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57)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57화
157화 성전 (9)
렘이 팔을 휘두르자, 거짓말처럼 풍경이 일변했다.
와아아아아아아-!
셰인과 렘은 어느새 거대한 원형 콜로세움 한가운데에 있었다.
방금까지도 하하호호 웃으며 축제를 즐기던 이들은 어디 가고, 거친 욕과 고함을 내지르는 이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평화롭기만 했던 축제의 장이 순식간에 광란의 현장으로 바뀌자, 셰인이 옅게 실소를 흘렸다.
“제법 연출에 흥미가 많은가 보군.”
“물론이죠. 분위기란 중요한 것이니까요.”
셰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분위기에 많은 영향을 받기는 하지.’
분위기가 컨디션에 영향을 줄 수는 있으나, 눈앞에 있는 음욕의 군단장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로 중요하다.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수인족들은 렘이 만들어 낸 환영이 아니다.
모두 과거에 죽어 용의 신전에 모여든 영혼들이다.
그들은 렘이 보여 주는 과거의 시간에 취했고, 그에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아직 완벽하게 장악하지는 못했군.”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렘이 아직 자신의 영역을 완벽하게 구축하지 못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셰인의 비틀린 웃음이 섞인 말에 렘은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돌리고는 이내 짧게 두 번의 박수를 쳤다.
그러자 반대편 입구로부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체구에, 검은빛 털로 온몸을 두른 사내의 모습은 마치 고릴라를 떠올리게 했다.
“후! 후! 후! 후!”
양손에 거대한 대검을 들고 서 있는 그를 보자마자 셰인의 눈이 꿈틀거렸다.
‘못해도 마스터 3품의 중간. 아니면 거의 끝자락이로군.’
앞서 셰인이 정리한 분노의 십인대와 비교해도 더 강해 보였다.
놈은 이쪽을 향해 투지를 숨기지 않았고, 그에 반응한 아르카네가 검으로 변형된 팔을 늘어뜨리며 앞으로 나섰다.
“감히……! 주인님. 제가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라.”
“감사합니다.”
앞서 일으킨 혈겁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던 아르카네는 셰인과 닮은 로즈베리 눈동자를 빛냈다.
“원숭이. 감히 주인님께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
아르카네 또한 상대의 실력을 알아보고 방심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결투의 장.
먼저 움직인 것은 아르카네였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그녀의 발걸음은 마치 하늘을 유영하는 구름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은밀함 때문일까, 고릴라를 닮은 수인…… 원(猿)족은 그 움직임을 곧바로 뒤쫓지 못했으나, 탁월한 육감을 통해 그런 아르카네의 움직임에 반응했다.
캉-!
거대한 두 대검이 아르카네의 검과 마주했다.
그 거대한 덩치에 맞게 놈은 당당하게 아르카네의 검을 막아섰지만, 순간 주춤하더니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원족의 수인은 자신이 밀렸다는 사실에 다소 놀란 눈치였으나, 그런 놈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크게 뛰어오른 아르카네가 빛살처럼 목을 노려 왔기 때문이다.
하나 원족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놈은 몸을 바닥에 바짝 붙여 공격을 피하고는, 공중에 떠오른 아르카네에게 거대한 대검을 후려치듯 휘두른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검에 맞아 멀리 튕겨져 나갈 상황.
하지만.
“우호?!”
어느새 검의 형상을 취하고 있던 아르카네의 팔 끝은 낫처럼 말려들어가 원족의 검을 휘감고 있었다.
그대로 검을 자신의 몸쪽으로 끌어당긴 아르카네는 스치듯 원족을 지나쳐 갔다.
“승부가 제법 빠르게 났군.”
“…….”
셰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렘은 무표정한 얼굴로 결투의 결말을 지켜봤다.
땅에 착지한 아르카네는 검에 묻어 있던 피를 털어 내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셰인에게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결투에 승리한 기사가 주군에게 예를 올리듯 고개를 숙였고, 셰인은 그런 아르카네에게 수고했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쿠웅―!
그리고, 원족 수인은 목 한쪽이 반쯤 잘려 나간 상태로 쓰러져 버렸다.
* * *
우우우우우우―!!
아직 우리는 지지 않았다―!
우우우우―!
객석으로부터 수많은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이를 본 셰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과거 나카르 지역에 침입한 침입자들을 잡아들이고, 이런 식으로 투기장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었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린 것인가?”
“생각보다…… 사막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런 편이지.”
이렇듯 음욕의 군단장 루시드 렘은 과거의 시간대를 현재로 불러오는 권능을 가졌다.
하지만 그녀의 능력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전력을 낼 수 있을 때와 비교하면 한참 모자라군.’
일전 셰인의 꿈속에 침입했을 때처럼, 렘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이고 손바닥을 한 번 뒤집는 것만으로 천지를 개벽시킬 힘을 가졌다.
다른 군단장 사이에서도 최상의 조건에서만 본다면 루시드는 명백히 최강자에 드는 존재다.
그 정도가 어느 수준이었냐면, 전생의 클라인이 영역으로 몸을 숨긴 렘을 포기할 정도였다.
‘물론, 그것도 최상의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하나 지금의 그녀에게는 두 가지 제약이 있었다.
첫 번째로, 전지전능의 권능은 오리진과 정령의 마력으로 이 공간과 분리되어 있는 일행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루시드 렘은 아직 자신의 영역을 완벽하게 이루지 못했다.
용의 영혼을 끝까지 분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생에 그 역할을 대신했던 셰인과 고든이 없었으니.
그 결과 그녀는 반쪽짜리가 되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영역을 구축한 순간부터 그녀는 교만의 군단장, 루치페보다는 강력하다고 봐야 했다.
“그럼, 이어서 가 보도록 할까요?”
렘의 말과 함께 다음으로 등장한 이들은 오크를 닮았으나 훨씬 날렵하게 생긴 검은 피부의 돈(豚)족과, 풍성한 털이 마치 날카로운 가시처럼 뻗쳐 있는 양(羊)족이었다.
앞서 등장한 원족처럼 비대한 덩치를 가진 그들은, 기세만 놓고 본다면 원족보다 더했다.
이번에도 아르카네가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서려던 찰나.
“그쪽만 둘이면 형평성에 어긋나지. 그렇지 않나?”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요.”
“굳이 나까지 나설 이유가 있나?”
“……?”
그와 동시에 셰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더니, 쑤욱 땅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림자일 뿐인데도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무언가.
이내 그림자는 사람의 형상으로 뭉치더니, 창백한 인상의 중년 남성으로 변모했다.
“오랜만에 써 보는군. 역시 그리 유쾌하지는 않아. 비록 온전히 내 힘으로 만들어 낸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말이지.”
“이게 무슨…… 도대체 어떻게!”
“그 힘을 너만의 특권이라고 생각했나?”
라비아타가 이용했던 워프 게이트가 등장했을 때처럼, 렘의 표정이 크게 구겨졌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당신, 어떻게 그분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 거죠?”
권능.
그녀가 말한 권능이라는 것은 종족이 가지고 있는 권능이 아닌, 오리진을 뜻한 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막 셰인의 그림자로부터 파생된 존재는 다름 아닌 언데드.
그것도 평범한 언데드가 아닌, 질투의 언데드였으니.
“하나도 아닌 둘…… 아니요. 셋이로군요. 어떻게 한 존재가 그분의 권능을 세 개씩이나……!”
“글쎄. 그 질문은 승자에게만 허락될 것 같군.”
“……좋습니다. 그래 봐야 이곳은 저의 영역. 이미 용의 영혼은 저에게 거의 넘어왔습니다. 이 또한, 그들의 여흥을 달래 줄 자그마한 사건에 불과하겠지요.”
그러면서 렘은 이어서 말했다.
“제법 놀라긴 했습니다만…… 당신의 재주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놀라기엔 너무 이른 것 같군.”
그런 둘의 시선이 허공에 맞닿음과 동시에.
질투의 기사와 아르카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여명이 떠오른 나카르 사막.
방금까지 악령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던 사막의 부족들은, 그 전투가 마치 꿈이라도 되는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으며 제 색을 되찾아 가는 사막을 바라봤다.
사막에 남은 무수한 혈흔과 발자국들.
이곳에서 일어난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드디어…….”
“끝난 건가……?”
하늘이 밝아지자 아직 남아 있던 악령들은 그림자처럼 사라졌고, 오크들만이 여전히 분주하게 움직이며 남은 몬스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파리마슈는 그 현장을 지켜보며, 옅은 한숨을 내쉬고는 목에 마력을 집중해 외쳤다.
“아직 우리의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적들의 공격이 또다시 이어질지 모르니, 각 부족들은 수습이 끝나는 대로 채비를 갖춰라!”
그 외침에 그제야 한 차례 전투가 끝났음을 깨달은 부족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파리마슈는 자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움직이지 않는 그들을 나무라지 않았다.
“다행히 사기는 아직 멀쩡하군.”
“그러게요. 확실히, 힘든 전투이긴 했죠.”
어느새 회복을 마치고 돌아온 디라일라의 말에 파리마슈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그대의 공도 적지 않소.”
“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허허, 겸손하구려.”
“그런데…… 별로 기뻐하시지는 않네요?”
“그에게 따로 들은 말이 없는 거요?”
“네? 그라면…… 가면남이요?”
“그렇소.”
“네, 딱히 들은 말은 없는데.”
그저 이곳에서 일어날 전투에 도움을 주라는 말만 들었던 디라일라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파리마슈가 허허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자가 동료를 좀 막 굴리는 모양이군.”
“헐, 이걸 알아주는 사람…… 아니 수인족을 다 만나다니!”
“왜,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이오?”
“그냥…… 그냥 그런 게 있어서요…….”
어째 필요에 의해 불려 갈 때마다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는 것 같았던 디라일라는 파리마슈의 별거 아닌 말에도 남모를 감동을 받았다.
“크흥. 그런데 그분이 뭔가 남기고 간 말이라도 있었어요? 전 진짜 들은 게 없는데.”
“으음.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 전투는 여기서 끝난 게 아니오. 뒤에 더 큰 전투가 기다리고 있겠지…….”
“에엑. 지금보다 더요?”
도대체 얼마나 더 큰 전투일까.
디라일라는 문득 아룬비다에서 겪었던 전쟁을 떠올려 봤다.
적의 물량으로 비교하면 아룬비다가 더했지만, 이곳은 비두론 성벽이 존재하지 않는, 뻥 뚫린 사막 한가운데라는 걸 생각하면 그보다 못하진 않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대의 도움이 많은 덕분에 이 정도였소. 본래라면 더 큰 출혈이 있었을 테지…… 아무튼 이제 각 부족의 지휘관들을 불러 모아야겠군.”
“아, 일단 알겠어요.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불러 주세요.”
“허허, 괜찮소. 저녁에 있을 전투에 대비해 휴식을 취해 주시오. 그게 가장 든든한 일일 테니.”
그렇게 디라일라가 막사 밖으로 나가고, 이후 파리마슈는 각 부족의 지휘관들과 토론을 이어 갔다.
하나 지휘관들 또한 이번 승리에 대한 기쁨에 제법 취해 있는 상태였는데, 파리마슈는 그런 그들을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파리마슈 님?”
“물론 잔당이 남아 있긴 하겠습니다만…….”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정리가 가능한 수준입니다. 음허허헛!”
하나, 그런 그들의 기쁨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파리마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
몇몇 지휘관들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현실을 인정했고, 또 어떤 지휘관은 파리마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믿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흘러갔고.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던 전사들도 반나절이 지나 서서히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무언가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윽고 해가 완전히 저물었을 때.
그들이 맞이한 것은 저 너머,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려들어오는 악령의 군단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