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44화
144화 그들은 지금 (2)
한때 제국을 뜨겁게 달궜던 지역, 아룬비다는 그 소
문의 열기와 대비될 정도로 혹독한 환경을 자랑했다.
이젠 제법 익숙해진 날카로운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자, 아네이스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비두론 성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
추운 날씨와는 대비될 정도로 활기찬 도시가 펼쳐졌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도시의 주민들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훈훈한 얼굴로 술집에 들어간다.
인근에서 몬스터를 토벌하고 돌아온 토벌대와, 막 광산에서 나온 듯 얼굴에 검댕을 묻힌 인부들이 격식 없는 인사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다니는 모습들.
“바깥에서 듣던 것과 달리 활기차서 당황스러운 것 같군.”
이젠 이 도시를 넘어 명부상실 북부의 맹주가 된 엘라인의 오른팔, 엘리엇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아네이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폭한 사람들만 있다고 들었어요. 전부 범죄자들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
확실히 이 북부의 주민들은 하나같이 드센 면이 있었다.
하지만 엘리엇이 어떤 인물인가.
몰락한 황자의 보좌관이 되어 수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하세계에서 살아왔던 인물이다.
지하세계의 더러운 범법자들과 비교하면, 이 정도면 애교에 불과하다.
“그런데, 난폭하지 않은 사람은 없어. 사람들이 흔히들 하는 착각이지.”
“……?”
“착한 사람이 평생 착한 건 아니야. 사람이라면 누구나 ‘역린’이 존재하는 법이고, 그걸 건드리면 난폭해지지. 이곳의 주민들 대부분은 그 역린이 뜯겨져 나간 사람들인 거고.”
그러면서 엘리엇은 무표정한 아네이스를 바라봤다.
“너에게도 있지 않나? 자신만의 역린이.”
“음…….”
그 말에 아네이스는 습관처럼 생각에 빠져들었다.
나에게 역린이란 무엇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고민의 답은 금방 떠올랐다.
“정의롭지 못한 것. 그게 제 역린인 것 같아요.”
“……참 어려운 역린이구만.”
그러면서 엘리엇은 품에서 꺼낸 시가를 입에 물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다들 웃고 있어요. 전혀 난폭해 보이지 않아요.”
“후우…… 때론 시간이 모든 것을 치료해 주기도 하지. 물론,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시간은 붕대 같은 거야. 상처가 낫는 동안 병균이 옮지 않게 해 주지. 그런데 이미 병균이 들어가 있으면 말짱 꽝 아니겠어?”
이곳 아룬비다의 주민들은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알기에 보듬으면서도,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한때는 모두가 상처를 입은 짐승이었고, 자기 보호를 위한 이빨을 들이밀었을 것이다.
과거, 아나스타샤가 오기 전까지의 아룬비다가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상처를 보듬고 이끌어 줄 리더가 나타나자 그들은 서로가 같은 처지임을 깨달았고, 무리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을 배제하며 자신들만의 세상을 구축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지.’
짐승은 짐승일 뿐.
그들이 다시금 인간들의 세상에 발을 디디기 위한 여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던 것은.
클레이튼 R 셰인.
그 사람의 등장으로 인해 상처 받은 짐승들은 보다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타나 불쑥 그 이름을 세간에 알리는 청년 마법사.
지금은 어째서인지 조용히 지내고 있었지만, 그가 보인 장거리 포탈 마법은 마법 학계에 대지진처럼 울려 퍼졌다.
“하지만, 결국 범죄자인 거잖아요?”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을 때, 그런 엘리엇을 일깨운 것은 아네이스의 그러한 질문이었다.
“범죄자라…….”
엘리엇도 저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현재 아룬비다에 거주 중인 대부분의 주민들은 제국에서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고 유배되어 온 이들이니까.
거기에, 엘리엇 스스로도 떳떳하진 못했다.
그와 그의 주군인 엘라인 또한 범죄로 점철된 지하도시에서 수십 년을 버티고 살아왔다.
오히려 아룬비다의 주민들이 깨끗하면 깨끗했지, 자신이 그들을 욕할 처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변호 정도는 해 볼까.’
그런 생각에 엘리엇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지먼트 기사단. 불의를 단죄하고, 정의를 숭배하는 제국의 검. 그렇지?”
“……? 네. 맞아요.”
뜬금없는 기사단의 이름에 아네이스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엘리엇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정의는 누가 단언해 주지?”
“……?”
“불의란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인가.”
“…….”
“애초에 법이라는 것은 완벽한가?”
그 질문에 아네이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닌 것 같아요.”
“그래. 하물며 세상에 완벽이라는 것은 없다. 변화만이 존재할 뿐이지.”
완벽에 가깝다는 인간, 황제가 있는 황실을 경험해 본 엘리엇은 단언할 수 있었다.
하물며 저 황제조차 완벽하지 않은 마당에, 고작 인간이 만든 법이 완벽할 리가 없다.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데, 법이라는 녀석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격해지는 것을 막아 주는 용도이지, 세상을 정의할 수 있는 절대불변의 진리는 아니야. 이곳의 주민들은 그런 법으로 보호받지 못한 이들이다.”
“보호받지 못한 이들…….”
“물론, 그렇다 해서 저들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 다만 진정 그들에게 죄‘만’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 없을 뿐.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도 존재하는 거거든.”
어쩔 수 없는 일.
길게 말했지만 단순하게 말하면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다만 그 어쩔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 일정 수준의 선을 넘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따라 잘 처신해야겠지.”
“선이요.”
“그래. 선.”
과연 그 선이라는 게 어떤 걸까.
아네이스가 고민하자, 엘리엇이 씩 웃었다.
“네가 헷갈리면 그 헷갈리는 기준으로 선을 둬라. 그러다 차츰 조율해 나가는 거지. 물론, 너는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신중을 기해야겠지만. 어쩌겠어. 세상이라는 게 결국 경험하고 배워 나가며 깨우치는 것을. 어수룩할 때 한 실수는 나중에 성장한 뒤에 갚는다고 생각해라. 그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니까.”
마지막 말은 잘 모르겠지만, 아네이스는 어째서인지 그 선이라는 게 명확해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정답이었네요.”
“정답?”
아네이스의 혼잣말에 엘리엇이 되묻자, 표정이 없던 그녀의 얼굴에 드물게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곳에 오라고 조언해 준 사람이 있었어요.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누군진 모르겠지만 나름 현명한 사람이로군.”
“전 약혼자예요.”
“……쿨럭!”
뜬금없는 발언에 엘리엇은 그만 독한 시가 연기를 삼키고는 기침을 내뱉었다.
‘전 약혼자를 보고 저런 미소를 짓다니…….’
모르긴 모르지만 나쁘게 헤어지진 않은 모양이다.
“아무튼, 날이 춥다. 이만 들어가지.”
“네.”
별거 아니라는 듯 테라스에서 발을 땐 엘리엇은 상상도 못했으리라.
오늘 나눈 이 대화가, 아네이스에게 무슨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 * *
기사의 나라, 베첼리 왕국은 한참 외부인을 받아들이며 뜨거운 열기로 휩싸여 있었다.
베첼리 왕국의 국민들은 강함에 열광하고, 또 숭배한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국가적인 행사, ‘기사의 선언’은 그야말로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뜨거운 열기가, 거대한 콜로세움을 가득 매웠다.
“우와아아아악!!”
“미쳤어, 미쳤다고!”
“저게 이제 겨우 성인식을 마친 애송이라고? 이런 미친!”
콜로세움에 모인 전사들의 전투에 시민들은 불타올랐고, 새로운 강자의 등장은 그들의 심장을 터질 듯 움직였다.
그리고 그런 콜로세움의 한가운데.
시민들의 광적인 반응만큼이나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금발의 청년, 클레이튼 L 클라인은 방금 막 자신이 쓰러뜨린 중년의 기사를 내려다봤다.
‘강하다.’
기사의 선언에서는 여러 규칙이 정해져 있다.
모든 참가자의 장비는 왕국에서 지급하는 상태로 전투를 치러야 하며, 마력은 신체를 강화하는 수준에서만 머물 것.
폭력적이라 해도 좋을 수준의 마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는 클라인의 전투 스타일이 시작부터 막혔지만, 반대로 넘치는 마력을 통해 체력을 얻은 클라인은 지구력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검술의 실력만 보더라도 아카데미에서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 할 정도였기에 클라인을 잘 아는 이들은 클라인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클라인은 한 달 동안 이어지던 예선전에서 별 탈 없이 본선에 진출했지만, 언제까지고 그 기세가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몸이 무거워.’
과연 기사의 나라답다고 해야 할까.
뛰어난 지구력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클라인이었지만, 본선에 올라온 기사들은 하나하나 수준급의 검술을 갖췄다.
‘이번 상대도 처음 겪는 전투방식이었어.’
뿐만 아니라 무기의 다양성, 전투의 습관, 개인의 성향 모두가 다른 탓에, 모두에게 똑같은 가르침을 내리는 아카데미에서는 겪어 볼 수 없던 전투였다.
이에 아카데미의 수석교수 벤자민은 이러한 조언을 해 줬다.
“연합국의 아카데미는 던전을 클리어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때문에 모두가 비슷한 전투 방식을 가지고 있지. 그래야만 위급한 상황에 효율적인 지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 베첼리 왕국은 다르다.
오로지 사람과 사람의 전투에 극한으로 단련된 기사들이었고, 그들은 제각기 다른 성향으로 자신들의 전투 스타일을 만들었다.
“후우…….”
슬슬 가을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서늘한 바람이 클라인의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비가 오듯 땀을 흘리던 클라인은 몸을 일으켜 정면을 주시했다.
콜로세움이 떠나갈 듯 함성을 지르는 관객들의 모습도 좋았고, 이 힘든 전투를 이겨 냈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그 무엇보다 클라인을 기쁘게 만드는 것은 스스로가 점차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정체된 성장의 나날.
분명 자신의 한계 이상이 존재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인은 그 이상으로 향하지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더 이상 이성적인 영역에서 성장할 게 없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의 교육 수준으로는 이미 그 한계를 진작에 마주했을 테지.”
그런 벤자민의 조언에 클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의 교육이 뒤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결국 아카데미의 목적은 뛰어난 단 하나의 인재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닌, 최대한 많은 이들을 품고 모두가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클라인이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던 이유는,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겪은 극한의 상황들과 셰인이 넘겨준 던전 리스트, 그리고 아룬비다의 전쟁과 이종족 테러 사태를 진압하는 과정을 겪었던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경험들조차 클라인은 금세 소화했고, 또다시 한계에 봉착했다.
문제는 클라인이 여기서 만족할 수 없었던 것에 있었다.
‘분명 그때 그 존재는…….’
이종족 테러 사태의 막바지.
비늘로 몸을 감싼 채, 오만하게 내려다 보고 있던 정체불명의 존재.
그가 다루던 끔찍하리만치 파괴적인 마력은 지금 생각해도 두려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썼던 마법은…… 나 혼자 막을 수 없었다.’
지하에 있었을 당시 파괴적인 마력이 일어남과 동시에 발현된 마법.
물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으나, 만약 그때 클라인이 조금이라도 늦게 반응했더라면 뒤에 있던 동료들이 크게 다치거나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렇게 두려운 마법을 다루던 존재마저 죽인, 정체불명의 가면을 쓴 자.
스스로를 무명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그는 클라인조차 흔들릴 정도의 존재감을 뿜어내며 모습을 감췄다.
그 풍경은 클라인의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았고, 매일 밤 두 눈을 감는 순간에도 손끝이 흔들리는 듯했다.
피할 수 없는 전투가 다가오는 것만 같았기에.
클라인은 전투로 인한 피해로 쌓인 팔을 움직에 검을 갈무리하고 대기실로 돌아갔다.
“후우…….”
지속된 전투로 인해 정신이 피곤함을 호소했지만, 그럼에도 클라인은 침상에 앉아 명상에 빠졌다.
오늘 있던 전투를 복기하고, 내일 만날 대전상대에 대해 떠올린다.
끊임없는 복기만이 클라인의 답답함을 잠시나마 풀어 줄 탈출구가 되어 주었다.
* * *
사막의 건조한 공기가 셰인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음욕의 루시드 렘이 셰인의 꿈에 침투했던 것도 어느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른 무렵.
아직까지 무명은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 여자가 숨기고 있군.’
만약 셰인이 이곳에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이미 무명에서 어떤 움직임이 보였어야 정상이다.
예전과 다르게 이쪽에서 또 다른 성녀의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탓에 대놓고 전쟁을 하진 못할 테지만, 그 외에 방법은 찾아보면 분명 있을 테니.
하지만 그럼에도 여태까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 루시드 렘이 그 사실을 조직에게 알리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셰인도 알지 못했다.
애초에 관심도 없었고.
다만 여전히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명에서 조용하다는 것은, 그만큼 놈들도 숨겨 둔 검을 갈고 있다는 의미였으니.
어떤 방향이든 간에 나카르 사막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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