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60)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60화
160화 완벽한 집착
‘과연, 조직에서도 ‘최강’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힘이로군.’
보랏빛 기운에 휩싸인 악령의 군단을 바라보며 셰인은 렘의 권능을 인정했다.
본래라면 죽은 자들은 시간을 빼앗겨 더 이상 성장이라는 게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렘은 자신의 영역 내에서 세계가 정한 진리를 거부했고, 그 결과 렘의 악령 군단은 상상 이상의 힘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마 저 강력한 악령 군단의 모습은, 생전에 그들이 도달하지 못했으나, 자신들이 상상한 이상 속의 모습일 것이다.
‘아직 미완성임에도 이 정도란 말이지.’
확실히 몇 년의 시간을 걸쳐 영역을 확보해 둔 탓인지, 이대로 영역 내에서 전투를 이어 가 봐야 셰인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셰인이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다.
현재 렘이 보이고 있는 능력은 명백히 지금 수준을 뛰어넘은, 무리한 행동이었다.
‘지금쯤 분신체들도 모두 사라졌겠군.’
이제 남은 일은, 성역 바깥쪽에서 어떻게 일이 마무리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셰인이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저놈들을 상대로 최대한 버티는 것뿐이겠군.”
셰인의 손 위로 한 자루의 검이 만들어졌다.
먼 미래. 혹은 과거에 인류의 용사와 맞붙었던 검이 셰인의 손에 쥐어졌다.
* * *
섬뜩한 살기가 느껴짐과 동시에 파리마슈가 뒤를 돌았을 땐 이미 도약을 끝마친 데르카슈의 단검이 날아오고 있었다.
“……?!”
푸욱―!
“어우 씨, 위험할 뻔했네…… 끄응. 근데, 당신은 뭐야?”
단검이 부드러운 모래에 박혀 꿈쩍도 하지 않자, 데르카슈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언제……? 분명 너는 성녀님께……!”
“역시 이건 저 망할 여자가 한 짓이었나? 뭐, 여기 오기 전에 비슷한 걸 당해서 말이야. 나름의 내성이 생겼다고. 마법사는 언제나 침착해야 하거든.”
“데르카슈…… 자네, 역시 저 가짜에게 당하고 말았군.”
“큭, 가짜라고? 웃기지도 않을 소리! 이단자야. 너는 저분의 진짜 뜻을 모른다!”
광기에 찬 데르카슈의 외침이 막사 내에 울렸으나, 그를 바라보는 파리마슈와 디라일라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나 냉정하던 자네조차 결국…… 이보게. 이자를 어떻게 할 방법은 없나?”
“어, 글쎄요. 저도 방법은 모르니까, 일단 좀 재워 두죠.”
“흥, 감히 성녀님께 선택받은 내게―― 억!”
디라일라의 마법이 데르카슈의 머리를 강타했다.
“이, 이거 괜찮은 건가? 죽지는 않았겠지?”
“아마도요? 힘 조절하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어서…….”
“후우…… 다행히 숨은 쉬고 있군.”
“저기, 그런데 뭐가 좀 이상한데요?”
“음?”
기절한 데르카슈를 뒤로 하고 전장을 바라보던 디라일라의 말에 파리마슈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그곳에는 아까와 다르게 여유가 사라진 렘의 분신체가 서 있었다.
그녀는 잠시 전장의 상황을 훑어보고는, 짧게 혀를 찼다.
“저쪽에 문제가 생겼군요…… 이쪽은 얼추 정리가 됐으니 돌아가야겠네요. 저자가 죽지 않은 건 아쉽지만…….”
분신체 또한 파리마슈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는 이내 연기처럼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다행히 그 사내의 계획대로 흘러간 모양이군.”
“그러게요. 진짜 없어졌네. 표정이 제법 심각해 보이던데.”
“그쪽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지 않겠나.”
“그야 그렇죠. 그럼…… 시작할까요?”
“부탁하겠네.”
파리마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디라일라가 대지와 공명을 시작했다.
대지의 마력이 전장에 휘몰아침과 동시에, 전장 곳곳에서 푸른빛이 일렁였다.
“드디어 내 작품이 빛을 보는구나…….”
빛무리의 정체는 다름 아닌 디라일라가 손수 만든 수원석이었다.
전장 곳곳에 배치된 지휘관들이 하나씩 들고 있던 수원석을 주변으로 마력이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주기적인 파동을 일으켰다.
드넓은 사막을 주변으로 파동이 한 차례, 두 차례씩 뻗어 나가자 이지를 상실한 전사들의 눈에 점차 생기가 돌아왔다.
“여, 여긴?”
“우린 방금…….”
“아슈카, 아슈카! 어디로 간 거야!”
“아, 아버지……!”
하나 전사들은 방금까지 보았던 꿈의 세계와 현실의 괴리감에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현실을 도피하고 다시 꿈으로 가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먹히는군, 먹히고 있어!”
“으음……!”
한편, 디라일라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계속해서 공명을 시도했다.
“빠알리이…….”
대지와의 공명을 이어 가는 디라일라의 내부로 다양한 사념들이 들이닥쳤다.
새벽의 전투에서 죽은 전사들의 피를 머금은 대지와 지금도 모래 위에 서 있는 수많은 수인족과 악령들의 사념이었다.
한순간에 몰려오는 수많은 사념들이 디라일라의 영혼을 깔아뭉갤 기세로 몰려들었다.
그럴수록 디라일라는 스스로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차라리 마력이 쥐어 짜이는 게 편하겠다!’
아까 가짜 성녀의 현혹에 당했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하루에 두 번이나 정신이 뒤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니 별 힘도 쓰지 않았음에도 심신이 지쳐 버렸다.
‘이제 곧……!’
물론, 디라일라도 이런 무식한 방법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련했던 것은 아니었다.
“돼, 됐네! 됐어! 미라슈!!”
주변의 파동이 일정 이상의 크기로 커진 순간, 파리마슈의 딸인 미라슈가 전장의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줄곧 전장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가짜 성녀, 루시드 렘이 만들어 둔 완벽한 그림에 큼지막한 먹물을 뿌릴 기회를.
“다들, 정신 차려라아아아앙!!”
미라슈의 손에 들린 푸른빛을 띠는 비늘이, 디라일라가 만든 파동과 공명하며 그 기운을 받아들이고 더욱 큰 파동을 만들어 냈다.
처음에는 작은 파도와 같던 파동이, 시간이 갈수록 점차 거대해져 갔다.
그럴수록 디라일라의 표정에도 여유가 생겨났다.
“으아……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난 왜 매번 전투에 나설 때마다 죽을 것 같지?”
그런 디라일라의 푸념과 함께, 미라슈는 용의 비늘로부터 먼 목소리를 들었다.
– 드디어…… 그 간사한 년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때가 되었구나.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의 여인이 내뱉은 목소리와 함께, 다양한 이들이 존재감을 내뿜었다.
미라슈는 수백만이라는 숫자의 악령 군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정신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 이곳이 바로, 우리의 고향…….
– 아버지께서 살해당한 땅이로구나.
–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로다. 하지만…….
– 아직, 희망의 물방울이 남아 있다.
–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그것은, 아주 긴 시간 동안 맺힌 한이요, 자유를 향한 갈망이었다.
“이, 이분들은…….”
뒤흔들리는 시야 속에서도 미라슈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동시에 미라슈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왜……?”
순간 자신의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던 미라슈는 이내 그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안도감이었다.
미라슈가, 파리마슈가, 그리고 더 나아가 오랜 선조들이 기다려 왔던 용.
아무리 기도를 드리고, 또 불러 보아도 대답하지 않았던 그들의 신.
그렇기에 그들은 기도를 드리면서도 자신들이 버림받았다고 생각해 왔다.
분명 신의 축복이 느껴지는 땅에 있음에도 여태까지 자신들의 기다림은 마치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아니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자신들의 기다림만큼이나 긴 시간동안 용께서는 대답하고 계셨다.
단지, 그분의 목소리가 자신들에게 닿지 않았을 뿐.
용의 후손들.
타락한 용에 의해 묶인 그들의 영혼을 마주하자마자 미라슈는 그들 또한 자신들만큼이나, 아니.
더욱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자신들에게, 그래서 더더욱 매달리던 자신들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자 찾아오는 감정의 파도는 비단 미라슈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아아…….”
“그런가. 그들은 결국…….”
“아버지도, 그곳에서 계속 싸우고 계셨습니까.”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혼란을 겪고 있던 전사들의 눈에도 어느덧 제대로 된 이성이 돌아오고 있었다.
미라슈가 들고 있는 용의 비늘로부터 연결된 성역, 그리고 그 중심의 신전과 이어진 용의 후손들이 사막 부족들의 영혼에 새겨진 용의 축복을 일깨운 것이다.
점차 정신이 돌아오는 그들을 보며, 파리마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이 짧으면서도 길게 느껴지는 전쟁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 * *
“꺄아아아악――!”
렘의 비명이 전장 한가운데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 공들여 온 그림에 먹물이 뿌려져 절규하는 예술가의 그것처럼 처절했다.
“그 모습을 보니 성공적으로 해결된 모양이군.”
그런 렘의 귀에 들려오는 셰인의 목소리. 렘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셰인을 노려봤다.
“당신……!”
“아무리 계획을 완벽하게 세운다 한들, 마지막까지 방심을 하면 안 됐지. 결국 너의 오만과 욕심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 냈군.”
만약 렘이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고 다른 군단에게 지원을 요청했다면 어땠을까.
아예 처음부터 셰인을 멸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셰인은 렘이 왜 저런 판단을 내렸는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자신의 왕국을 꿈꿨나?”
“…….”
“얼마 남지 않은 혈족들을 위해?”
“……도대체, 당신이 어떻게 거기까지 파악했는지 모르겠군요.”
이제는 분노를 넘어, 차가운 증오가 어린 눈빛으로 셰인을 바라보던 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우리 음마들만의 왕국을 꿈꾸었지요.”
음마.
혹은 몽마라고 불리우는 렘의 종족은 본래 자신들만의 차원 속에서만 살아가는 종족이었다.
정령계처럼 독립된 차원에서 살아가던 그들은 정령처럼 영적 능력을 타고났으며, 그들은 이따금 다른 종족의 꿈에 나타나 적당한 정기를 취하고 다시금 자신들의 차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들의 차원은 한순간에 붕괴되었고, 수많은 음마들이 그 명을 달리했다.
렘은 그곳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음마였으며 동시에 음마 여왕의 핏줄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오랜 시간 자신의 영역에 걸맞은 장소를 찾아다녔고, 그 결과 찾아낸 이곳은 새로운 차원을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세상 그 어디를 가더라도 용의 기운과 수많은 그 후손들의 영혼이 모인 곳은 없었을 테니.
그렇게 발견한 이곳은 멸망한 종족의 씨앗을 뿌릴 장소에 더없이 적합했고, 그에 대한 렘의 집착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실상 분노의 군단장, 블레이크에게 셰인의 정보를 건네지 않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고, 이는 렘이 가진 유일한 약점이었다.
모든 것에 철두철미한 그녀가 스스로 완벽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으니.
그리고 그게 셰인이 조직 내 ‘최강’이라 불리는 군단장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인간들은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긴 시간을 살아왔죠.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군요. 인정할 수밖에 없겠어요.”
잠시 두 눈을 감았던 렘은 결국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했다.
렘의 영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역의 중심, 신전에서부터 용의 후손들이 날뛰었다.
영역을 이룰 수 있게 해 주는 근간인 용의 후손들의 영혼이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오랜 시간 렘이 만들어 둔 영역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또한 이대로 패배한 개처럼 물러날 생각은 없습니다.”
순간 렘의 보랏빛 눈에서부터 섬뜩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셰인의 언데드 군단을 상대하던 악령들이 더욱 크게 울부짖었다.
렘은 무너지기 시작한 영역의 일부를 포기하고, 자신의 모든 권능을 한곳에 집중시켰다.
용의 후손들은 이미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었지만, 이곳에 있는 악령들은 아직 렘의 손 안에 있었다.
가뜩이나 강력하던 악령 군단의 기세가 더욱 강렬해지고, 렘은 셰인의 앞에서 선언하듯 말했다.
“여기서 반드시 당신을 죽이고, 저는 다시 먼 훗날을 기약해야겠습니다.”
“……그 말만큼은 허언으로 들을 수준은 아니로군.”
셰인 또한 손에 들린 질투의 검에 힘을 주었다.
전생을 제외하면, 가장 치열한 전투가 펼쳐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