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6)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6화
16화 괴물 사냥 (2)
“디라일라.”
“……뭐야, 이 가면남은.”
셰인의 부름에 디라일라가 답했다.
두 눈에 힘을 부릅뜬 채 애써 자신을 노려보는 디라일라의 모습에 셰인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전생에 셰인이 디라일라를 봤을 땐 이보다 더한 눈빛을 경험했던 기억이 있으니 저런 눈빛은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또 이해가 가기도 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런 곳에 가둬져 있으니, 그녀의 성격상 없는 용기라도 쥐어짜며 저렇게 상대방을 위협하는 게 최선일 터.
“그리 볼 것 없다. 널 해치러 온 건 아니니.”
“뭐? 이딴 곳에 사람을 가둬 놓고 하는 말이 그거냐? 장난해 지금?”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마치 털을 한가득 세운 고양이처럼 디라일라가 으르렁거렸지만 셰인은 개의치 않았다.
“널 가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저 위쪽에 있는 놈들이다.”
“위쪽이라면…… 살리에르 백작을 말하는 거냐?”
범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디라일라가 조용한 목소리로 그리 물었다.
살리에르 백작은 이 별장의 주인이자, 오늘까지 웃는 낯으로 디라일라를 맞이해 준 사람이었다.
“맞다. 그 괴물이 너를 이곳에 가둔 것이지.”
“…….”
거기까지 듣던 디라일라의 눈빛이 조금은 바뀌었다.
괴물.
자신을 이곳에 가둔 백작을 지금 눈앞에 있는 존재는 괴물이라 부르고 있었으니.
어쩌면 아까 자신을 해하기 위해 온 게 아니라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그럼, 그놈이 왜 나를 이곳에 가둔 건데?”
“간단하다. 연합국의 지하도시에선 네 몸이 어마어마한 상품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지.”
“지하도시…….”
디라일라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연합국의 어딘가, 거대한 지하도시가 존재하고, 그곳에는 없는 게 없다고 알려진 블랙마켓이 존재한다는 것.
당연히 없는 걸 만드는 곳이다 보니, 들려오는 소문만으로도 흉악하기 이를 데가 없는 수준이다.
과거 생체 실험의 선두주자였던 흑마법사들의 주된 거래처였다고 할 정도이니.
그 외에도 도박 투기장을 운영한다는 등, 좋지 못한 소문이 가득한 장소였다.
“살리에르는 그 지하세계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나름의 거물이라 보면 된다. 주로 이종족 노예를 수집하는 수집가들의 입맛에 맞도록 교육시키고 파는 역할을 하고 있지.”
“…….”
“가끔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이종족을 데려와 손수 채찍을 든다더군. 자기 아들이 갖고 놀기 딱 좋은 장난감으로 만들려고.”
“……그만.”
“차라리 교육되어 끌려간 녀석들의 처지가 나을 수도 있겠군. 어찌 됐든 수집가들의 입맛에만 맞는다면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의 순수한 악의에 노출되면 어떻게 될지는…….”
“그만-!”
디라일라의 절규 섞인 비명이 지하실을 가득 채웠다.
그녀의 눈에는 절망과 분노, 그리고 둘을 합한 것보다 더 큰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데?!”
그도 그럴 것이, 디라일라는 이 지하실의 피해자들이 겪은 감정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오늘까지 디라일라의 학생이었던 백작의 아들이 장난처럼 휘두른 채찍에 비슷한 또래의 이종족 소녀가 비명을 내질렀다.
또 누군가는 울음을 그치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눈알이 뽑혔다. 실은 손님의 취향을 위해 행한 일일 뿐이었다.
디라일라처럼 욕설을 퍼붓던 어느 엘프는 혓바닥이 잘렸다.
이 역시 말 못하는 노예가 필요하다는 손님의 요구에 의해서였다.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고문이 이루어졌으나, 피해자들이 남긴 감정만큼은 통일되었다.
고통과 절망.
그들의 피와 눈물, 고통 어린 땀을 머금은 벽과 바닥은 디라일라에게 그들의 감정을 끊임없이 속삭였다.
마치, 너라도 이런 우리들의 기억을 알아 달라는 듯.
그들의 감정은 디라일라가 절망하면 절망할수록 더 강해져만 갔다.
“외면과 도망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그 무엇도 없다.”
“……뭐?”
“앞으로 네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바란다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돼.”
“…….”
“지금 겪고 있는 그 감정들을 잘 기억해 둬라. 그래야만 너 자신을 지킬 수 있을 테니.”
“도대체…… 인간들은 왜 이러는 건데? 왜 이렇게 잔인한 건데?!”
디라일라는 더 이상 눈을 부릅뜨며 셰인을 위협하지 못했다.
대신 눈물로 얼룩진 표정이 되어 셰일을 바라볼 뿐.
그리고, 셰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두려워하니까.”
“……뭐?”
“인간에게 이종족은 두려움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진 피식자의 본능이 남아 있으니.”
기원전.
고대 신 아카샤의 대봉인에 의해 이종족이 던전에 봉인되기 이전의 시대.
인류는 전 종족 중 최하위 피식자의 자리에 있었다.
당시의 인간은 지금처럼 마력을 쓰지도 못했고, 엘프처럼 숲을 다루지도, 드워프처럼 뛰어난 무구를 만들지도 못했다.
그뿐이던가.
수인족보다 신체 능력은 월등히 떨어졌고, 무엇 하나 다른 종족보다 뛰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그들은 언제나 피식자였고, 아카샤의 대봉인 이후에도 인간들은 포식자에 대한 두려움을 뼛속 깊은 곳까지 새기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들이 두려워하던 이들이 고통받는 순간을 보며 느끼는 쾌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다.”
모든 인간이 그러지는 않겠으나.
인류가 기본적으로 이종족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본능에 새겨진 그 인식을 바꾸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
아니, 애초에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한 종족에 새겨진 본능을 바꾼다는 것.
그런 일이 결코 쉬울 리 없다.
셰인은 다시금 말을 이었다.
“황제는 인류가 가진 이종족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알고 있었다. 황제는 전 인류의 정점.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가 이종족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종족의 노예화를 폐지했지. 이종족에 대한 겁박은 자신들의 공포에 의해 기인한 것이었으니.”
“…….”
“하지만 제국은 지금도 연합국의 지하도시를 방치하고 있다. 이미 그곳에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이해득실은 풀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럼, 백작은? 살리에르 백작은!”
셰인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디라일라가 숙였고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눈물범벅인 그 눈동자에는, 어느새 독한 원한의 편린이 보였다.
자신을 이렇게 가두고 끔찍한 고문을 행했을 살리에르가 원망스러웠지만, 그보다는 당장 그녀에게 속삭이고 있는 땅의 기억들이 그녀의 원한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그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가할 순 있겠지만, 실상 큰 피해는 주지 못할 거다.”
“뭐야, 그럼 나한테는…… 희망이 없다는 거잖아…….”
디라일라는 허탈함에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도망친다 한들, 살리에르 백작은 살아 있는 증인인 디라일라를 살려 둘 리가 없다.
그렇다고 자신을 보호해 주고 있는 아카데미에 기댄다?
어느 정도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살리에르 백작이 지난 부과 권력, 그리고 그와 얽힌 고위층들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결국 희망이 없다는 말이다.
“확실히. 기본적인 승산은 무에 가깝다 봐야겠지. 애초에 그 괴물이 만나고 있는 자는, 네가 상상하던 그 이상의 인물일 테니까.”
“뭐?”
“그래서 내가 이곳에 온 거다. 애초에 정리할 수 없는 실타래는 쓸모가 없으니.”
“그게 무슨…….”
“태워 버리면 그만이지.”
셰인의 말을 디라일라가 채 이해하기도 전에, 지하실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쥐새끼가 숨어들었군.”
지하실에 들어온 인물은, 살리에르 백작의 충직한 기사, 워나드였다.
* * *
“이거……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언뜻 보면 여유로운 듯한 얼굴을 한 살리에르 백작이었으나, 그의 내심은 새카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방금 전.
그의 오랜 지기이자 믿음직한 기사인 워나드가 들렀다 나갔다.
지금처럼 중요한 손님을 맞이할 때 들어오는 일이 없던 워나드였지만, 이번만큼은 사안이 사안인 만큼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침입자의 등장.
여태껏 지하 세계의 한 축을 주름잡던 살리에르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행해 온 일들은 대놓고 알려져선 안 되는 극비리의 일이었다.
그러니만큼 언제나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으로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한 지도 몇 년이 지났건만.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이 별장에 침입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별장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들어올 정도의 실력자가.
“허허. 아닙니다. 오히려 여태까지 조용했던 게 다행인 일이지요.”
한편, 살리에르의 맞은편에는 그런 살리에르에게 걱정 말라는 듯 미소 짓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오늘 살리에르가 애타게 기다리던 손님 중 한 명이었다.
“방금 나간 기사는 4품의 엑스퍼트, 그것도 마스터에 다다른 경지에 오른 자가 아닙니까? 실력도 좋고 노련하니, 금방 해결되겠지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남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미소로 넘겼지만, 살리에르는 그럴수록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자가 어떤 사람인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남자였지만, 정말 그를 좋은 사람으로 봐서는 안 된다.
잔혹하기로 따진다면 그는 애초에 살리에르조차 비빌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실상 살리에르 백작이 지하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것도, 그곳에 기반을 잡고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던 이유도 전부 눈앞에 있는 이 중년의 남자 때문이 아니던가.
수십 년 전에 겪었던 흑마법사들과의 전쟁 당시보다 지금 이 순간이 살리에르에겐 더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가 무서운 것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남자조차도 뒤에 배후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정체를 떠올려 보면 자연스레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라는 그 이름 높은 백사자의 갈기.
‘저지먼트’ 기사단의 일원, 어먼스 J 다이라니까.
* * *
침입자, 셰인을 바라보는 워나드의 눈빛은 결코 곱지 못했다.
응당 그 눈빛은 침입자에게 보내야 할 당연한 시선이었지만,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워나드의 속 또한 그의 주군 살리에르만큼 새카맣게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필 오늘 같은 날에…….’
현재 위층에서 자신의 주군과 마주하고 있는 인물이 누구던가.
그 위명 높은 저지먼트 기사단원 중 한 명이지 않은가.
황실의 제일 날카로운 검이자, 제국의 안녕을 위해 인정(人情)을 도려낸 말살자들.
그런 황실의 검이니 만큼 이는 현재 살리에르 백작이 하고 있는 일이 저 드높은 황실과 매우 연관이 깊다는 것을 의미했다.
자칫 여기서 그들의 눈밖에 나는 일이 벌어졌다간…….
저 감정 없는 검이 어디로 향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최대한 빠르게 눈앞의 적을 처리하고 이 사건을 그저 작은 일로 치부해야만 했다.
“너의 배후가 누구인지 말하고 싶어서 빌게 만들어 주지.”
문답무용.
대답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워나드의 몸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기세는 과연 심상치 않았다.
엑스퍼트, 그것도 4품 끝자락에 다다른 마력이 셰인의 피부를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왔다.
‘그때 상대했던 트윈 헤드 오우거보다는 강하겠군.’
아카데미의 휴식기가 끝나고 돌아오던 당시 작은 마을에서 마주했던 트윈 헤드 오우거.
비록 썩은 나무 정령에 의해 움직이던 시체였지만, 워나드는 간소한 차이로 그런 트윈 헤드 오우거보다 우월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에 당시에는 가문의 기사들이 앞에서 시간을 끌어 둔 덕에 마법을 준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무엇도 자신을 지켜 줄 수 없는 상황.
거기다 이렇게 좁은 지하실은 마법사보다 기사가 월등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까진 예상했던 대로군.”
물론, 셰인 또한 준비한 게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미숙한 척 흔적을 남기며 워나드를 이곳으로 유인한 게 바로 셰인이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담담한 셰인의 반응에 워나드가 미간을 좁히는 사이.
셰인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네 유용함을 보여 봐라.”
그 말은 앞에 있는 워나드도, 뒤에 묶여 있는 디라일라에게도 한 게 아닌.
여태껏, 이 지하실에 녹아 있는 고통과 절망을 닥치는 대로 씹어먹던 어느 한 존재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