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4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49화
149화 성전 (1)
“천만이라…… 그만한 숫자가 나온 이유는?”
경악에 빠진 파리마슈를 뒤로하고 라비아타가 묻자, 셰인이 답했다.
“어제 음욕의 군단장이 남기고 갔던 말을 기억하십니까?”
“합일이라는 거?”
“예. 그 여자가 말한 합일은 나카르 사막의 통합을 뜻합니다.”
“통합이라 하심은…….”
그 말을 들은 파리마슈는 여태까지 있던 일들을 떠올리더니, 설마 하는 표정이 되었다.
“수인족과 악령의 통합. 즉, 모든 수인족의 악령화를 뜻합니다. 그렇다면 천만이라는 숫자도 무리는 아니지요.”
여태까지 죽어 사막의 악령이 된 이들의 수와, 현재 살아남은 수인족의 수를 합하면 얼추 천만에 가까운 숫자가 된다.
이는 전생에 셰인이 직접 확인했던 숫자이니 틀림없다.
한편 자신의 불안한 예측이 맞아 떨어지자, 파리마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게 정녕 가능한 일입니까?”
“음욕의 군단장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꿈을 통한 현혹뿐만이 아니오. 그 꿈을 통해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파악한다는 것도 그 여자가 가진 능력 중 하나지. 그녀는 분명 오래전부터 악령을 꿈으로 다루며, 그들을 이루고 있는 근간을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오.”
전생에는 그 능력이 혈마법사인 고든과 합쳐져 엄청난 시너지를 보였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기에, 완전성은 뒤떨어지겠지만…… 그렇다고 천만이라는 숫자의 악령이 쉬운 상대는 아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비는 갖춰 뒀소.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 결국 사막에 피가 흐르는 결과는 피할 수 없을 터.”
“……그래서 수원석을 그리 쉽게 넘기셨던 것이었군요.”
앞서 셰인에게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던 파리마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은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럼 중요한 건 시간인데…… 넌 어떨 것 같아?”
다만, 셰인이 짜 둔 계획대로 흘러가려면 시간이 핵심이었다.
라비아타가 그에 관해 묻자, 셰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길어 봐야 한 달입니다. 그것도 이쪽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음욕의 군단장이 언제 마음먹느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그렇단 말이지…….”
그러면서 라비아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도 바쁘게 움직여야겠네.”
그 말을 끝으로 라비아타는 셰인이 준 보석을 들고 밖으로 나갔고, 셰인 역시 파리마슈에게 남는 시간 동안 반 성녀파 부족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두라는 말을 남기며 자리를 비웠다.
제때 시간을 맞추려면 이제부터 셰인도 부지런히 마법을 연구해야만 했다.
* * *
“크큭…… 그러게 처음부터 힘으로 밀어붙였으면 됐던 일 아닌가. 뭐 하러 일을 복잡하게 진행하지?”
무명의 사막 지부.
스킨헤드의 남자가 시가를 문 채 하는 그 말에 렘이 눈살을 찌푸렸다.
“한심한 소리 하지 마세요. 용의 기운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굳이 거기에 목맬 필요가 있나? 그래 봐야 과거의 잔재. 처음부터 강하게 밀고 나갔으면 됐잖아.”
남자, 분노의 군단장 블레이크가 하는 말은 언뜻 들어 보면 맞는 말처럼 다가왔지만, 렘은 그 말을 들어 볼 필요도 없다는 듯 받아쳤다.
“완벽한 합일을 위한 준비 과정이에요. 그분의 대업을 그런 무식한 소리로 단정 짓지 마세요.”
“거참. 그래 봐야 악령들을 더 잘 통솔하겠다는 거 아닌가? 그걸 위해서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거고. 어차피 이젠 모두 말아먹었잖아. 용의 후예가 나타난 이상, 시간은 저쪽의 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태까지의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막 부족의 절반 이상을 이쪽으로 끌어들였으니까요.”
“하, 그렇겠지. 그래 봐야 전부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놈들뿐이지만. 강한 놈들은 신앙심마저 강하더군.”
블레이크의 말이 하나하나 비수처럼 렘의 가슴에 박히는 듯했다.
그의 말처럼, 사막 부족들이 가진 신앙심은 깊었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제대로 된 증거가 없는 성녀는 거들떠도 보지 않을 정도로.
특히 힘이 있는 부족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했는데, 어쩌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에 좀 더 신중하게 움직였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죠.”
“흥. 그나마 목에 힘 준 것들은 토끼가 이쪽으로 넘어오자마자 타조마냥 대가리를 모래 속에 숨겨 버렸지.”
확실히, 묘족과 견족은 명백히 이쪽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거기에 한 부족이 이쪽으로 넘어왔다 한들, 그 부족의 모든 부족민들이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최근에는 마족이 서서히 이쪽으로 넘어오려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으나, 그마저도 새로운 성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주춤하고 있었다.
물론 이대로 시간이 더 허락됐다면 남은 부족들을 흡수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때문에 렘도 좀 더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사실 블레이크의 말처럼 시간은 더 이상 이쪽 편이 아니었다.
“듣자 하니 그 용의 후예는 마법에 대한 조예가 깊다더군. 거기에 악령의 기운까지 흡수한다고 했지? 자칫 잘못했다간 그년이 신전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나카르 사막을 집어삼키는 건 무리라고 봐야겠지.”
“후우…….”
분하지만 당장 블레이크의 말을 받아칠 말이 떠오르지 않은 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제 결단을 내릴 시간이 왔습니다. 사막의 합일을 이루도록 하지요.”
“푸흐흐흐. 드디어 일이 좀 진행되겠군. 안 그래도 이쪽은 숨어만 지내느라 답답했다고. 퀴퀴한 지하에 숨어만 있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이었는지 넌 모를 거다.”
“…….”
“그래서, 준비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
“보름. 길어 봐야 거기서 5일 정도 추가되겠군요.”
“그렇단 말이지.”
“미리 말해 두겠는데, 섣불리 움직이지 마세요. 부족들을 한 곳에 모으는데 방해됩니다.”
“뭐? 그럼 여기서 더 참으라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어차피 올 놈들은 오고 안 올 놈들은 안 올 텐데.”
“그들의 이념을 하나로 모아 꿈으로 합일을 이뤄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완성도가 높아질 테니까요.”
“쯧, 그놈의 완성도. 그래 봐야 인간들의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 그렇게 힘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나?”
그 말에 렘이 눈을 가늘게 뜨며 블레이크를 노려봤다.
“인간들을 무시하고 있군요.”
“그야 그렇지. 주먹 한 방에 핏물로 사라지는 버러지들을 왜 굳이 신경 쓰나?”
“그 버러지들 사이에서 신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지금에 이르러서 인간족은 신의 축복을 받고 있는 종족입니다.”
“이쪽도 그분이 계시다고.”
“……그분의 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세계의 의지를 담당하고 있는 신을 얕보지 마세요. 어쩌면 이미 신의 개입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 어련히 그러시겠어. 그래서, 계속 숨어 있으라는 말인가?”
“하고 싶으시면 하면 됩니다. 오히려 그래 주면 고맙겠군요. 우리 측에서 당신을 외부 세력으로 단정하고 수인족들의 단합을 노려 볼 수 있을 테니 말이에요.”
“나 참. 뺨은 밖에서 맞고 여기서 화풀이를 하는군. 알겠어, 알겠다고. 준비 기간 동안 얌전히 있어 주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난 블레이크가 밖으로 나가고, 홀로 남은 렘은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노려봤다.
“진정한 합일이 아닌 것은 아쉽지만, 이건 나중에 해결해야겠군요.”
* * *
“휘유. 오늘은 몇 마리나 잡은 거지?”
“기운이 제법 모였군요.”
셰인은 라비아타가 들고 온 보석을 확인하며 그리 말했다.
처음과 다르게 푸른빛이 더욱 진해진 보석은,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 일정 간격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한참 멀지 않았어?”
“아무래도 열댓 마리씩 사냥해서 축적시키기에는 부족하지요.”
“그렇단 말이지…….”
그러자 라비아타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을 때, 둘이 있던 방으로 누군가 황급히 들어왔다.
“서, 성녀님!”
“저 성녀 타령은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네. 무슨 일이야?”
둘이 머문 방에 찾아온 사람은 파리마슈였다.
얼마나 급하게 뛰어 온 건지, 나름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파리마슈가 숨이 턱까지 올라온 채 서둘러 입을 열었다.
“후우! 무명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보고된 내용이 있소?”
“서족 측에서 보내 온 보고입니다. 서쪽에서부터 악령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보고의 내용인즉슨 서족의 본거지 주변으로부터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 서식지를 옮기는 현상이 관측됐다고 한다.
그에 의구심을 느낀 서족 측에서 정찰을 시도했고, 그 결과 수많은 발자국들을 찾아냈다.
“서쪽이면…… 그리 먼 거리는 아니로군.”
악령은 해가 뜬 상태에서는 움직이지 못하기에 이동 속도가 그리 빠르지는 않았다.
나카르 사막의 특성상 밤에는 모래 폭풍도 자주 불기 때문에 그들과의 격전이 일어나려면 아직 제법 시간이 남아 있을 터.
그때, 라비아타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거, 드디어 한 번 나설 차례가 된 건가?”
“나쁘지 않은 기회입니다. 이참에 성녀로서의 이미지도 확고히 다지기 좋을 것 같군요.”
“그건 별로 생각 안하고 있었는데…… 뭐, 아무튼 날뛸 때가 되긴 했지.”
“혹시 모르니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생각해 보니 또 다른 군단장이 있다고 했지?”
“예. 사막 부족들의 특성상 쉽게 모습을 드러내진 못 하겠지만, 호전적인 놈의 성격상 참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겠는데…….”
“세상에. 성녀님께서 직접 전투에 참여하시는 겁니까? 크윽…….”
파리마슈는 어떻게든 라비아타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한 부족의 부족장이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특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럼 어서 움직여 보자고.”
“예.”
* * *
“찍찍…….”
“저게 전부 악령이라고?”
“용이시여…….”
서족의 정찰대, 레미는 본능적으로 등에 맨 삼지창에 손을 가져다 댔다.
방금 해 먹은 요리가 금방이라도 다시 올라올 것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일까.
평소 어둡기 그지없는 사막의 밤하늘에 두 개의 달이 떠올라 구름 한 점 없이 지상을 비춘다.
그런 모래사막 위로는 지옥에서 막 올라온 듯, 붉은 안광을 빛내는 존재들이 긴 행렬을 이어 걷고 있었다.
“젠장. 이대로 가면 늦어도 이틀 안에 우리 본거지로 찾아올 거야.”
“찍찍…… 다른 부족의 지원을 기다리기엔 너무 짧은데.”
“시간을 끌 방법이 없나?”
이를 확인한 서족 삼총사는 긴 악령들의 행렬을 지켜보다가 이내 충격에서 빠져나와 현실적인 판단을 내렸다.
“일단 보고부터 하러 가자. 서둘러야 돼. 만약 후퇴 명령이 내려진다면 지금 움직여도 늦을 수 있어.”
“알겠어, 대장.”
“좋아, 그럼 이제…… 흡?!”
그렇게 판단을 내리고 움직이려던 찰나, 레미는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곧장 반응해 삼지창을 내질렀다.
방금까지 수만의 악령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삼지창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기에 가능한 반응 속도였다.
“어?!”
그런 레미의 삼지창이 찌른 대상은, 또 다른 악령 무리였다.
언제 뒤로 온 걸까.
뒤늦게 호응한 두 명의 서족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어 악령을 상대했다.
“젠장, 들켰어! 이대로 흩어진다! 내가 놈들의 시선을 끌 테니, 너희 둘은 흩어져서 부족에 보고해!”
“큭……!”
“꼭 살아서 돌아와!”
두 팀원은 대장을 두고 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지만, 여기서 자신들이 전멸한다면 지금 이 소식이 늦어지는 수가 있었다.
“와라!”
다행히 뒤에서 나타난 악령의 무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방금 레미와 동료들이 처리한 뒤로 남은 숫자도 고작 8마리.
이 정도면 레미 혼자 어느 정도 시간을 끌며 상대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악령들은 다른 두 서족이 달아다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하늘 높이 들며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아아아아아아아――!
그우워어어어――!
그 모습에 소름이 끼친 레미는 삼지창을 꼬나쥐고 괴성을 지르느라 정신이 팔린 놈들의 머리를 노리며 내질렀다.
그 짧은 사이 두 마리를 더 정리했으나.
―――――!!
지옥의 망자들이 내뱉는 소리가 이러할까.
혹은 용이 분노하신 소리가 이러할까.
앞서 괴성을 지른 악령들과 공명하듯, 뒤에 있던 수만의 악령들이 일제히 괴성을 내지르자 레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다.
저 많은 수의 악령들이, 레미를 인식한 것이다.
“용께서 보살펴 주시기를…….”
어느새 저 멀리 달려가는 동료들을 보며, 레미가 자신의 역할을 다짐하던 그 순간.
“……?!”
어둡던 밤하늘이 밝혀짐과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때, 레미는 일전 오크들의 본거지까지 다녀온 수송대의 동료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진짜 밤하늘에 태양이 떴다니까!! 태양의 성녀님께서 태양을 만드셨다고!]당시에는 그저 다른 무언가를 보고 헷갈린 게 아닌가 싶었으나.
레미는 당시 그리 생각했던 자신을 크게 꾸짖을 수밖에 없었다.
“성녀님……?”
밤하늘에 떠오른 태양이 내려앉기 시작하고, 허공에 타오르듯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여인이 보였으니.
이를 보고 어찌 성녀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하하하하핫―! 다 뒈져 버려라!!”
……조금, 입이 험한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