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74화
174화 세르데타인 방어전 (3)
“1황녀의 신변을 확보했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오스튼이라는 1황녀의 측근과 저지먼트 기사단 소속의 아네이스 기사가 함께입니다. 셋 모두 무사하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군.”
별이 가득 떠 있는 늦은 시간이었지만, 여전히 성벽 밖에서는 생자의 기운을 느끼고 다가오는 언데드를 상대 중인 병사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 황금빛 오러를 뿌리며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금발의 사내가 보였다.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간결하게, 그러면서 아군이 불리한 장소에는 시기적절 나타나 일당백의 무쌍을 선보인다.
그런 클라인의 활약을 바라보며, 셰인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다크엘프에게 말했다.
“말해뒀던 물자는 어떻게 됐지?”
“가문에서 물건을 옮기는 작업은 착수했습니다.”
“지원은?”
“물자 확보는 끝났고, 이틀 안으로 출발 준비를 마친다고 합니다.”
“이틀이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그 시간 동안 이곳 세르데타인을 방어해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셰인은 다시 한번 클라인이 활약 중인 전장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셰인은 문득 전생을 떠올리며 웃었다.
“괜한 걱정을 하고 있었군.”
이보다 더 한 시련도 이겨 온 클라인이 있는 마당에 무엇이 두려울까.
이내 클라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방으로 돌아가며 셰인이 말했다.
“계획대로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 * *
탐욕스럽게 쌓인 황금처럼 빛나는 금발을 가진 사내는 당당하게 황궁의 복도를 걸었다.
황궁의 복도는 그의 금발처럼 찬란하기 그지없어야 했지만,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
지금은 붉은 피가 낭자하여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복도뿐만이 아니다.
제국의 위상을 가리키는 동상과 미술품 따위도 모조리 피에 물들어 휘황찬란했던 황실의 영광이 밑바닥으로 내려앉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사내는 거기에 조금도 개의치 않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야 사내의 눈은 이미 이 복도보다도 진한 핏빛을 띈 채였으므로.
그의 눈에는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복도였다.
이윽고 그가 황제의 처소로 향하는 길. 이름바 로열 로드를 거닐었다.
또각, 또각.
품위 있는 발걸음이 로얄로드 위로 새로운 핏자국이 남는다.
그런 그의 발걸음은 붉은 융단을 가로질러, 황제의 처소 앞에 도달했다.
끼이이이…….
그렇게 문을 열었을 때, 여태까지와 걸어왔던 길과는 다르게 말끔한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넓은 방의 중앙. 거대한 침대 위로 왕관을 쓴 노년의 남자가 두 눈 부릅뜬 채 그런 금발의 사내를 기다렸다.
남자의 앞까지 다다른 금발의 사내가 무릎을 꿇고 미소를 지었다.
“위대한 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새뮤얼.”
노년의 남자, 황제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얼굴로 자신의 아들, 제페르 디 와이어트 새뮤얼을 바라봤다.
언제나 깔끔한 차림으로 옷 위로 먼지 한 톨 앉는 것을 싫어했던 자신의 아들은,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로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직도 생각이 바뀌지 않으셨습니까?”
“몇 번을 봐도, 내 대답은 똑같다…… 쿨럭, 쿨럭!”
노쇠한 황제는 기침을 막았던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탁한 빛을 띠는 피가 한가득이다.
새뮤얼은 유독 그런 황제의 피 냄새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영명하신 황제 폐하. 이제 그만 결단을 내려 주시지요. 과거, 그토록 원하던 시간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바란 것은, 이딴 게 아니었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우리 제국의 잘못된 단추가 드디어 채워졌습니다. 부디 제가 그 광경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썩 꺼져라!”
“…….”
과격한 거부의 표시에도 새뮤얼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아직, 준비가 되시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폐하. 아무쪼록 그 시간이 그리 남지 않았음을 인지해 주십시오.”
“…….”
“그럼, 이만 말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옥체를 보존하시옵소서.”
그리 말을 마친 새뮤얼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트를 한 차례 휘날리고는 방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문이 닫히자, 비릿한 혈향이 황제의 처소를 맴돌았다.
* * *
언데드 대군과의 격돌이 그리 멀지 않았다.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언데드 군단은 질서정연한 행렬을 유지한 채 세르데타인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나스타샤가 자신의 오랜 부관, 미미르에게 물었다.
“놀랍군. 언데드가 저토록 군단처럼 움직이다니.”
“예. 제가 보기에도 믿기지가 않는군요.”
정찰조의 마법사가 패밀리어를 통해 보내오는 영상을 바라보며, 둘은 할 말을 잊은 채 점차 다가오고 있는 언데드 군단을 바라봤다.
“이전, 셰인이 말했던 것처럼 엘더 리치라도 나타난 것일까요?”
“……글쎄. 그 얘기에 대해서는 왠지 피하는 것 같더군.”
아나스타샤의 목소리가 내려앉자, 방문이 닫혀 있음에도 서늘한 바람이 흘러들어오는 듯했다.
최근 미미르는 이런 아나스타샤를 보는 재미에 살고 있었다.
지금 같이 전쟁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기엔 조금 그렇겠지만, 귀엽지 않은가.
누군가에게는 화가 난 모습처럼 보이겠지만, 오랜 시간 아나스타샤를 섬겨 온 미미르는 알고 있었다.
저 표정은 삐친 표정이란 것을.
한평생 살면서 저런 얼굴의 아나스타샤를, 그것도 남자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짓는 아나스타샤를 보게 될 줄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던 미미르는 그저 기쁠 따름이었다.
“그 녀석, 가끔은 내게 뭘 자꾸 숨기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
“하하, 흔히들 비밀이 많은 남자일수록 매력적이라곤 하지만, 그건 여심을 전혀 모르고 하는 말이지요.”
“흥…….”
그렇게 한동안 마법사가 보내오던 영상을 지켜보던 도중, 미미르가 눈썹을 찌푸렸다.
“황녀님. 저기, 보이십니까?”
“음…… 언데드 마법사인가?”
“비슷합니다. 아무래도 리치처럼 보이는군요.”
“리치라…….”
엘더 리치처럼 라이프 베슬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심장의 마력핵을 깨부수지 못하는 이상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저주와 뛰어난 통솔 능력을 보이는, 굉장히 까다로운 언데드다.
하지만 그걸 발견한 두 사람의 표정은 애매했다.
“셰인은 분명 리치가 무리를 통솔하면…….”
“오히려 좋은 신호라고 했지요.”
“리치는 엘더 리치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점에서 쓰는 방법이라고 했었지.”
“예.”
역설적이게도 까다로운 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만큼 적도 준비를 많이 했다는 의미였다.
“전 병력,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런가. 워프 게이트의 존재가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군.”
제국의 위기에 발 벗고 나선 것은 비단 주변의 영주들만은 아니었다.
상인으로서 귀족이 된 이들 또한, 자신들의 신분을 지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상황.
덕분에 17만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병력이 쓸 식량과 장비는 지금도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지. 세르데타인의 방어전을.”
* * *
콰아아아앙──!!
포신이 불을 내뿜는 소리가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매캐한 냄새가 전장을 훑고 지나가고, 망자들이 산자를 향해 다가온다.
포화의 불길이 치솟음에도 불구하고 언데드들은 한 치의 두려움 없이 전진해 나갔다.
사방으로 육편이 터지듯 흩어지고, 부패한 시체의 냄새가 그런 육편을 따라 움직인다.
“후욱, 후욱……!”
“와라, 이 개새끼들아……!”
“어머니…….”
병사들은 핏줄이 선 눈빛으로 그런 언데드들을 노려봤다.
저들이 며칠 전만 해도 함께 살아가던 인간이라는 사실은 애초에 사라졌다.
이제 와서는 자신들을 죽이러 오는 괴물에 불과함을, 그들은 지난 보름간의 전투에서 깨달았다.
한 차례 대포의 포화가 끝나고.
보다 성벽에 가까워진 언데드들을 향해 궁병들이 시위를 당겼다.
피피피피피핑─!
활활 타오르는 불화살이 마치 별똥별이 떨어지듯 밤하늘을 수놓으며 언데드 대군을 향해 날아갔다.
수만 발의 화살이 허공을 가로지르며 언데드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 탓에 건조해진 언데드는 마치 잘 타는 장작처럼 순식간에 불이 옮겨 붙었다.
그아아아아아─!
크르르륵, 끄륵!
쉬익, 쉭!
하나의 시체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이내 다른 언데드에게 옮겨 붙고, 포화 속에서도 거침없던 언데드의 발걸음이 멈췄다.
이윽고 살점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폭약의 냄새와 뒤섞일 때쯤.
저 멀리 보이는 리치의 주변으로 흑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주문이 완성되자, 불에 타 바닥에 쓰러졌던 언데드들이 일어선다.
검게 눌어붙은 안구 대신 붉은 귀화가 흘러나오고, 타들어 간 살점이 떨어져 내리며 허연 뼈가 드러났다.
스켈레톤이었다.
흑마력으로 강화된 단단한 뼈로 인해 불화살마저 별 효용을 못 보자,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다.
성문 앞에 준비된 거대한 나무 방책에 의지해, 병사들이 각자의 자리를 잡아 자신들의 무기를 꽉 쥐었다.
이윽고 스켈레톤이 방책에 다다른 순간.
“으아아아아!!”
“죽어, 개씨발놈들아!!”
“후욱, 후욱……!”
방책 사이로 난 틈을 향해 수천 명의 병사들이 창을 내질렀다.
며칠 전부터 공수해 온 새 창이 스켈레톤의 전신을 두드렸다.
흑마법사로 인해 강화된 뼈가 여기저기 금이 갔다.
파마의 힘이 담긴 은이 함유된 합금 창.
셰인이 직접 자신의 가문인 클레이튼 영지에서 공수해 온 물건으로, 수천 명의 병사들이 모조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 전술이었다.
그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은의 기운이 담긴 언데드는 쓰러져서 더 이상 일어서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압도적인 물량을 가진 언데드들은 같은 언데드의 몸을 밟고 방책을 올라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씩 방책을 넘어오기 시작할 무렵, 검과 방패를 든 병사들이 곧바로 언데드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병사의 목을 뚫고 스켈레톤의 손뼈가 튀어나왔다.
“꺼억, 끄르륵……!”
피거품을 일며 쓰러진 병사의 주변으로 검은빛의 흑마력이 일렁거렸다.
“제이! 이런 씨발……!”
쓰러진 병사는 사시나무 떨듯 경련을 일으키더니, 바로 옆에 있던 병사의 발목을 잡았다.
방금 막 동료를 죽인 스켈레톤을 처리한 병사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옆 자리에서 자고 있던 동료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그으윽, 그아아아……!”
“너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해 주마.”
이내 두 눈을 꽉 감은 병사는 검을 휘둘러 죽은 동료의 목을 내려쳤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곳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스켈레톤을 효과적으로 막고 있었지만, 문제는 너무도 압도적인 적의 수였다.
밑의 동료들이 깔리든 말든, 놈들은 같은 언데드의 몸을 타고 계속해서 방책을 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언제까지 막을 수 있을지 모를 상황.
그때, 무언가가 허공을 가로지르는 순간.
솨아아아아아아─
전장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