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5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53화
153화 성전 (5)
서족의 정찰대, 레미가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는 순전히 자신의 동료 덕분이었다.
“대장! 이대로 가면 헛죽음이야!”
“이대로 우리가 간다고 뭘 할 수 있는데?! 이 사실을 당장 다른 부족에게 알려야 해!”
“이런…… 젠장할!!”
두 동료의 말대로.
불타오르는 부족의 임시 캠프를 바라보며, 레미는 피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서 보이는 임시 캠프는 그야말로 학살의 현장이었으니.
여기서 정찰대인 레미와 그의 동료들이 저기에 간다고 해서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자신들이 간다고 한들, 무수히 죽어 나가는 동족들과 같은 처지가 될 뿐.
동료들의 말처럼, 다른 부족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이후 상황에 대한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이대로 도망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고통받는 동족들에게 등을 돌려야 한다는 그 현실이 끝내 레미의 발길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을 깨달은 레미는 결국 등을 돌렸다.
“그래…… 이 사실을, 연합 부족들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그래야만 복수를 할 수 있어……!”
뒤에서 들려오는 동족의 비명 소리가 유난히도 잘 들리던 그날.
레미는 부드러운 모래가 마치 가시밭길처럼 느껴지는 것을 참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 * *
“분노의 군단이로군.”
“분노의 군단이라면…….”
파리마슈의 물음에 셰인이 지도를 펼치며 상황을 설명했다.
“서족을 기습한 무리의 정체는 무명의 제4군단인 분노의 군단이오. 바로 오늘 새벽, 그들의 군단장과 성녀께서 맞붙으셨소.”
“뭣이라!!”
당장 서족이 하루아침에 멸족당했다는 사실도 황당한 마당에, 용이 남긴 마지막 후손까지 노렸다는 소식에 파리마슈는 의자를 넘기며 벌떡 일어섰다.
“어, 어떻게 됐습니까?”
“가짜 성녀의 등장으로 인해 마무리는 짓지 못했지만, 지금쯤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있을 거요. 당분간 운신이 불가능하다는 의미지.”
“……후우. 다행입니다.”
한시름 놓았다는 듯 의자를 일으켜 세운 파리마슈는 셰인이 펼친 지도의 지역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족에서 온 생존자에 의하면, 적들은 고작 1만 정도의 숫자였다고 합니다. 그것만으로, 수십 배가 넘는 서족을 하루아침에 멸망시킨 것이지요.”
물론 서족에서도 상당수 도주에 성공한 덕에 아예 멸족을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 수가 몇만이 채 되지 않았고 그들 대다수는 전투를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상 전력에 포함되는 인원들은 모두 사망했다고 봐야 했다.
“그들이 그렇게나 강한 겁니까?”
“메자이아 대수림이라는 엘프들의 주거지가 있소. 그곳엔 나와 성녀님이 힘을 합쳐 죽인 고든이라는 혈마법사가 있었는데, 바로 그놈이 남긴 작품이오.”
“고든? 혈마법사?”
둘 다 처음 들어 보는 파리마슈에게 셰인은 가볍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굳이 말하자면 악령과 비슷한 죽은 자들을 다루거나 피를 매개로 마법을 부리는 자들을 가리켜 하는 말이오. 또, 그는 키메라 연구나 육체 개조 등의 분야에서도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
“육체를 개조해서 만든 병력이라니…….”
따지고 보면 분노의 군단은 과거 아룬비다에서 혈마법으로 신체를 강화하던 오크들의 완성형이라고 봐야 했다.
‘하나하나가 마스터에 가까운 4품의 엑스퍼트. 혹은 3품의 마스터 실력을 가진 놈들이었지.’
전원이 그만한 실력을 지닌 전력은 인간들의 세상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무력 집단이다.
전생에도 분노의 군단은 공포의 상징이었고, 서족의 멸망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강한 병력이 있었다면…… 왜 여태 움직이지 않았던 겁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놈들의 무력도 공짜는 아니기 때문이오.”
“……?”
“놈들은 힘을 쓸 때마다 시체를 포식해야 하오. 하지만 이 사막은…….”
“……시체가 남지 않지요.”
죽은 즉시 악령이 되는 사막 부족들의 특성상 분노의 군단은 100퍼센트의 전력을 쓰기가 힘들다.
“몬스터나 가축을 포식하는 것으로도 힘을 회복할 수는 있지만…… 아무래도 지성체를 상대할 때하고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소.”
그 외에도 이전까지 무명의 목표는 사막 부족의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악령화였기에 그 방법이 마련될 때까지 굳이 사막 부족들의 경계심을 살 이유가 없었다.
‘시체가 남는 오크를 노리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겠지.’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자칫 시간을 더 끌다간 라비아타에 의해 그 기회조차 날아가게 생긴 음욕의 군단장은 이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막의 부족들을 악령화시킬 생각일 터.
“저쪽에서 원한다니 우리도 거절할 필요가 없겠지. 현재 모인 병력은 어떻게 되고 있소?”
“견족은 합류를 마쳤고, 차례대로 남은 부족들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서족의 사태가 그쪽에도 전해진 것인지 보다 빠르게 모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악령의 진군 속도를 생각하면 연합 진영까지 도달하려면 길어 봐야 나흘 정도로군. 전장의 배치는 어떻게 해 둔 상황이오?”
“아무래도 각 부족별로 나눌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악령 군단의 존재로 인해 다급히 힘을 합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사막 부족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기로 유명하지 않나.
괜히 붙여 뒀다가 불필요한 분쟁이 생기는 것보다는 각 부족의 스타일에 맞게 운영하는 게 맞았다.
그렇게 둘은 늦은 밤까지 계속해서 이후 일어날 전쟁과 관련된 논의를 이어 나갔다.
* * *
무력적인 측면에서 일가견이 있는 다른 부족들과 다르게 토족은 전투 능력이 형편없는 수준이었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상대법이 있었다.
첫째로는 공감 능력을 통한 테이밍 능력으로 다양한 동물이나 몬스터를 기르고 전투에 서포팅을 도맡았으며, 남은 토족들은 뛰어난 기동성을 살린 정찰병으로 운영됐다.
한편 묘족과 견족은 중앙에서 악령들과의 전투를 도맡았고, 무력과 기동성을 모두 갖춘 마족과 우족은 측면에서 기동타격대로 활용되었다.
“……이제 해가 지겠군.”
서족의 전멸사태 이후로 나흘 차.
지면에 아지랑이를 이게 만들던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전장에 선 수인족들의 얼굴이 점차 굳어 갔다.
주홍빛을 머금은 햇빛은 점차 보랏빛으로 바뀌어 가고, 이윽고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그 모습을 감추었을 때.
“……온다.”
“악령이다!!”
사막의 바람이 불어오며 모래 안에 숨어 있던 악령들의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아아아…….”
“크악, 크아악!”
서족의 전멸 이후, 본래 수만에 이르던 악령의 수는 어느새 십만이라는 숫자를 가뿐히 넘긴 상태가 되었다.
“후우…….”
“오늘 어디 한번 죽어 보자고…….”
토족이 공수해 온 가축의 가죽으로 전신을 감싼 최전방의 전사들은 죽음을 각오한 표정으로 그런 악령들을 바라봤다.
부족 연합이 악령들을 발견했듯, 악령들 또한 그런 부족 연합을 마주하곤 생자를 향한 본능적인 살기를 뿜어내며 땅을 박차 달려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맞붙기 직전, 앞서 토족이 준비해 둔 나카르 사막의 하늘을 지배하는 거대한 박쥐 형태의 몬스터, 샌드 배트가 밤하늘을 가르며 악령의 위로 날아들었다.
“수원석을 발동시켜라!”
그에 따라 파리마슈가 명령을 내리자 묘족의 주술사들이 일제히 마력을 퍼뜨리며 주술을 외기 시작하자, 샌드 배트의 복부에 달려 있던 주머니에서부터 푸른빛이 흘러나왔다.
주머니 안에 들어 있던 수원석이 그런 주술사들의 마력에 반응해 물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밤하늘의 바람을 타고 수원석이 생성한 물이 악령 군단 위로 떨어지자,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크아아아아―!”
“끼이, 끼이이이!!”
“우워어어어……!”
기본적으로 물은 악령을 정화하는 힘을 가졌지만, 물이 가진 이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평소처럼 보다 날렵하게 움직이던 악령들의 몸이 눈에 띠게 굼떠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악령들의 약화에도 성능을 보였는데, 이는 부족들이 과거 악령 군단과 전쟁을 할 때면 날씨를 예측해 사용하던 수법을 이용한 것이었다.
“효과가 있다! 전군, 전진!”
“와아아아아악!!”
“가서 죽여 버려!”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어 주마!!”
압도적인 적의 숫자에 잠시 주춤했던 수인족들이 사기를 되찾고 온갖 함성과 함께 악령들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앞에 있던 묘족과 수인이 각자의 발톱을 꺼내고 악령과 부딪혔다.
견족은 목(木)의 기운이 담긴 손톱으로 적을 찢어발겼고, 묘족 또한 그에 지지 않고 주홍빛으로 물든 손톱으로 악령의 머리를 갈라 버렸다.
최전방에서 그렇게 악령들의 진격을 막는 사이, 우측과 좌측에서 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동성이 뛰어난 마족과 우족이 측면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기다란 창과 방패로 무장한 두 종족의 차징은 앞에 선 모든 것을 파괴할 기세로 나아갔다. 다리에 바람의 기운을 휘감은 마족은 약화된 악령들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방법이 없었다.
한편 마족이 모든 사막 부족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며 사방으로 퍼져 악령을 상대하는 반면, 우족은 한데 뭉쳐 움직였다.
흙의 기운을 받은 그들이 뭉치자,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이듯 모래가 울릴 정도로 묵직한 돌격을 선보였다.
전방과 양방향을 막고, 랜스 차징을 통해 악령의 진형을 분쇄시켰다.
그렇게 악령들의 진군에 차질이 생기게 되자, 전방에서 조금의 여유가 생겨났다.
그러는 사이 부상자는 후방으로 빠지고 다시금 병력이 보충됐는데, 후방으로 빠진 이들의 표정에는 의아함으로 가득했다.
“어째서……?”
“아, 악령이 되지 않잖아!”
“기적, 기적이야!”
악령의 공격이 노출된 이들은 1분이 채 되지 않아 악령화가 되어야 했으나, 그들의 예상을 깨고 악령으로부터 입은 상처는 악화되지 않았다.
“태양의 성녀님께서 내리신 축복이다!”
“용의 후손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내려 주셨다!”
그러자 이에 관한 이야기를 앞서 파리마슈에게 들었던 묘족들이 소리쳤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수원석! 돈족이 사막 밖에 있던 신전에서 가지고 온 수원석이 악령을 정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던 거야!”
“맞아. 나도 들었어! 아아, 위대한 용이시여!”
같이 부상을 입은 견족들은 그 말을 쉽사리 믿지 못했으나, 어찌 됐든 악령들의 공격에도 악령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수인족들의 사기를 더없이 끌어올렸다.
이제 3번째 샌드 배트의 행렬이 수원석을 통해 비를 내리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약화되어 가는 악령들은 수인족의 승기를 굳히게 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장의 흐름은 언제나 예측불허의 진리를 가지고 있다.
스스스스스스스――
“어? 이게 무슨 소리지?”
후방에서 보급품을 옮기던 토족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어.”
“잠깐, 이건……!”
“설마!”
땅 밑으로 울리는 진동과 소리에 집중하던 토족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더니, 이내 몇몇 토족이 정신을 차려 소리쳤다.
“메가 샌드웜이다!!”
“한두 마리가 아니야!”
“전방에 메가 샌드웜입니다! 그 숫자가……!!”
그들의 목소리가 각 부족의 족장들에게 전해지기도 전에.
콰아아아아아앙―!
퍼어엉! 펑! 퍼엉!
“크아아악!”
“사, 살려 줘!”
“메가 샌드웜?! 이 새끼들이 왜 하필 이때!!”
한참 승기를 잡고 있던 상황에 나타난 메가 샌드웜.
전장의 좌우로 나타난 메가 샌드웜이 마족과 우족의 돌진을 멈춰 세웠고, 전방에는 무려 세 마리라는 메가 샌드웜이 기습적인 공격을 해 왔다.
첫 등장만으로 사상자가 수천 명이 발생하자, 고조되던 사기가 다시금 내려앉았다.
고작 한 마리만으로도 온갖 고난을 겪어야 하는 메가 샌드웜이 다섯이나 등장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부족연합의 절망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이언트 전갈?!”
“라르텔! 자갈 사막에나 사는 놈들이 왜 여기에!”
“몬스터 무리다! 몬스터 무리가 나타났다!!”
마치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몬스터 군단이, 그 수를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몰려오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