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0)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70화
170화 무너진 수도 (2)
순백의 오러가 아네이스의 검을 휘감았다.
그아아아…….
모든 마력을 무효화시키는 정의의 오러가 환한 빛을 뿜어내자, 검을 막아 낸 언데드 기사가 흉성(胸聲)을 흘리며 아네이스를 노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네이스의 검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언데드 기사는 언데드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차분하게 그런 아네이스의 검을 받아 냈지만, 점차 뒤로 물러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순백의 오러는 언데드 기사의 마력마저 불사르고 있었으니.
그러다 벽까지 완전히 몰리고 나서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진 언데드 기사가 승부수를 던졌다.
본래의 기사라면 결코 하지 않을 승부수를.
푸후으읍!
“……!”
기사의 입이 오므라드는 것을 확인한 직후 이미 몸을 뺀 아네이스가 있던 자리로, 언데드 기사가 내뱉은 혈액이 쏟아져 내렸다.
강한 산성을 띄고 있는 혈액이 바닥에 닿자 치이익- 소리와 함께 연기를 뿜어냈다.
지금까지 벽으로 몰아붙이며 자잘한 상처를 내긴 했지만, 저렇듯 혈액이 산성을 띠지는 않았다.
‘베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어, 그럼.’
거기까지 확인한 아네이스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여태까지 백염이 깃든 상처를 입어서 그런지, 언데드 기사의 움직임은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
하지만 육체의 유지를 포기한 것인지, 놈은 수차례 산성이 섞인 토혈을 내뱉으며 아네이스를 위협했다.
제법 까다로운 상대였으나, 아네이스는 이내 적의 정보를 모두 수집했다고 판단. 토혈을 피한 직후 빈틈을 노려 놈의 목을 베어 버렸다.
‘조금 더 빨리 끝낼걸 그랬나.’
주변으로부터 언데드들의 곡성(哭聲)이 들려왔다.
“아네이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올리시아의 목소리에 아네이스도 기척을 죽이고 두 사람이 숨은 건물로 들어갔다.
반쯤 타다 만 건물이다.
내부는 누군가의 별장으로 쓰였는지, 사람의 흔적은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로 오세요. 안쪽에 비상 통로가 있어요.”
“네.”
이윽고 건물 내부의 특수 장치를 조작하자, 지하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왔다.
세 사람은 그대로 지하실로 들어왔다.
올리시아와 오스튼은 놀란 가슴을 잠시 진정시키고,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겨우 여기까지 도착했네요. 참, 아네이스 님. 여기서는 백염을 피우시면 안 돼요.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는 비상 통로거든요.”
“네. 알겠어요.”
“이런, 인사가 너무 늦었죠?”
“알아요, 황녀이시잖아요.”
“하하…… 이런 꼴이라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하네요. 또,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어떻게 알고 오신 건가요?”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아룬비다의 영주님이 보내셨어요.”
“숙부님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합국의 지하도시 중 한 축을 거느리던 거물이자, 지금은 다시 지상으로 돌라와 당당히 아룬비다의 영주가 된 존재.
제페르 디 퀘이어트 엘라인.
올리시아의 숙부인 그가 아네이스를 어떻게 보낸 걸까?
“혹시 몰라서 제가 요청해뒀습니다.”
“오스튼?”
“엘라인 님의 직속 보좌관에게 해 둔 요청이었습니다.”
“엘리엇이요? 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따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 했었죠?”
“예.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것은 죄송합니다.”
“후우…… 아니에요. 제가 무능했기 때문이죠.”
“황녀님…….”
올리시아의 자책에 오스튼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 했다.
그간 이곳까지 오는 길에 겪었던 수많은 일들이, 올리시아를 변하게 만들었다.
“제가…… 현실을 몰랐어요.”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도 황녀 직속 기사단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수도의 중앙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는 길에 모두 전멸했다.
갑작스러운 언데드들이 상상 이상으로 강했고, 또 그 언데드들에 의해 죽은 이들이 생기면서 동시에 언데드의 숫자도 급격히 늘어난 것이 주된 문제였다.
하지만 그중에는 올리시아의 선택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녀는 죽어 가는 제국민들을 내버려 두지 못했고, 이따금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다 탈출의 타이밍을 여러 번 놓친 것이다.
그럴 때마다 희생된 것은 기사단이었고, 지금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
기사단의 숭고한 희생은 자신이 알아줬을지라도,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올리시아였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행동했더라면.’
올리시아는 살아생전 자신의 이 우유부단한 성격을 이토록 저주한 적이 없었다.
결국 기사단도 모두 잃어버리고, 그동안 지켜 왔던 제국민들도 언데드에게 살해당했으니.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굉장히 이기적이었다.
올리시아의 판단 덕분에 살아남았으면서, 중간중간 올리시아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뻗는 것을 탐탁찮게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올리시아에게 따지는 시민도 있었을 정도였다.
죽음이 바로 앞까지 찾아왔을 때, 그들에겐 황녀의 직위도 통하지 않았다.
거기에 매번 식량 등 생존과 관련된 물자로 인한 갈등도 격해졌다.
심지어 생존에 전혀 쓸모가 없을 돈과 보석 따위가 땅에 떨어져 있어도 그것으로 사람들은 싸웠다.
그럴 때마다 오스튼은 기사단을 활용해 공포로써 그들을 제어하려 했지만, 올리시아가 이를 거부하고 말로 해결하려 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다.
올리시아는 그 무엇도 지키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깊게 베여 있었다.
오스튼은 그런 올리시아를 나무라지 않았다.
누군가는 저런 올리시아의 모습이 답답하게 보일지라도, 그런 군주에게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오스튼과 같은 책략가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이는 오스튼도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올리시아는 언제까지고 좌절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의 눈빛이 다시 살아난 것을 확인한 아네이스가 올리시아에게 물었다.
“수도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그 질문에, 올리시아는 당시 있던 일을 하나씩 풀어냈다.
* * *
“시작은 황실에 있는 영광의 요람이었다고 해요.”
프리실라의 말이 시작되자, 셰인은 조용히 경청했다.
자신이 알던 미래와 달라졌으니까.
“제국에서 영웅 혹은 죽은 황족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묘지로군.”
“네. 그곳에서 처음, 그것들이 나왔어요.”
“언데드라…….”
셰인의 중얼거림에 프리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광의 요람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황족이 아니라면 큰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때만 일반인들에게 개방했으니.
물론 그때도 삼엄한 경비가 함께 한다.
한 번 흑마법사들에게 데여 본 적 있던 제국이었기에, 시체의 관리는 엄중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장소에 들어갈 수 있는 인물은 황족뿐이라는 건데, 그 대목에서 셰인은 범인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황태자인가?”
“아직까진 확인되지 않았지만,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죠. 평소 성소를 관리하는 이들도 용의선상에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황태자라면 일이 커지겠군. 아니라면 상관없겠지만.”
“생각보다 침착하시네요? 아무튼, 영웅의 요람에서 일어난 언데드들은 하나같이 강력했답니다. 제대로 된 대비도 없던 기습이기도 했고요. 시체는 쌓여 갔죠.”
“그들도 언데드로 일어난 건가.”
이래서 언데드는 일반 시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마치 전염병이 창궐하듯, 순식간에 어제의 가족이 괴물이 되어 달려오기 때문이다.
“네. 생각보다 제국의 대응이 늦기도 했어요. 당시 외교를 위해 타국의 사절단이 가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대응에 소극적이라고 들었어요.”
다행히 프리실라는 그린 드래곤을 두고 떠날 수 없었기에 가지 않았지만, 다른 국가의 사절단들은 어떻게 됐는지 알 겨를이 없었다.
“오베른이 일을 잘하고 있는 모양이군.”
“다행히 그렇죠.”
셰인이 거느리던 정보 단체의 전 수장인 애덤은 결국 하이엘 왕국으로 돌아갔다.
그 또한 남은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셰인은 그가 떠나는 것을 막지 않았고, 그 뒤를 이어 프리실라의 오빠인 오베른이 수장의 자리에 앉아 새로운 정보단체가 되었다.
어둠 속에 숨어서 움직이는 다크 엘프들은 여전히 식물과의 교감이 가능했고, 그들은 최고의 정보원이 되어 주었다.
프리실라의 설명이 이어졌다.
“다행히 황녀가 황궁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은 전해져 왔어요. 하지만 그 이후의 소식은 아직…….”
“……2황녀의 움직임은 어떻지?”
“그나마 그쪽하고는 소식이 연결되고 있어요. 아나스타샤 황녀는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때마침 제국의 군단의 일부와 함께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수도 바깥에 있었거든요. 지금은 수도에서 외부로 언데드가 나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어요. 사실 그들의 존재가 가장 컸죠.”
“……그렇군.”
셰인은 자신의 가슴에서 간질거리는 무언가를 느꼈다.
이게 안도감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제법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클라인은 지금 뭘 하고 있지?”
“아나스타샤 황녀와 합류 중이에요. 베첼리 왕국에서 기사의 선언을 끝마치고 일종의 깨달음을 얻어서 그 근방에서 지내고 있었죠.”
이후에도 셰인은 자신이 알던 지인들에 대한 안부를 물었다.
모든 설명이 끝나고, 셰인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셰인이 알고 있던 지인들은 대부분 무사했다. 다만 아직 1황녀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데.
그 부분은 에블린이 있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만약 그들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에블린과 영혼이 연결되어 있는 셰인이 가장 먼저 눈치챘을 테니까.
‘그래도 언제까지 그렇게 둘 수는 없겠군.’
상황 자체만 두고 보자면 최악이었다.
현재 셰인이 가장 의심하고 있는 것은 황태자였으니까.
만약 이번 사태를 황태자가 일으켰다면, 앞으로 인류의 연합에 큰 차질이 생기지 않겠는가.
아마 높은 확률로 각국에서 보낸 사절단들은 전멸했을 것이다.
그러니 제국은 이미 그들에게 신용을 잃었을 터.
그런데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범이 황태자라고 알려진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무명이 날뛰기에 더욱 좋은 조건만 달아 주는 꼴이 분명하다.
“그럼 지금 제국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현재 확인된 바, 제국의 통수권자는 2황녀인 아나스타샤 황녀랍니다. 의외로 이번 사태에서 살아남은 귀족들이 많았는데, 그들 모두 아나스타샤 황녀를 주축으로 두고 움직이고 있어요.”
잠시 잔에 담긴 차를 마시고, 다시금 프리실라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나스타샤 황녀는 지금 바로 수도를 향해 진격할 준비를 하고 있죠. 국가 위기 사태임을 선포하고, 연합국의 모험가들에게 국가급 의뢰를 올려 둔 상태랍니다. 제국 출신의 아카데미 생도들 중 3학년 이상부터 자원 입대를 받고 있어요.”
상황 자체는 좋지 않았지만, 셰인은 그래도 이 부분에서는 긍정적이라 판단했다.
‘전생에 비하면 훨씬 할 만하군.’
전생에는 이렇듯 대비할 시간조차 쥐어지지 않고 수많은 국가가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정도까지 몰리지 않았다.
셰인은 이번 사태를 무명의 발악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나카르 사막의 소식을 들었을 테니, 한 번 시간을 끌 용도로 만든 비장의 한 수일 터.
이번 일만 잘 넘어간다면, 각국에서 무명에 대한 경각심이 임계점에 도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셰인은, 프리실라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현재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가용 가능한 병력은 얼마나 되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