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6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64화
164화 검은 하늘
합일을 위한 작전은 모두 실패했다.
태양의 성녀가 된 라비아타가 등장할 때부터 렘의 정통성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 찾아보면 여전히 자신을 따르는 신자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이번에 악령들을 움직이며 분신체로 모습을 드러냈던 렘은 누가 보더라도 사술을 부리는 존재에 불과할 테니.
몇 년의 시간을 투자하며 회유했던 용의 영혼들도 반대편으로 돌아섰다.
이전까지 해방을 회의적으로 생각하던 그들은 용을 보필했던 칼리페가 셰인을 인정한 것을 확인하고는 정반대로 의견을 바꿔 해방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렘, 그녀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만의 영역을, 그리고 새로운 차원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이만한 조건이 없었고, 셰인이 존재하는 한 자신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결국, 당신이 이겼군요.”
“의외로 패배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군.”
“패배는 나름 익숙한 것이지요.”
렘은 몽마들의 차원이 소멸됐던 당시를 떠올려 봤다.
차라리 그때보단 지금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반항다운 반항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그때는 패배라는 이름마저 아까울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패배가 익숙하다라. 그런데 착각하면 안 되지. 그때랑 다른 게 있거든.”
이제 막 찾아온 라비아타가 사납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넌 여기서 죽어. 다음 같은 건 없을 거야.”
이 자리에서 렘에게 가장 증오심을 품고 있는 이는 당연 라비아타였다.
만약 셰인과 함께 사막을 오지 못 했더라면, 혹은 아직 올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면.
자신의 어머니와 더불어 보다 먼 선조들마저 저 여자의 에너지원으로 영락할 뻔하지 않았나.
라비아타는 이 자리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렘을 죽여 버릴 심산이었다.
“보아하니 이제 가진 힘도 모두 끌어다 쓴 것 같은데. 안 그래?”
“…….”
라비아타의 말처럼, 렘은 칼리페를 불러 오는 것만으로 가지고 있던 권능을 대부분 소진했다.
특히 마지막에 칼리페가 발현했던 그 해일과도 같은 공격은 일대를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헤집어 놓을 만큼 강력했는데, 당장 그 공격을 막아선 셰인은 척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라도 있나?”
“꿈도 현실도 언젠가 무너질 때가 있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하지만, 끝은 곧 시작의 다른 말이기도…….”
렘의 말은 미처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별로 미안하진 않지만 사과부터 할게. 사실 사이비가 하는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거든.”
유쾌한 말투와 다르게 싸늘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입을 연 라비아타가 어느새 렘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푹-
화염을 극한까지 압축시킨 그녀의 주먹이 렘의 가슴을 뚫고 반대편으로 나왔다.
“아아…….”
나카르의 용을 집어삼키고, 종족의 부흥을 꿈꾸던 여인은 뚫린 자신의 가슴을 바라보다 이내 눈을 감았다.
마치 과거 용이 그랬듯, 렘의 육신이 허공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셰인은 눈을 붉게 빛내며 그런 렘의 최후를 바라봤다.
이윽고 주변의 풍경이 뒤바뀐다.
렘의 영역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죽음만이 가득한 모래 위로 음마의 여왕이 쓰러져 이내 빛무리가 되어 사라져 갔다.
그 자리에는 검은 흔적만이 남아, 이곳에 하나의 요람을 집어 삼킬 뻔했던 여인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후우. 이제 겨우 끝났군.”
그러면서 라비아타가 뒤를 돌아봤을 때.
“…….”
전신에서 피를 흘리는 셰인이 모래 위에 쓰러져 있었다.
“야, 너는 또 왜…… 뭐야, 이 상처는. 끄응…… 이거, 좀 큰 빚을 진 거 같은데. 후우, 죽진 않았겠지?”
서둘러 셰인에게 돌아간 라비아타가 맥을 짚자, 약하지만 분명 심장이 뛰고 있었다.
[단장. 빨리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겠는데. 생명력이 옅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데 이렇게 된 거지?]“쯧, 아직 정리해야 할 상황이 남아 있긴 하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뭐, 고생했다.”
눈을 감은 셰인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라비아타는 그런 셰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그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막에서의 긴 여정이 끝을 보이고 있었다.
* * *
사실, 셰인은 부상으로 인해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심상 세계.
셰인은 붉은 하늘 아래 자리한 고성에 앉아 정면을 응시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그곳에는 방금 죽음을 맞이한 음욕의 군단장, 루시드 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혈마법사였던 고든처럼 영혼을 다른 육신으로 옮기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자신의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 상태였다.
“음마, 혹은 몽마라고 불리는 너희 종족은 이종족이라기보단 정령에 가깝지.”
“……당신은.”
가면의 사내. 셰인은 스스로의 내면세계로 들어온 이후 가면을 쓰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가슴을 성검에 꿰뚫린 채 왕좌에 앉아 렘을 내려 보고 있었다.
“……비밀로 감싸여져 있던 얼굴을 보게 되니 괜히 반갑군요.”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너의 영혼을 이곳에 초대했다.”
“초대라고 하기엔…… 제법 과격한데 말이죠.”
렘이 흔들리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천장이 뚫린 고성과, 핏빛 하늘.
사방에 흩어져 죽은 시체들과, 바닥 전체에 찰랑이는 붉은 피까지.
단지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이 내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렘은 수없이 많은 죽음을 느꼈다.
‘어떻게 이 정도로 끔찍한 내면세계를…….’
죽음보다 더 큰 두려움을 느끼며, 렘이 입을 열었다.
“일정 경지에 들어선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갖기 마련이죠. 하지만 내면세계는 무의식중에 만들어진 세상이에요. 그 누구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다룰 수 없죠. 얼굴을 알게 됐는데도 궁금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어떻게 인간에 불과한 당신이 이 정도로 정교한 내면세계를 구축할 수 있던 거죠?”
새삼 렘은 셰인이 어째서 자신의 권능을 그리 쉽게 빼앗고 쓸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이렇게 구축했으니,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는 렘의 권능을 그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루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셰인은 그런 렘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질문은 내가 한다고 했을 텐데.”
“흐읏…….”
순간 사방에서 들어오는 압도적인 기운에 렘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육체가 없는 영혼이 덜덜 떨리며, 렘이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그만, 그마아안!!”
죽음은 무섭지 않았으나, 영혼의 소멸만큼은 렘에게도 항거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다.
잠시 후, 셰인이 기운을 거두자 고통에서 해방된 렘이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
“궁금…… 하다는 게, 뭐죠?”
“너희 몽마족의 멸망. 그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군.”
“대신, 조건이 있어요.”
“지금 네가 그런 걸 말할 처지가 아님을 알 텐데?”
그 말에 렘은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은 음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고대에는 몽마라 불려왔던 종족의 여왕이다.
그녀는 셰인의 내려다보는 눈빛이 치욕스러웠으나,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았다.
“……주제넘은 발언이라는 것은 저도 잘 알아요. 하지만, 당신도 결국 제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잖아요? 이대로 제 영혼을 소멸시켜 봤자, 당신이 얻는 건 없어요.”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다만 좀 더 길 뿐이지. 또한 지금 내가 여기에 너를 불러 온 것은 간단한 확인 작업을 위해서다. 시간만 지나면 너의 존재는 내게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대로 제가 아는 정보를 불어 봤자, 소멸은 면치 못할 게 뻔하니까.”
셰인의 말처럼 고문을 한다면 언젠가 렘의 입이 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렘은 잘 알고 있었다.
셰인은 자신의 내면세계에 렘을 오래 둘 생각이 없다는 것을.
적어도 몽마의 여왕으로서, 렘은 그 누구보다 내면세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자신의 내면에 계속 가두고 있는 것은 셰인에게도 ‘귀찮은’ 일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좋다. 제안이 뭐지?”
“별다른 건 아니에요. 제 영혼을 소멸시키지 않겠다는 것과…… 또 다른 몽마족을 이곳에 잠시 초대하고 싶어요.”
“좋다.”
“근원의 맹세를 해 주세요.”
“감히 너 따위와의 거래에 내 영혼을 걸라는 건가? 주제넘군.”
“흐으윽……!”
또다시 렘은 자신에게 향하는 압박에 몸부림쳤다.
단숨에 영혼이 찢겨 나갈 것만 같은 공포는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을 뛰어넘는 무언가였다.
“내가 신성을 품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알겠습니다.”
신성을 품은 존재가 하는 약속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스스로가 신성을 내걸고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신성의 격이 약해지거나 심하면 소멸할지도 모른다.
“……그럼, 질문은 뭐죠?”
“너희 종족이 머물던 차원이 무너졌을 때 나타났다는 존재. 그 존재는 나카르의 용을 죽인 존재와 같은 존재였나?”
“…….”
그 말에 렘은 잠시 침묵했다.
깊은 생각에 빠진 듯한 그녀의 모습을 셰인은 느긋하게 기다렸다.
“결론만 말하자면, 저도 잘 몰라요. 당시의 저는 아직 어린 몽마에 불과했으니까요.”
렘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몽마족의 여왕은 따로 정해진 핏줄이 없어요. 단지 수명이 다한 몽마의 여왕이 죽음 이후, 가장 여왕에 걸맞은 몽마에게 자신의 기억과 힘을 남기고 무로 돌아가니까요.”
렘이 영혼의 소멸을 그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제가 물려받은 전대 여왕의 기억은, 드문드문해요. 그녀가 가진 대부분의 능력은 제게 전수됐지만, 차원이 소멸했을 당시의 기억만큼은 불안정했거든요.”
“…….”
아마 칼리페가 말했던 세계의 의지가 렘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됐던 것이리라.
“때문에 당시의 기억은 저도 제대로 가지고 있는 게 없었어요. 당신과, 칼리페의 대화를 듣기 전까지는.”
“무슨 말이지?”
“당신과 그의 대화를 듣는 도중, 끊어져 있던 전대 여왕의 기억이 스치듯 지나갔어요. 그 장면은, 검은 하늘이었죠.”
“칼리페가 봤다던 장면과 같은 것이로군.”
“예.”
렘으로부터 셰인은 살기를 느꼈다.
다만 그 살기는 셰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향하고 있었다.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예요.”
하지만 이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렘은 그렇게 자신의 말을 끝냈고, 셰인도 그 이상 묻지 않았다.
“알겠다. 몽마는, 근시일 내에 부르도록 하지.”
“……네.”
그 말을 끝으로 셰인은 두 눈을 감았다.
내면세계 밖으로 의식을 옮긴 것이다.
물론 렘은 그 모습을 보고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여전히 이 세계는 렘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고,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했다간 렘의 영혼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계약 위반이 아니냐고?
만약 셰인의 의지가 렘의 행동을 보고 적의를 느꼈다면 페널티도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을 터.
렘은 자신의 영혼을 그런 도박수로 날려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렘은 자신의 다음 대 여왕이 될 몽마에게 반드시 남겨야 할 게 있었으니.
렘의 눈빛은 셰인과 라비아타에게 당할 때보다도 서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 * *
셰인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라비아타가 필요한 조치는 모두 취해 둔 이후였다.
[그렇다고 막 움직이면 안 돼. 엘프들의 정기를 쓰고도 아직 불안정하니까.]“고맙군.”
[이 정도야 뭘.]라비아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남아 있던 이그니스는 셰인이 쓰러진 이후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혼란이 가득했던 사막에, 천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