔다.
모든 것을 죽이는 작열하는 태양이 세상을 보듬어 감싸는 따사로운 생명력으로 변모해 갔다.
성녀는 그 모든 과정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자, 어느새 주위로 처음 보는 생명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카르 사막의 수인족은 살아생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다람쥐와 사슴이라는 이름의 짐승들이 성녀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럼, 때가 된다면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용께서 그대들을 보살펴 주시기를.”
그 말과 함께 성녀는 천천히 허공을 부유하고, 생명을 가득 머금은 태양을 등지며 나타났을 때처럼 그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이윽고 태양 속으로 성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일대 대지는 마치 오아시스의 환영처럼 일렁이다 어느새 평소의 사막으로 되돌아왔다.
“꿈……?”
“아, 아니, 이건.”
“예언, 예언이다…….”
다시금 작열하는 태양이 내려쬐는 가운데.
방금까지 맡아지던 숲 내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죽은 메가 샌드웜의 혈향만이 남겨졌을 때.
“주목!!”
또다시 들려오는 우렁찬 파르마슈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제야 멍하게 퍼진 눈을 하던 토벌대가 파리마슈에게 시선을 보냈다.
“……자비로운 성녀께서 메가 샌드웜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셨다. 이로써 토벌의 끝을 고한다.”
그에 정신이 없던 토벌대는 제각각의 반응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성녀의 출현과 퇴장.
그리고 덧없이 끝난 토벌 작전이었으나, 어느 누구도 이번 작전에서 허무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성녀를 향한 무조건적인 신앙을 보이며, 용와 성녀에게 기도를 드리기 바빴다.
그리고.
모든 일의 마무리를 지은 파리마슈는 무거운 표정으로 셰인을 바라봤다.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정체 모를 외지인이여.”
그의 표정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성녀는, 결코 성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확신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