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73화
173화 세르데타인 방어전 (2)
처음 클라인이 세르데타인에 도착했을 순간 느낀 것은, 무겁다 라는 감정이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거웠다.
클라인은 이러한 풍경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아룬비다에서 오크들의 남하를 코앞에 뒀을 때 이러했고, 무명이라는 단체의 테러 사태 당시 이를 대비하던 이들의 표정이 이러했다.
그런 분위기 속을 가로지르며 성벽에 도착한 클라인.
잔뜩 굳은 얼굴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는 신분증을 확인하곤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거, 검성 클라인!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병사의 목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검성? 진짜 그 검성이라고?”
“콧대 높은 베첼리 왕국에서 받은 이명이라잖아.”
“그만큼 대단한 무위를 보였다지…….”
몇몇 소문에 민감한 병사들은 금방 클라인을 알아보고는 표정이 밝아졌다.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검성이라는 명성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저 메자이아 대수림을 클리어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쌓았고, 아룬비다에서도 단신으로 수많은 오크들을 베어 넘겼으며, 무명이라는 단체의 테러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지 않았던가.
뿐만 아니라 대륙적으로도 유명한 기사의 선언에서 뛰어난 능력을 선보이며 제국의 기상을 높여 준 존재.
이제 겨우 성인이 되는 나이에, 대륙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클라인은 그 존재만으로도 지친 병사들에게 희망을 안겨다 주었다.
그런 클라인의 뒤로, 주변을 호위하듯 날카로운 인상을 한 청년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청년의 등에는 저걸 혼자 다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무기들이 걸려 있었는데, 크게는 장창과 단창, 쌍검과 단검이 몸 이곳저곳에 걸려 있었다.
순박했던 시골 청년, 알렉스였다.
지난 3년 동안 클라인과 함께 다니며, 알렉스 또한 결코 적지 않은 경험을 쌓아 왔다.
테러 진압 과정에서 한 차례 사경을 헤매고, 거기서 얻은 깨달음을 기사의 선언에서 마음껏 풀어낸 알렉스는 이제 제법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알렉스의 기세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고, 클라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그렇게 경계할 거 없어.”
“아닙니다. 오는 길에도 언데드의 습격을 수차례 받지 않았습니까.”
알렉스의 말에 클라인은 반쯤 포기했다는 듯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테러 사태에서 불의의 기습을 받은 이후, 알렉스는 어지간해서 긴장을 놓지 않는 습관을 들였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걷기를 얼마, 영주성에 다다르자 클라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 멀리서 반가운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형님!”
“클라인.”
한 달음에 셰인의 앞까지 도착한 클라인은 환한 미소와 함께 셰인의 앞에 섰다.
알렉스도 그런 셰인의 무사한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알렉스. 이젠 제법 강해졌군.”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이 동경하는 귀족에게 칭찬을 받았기 때문일까, 알렉스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클라인. 너도 많이 성장했구나. 몰라보겠는걸.”
“하하. 그러는 형님도 성취를 이루신 것 같습니다. 기세가…….”
마력에 민감한 클라인은 셰인이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음에도 그로부터 거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이야기는 들었다. 기사의 선언에서 우승을 했다지. 거기서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구나.”
“예. 정말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싸우는 사람이 많더군요. 알렉스도 그곳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부끄럽습니다.”
3년 전만해도 아직 어린 티가 제법 남아 있던 두 사람은 어느새 듬직한 성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셰인의 눈이 클라인의 허리춤에 닿았다.
“그게 그 검이로구나.”
“예. 그때 제게 제일 이끌리는 물건을 집으라고 하셨지요.”
“맞다. 제대로 골라 왔구나.”
그런 클라인의 허리춤에는 못 보던 검이 매어져 있었는데, 새하얀 검집 위로 화려한 장식이 달려 있었다.
클라인이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자, 새하얀 검신으로부터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지는 검입니다. 혹시 이 검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알지. 잘 알지.”
아무렴, 전쟁에 자신의 심장을 꿰뚫었던 성검에 대해 모를 리가 있을까.
* * *
셰인은 클라인과 알렉스를 데리고 영주성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고용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사이, 한참 군단의 간부들과 함께 작전을 이어 가던 아나스타샤가 그런 셰인과 클라인을 환영했다.
“기사의 나라에서 검성으로 인정받은 이가 왔군. 환영한다.”
“황녀님을 뵙습니다.”
“화, 황녀님을 뵙습니다.”
“음. 먼 곳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가 많았다. 셰인. 둘에게 머물 곳으로 안내해 주고 다시 와 주겠나? 상의할 게 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짐을 풀고 다시금 아나스타샤에게 찾아간 셋은 현재 전장의 상황을 듣게 됐다.
“이건 정찰조에 소속된 마법사가 패밀리어 마법으로 수도 상공을 관찰한 결과다. 아무래도 대대적인 언데드의 공습이 예상된다고 하더군. 한데, 그 마법사에 의하면 언데드의 움직임이 조금 이상하다는데. 셰인, 혹시 알고 있는 게 있나?”
군단 출신의 마법사가 촬영해 온 영상을 확인하던 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해당 마법사는 흑마법사를 상대해 본 경험이 다수 있는 모양이었다.
“흔히들 흑마법사는 물량전에서 뛰어나다고 합니다. 하지만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이에게는 그리 효과적인 마법은 아닙니다.”
흑마법사는 시체를 되살리는 탓에 전쟁에서 효과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무적인 것은 아니다.
일단 그 수많은 언데드를 통솔하는 것에도 상당한 기교가 필요한 법이고, 더군다나 생전에 뛰어난 경지에 도달한 자의 시체를 되살리는 일은 더더욱 마력이 소모된다.
거기에 더불어 언데드를 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변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데, 최근 정찰조의 말을 들어 보면 여태까지 흑마법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침공이 예상된다고 하니, 보고를 올린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일반적인 흑마법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 언데드 군단을 먼 거리에서 다루려면, 최소한 엘더 리치는 되어야 할 겁니다.”
“엘더 리치라…… 성가시겠군.”
전설에나 등장한다던 엘더 리치.
불멸의 삶을 살아가는 놈은, 자신의 영혼을 라이프 베슬이라는 그릇에 담아 놓는다.
때문에 본체를 죽인다 한들, 라이프 베슬만 남아 있다면 언제든지 부활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수도로 진격하는 언데드의 수는 대략 150만으로 추정된다.”
“150만…….”
“압도적인 숫자지.”
수도 에키온에서 거주 중이던 거주민의 절반가량 되는 숫자다.
“문제는 놈들이 사방에서 몰려들 것이란 사실이다. 그러나 당장 우리로서는 전 병력을 세르데타인에 묶을 수 없지.”
“다른 영지로 가는 길목은 여전히 막아둬야 하기 때문이군요.”
“그렇다. 반대로 놈들은 세르데타인의 성벽을 포위하고 장기전으로 갈수도 있다.”
언데드와의 전투에서 장기전이라.
보급의 문제는 포탈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지만, 체력적인 문제는 그렇지 않다.
지치지 않는 언데드 군단은 그야말로 쉴 새 없이 몰아칠 테니.
“물론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일단 외부에 지원을 요청해 뒀으니, 그 병력만 온다면 놈들을 몰아내는 것도 어렵진 않겠지. 더불어 반격도 가능하다.”
수도가 함락되고 어느덧 보름이라는 시간이 흐른 만큼, 다른 영지가 군대를 일으키기 위한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적들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터. 결과적으로 우리는 17만이라는 숫자로 150만 언데드 대군을 막아야 한다.”
그때, 클라인이 손을 들며 물었다.
“적들이 다른 길목으로 병력을 집중한다면 어떻게 대처하실 예정이십니까?”
“좋은 질문이군. 하지만 그 부분도 계산에 뒀다. 수도에서 세르데타인을 제외한 다른 길목은 그 크기가 넓지 않지.”
몇만이라면 모를까, 백만이 넘는 숫자의 언데드가 한 번에 다닐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세르데타인은 수도로 향하는 중요 요충지다. 적들도 하루빨리 세르데타인을 함락시키고 싶을 터.”
적어도 그렇게 된다면, 제국은 수도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게 될 터였다.
“언데드 군단이 도착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길어야 이틀. 지원군이 도착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더 걸릴 터.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세르데타인을 성공적으로 방어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로군요…….”
하지만 이번 방어전만 잘 넘어간다면, 반격의 때가 돌아온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셰인은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 듯 보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황녀님. 이곳에 오기 전 구상해 둔 계획이 있습니다만…….”
“계획? 어디 한번 들어 보도록 하지.”
그리고 이어지는 셰인의 계획에 아나스타샤가 허탈하게 웃었다.
“전쟁은 돈으로 치르는 것이라더니. 그 말이 제대로 맞았군.”
* * *
“바깥의 상황은 어떤가요?”
작은 발광석 하나에 의지하며 지하실에 도착한 올리시아가 묻자, 아네이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많아요.”
“……역시 그렇군요.”
수도에 황족들만 알고 있는 지하 벙커에 도착한 세 사람은 하루 동안 주변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수도를 탈출할 계획이었으나, 아직까지 인근에는 언데드가 무수히 많은 상황.
“어쩔 수 없이 지하 통로를 이용해야겠군요.”
“예…… 별다른 방법이 없을 듯합니다.”
올리시아의 말에 오스튼도 동의했다.
당장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지하 벙커이지만, 자칫 언데드에게 들통나면 도망칠 장소가 없어진다.
“영광의 요람에서 언데드가 처음 출몰했으니, 적어도 상대가 황실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다 판단됩니다.”
오스튼의 생각처럼, 상대는 그토록 방비가 단단한 수도를 며칠도 채 되지 않아 함락시켰다.
아무리 언데드가 강력하다고는 하나, 제국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지 않나.
그렇다면 적 또한 이곳의 위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네이스의 생각은 어떤가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점점 주변에 언데드가 모이는데, 숫자도 숫자지만 강력한 언데드도 제법 보였어요.”
“네, 그럼 지체하지 말고 움직여야겠어요.”
더 이상 지하 벙커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한 세 사람은 곧 지하 통로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자 퀴퀴한 지하의 냄새와 함께, 드문드문 퍼져 있는 발광석이 어두운 통로를 밝혔다.
아네이스가 선두로 걷고, 올리시아와 오스튼이 그 뒤를 따라갔다.
주변을 경계하기를 잠시, 주변에 언데드가 없는 것을 확인한 일행이 안도의 한숨과 함께 움직이려던 찰나.
“우선 외부로 나가는 길을──.”
그아아아─!
크아아아아─!
끄륵! 끄르르륵─!
“……아무래도 한발 늦은 모양이에요.”
그리 멀지 않은 방향에서 들려오는 언데드의 괴성.
이대로 다시 뒤로 돌아가야 하나 싶던 그때.
“싸우고 있어요.”
“네?”
“싸우는 소리가 들려요.”
“아……! 그럼 다른 생존자가……?”
수도 전역에 퍼져 있는 지하 통로이다 보니, 누군가 언데드에게 쫓겨 들어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숫자는 얼마나 되는 것 같습니까?”
오스튼의 물음에 아네이스가 감각을 주변으로 퍼뜨렸다.
“혼자예요. 그런데 이 기운은…….”
어디선가 겪어 본 적 있던 기운에 아네이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적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혹시 알고 있는 분인가요?”
“어쩌면요. 아마…… 적은 아닌 것 같아요.”
아네이스의 판단을 믿은 세 사람은 곧장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가는 길 도중에 쓰러져 있는 언데드의 모습들이 보였다.
통로를 가득 채운 언데드들은 하나같이 미라처럼 말라 비틀어져 죽어 있었다.
“이건…… 역시.”
그리고 그런 시체들의 위로 자상과 함께 피어 있는 보랏빛 꽃.
아네이스는 이러한 형태의 시체를 본 적이 있었다.
“다크엘프.”
“찾았군.”
그때, 전방에서 검을 든 남자가 걸어 나왔다.
보랏빛 피부에, 뾰족한 귀를 가진 남자.
“제국의 1황녀. 제페르 디 아르샤 올리시아. 맞나?”
다크엘프의 수장, 오베른이 보랏빛 꽃무더기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