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0)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40화
140화 성녀와 성물 (4)
파리마슈는 오랜 기간 상인으로서 살아온 세속적인 수인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신인 용에 대한 경의가 없느냐 하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메가 샌드웜 토벌 작전 당시, 성녀의 환영에 금방 넘어갈 만큼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이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우리의 신을 기만하자는 거요? 아무리 그대가 외지인이라 하더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존재하는 법이오!”
그러니만큼 셰인의 제안에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응당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해하오.”
물론 셰인 또한 그런 파리마슈의 성격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만약 진정 그대들의 신이 내리는 계시라면 어떠할 것 같소?”
“이자가 정녕!”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열심히 물자를 나르고 있던 오크들의 시선이 몰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다시금 노동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들이 보이는 믿음은.”
“……?”
그러던 와중, 갑작스러운 셰인의 존대에 파리마슈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인해 파리마슈는 셰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하나. 고맙다고 할까? 아니면 부담스럽다고 할까. 좀 그러네.”
언뜻 거칠게 들리면서도 그 무게감은 한없이 무겁다.
일반인이 듣기에도 그럴진대, 파리마슈에게는 그 목소리가 마치 영혼을 울리는 절대자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일전, 셰인이 드래곤의 역린과 산왕의 기운을 터뜨렸을 때처럼.
아니, 오히려 그때보다 더한 영혼의 떨림이 파리마슈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렇다 해도 성녀라니. 진짜 부담스러운데.”
다시금 들리는 목소리에 파리마슈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마치 타오르듯 붉은 마력 입자가 흘러나오는 적발을 지닌 여인이 그곳에 서 있었다.
화염이 담긴 듯 주홍빛으로 빛나는 눈동자에서는 알 수 없는 영혼의 격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녀가 가진 심성을 알려 주는 듯했다.
“누, 누구……?”
그 한 마디조차 파리마슈는 조심스럽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존재는 파리마슈의 오랜 선조가 그리도 모셔 왔던 신의 후예였으니.
“라비아타다. 뭐, 너희가 말하는 용의 후예지.”
“……커허어어억!”
* * *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얼굴을 보자마자 기절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이 나카르 사막에서 용이라는 종족이 가진 의미가 그 정도입니다. 절대적이지요.”
“참나, 기가 막힐 노릇이네. 나도 듣긴 했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오늘따라 놀랄 일이 많았던 파리마슈가 기절한 이후, 셰인은 라비아타와 단둘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보다, 성역은 어땠습니까?”
“뭐, 아직 중앙까지 가 본 건 아냐.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지.”
셰인과 디라일라가 나카르 사막을 횡단하는 사이, 라비아타는 둘보다 빠르게 나카르 사막에 도착하여 이곳의 중앙, 성역 내부로 진입했다.
“확실히 기분 나쁜 곳이긴 했어. 뭐라고 해야 할까…… 요람의 다른 버전이라 해야 하나?”
라비아타의 그러한 견해는 셰인이 보기에 정확한 것이었다.
“맞습니다. 그곳의 정체는 말 그대로 죽은 용과 그 후손들의 영혼을 붙잡기 위한 용도입니다.”
“흐음…… 자세히 말해 볼래?”
“예상하고 계신 것처럼, 성역은 용과 그 후손들의 영혼이 봉인된 장소입니다. 하지만 영혼이라는 것은 본래 붙잡을 수 없는 것. 때문에 이를 붙잡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생전의 기억입니다.”
“…….”
“성역은 용의 기억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용의 기억이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곳만이 푸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지요.”
“시간을 붙잡는다라…….”
“예. 그로 인해 용의 영혼은 여전히 성역을 자신이 있을 곳이라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말에 라비아타의 표정에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건 일찍 말해 주지 않은 거냐?”
“직접 봐야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초입이라면 라비아타 님께 그리 위험할 것도 없을 테니 말입니다.”
“흐음…….”
확실히, 직접 가 보고 설명을 들으니 어떤 곳인지 파악이 더 쉬워진 감이 있었다.
“물론, 라비아타 님이 아닌 존재가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위험합니다. 시간이 붙잡혀 있는 장소인 탓에 자칫 잘못하면 영혼이 붙잡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곧 사막을 떠도는 망령이 된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단 말이지.”
“저나 무명의 성녀처럼 충분한 정신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면 위험할 겁니다.”
“그런데 그 성녀라는 년은 도대체 뭐 하는 년이냐?”
“음욕의 루시드 렘. 6군단의 군단장입니다.”
“음욕이라니. 이름 한번…….”
라비아타의 적나라한 반응에 셰인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욕이라는 것은 존재의 근본적인 바람입니다. 루시드 렘은 꿈을 통해 대상에게 더 없는 만족감을 선사하지요.”
“쉽게 말하면 환각계라는 거 아냐?”
“조금 다른 개념입니다. 환각이라는 것은 대상에게 지정된 장면을 재생시키거나 혹은 대상의 기억 중 극히 일부만 보여 준다면, 루시드 렘의 능력은 보다 위협적이지요.”
상대가 빠질 수밖에 없는 꿈을 보여 주는 것.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채워 주기에, 한 번 그 꿈을 겪어 본 존재는 영원히 그 꿈속에서 살아가길 바란다.
그렇기에 종교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되는 이곳 나카르 사막에서, 루시드 렘의 능력은 더욱 위협적인 것이었다.
“고통은 내성을 기르고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지만, 행복에는 내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독만이 존재하지요. 그렇기에 위협적인 겁니다.”
“음…… 듣고 보니 또 그러네.”
“하지만 꿈에도 약점은 존재합니다.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하는 겁니다.”
“그게 또 다른 성녀의 출현이라는 거냐?”
“예.”
라비아타가 성녀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무명 또한 셰인의 존재를 알아차릴 가능성이 있었다.
사사건건 자신들의 계획을 방해하는 존재가 바로 셰인이었으니.
지금 시점에서 또 다른 성녀의 출현은 무명에게 있어서 가장 큰 독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상황은 한 달 전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또 다른 성녀가 출현하자마자 이를 부정하고 나선다면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까?
당장 무명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라는 이점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무명에서는 이쪽에 셰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도 쉽사리 군단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다.
또 다른 성녀를 향한 공격은 곧 나카르 사막의 부족들이 가진 신앙심을 정면에서 부정하는 것이기에.
“참나, 살다 살다 성녀 노릇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원래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말이야 쉽지.”
라비아타는 그리 말했으나, 실상 회귀를 경험한 셰인에게 저 말은 진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제부터 어떻게 할 예정인데?”
“저쪽에서 먼저 선동과 날조로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그게 그들만의 특권은 아닙니다.”
그리 말하는 셰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라비아타는 어째 저 표정이 음험하다고 느꼈다.
* * *
의외로 파리마슈에게 라비아타의 신분을 증명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영혼에 새겨져 있는 용에 대한 신앙심은 설명이라는 게 필요하지 않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쯤 되자 파리마슈는 셰인을 대하는 데 더욱 조심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용의 후손을 데리고 온 존재이지 않나.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겠지요.”
셰인의 계획을 듣게 된 파리마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의사를 표했다.
라비아타를 만나기 전에는 극도로 분노를 표출했던 파리마슈는, 새로운 성녀 작전에 그 누구보다 앞장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앞서 가짜 성녀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 하더라도 각 부족은 부정부터 하고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가짜 성녀의 지위가 더욱 확고해진 지금, 새로운 진짜 성녀님의 등장은 더욱 큰 불화를 일으킬 게 분명합니다.”
현재 가짜 성녀, 루시퍼 렘을 향한 신도들의 믿음은 맹목적이다.
그런 그들의 시야를 확 트이게 만들려면, 그만큼 커다란 임팩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에 대한 비책으로, 셰인은 뜸을 들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봐,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성녀님이 또 존재한다던데?”
“뭐? 이 미친놈이 뭐라는 거야?”
당연하지만, 처음에는 이러한 소문은 부정적인 이미지만 쌓이게 됐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현 성녀님의 자매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 봐.”
현재 루시드 렘에 대한 여론이 좋은 만큼, 셰인은 그 여론에 편승하기로 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소문에 가장 먼저 휘둘리기 시작한 것은 열렬한 성녀 추종자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듣자 하니 이곳 사막 밖에 계셨던 용의 후손이라더군.”
“그 출처가 어딘데?”
“최근에 남쪽에 자리 잡은 부족이라던데.”
“뭐? 남쪽에는 수원지도 없어서 거주 중인 부족도 없잖아.”
“안 그래도 그걸 이유로 묘족의 부족장이 대표로 찾아가 볼 예정이라더라. 각 부족의 대리자들과 함께.”
“난 오히려 그 부족에 관한 소문이 더 궁금한데. 자세히 좀 말해 봐.”
동시에 오크들에 대한 이야기도 그들 사이에서 점차 퍼져 나갔다.
한편, 오크들은 사막에 자리를 잡은 이후 사막에 적응하기 위해 꾸준히 외부로 나가 사냥을 하며 돌아다녔다.
우연찮게 그 모습을 본 사막의 부족들은, 돼지를 닮은 오크들의 외형을 보고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다.
“돈족이 돌아왔다! 사막의 악령이 됐던 돈족이 돌아왔어!”
“저건 또 무슨 헛소리야?”
돈족은 과거 나카르 지역이 사막화되면서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사막의 악령이 되어 버린 부족이다.
그런 돈족이 다시금 돌아와 터를 잡았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자, 각 부족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진짜 돈족이라면 용님과 관련된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을까?”
“부족장께서 이번 일도 잘 해결하실지 걱정이로군!”
그렇게 파리마슈를 주축으로 한 각 부족의 대리자들이 아르가토 수원지에 몰려들었다.
각 부족의 호위를 받은 그들은, 이내 파리마슈와 함께 남쪽으로 향했다.
“묘족의 부족장이시여. 진정 그들이 돈족이 맞습니까?”
그에 건장한 체격에 세로로 길게 난 갈기를 지닌 마(馬)족 수인의 물음에 파리마슈는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파리마슈는 현재 남쪽에 자리를 잡은 오크라는 종족이 돈족과 완전히 다른 종족임을 알고 있었으나, 굳이 이런 정보를 먼저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본인도 아직 그들에 대한 정확한 정체는 알지 못하오. 다만 우리에게 적대적이지 않고, 오히려 무역을 원한다는 것 정도만 파악했소. 듣자 하니 사막을 건너가고 싶다더군.”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취급하는 무역품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다양하오. 확실히 외부에서 들어온 까닭인지, 신기한 물건들이 많더군. 그래도 가볍게 몇 가지 읊어 보면, 질 좋은 무기와 염지 해 둔 고기 등이 있소.”
“그리 크게 눈에 띄는 것은 없군요. 흐음…….”
그렇게 마족 수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서자, 여태까지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타 다른 부족의 수인들도 고민에 잠겼다.
그들 또한 부족들 간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은 외부의 세력이 반가울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반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오크들의 근거지에 도착하자마자, 천장에서 줄줄 흐르는 물줄기를 보고 딱딱하게 굳어 버린 탓이었다.
“저, 저건…….”
“수, 수원석이 아닌가!”
“저 귀한 것들이 어떻게 저리 많이……?!”
오크들이 자리 잡은 거대한 지하굴의 천장.
마치 밤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박혀 있는 수원석들이 폭포처럼 물을 쏟아 내고 있는 광경에 각 부족의 수인족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서 와라! 환영한다!”
“우리 오크. 평화 사랑한다.”
“잘 보고 가라! 오는데 덥지 않았냐?”
“여기 물 많다.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
그러든지 말든지.
오크들은 자신들이 기선 제압을 확실하게 해 놨다는 것도 모른 채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그런 수인족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