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2)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72화
172화 세르데타인 방어전 (1)
아나스타샤는 조용히 두 눈을 감은 채 이어지는 두 무리의 설전에 귀를 기울였다.
절망적인 상황 앞에서, 그들은 목에 핏줄을 세우며 고함을 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수도로 진격하여 이 이상 피해가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소!”
“그걸 무모하다고 하는 것이오! 이게 단순한 무장 단체에게 수도가 함락된 줄 아시오? 상대는 언데드란 말이오! 한 번의 실패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지고 온단 말이외다!”
“실패만이 적들의 군세를 키우는 줄 아는 것은 아니지 않소! 아직 언데드에게 대항하고 있을 수도의 생존자들은? 비록 수도의 피해가 크다고는 하나, 제국에는 수많은 방공호가 설치되어 있는 걸 모르시오?”
“오, 잘 말하셨구려! 그 방공호에 비축되어 있는 식량은 한 달을 버티고도 남을 정도요! 그러니 지원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는 것 아니오!”
“이이익! 말도 안 되는 소리! 제발 무식한 티 좀 내지 마라! 식량만 있다고 버틸 수 있나? 그 전에 언데드들에게 방공호가 뚫리면 어찌할 건가!”
“무식한 티라고? 전쟁의 ‘전’ 자도 모르는 책상물림들이! 귀족이라 대우해 줬더니, 헛소리로 제국을 위기에 빠뜨리려는 겐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분위기가 과열되고 있었다.
그 주제는 지금 보는 바와 같이 수도로 진격하자는 귀족파와 지원을 기다리자는 군부파로 나뉘어졌다.
차분하게 상황을 관망하던 아나스타샤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
“우리는 방어 체제를 굳힌다.”
“황녀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적의 세력이 더 이상 커지기 전에 진격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무고한 제국민들을 구원해 주셔야 합니다!”
수도에서 생존해 온 귀족들이 발악하듯 외쳤으나, 아나스타샤는 차가운 눈동자로 그런 귀족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제국이 그토록 약하던가?”
“예,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제국이 그토록 약하냐고 물었다.”
“…….”
귀족들은 무겁게 내려앉은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실체 없는 쇠사슬이 되어 자신들을 속박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도 아나스타샤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시장 한복판에서처럼 시끄럽던 지휘실이 침묵에 휩싸이고, 모든 시선이 아나스타샤에게 몰려들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제국은 약한가?”
다시 한번 울린 그 목소리에 귀족들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제국은 인간들이 세운 최초의 왕국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국은 결코 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한순간에 수도가 무너졌지?”
“그, 그건…….”
반박하고 싶으나 이미 수도는 무너졌다.
최초의 왕국이자, 대륙의 유일한 제국의 수도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무너져 내린 것이다.
반박할 여지가 없자, 아나스타샤가 입을 열었다.
“맞다. 우리 제국은 결코 약하지 않지. 수많은 마스터가 황실을 지키고, 대륙의 곳곳을 살피는 뛰어난 인재들이 제국의 국고를 채웠다. 그런데 그 모든 게 하루아침에 무위로 돌아갔군. 왜 이렇게 됐을 것이라 생각하나?”
“사악한 흑마법사들이 사술을 부린 탓에…….”
콰앙─!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아나스타샤가 책상을 내려쳤다.
“고작 사술이라는 변명 따위로 이 제국의 수도가 무너졌다 하는가!”
“……!”
“요는 단순하다! 적이 강했고, 우리가 약했을 뿐! 도대체 얼마나 더 무너져야 그 알량한 자만심을 부술 생각이지?”
“……그, 그건.”
“제국은 강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흑마법사의 마법에 취약했지. 나의 누이이자 제1황녀, 제페르 디 아르샤 올리시아가 누누이 말했다.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그 취약점을 쥐고 있는 적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그런데 여기 있는 경들은 뭐라고 했었지?”
“…….”
“그 잘난 주둥아리에 뭐라 했는지 읊으라 하였다!”
무형의 쇠사슬이 귀족들을 옥죄다 못해 심장을 부술 것만 같았다.
군림하는 자로서 완성되다시피 한 아나스타샤의 영혼에 귀족들이 본능적으로 굴복한 것이다.
“사, 삿된 힘에는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고 했습니다…….”
“그렇다. 그게 경들이 한 말이었지. 그런데 그 결과가 지금 어떻지?”
“…….”
“한 번만 더 내 물음에 침묵으로 답하면 추방하겠다. 다시는 제국의 수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 주지.”
“……그! 수도는, 무너졌습니다…….”
절망하듯 내려앉은 한 귀족의 목소리가 지휘실에 울려 퍼졌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게 아닌 이상, 자신들의 잘못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귀족들이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맞다. 무너졌다. 고작 며칠도 되지 않은 순간에, 제국의 심장은 적에게 빼앗겼지. 다시 한번 묻겠다. 그 이유가 무엇이지?”
“……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맞췄다. 이제는 더더욱 강해졌다. 제국을 수호하던 기사와 마법사들이 적의 손에 넘어갔으니. 그런데도 지금 이 병력으로 진격하자고 말하는 것인가?”
“저희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것은 귀족들이었다.
아나스타샤가 내뿜는 존재감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그들은 그녀가 내뿜는 기세를, 마치 전성기 시절의 황제가 내뿜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더 강하던가.
“그래, 실언이지. 이제부터 그대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경들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설명해 주도록 하겠다.”
그러면서, 아나스타샤의 시선이 어느새 지휘실의 출입구로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 지휘실의 일원들도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지운 채, 로즈베리 눈동자로 지휘실을 훑어보고 있는 사내가 서 있었다.
* * *
확실히 그 지하도시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엘라인의 눈은 정확했다.
아나스타샤가 자신보다 더한 인물이라 했던가.
그녀는 통수권자의 자리에 앉자마자 강력한 카리스마로 군부의 인사들은 물론 귀족들조차 찍어 눌렀다.
그리고 단순히 찍어 누른 것뿐만 아니라, 그 정당성마저 부여하려 하고 있었다.
바로, 셰인을 통해서.
“오랜만에 뵙습니다, 황녀님.”
“그래…… 오랜만에 보는군.”
그 단순한 인사 몇 마디에 눈치 빠른 귀족들이 어깨를 흠칫거렸다.
방금까지 저 북방의 차가운 바람보다도 더 냉혹했던 목소리가, 마치 산들거리는 봄바람이 부는 것 같지 않은가.
본인은 티를 내지 않으려 했을지 몰라도, 눈치 하나로 먹고 살아온 귀족들은 금방 알아차렸다.
셰인과 아나스타샤 황녀의 사이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방금 막 그 사실을 깨달은 귀족들은 당장 누구의 눈에 잘 보여야 하는지 깨달았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한 번 굴복한 상대, 그것도 자신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지니고 있는 자에게는 쉽사리 반감을 품지 않는 습성대로 눈을 조용히 내리깔았다.
“오자마자 이런 꼴을 보여서 미안하다. 하지만, 저들에게 설명 좀 부탁하지. 직접 들어야 인정할 테니.”
“예, 알겠습니다.”
애초에 그럴 예정으로 존재감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던 셰인은, 아직 불신이 섞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몇몇 귀족들에게 시선을 보냈다.
“클레이튼 백작가의 클레이튼 R 셰인입니다.”
“클레이튼 R 셰인……?”
“분명 메자이아 대수림을 수복했던…….”
“검성 클라인의 형이로군…….”
처음에는 웬 젊은 사내가 들어왔나 싶었던 그들은 뒤늦게 셰인의 정체를 알고서야 귀를 기울였다.
“제국의 수도가 단번에 무너진 이유. 그것은 앞서 황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제국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
제국에는 자국의 영웅들을 안치해 두는 시설이 존재했다.
처음 언데드가 나타났던 곳도 바로 그곳, ‘영광의 요람’이라는 안치소였다.
“역대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영광의 요람’에서 일어난 언데드로 인해, 그토록 강인했던 수도의 방어가 깨진 것입니다.”
아무리 제국에서 엄중한 관리를 통해 영광의 요람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죽은 자들이 일어나 자신들에게 덤벼들지 누가 알았을까.
그곳의 경비를 서고 있던 이들도 결코 약하지는 않았으니만큼 쉽게 밀리지는 않았을 테지만,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죽은 이들이 금방 일어나 자신들에게 검을 휘두르니.
당연히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일.
그곳을 시작으로 사방에 퍼져 나간 언데드들은 학살을 자행했다.
그러면서 셰인은 아까까지 진군을 강행해야 한다던 귀족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영광의 요람에 무엇이 있는지 여기 있는 분들은 모르지 않겠지요.”
“……숲의 거인.”
한 귀족의 중얼거림에 다른 귀족들도 침음을 참지 못했다.
숲의 거인이란, 인류가 처음 요람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죽인 산의 주인.
오우거의 왕이었으니까.
처음으로 요람의 핵심을 죽인 인류는, 그 거대한 시체를 제국의 수도로 옮겨 와 박제시켰다.
그 과정에서 오우거 왕을 죽이며 희생된 기사들과 마법사들도 함께 묻은 것이다.
그게 바로, 영광의 요람의 첫 시작이었다.
“지금 이 병력으로, 숲의 거인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그때와 다르게 기사들의 수준도 높아졌고, 마법 또한 발전해 왔으니까.
하지만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을 것이고, 덩달아 그게 끝이 아니다.
“숲의 거인을 넘어 그 뒤에 있는 흉수에 다다를 수 있겠습니까. 수백만이라는 숫자의 언데드마저 넘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불가능하오.”
결국 귀족들이 다시 한번 항복 선언을 내뱉었다.
아나스타샤의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 * *
차가운 겨울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의 계절을 생각하면 당연한 소리겠지만, 그래도 그 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품에 안겨 온 아나스타샤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싼 셰인이 입을 열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다행.
셰인은 본인이 한 말을 떠올리며 실소를 머금었다.
자신답지 않게 평소보다 바쁘게 돌아다녔다.
본래의 성격대로라면 좀 더 시간을 두고 상황을 관조하며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무명과의 전쟁을 위해 죽으면 안될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셰인은 다급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방금 막 스스로가 무의식중에 내뱉은 말이 진심임을 깨달았다.
자신은, 나는 눈앞에 있는 이 여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그런 셰인의 진심을 느낀 것인지, 품에 안긴 아나스타샤도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그대를 침실로 데려가고 싶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참겠다.”
“…….”
그렇게 셰인의 품에서 빠져나온 아나스타샤는 창가로 다가갔다.
해가 바뀌었건만, 아직 차가운 겨울바람이 남아 있다.
아나스타샤는 그런 차가운 바람을 맞이하며 입을 열었다.
“마치 그때가 떠오르는군.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후후. 이번에도 그대가 있으니 이 또한 지나갈 터. 그래, 가서 한 일은 잘 되었나?”
“예. 아직 공식화되진 않았지만, 나카르 사막의 요람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렇군…… 그곳은 아룬비다와 정반대라지.”
“사시사철 뜨거운 태양이 땅을 메마르게 하지요.”
“힘들었겠군.”
한차례 셰인과 영혼의 교감을 나눈 아나스타샤는 그 사이 셰인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성장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있었을 것이다.
“오자마자 미안하게 됐다. 결국, 이 사달을 막지 못 했어.”
문득 아나스타샤의 얼굴이 잔득 굳었다.
지금도 간혈적으로 튀어나오는 언데드를 상대하기 위해 성벽 밖에서 병사들이 전투를 이어 가고 있었다.
저 멀리서는 죽은 언데드의 시체를 태우며 하늘 높게 검은 연기가 올라가는 중이다.
하루아침에 뒤바뀐 풍경.
아룬비다만큼이나 제국을 사랑하는 아나스타샤였기에, 멀쩡한 척하고 있었지만 내심 마음은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 상황을, 뒤집을 방법이 존재하나?”
그런 아나스타샤의 물음에, 셰인은 답했다.
“이미 반격은 시작되고 있습니다, 황녀님.”
수도가 위치한 방향의 정반대편.
성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황금빛 마력의 주인을 떠올리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