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2)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42화
142화 삶과 죽음, 그리고 꿈
“참 아름다운 풍경이로군요.”
간질거리는 목소리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아름답다는 듯 흘러나왔다.
무명의 군단장, 음욕의 루시드 렘.
그녀에 의해 만들어진 꿈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그리 넓은 집은 아니다.
제법 연식이 있는 목조 건물은 정확히 4인 가족이 살기에 적당한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1층의 부엌.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자그마한 콧노래와 함께 식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그 옆에는 뜨거운 불에 의해 끓는 국이, 자그마한 집에 온기를 가져다주며 포근한 냄새로 가족들을 모이도록 만들었다.
의자에 앉은 아버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신문을 읽는 듯 보였으나, 부인의 콧노래에 맞춰 발끝이 흔들리고 있었다.
음식 냄새에 홀린 듯 아이들이 위층에서 내려왔다.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누나와 남동생.
둘은 방금까지 어떤 주제로 가벼운 말다툼이 있던 것인지, 내려오는 중에도 작게 투닥거리며 식탁 앞에 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버지가 신문을 접고 숟가락을 들자, 남은 가족들도 하나같이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평화롭기 그지없는 풍경.
어느 누구에게도 걱정 근심이 보이지 않는, 그런 가정이었다.
“참 보기 좋은 풍경이긴 한데…… 역시 뭔가 이상하네요.”
그러나 정작, 그 꿈을 만들어 낸 렘의 표정에는 의아함이 담겨져 있었다.
이곳 어디에도.
자신이 목표로 했던 존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저 아버지가 그 남자인 걸까?
아니면 막내아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렘의 표정에는 더욱 의아함이 물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화목한 분위기에 취해 있는 단란한 가족들의 얼굴은 마치 거리에 위치한 옷가게의 쇼윈도 속.
이목구비가 없는 마네킹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화복한 분위기임을 알 수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점차 루시드 렘의 얼굴이 굳어 갔다.
이게 가능한 이유가 몇 가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현재 이 풍경은 루시드 렘이 셰인의 정신세계로 들어와 셰인의 의식을 투영하여 만든 풍경이다.
때문에 이 풍경은 현재 셰인이 바라고 있는, 그가 보고 싶은 풍경이라는 말이다.
다만 저렇듯 가족들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셰인이 가진 방어 기제에 있었다.
즉 지금 보이는 이 풍경은 셰인이 허락했으나, 그들의 이목구비는 셰인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의미나 마찬가지.
그 말은 즉─
“역시 꿈은 꿈이로군.”
대상이, 이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 * *
“…….”
풍경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따사로운 햇빛이 들어오던 창가에는 선혈이 튄 채로 서늘한 달빛이 흘러 들어왔다.
군침이 도는 음식의 냄새로 가득했던 집안에는 썩은 시체의 냄새가 코를 찌르는 듯했다.
콧노래를 부르던 어머니의 입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고.
무표정 속에 행복감을 숨기던 아버지의 얼굴은 흉악하게 구겨졌다.
방금까지 투닥거리던 남매는 부엌의 구석에 웅크려, 죽은 자들에게 파먹히고 있는 부모의 모습을 바라본다.
자신이 직접 일으킨 꿈이, 전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에 렘은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까지 그녀가 아름답다 생각했던 그 풍경이 단번에 망가졌으니.
마치 아름다운 작품에 흙탕물을 끼얹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루시드는 요염하게 빛나는 보랏빛 눈동자로 한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새하얀 민무늬 가면을 쓴 셰인이 서 있었다.
“뜻밖이네요. 그저 묘족의 부족장을 뒤에서 조종하는 분일 줄 알았는데. 밖에서 그렇게 유명한 가면의 남자였다니.”
“피차 마찬가지군. 직접 행차할 줄은 몰랐는데.”
“나름 궁금했거든요. 그 까탈스러운 묘족의 부족장이 어떻게 넘어갔나 싶어서요.”
그리 말하는 루시드는 이내 대화의 주제를 바꿨다.
“그런데 이 풍경은 썩 좋지 않네요.”
“왜 그렇지?”
“그야, 사랑스럽지 않으니까요? 전 평화를 사랑하거든요.”
“그런 것치고 무명이 평화로운 조직은 아닐 텐데.”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피를 흘리기 마련이니까요. 그래도 그들의 죽음은 당신이 만든 이 풍경처럼 참혹하진 않을 거예요.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그 죽음 하나하나에 의미가 담길 테니까.”
렘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듯 말했으나, 셰인은 피식 웃었다.
전생에 무명의 제1군단장으로서, 직접 만들어 낸 이 풍경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그 죽음에 따른 결과는 다를지언정, 정작 죽은 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
전생에 셀 수도 없는 죽음을 직접 마주했던 셰인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항상 무언가로 포장되었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산 자들이 스스로를 위해 만든 결과에 불과했다.
그리고 저 음욕의 군단장은 죽음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는 여인이었고.
마치 물과 기름처럼, 둘의 의견은 대립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아까 그 풍경이 더 아름답지 않나요?”
하나 렘의 말도 틀리진 않았다.
무엇이든, 잔혹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더 좋은 법이었으니.
“그것은 산 자들의 바람이지. 다른 존재가 멋대로 포장하는 것은 오히려 기만이고, 오만이다. 죽음 그 자체에 의미를 둬야지, 그것에 거짓을 씌워서는 안 된다.”
방금까지 렘이 만들어 낸 이 꿈은, 과거 셰인에게 몰살당한 어느 한 가정이었다.
언데드로 변한 부모에게 도망쳐, 끝내 이름 모를 산속 동굴에서 죽음을 맞이한 남매.
그 모든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셰인에게 있어서 저 화목한 풍경은, 죽은 자들을 향한 기만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렘의 말에는 셰인의 의중을 제대로 찌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결국 당신은 제가 이 풍경을 만들도록 허락했어요. 그 말은 곧 당신도 저 풍경을 바라고 있다는 말이잖아요?”
“맞다. 한 번쯤 보고 싶었지. 내가 개입하지 않은 그들은 어떤 풍경을 그리고 있을지. 하지만, 역시 꿈은 꿈일 뿐이더군.”
결국 무명이라는 단체를 말살하지 않는다면, 셰인이 바라던 풍경은 끝까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끝내 셰인을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한 렘은 그런 셰인에게 가엽다는 듯 시선을 보내 왔다.
“당신의 세상은 이 사막보다도 더 삭막하고, 생기가 없네요.”
“글쎄…….”
셰인은 죽음으로 가득한 꿈 속 풍경을 바라보며 손을 휘저었다.
스스로의 정신세계를 조작하는 일은, 셰인에게 손바닥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그렇게 변한 풍경은, 무엇도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 정도 평가조차 내겐 사치로군.”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던 검은 바닥에 무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비릿한 혈향.
바닥 전체로 피가 차오르기 시작하고, 그 진득한 피 속에서 비쩍 마른 손이 올라온다.
살점이 뜯겨져 나가고, 무엇 하나 성한 구석이 없는 손.
그러한 손들이 사방에서 올라온다.
“삭막하고 생기가 없는 풍경에도 나름의 운치는 있지. 한데, 이건 어떻지?”
“…….”
셰인의 말에 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는 꿈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이 풍경은, 고작 눈앞의 남자가 상상으로 구현한 세상이 아니다.
직접 현실에서 보고, 겪은 것이 펼쳐지고 있었다.
셀 수 없는 숫자의 손이 피의 바다에서 본체를 끄집어 올렸다.
아까 봤던 4인의 가족들처럼.
하나같이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시체들이 끼릭끼릭 소리를 내며 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에 불길함을 느낀 렘은 서둘러 자신의 힘을 펼쳐 냈다.
비록 타인의 정신세계이긴 하지만, 이곳에서 렘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고, 만들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던 하늘 위로 태양이 떠올랐다.
언데드가 햇빛에 약하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 뜨거운 열기가 바닥에 차오르는 혈액을 증발시킨다.
붉은 수증기가 허공에 차오르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언데드들은 그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리는 듯 보였다.
렘의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
그러나 평범한 비가 아니라, 은의 기운이 담긴 비다.
신성함이 깃든 그 비는 삿된 언데드의 힘을 앗아 간다.
그러나.
살을 녹아내릴 듯 햇빛이 내리쬐고, 신성한 비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도 언데드들은 렘을 향해 진군했다.
“어떻게……?”
“같잖은 흑마법사들과 비교하면 안 되지.”
렘이 착각한 게 있다면, 저 언데드가 여타 흑마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전생의 셰인이, 그리고 타락한 자아가 만든 걸작이다.
햇빛 아래서도 그 힘을 잃지 않으며, 아무리 신성한 기운에 노출된다 한들 약해지지 않는다.
단순히 흑마력을 통해 강제로 일으킨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생명을 향한 강력한 질투라는 감정.
즉, 오리진이 바로 저들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에 입술을 깨문 렘이 계획을 변경하려던 찰나. 셰인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슬슬 이 광대놀음도 그만하도록 하지.”
그러면서, 셰인은 한쪽 무릎을 꿇어 피로 물든 대지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나온 것은.
“여, 여왕님…….”
“……!!”
반쯤 나체인 상태로 목이 잡힌 한 여성. 정확히는, 음마라 불리우는 종족이었다.
“스스로 나서지 못하고 이렇게 부하의 힘을 통해 찾아온 건가. 여전하군.”
“…….”
“보아라, 꿈에 빠진 음마여. 죽음에는 그 어떤 의미도 담기지 않는다.”
뿌드득.
가볍게 손에 힘을 준 것만으로도.
렘의 수족인 음마는 목이 꺾여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실이 풀린 인형처럼 늘어졌다.
그러자 변화는 금방 찾아왔다.
음마의 힘으로 일으켜진 셰인의 정신세계가 조각조각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일은 잊지 않겠어요.”
“이런. 불청객 주제에 흔한 말이나 내뱉고 떠나가는가.”
“…….”
방금 죽은 음마를 통해 현현했던 렘은 산산이 조각나기 시작하는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며 다시금 입술을 깨물었다.
수족의 죽음, 굴욕적인 패배.
그 모든 것보다, 렘은 셰인이 가진 사상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았기에.
그럼에도 그 말을 반박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더욱 화가 났다.
“곧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음마의 여왕이여.”
“글쎄요. 현실도 꿈 속 세상도. 결국 그 끝은 같아요. 그저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당신은 어떨까요?”
그 의미심장한 말을 마지막으로, 렘은 모습을 감췄다.
* * *
무너지기 시작하는 꿈속 세계.
셰인은 피와 시체로 가득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다, 이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저 어둠만이 존재하는 공간.
셰인은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참으며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두 눈을 집중해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빛.
그저 어둠만이 존재하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그것은, 여태껏 셰인이 루시드 렘을 상대하는 동안 숨기려 애를 썼던 그의 내면이었다.
발을 치우고 뒤로 물러나자 빛이 점차 점멸하며 그 크기를 키워 나갔다.
이윽고 빛이 완전히 펼쳐지려던 그 순간.
셰인은 다시금 어둠을 일으켜 빛의 크기를 줄여 나갔다.
너무도 보고 싶은 빛이었으나, 아직 스스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빛이었기에 셰인은 욕심을 억눌렀다.
언젠가 저 빛을 응시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날은 자신의 두 어깨만으로 감당키 어려운 과거를 속죄하는 순간일 것이다.
과연, 그 날이 찾아올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