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38)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38화
138화 성녀와 성물 (2)
메마른 사막에 자그마한 생명을 품은 새싹이 간질거리듯 흔들거리며 묘목으로, 묘목에서 성목이 되고, 거대한 노목이 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숲이 우거지고 생명이 담긴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흘러나온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처음 들어 보는 동물이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질거린다.
햇빛을 머금은 나뭇잎 위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자그마한 생명체가 빠르게 나무 사이를 날아다닌다.
과거 어렸던 시절, 아버지가 들려주던 나카르 사막의 본래 모습이 이러했을까?
파리마슈는 알 수 없는 복받침이 올라왔다.
눈앞에 있는 저 여인이라면 이런 풍경을 실현시킬 수 있는 걸까.
그러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를 깨운 것은 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이후 보이는 변화에 반응하지 마시오.]마치 달콤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옅은 짜증이 올라오려 했으나, 파리마슈는 어느새 누군가가 자신의 등에 손을 올렸음을 깨달았다.
몽롱했던 정신이 점차 뚜렷해졌을 때, 파리마슈는 자신의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깨달았다.
아까, 자신을 천막 밖으로 끄집어냈던 중년의 수인이었다.
[당신과 부족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당장 보이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마시오.]저게 무슨 소리일까.
파리마슈는 어느새 뚜렷해진 자신의 정신이 다시금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듯 푸르고 청명한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다고.
그러나, 파리마슈는 자신의 등에 닿은 외지인으로부터 무형의 기운이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청명한 빛을 머금던 숲이 점차 죽어 사라진다.
이름 모를 생명체의 안전한 보금자리가 되어 주던 거목이 쓰러져 썩어 간다.
생명력을 품고 있던 햇빛은 다시금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죽음의 빛이 되어 가고, 졸졸 흐르던 물가는 메말라 바닥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한 여인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성녀라 굳게 믿고 있던 여인의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아니, 애초에 달라진 게 맞나? 아니면 그저 자신이 무언가에 현혹이 되어 달리 보고 있던 것뿐일까.
그저 신성하게만 보이던 여인의 의상은 천보다 살갗이 더 많이 비춰졌고, 신비롭던 보랏빛 눈동자에선 지독한 음심이 느껴졌다.
그뿐인가, 자애롭게 보이던 미소는 어느새 세상 만물을 현혹하려는 눈웃음으로 보였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인식의 변화란 말인가.
그때, 또다시 외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현실이오. 저 탕부가 보여 주는 것은 현실이 아닌 꿈. 그저 만인이 만족할 꿈일 뿐인 것이지. 그대는 꿈에 익사하고 싶소?]익사라.
사막의 주민들에게는 농담 삼아 호상이라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물이 아닌 꿈이지 않나.
“…….”
파리마슈는 어느새 지도자로서의 냉철함을 갖춘 표정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성녀’를 바라봤다.
모두가 보던 성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성녀’를.
* * *
아르가토 수원지엔 아주 오랜만에 축제가 열렸다.
도시의 위기였던 메가 샌드웜의 토벌을 성공했다는 의미와 함께,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함이었다.
낮에는 먹고 죽자는 듯 먹고 마시던 수인들이 밤에는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모두가 며칠 동안 이어질 축제를 즐기고 있던 시기.
야심한 밤에 셰인은 파리마슈와 단 둘이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이 묘족의 부족장에게 호위조차 두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만 하다니. 배짱이 두둑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군.”
“아직도 성녀를 바라보던 그들의 표정을 떠올리지 못한 것이오?”
“…….”
셰인의 말에 파리마슈도 무안한 듯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자신이 보더라도 당시 호위들은 적잖이 감명 받은 표정이었다.
오랜 시간 그들과 함께해 왔던 파리마슈 또한 그들의 그러한 표정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괜찮소.”
“내 목숨을 책임질 이들이 적에게 넘어갔는데도?”
“말하지 않았소? 그 여자가 보인 것은 꿈이라고. 꿈은 오래가지 않소. 지속적으로 보여 주어야 기억에 남는 법이지.”
즉,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제 정신을 차린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아직 꿈에 취해 있는 시기라면, 최대한 조심하는 게 맞았다.
꿈에 취해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누구도 몰랐으니.
처음 보는 외지인이었으나, 파리마슈는 그 말에 어느 정도 희망을 갖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일단, 눈앞의 존재에게 들어야 할 게 있었다.
“그래서, 우리 도시에 찾아온 이유가 뭐지?”
“그쪽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 위함이오. 무명을 막아야 하니까.”
“무명이라…….”
파리마슈 또한 성녀가 속한 집단이 무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협력. 나쁘지 않은 말이지.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는. 그런데, 그쪽에게 나와 협력이라 할 만한 가치가 있소?”
협력도 어느 정도 급이 맞아야 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말한 것이다.
“가치라. 어렵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반대로 묻고 싶군. 내가 더 보여 줘야 할 의무가 있소?”
물론, 그렇다고 셰인 또한 자신이 가진 패를 함부로 까 보이지 않았다.
파리마슈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것 또한 스스로의 가치를 보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망령이 될 뻔한 그대의 후계자를 이곳까지 데려오고, 적당한 명분으로 무명의 정보원을 죽인 뒤에, 메가 샌드웜의 토벌에서는 무려 그대의 목숨마저 살려 주었지.”
하나하나가 적지 않은 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파리마슈의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만약 그대가 무명의 조직원이고, 일부러 짜고 친 계획이라면?”
“그럼 아주 환영할 일이오. 무명이 머저리라는 게 증명된 것이니. 저쪽에는 성녀라는 구심점이 있소. 거기에 넘어간 부족도 존재하고, 뿐만 아니라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부족의 수는 더러 있지. 그런 와중에 당신을 살리겠다고 이런 복잡한 일을 할 이유가 있겠소?”
셰인의 말처럼, 무명의 입장에서 파리마슈는 죽였으면 죽였지 살려서 호의를 살 이유가 없는 대상이었다.
다른 부족들과 다르게 파리마슈는 모든 부족들 간의 의사를 조율해 나가는 존재.
지금처럼 성녀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부족 간에 접점이 없다면 오히려 더 쉬워질 것이다.
하나하나 맞는 말만 하는 셰인의 태도에 파리마슈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문일까, 파리마슈는 조금 더 정중해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불쾌했다면 사과하겠소. 이쪽도 믿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으니. 하지만 아직 들어야 할 게 있소. 협력이라 한다면, 주로 어떤 부분에서 말하는 것이오?”
“‘우리’가 이 사막에 임시로나마 정착할 수 있게 해 주시오. 물론 금전적 지원을 바라는 것은 아니오. 단지, 우리의 존재가 배타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길 바랄 뿐.”
“흐음…….”
그 말에 파리마슈는 몇 가지 단서를 잡았다.
하나는 일단 눈앞의 남자가 혼자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가 소속된 단체 혹은 이끄는 단체는 그 수가 생각 이상으로 많을 것이다.
적은 숫자가 정착한다는 단어를 쓰는데 파리마슈의 도움까지 필요하진 않을 테니.
“부족 간의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오. 적지 않은 숫자다 보니, 견제를 당할 게 분명하니까.”
“부족의 대리자들을 불러 모아 달라는 것이로군. 그렇다면 그 대가는?”
셰인이 파리마슈에게 한 부탁이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파리마슈의 대가로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혹여 부족의 대리자들을 불러 모았다가 일이 틀어진다면 그들을 불러 모은 파리마슈에게 죄가 일부 돌아갈 테니.
이 부분을 이해한 셰인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사막에서 볼 수 없는, 바깥의 문명.”
“…….”
“그 가치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어떻게 하시겠소?”
“나쁘지 않군. 하지만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먼저요.”
“물론이오. 상인이 물건도 안 보고 거래를 하면 안 될 일이지. 준비까지는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소. 만약 내 의견을 묻고 싶은 일이 생긴다면, 현재 지내고 있는 숙소의 방 손잡이에 수건 같은 걸 걸어 놓으시오.”
그렇게 이후 조금 더 의견을 조율해 나가던 그들은 축제로 떠들썩하던 도시가 조용해졌을 무렵 대화를 마쳤고, 셰인은 들어왔을 때처럼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다.
“쉽지 않은 자로군.”
그렇게 말하면서 홀로 남은 파리마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난 존재였으나, 어째서인지 오래전 사막의 망령이 되어 버린 자신의 아버지가 떠오르는 남자였다.
그만큼 식견이 넓었고, 노련한 상인처럼 스스로의 가치를 잘 파악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정말 든든한 협력자를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저자가 말한 한 달 뒤에 정해질 것이다.
* * *
한 달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 사이 아르가토 수원지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중 가장 크게 눈에 띄는 것은 다름 아닌 성녀의 지지자들이었다.
메가 샌드웜의 토벌이 있던 그 날.
직접 두 눈으로 기적을 목도한 이들 중 몇몇이 성녀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기 시작했고, 차츰 그러한 자들이 늘어났다.
파리마슈는 도시의 지도자로서 신도들이 일으키는 포교 활동을 막지 않았다.
당장 그들을 막는 것은, 이전 셰인이 했던 말처럼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파리마슈는 언제 한 번 셰인에게 물었다.
분명 꿈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원상복귀하지 않겠느냐고.
그러자 셰인에게 돌아온 답변은 이러했다.
“꿈이 아닌 현실을 보는 자들은 그것이 꿈임을 인지하오. 하지만, 현실을 보지 않고 꿈에만 매달리는 간절한 것들은 그러지 못하지. 마치 현실에 지쳐 마약에 매달리는 것처럼.”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파리마슈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의 호위들은 어느새 정신을 차려 지금과 같은 상황에 우려를 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리마슈는 종교를 탄압해서는 안 된다 말했고, 오히려 아르가토 수원지에서 내리는 의뢰를 보다 후하게 만들었다.
실력이 어중간했던 이들은 1년 이상을 매달려도 제자리걸음이 됐던 포인트가, 그런 이들도 어느 정도 모을 수 있을 수준이 됐다.
그러자 놀랍게도 포교 활동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파리마슈는 성녀의 존재를 강력하게 부정하는 부족의 상황 등을 도시 내에 소문이 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도시에서는 오히려 파리마슈를 향한 찬양이 줄을 이었다.
앞서 메가 샌드웜을 처리한 성과에 더불어, 포교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지배가 아닌 통치를 하는 지도자라는 찬양을 받았고.
반대로 여태까지 희망을 보기 힘들었던 어중간한 계층들은 숨이 통하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파리마슈를 향한 찬양을 시작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 외지인이 한 몇 마디 안 되는 조언 덕분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로써 파리마슈는 셰인을 향한 신뢰가 만들어졌고, 드디어 그가 말했던 준비 기간, 한 달이라는 시간이 되어 다가왔다.
“돈(豚) 족?”
새롭게 마련된 거처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오크들을 발견한 파리마슈의 말이었다.
“아니, 과거 멸망한 당신들의 부족과는 다르오. 오크지.”
“오크…….”
확실히.
나카르 사막은 외부에서 들어올 이유가 없는 장소이니만큼 나카르 사막의 부족들 또한 외부 종족에 대해 잘 아는 게 없었으나, 과거 돈족을 닯은 오크라는 종족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어디서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던 파리마슈는 한쪽에서 포탈을 통해 꾸역꾸역 등장하고 있는 오크들을 보고는 조금 질린 표정을 지었다.
“수가…… 조금 많군.”
“아직 절반도 채 안 왔소.”
“…….”
“걱정 마시오. 이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나카르 사막 너머에 있으니.”
“크흠…….”
아무래도 한 도시의 지도자로서, 잘 알지 못하는 종족이 이만한 수로 터를 잡는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봐도 외부의 침입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으니.
“그런데, 저것도 외부의 문물이오?”
“문물이라…… 맞긴 하지.”
과연 상인답다고 해야 할까.
이 드넓은 나카르 사막에서 저것보다 간절한 이동 수단이 어디있겠나.
파리마슈는 워프 게이트를 바라보며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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