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5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54화
154화 성전 (6)
어둠 속에서 보랏빛으로 물든 안광이 해일처럼 몰려들었다.
수십만이라는 숫자의 몬스터들은 그야말로 재앙이 들이닥친 풍경처럼 보였다.
“몬스터들이 몰려온다!!”
“전열을 지켜라! 여기서 물러나선 안 돼!!”
난데없는 몬스터 군단의 등장에 부족 연합의 사기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각 부족의 지휘관들이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사기를 다잡았다.
“여기서 우리가 물러난다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되겠나!”
“용께서 우리를 보살피고 계신다. 우리에게 패배란 없다!”
하지만 그런 지휘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사들의 사기는 좀처럼 나아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한 번 전열이 무너지면서 지휘 체계가 흔들려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 그때.
“후아…… 길고 긴 핍박의 시간이었다.”
한참 피어를 발산하다 다시금 땅으로 숨어들려는 메가 샌드웜 앞으로 로브를 쓴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망할 입 때문에 얼마나 착취를 당했던가…… 드디어 그 울분을 풀 때가 왔어.”
로브의 두건을 벗어 모습을 드러낸 이의 정체는, 디라일라였다.
그간 고생이 많았던 것인지 핏발 선 눈으로 메가 샌드웜을 바라보는 디라일라는 세상을 원망하는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내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 같은 지렁이 놈들 때문에 그게 전부 무산으로 돌아간다는 게 말이나 돼?!”
양팔을 벌려 마력을 집중시키며, 동시에 대지의 원시 정령들과 교감을 이어 갔다.
그에 모래 속으로 숨어들려던 메가 샌드웜들은 어마어마한 마력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디라일라를 향해 일제히 포효를 내질렀다.
“뭘 꼬나봐, 이 지렁이 새끼들아!!”
마력이 집중된 양손을 합치고 그대로 모래를 내려치자, 디라일라의 마력이 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의 대지를 타고 드넓은 전장으로 퍼져 나갔다.
쿠오오오오오―?
하지만 기세 좋게 퍼져 나간 마력과 달리 별다른 변화가 찾아오지 않자, 메가 샌드웜들은 의아하다는 듯 몸을 꼬았다.
“으그그그극…….”
반면 디라일라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팽팽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넓은 전장을 품고 있는 대지의 정보가 일제히 디라일라의 머릿속으로 몰려 들어온다.
그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한다.
이윽고 대지가 갖춘 정보를 완벽하게 파악한 디라일라의 명령이 내려지자, 원시 정령들이 내뿜는 기세가 달라진다.
메가 샌드웜 또한 그러한 변화를 알아차렸다.
원시 정령은 이곳 사막에 살아가는 모든 몬스터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존재들이었으니.
언제나 자신들의 의지보다는 주어진 역할에만 최선을 다하던 원시 정령들의 변화는 몬스터들에게 익숙지 않은 것이었다.
쿠어어어어―!
본능적으로 그 변화가 자신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메가 샌드웜들이 일제히 움직이려던 찰나.
“늦었다, 이 지렁이 새끼들아!”
마법의 준비를 마친 디라일라는 파악해 둔 정보를 토대로 대지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제…… 1장 대지의 주인.”
거대한 육체를 지니고도 모래 속을 제 집처럼 쉽게 드나들던 메가 샌드웜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쿠어어―?
모래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단단한 무언가가 잡고 있는 것처럼, 평소라면 메가 샌드웜에게는 물처럼 가벼워야 할 모래가 무겁게 다가온다.
쿠우우어어어―!!
그에 녀석들이 더욱 격하게 몸부림을 치며 모래 사이로 파고들려 했지만, 여전히 대지는 요지부동.
일대의 원시 정령들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뭐지?”
“무슨 일이야?”
그러자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체감한 이들은 방금까지 메가 샌드웜에게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던 전방의 전사들이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메가 샌드웜이 이상 행동을 보이자, 그들은 이 일의 발단이 된 근원지로 향했다.
그곳에는 부족의 전사들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격렬한 마력의 파동을 일으키고 있는 디라일라가 모래를 짚은 채 메가 샌드웜을 노려보고 있었다.
디라일라가 뒤이어 주문을 외웠다.
“제1장 1절, 대지의 계절. 변형식 미스릴.”
미스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알려진 광물의 이름.
일전 클라인의 팀에서 디라일라와 같은 마법사 포지션을 잡고 있는 아르티아로부터 받은 광물 중 하나로, 워낙 희귀한 광물이었던 만큼 디라일라 또한 분석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던 광물이었다.
지금도 분석이 완벽하게 끝난 것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뛰어났다.
모래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놈들의 몸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쿠어어? 쿠어어어어!!
생전 겪어 본 적 없던 현상에 메가 샌드웜이 모래 밖으로 튀어나온 상체를 비틀며 거세게 저항했다.
놈들의 저항이 거세면 거셀수록 디라일라의 마력도 뭉텅이로 깎여 나갔지만, 여태까지 성장한 디라일라도 그 정도는 충분히―
“으아악! 안 되겠다! 이걸 또 처먹게 되네!”
―견디지 못하고 주머니에서 마석을 꺼내 입에 집어넣었다.
오기를 부리기엔 다섯 마리의 메가 샌드웜은 너무도 강력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메가 샌드웜을 타고 올라가는 모래의 양은 점차 늘어났고, 그럴수록 메가 샌드웜의 움직임도 점차 제한되어 갔다.
그렇게 디라일라가 메가 샌드웜을 붙잡고 있는 사이, 각 부족의 지휘자들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고 몰려오는 악령들을 상대했다.
한 번 무너졌던 전열이 다시금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메가 샌드웜의 피어에 추락했던 샌드 배트들도 점차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금 하늘로 날아올랐다.
“최대한 몬스터들의 진군을 저지해라!”
“움머어어어어―!!”
“돌겨어어억!!”
메가 샌드웜의 저지 이후 멈췄던 마족들은 악령들의 진형을 다시금 휘저었고, 우족은 강력한 돌진력으로 몬스터 군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가장 앞서 있던 대형 몬스터들을 상대로 시선을 끌며 버티기를 얼마.
그럼에도 수십만에 이르는 몬스터 군단의 진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음머어어어―!”
“무언가 이상하다!”
“왜 놈들이 측면으로……!”
“포위! 놈들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어!”
몬스터 군단이 양 옆으로 날개를 펼치듯 다가온다.
전대미문의 몬스터 군단의 등장에 놀랄 겨를도 없이, 놈들이 군사적인 움직임을 취하자 다시 한번 혼란이 찾아왔다.
이대로 몬스터들의 시선을 끌어 최대한 유인하겠다는 우족의 노림수가 틀어지자, 파리마슈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슬슬 그들을 불러야겠군.”
셰인이 주고 떠난 마도구 장치를 바라보며 파리마슈가 이를 가동시키자, 전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끝내 우족이 막지 못한 영역으로 몬스터 군단이 진격하려던 순간, 그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허공에 푸른빛이 점멸하더니, 어느 순간 몸집을 불려 거대한 포탈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우르부라크를 위하여!”
“전장이 우리를 부른다!”
“죽여라! 그리고 또 죽여라!!”
몬스터 군단의 머릿수와 결코 밀리지 않는, 수많은 오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발동됐군.”
파리마슈에게 넘겼던 마도구가 발동한 것을 확인한 셰인은 전장으로 향할 오크들을 떠올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몸이 근질근질했을 텐데, 이번 기회에 실력을 쌓겠어.”
현재 남아 있는 오크의 대부분은 전투 경험이 없는 오크들이었다.
몬스터를 상대하는 실력은 계속해서 늘려 나가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전장은 이번이 처음이리라.
그럼에도 셰인은 그에 관한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체계적인 교육에 더불어 마력을 깨우친 오크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쪽의 상황은 적당히 정리가 될 테고…… 남은 건 이쪽인가.”
현재 셰인은 전장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서 셰인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다면 보다 쉽게 전장에 승기를 가져다 줄 테지만, 그렇게 되면 이번 나카르 사막에서의 사건을 마무리하기가 애매해진다.
이후 음욕의 군단장이 만들어 둔 판에서는 그들이 직접 스스로 현실을 깨닫고 이겨 내는 수밖에 없었으니.
셰인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곤 그들이 현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밖에 없었다.
“흠…….”
그렇게 사막을 얼마나 걸었을까.
셰인은 저 멀리 보이는 막사를 발견하고는 서늘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정리할 건 제대로 하고 가야겠지.”
3품의 엑스퍼트든, 4품의 마스터든.
고든의 혈마법은 여전히 셰인에게 가장 상대하기 쉬운 적일 따름이었다.
* * *
푸른빛이 일정 주기로 점멸하는 보석을 바라보며, 라비아타는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단장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제임스 그 녀석이 지금 단장을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후, 글쎄. 그 녀석이라면 내 걱정보다는 이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고 돈부터 벌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라비아타의 말에 모험단의 회계 담당인 제임스라면 충분히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이그니스는 라비아타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강조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계속해서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는 생각을 해야 돼. 잊지 않았지?]“물론이지.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고.”
요 며칠 동안 사막의 악령들을 토벌하며 그들의 기운을 축적시킨 이 푸른 보석은, 라비아타의 선조인 용의 기운을 정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 정제된 용의 기운은 이제부터 성역의 중앙.
신전에 봉인된 타락한 용의 기운으로부터 라비아타를 지켜 줄 것이다.
“근데 지금은 그걸 걱정하고 있을 게 아냐. 이걸 쓰고도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문제지. 쯧…….”
잠시간의 고민 끝에 라비아타는 손에 들린 푸른 보석을 입안으로 삼켰다.
딱딱한 보석이기에 먹기 거북할 것 같았지만, 입안에 들어온 보석은 마치 구름처럼 녹아내리며 라비아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으윽…….”
낯설면서도 청명한 기운이 라비아타의 내부에서 휘몰아쳤다.
작지만 웅장하게 느껴지는 그 기운은 라비아타의 몸에 잠재된 화속성의 기운과 잠시 대치하더니 격렬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이, 망할 것들이……!”
라비아타의 재능인 화속성은 본래 타락한 용에 의해 생긴 재능이다.
거기에 청명한 용의 기운이 흘러가자 그에 대한 반발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셰인과 라비아타는 이미 이에 대한 대비를 갖춰 둔 상태였다.
그 방법으로는 무식하면서도 단순한 방법이었으니.
바로 방치였다.
“…….”
자리에 앉아 정좌 자세를 유지한 채, 신체 내부에서 날뛰는 두 기운의 기 싸움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그 와중에도 라비아타의 신체 이곳저곳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며 내부 기관을 망가뜨리고 있음에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지켜봤다.
그러면서 그녀는 셰인이 해 줬던 조언을 떠올렸다.
‘기운이라는 것은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신체에 기생하고 있는 상태라고 봐야 합니다.’
‘때문에 자신의 집에 다른 침입자가 나타나면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되지요.’
‘이는 라비아타 님이 용의 기운을 흡수했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용의 기운은 수속성이고, 라비아타 님의 기운은 화속성이니 말입니다.’
속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라비아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보통 그런 상태로 두면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그러는 사이 대상의 신체는 둘의 전투로 인해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죽겠지요.’
‘하지만 라비아타 님은 괜찮습니다.’
‘그 둘 모두, 본래 라비아타 님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하게 신용할 수 없는 말이었으나, 앞서 라비아타는 두 가지 속성이 공존할 수 있는 현상을 직접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바로 디라일라의 수원석이 그러한 개념이었다.
지속성과 수속성이 합쳐진 마법.
라비아타는 그런 디라일라의 마법을 보며 한 육체에 두 속성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결과는 둘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것뿐.
그렇다면 그 전투는 언제 끝나게 될까.
셰인의 답은 이러했다.
‘그 둘이 타협의 여지를 볼 수 있을 때까지입니다.’
그 말인즉슨.
라비아타의 몸이 죽기 직전이 되어, 두 속성이 위협을 느꼈을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본래라면 죽을 때까지 싸우게 될 녀석들이지만, 그 둘 모두 라비아타의 기운이었으니.
서로의 주인을 죽일 수 없기에, 놈들은 극적인 타협을 맺는 것이다.
비처럼 흘러내리는 땀을 느낄 새도 없이, 라비아타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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