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6)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76화
176화 세르데타인 방어전 (5)
금빛 섬광이 잿더미로 변한 전장을 가로질렀다.
목표는 아직 천벌의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한 열하나의 리치 무리.
그런 클라인의 접근을 눈치챈 리치들이 곧바로 흑마력을 일으켰다.
거기에 제대로 활용조차 하지 못한 시체 거인의 잔해로부터 나온 사기(邪氣)가 더해졌고.
열 하나의 리치들은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 흑마법을 연쇄시켜 수십 가지의 저주를 클라인에게 쏟아부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발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며, 피부가 메마르고, 속이 뒤틀리는 저주의 덩어리.
보통 사람이었다면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도 못하고 죽어 버릴 수준의 흑마법이 클라인을 향해 다가왔으나.
클라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검집에서 성검을 뽑아 들었다.
츳-
찰나의 순간, 허공에 빛이 번쩍였다.
그런 클라인을 향하던 검은 저주 덩어리는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그대로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허공에서 수십 조각으로 나뉘어 찢어지며 소멸하고 말았다.
―――?!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의 일검에 리치들의 안광이 크게 흔들렸다.
뛰어난 검사가 마법을 베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겠으나, 방금 열하나의 리치가 준비한 흑마법은 단순히 벤다고 사라질 마법이 아니었다.
시체 거인의 사기를 매개로 하여 정교하게 짜 올려진 마법의 연결체였으니까.
이는 중심의 사기를 소멸시키지 않는 한 결코 파훼할 수 없는 마법이었다.
그런데 그게, 단 일검에 파훼되다니?
어지간히 뛰어난 마스터조차 한 번에 털어 낼 수 없을 흑마법을?
하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그딴 게 아니었다.
열하나의 리치가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클라인의 돌진은 멈추지 않았으니.
아직 거리는 한참 남은 상황.
강력한 언데드를 일으킬까 싶었지만, 클라인이 뿜어내는 심상찮은 마력은 급조해 낸 언데드 따위론 대응할 수 없어 보였다.
그리 판단한 리치들은 서로 이어진 정신체를 이용해 다시 한번 흑마법을 일으켰다.
하나로 뭉친 흑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여러 갈래로 퍼뜨리면 될 뿐.
배트 스웜(Bat swarm)&포이즌 클라우드(Poison Cloud).
서먼 버그(Summon bug)&데드 샷(Dead shot).
독을 품은 박쥐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들었다.
사아아악―
클라인의 검이 빛처럼 휘둘러지자, 전류와 같은 금빛 마력이 수십 마리의 박쥐를 터뜨렸다.
터져 죽은 박쥐의 시체에서부터 독구름이 생성되어 클라인을 덮쳤다.
클라인이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독구름을 양단하자, 그 사이로 생로(生路)가 만들어졌다.
위이이이이이잉―
그런 클라인을 다시 한번 맞이한 것은 수천 마리의 벌레들이었다.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흡충.
그러자 클라인을 중심으로 일대의 마력이 무겁게 내려 앉았다.
억눌러 왔던 클라인의 마력이 주변으로 퍼지면서, 농후해진 마력이 흡충의 날갯짓을 저지했다.
수천 마리의 흡충이 바닥에 짜부라지기 직전.
흡충 떼는 마치 탈피를 하듯 껍질을 벗겨 내더니, 수천 다발의 화살로 변모해 날아들었다.
그리고.
사아아-
클라인은 자신의 심상에 퍼진 검로를 그려 냈다.
3년 전.
아룬비다에서 승천한 검은 용을 부렸던 가면의 사내.
그가 소환해 낸 수백 자루의 검이 그려 냈던 검로가 클라인의 심상 세계에서 재현됐다.
‘그건, 마치 검으로 만들어 낸…… 방패였지.’
가면의 남자는 자신에게 향하던 오크들의 모든 공격을 분쇄했었다.
그 광경을 자신의 방식대로 소화해 낸 클라인의 팔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나의 팔로 수백의 검을 재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경로라면 기억하고 있었다.
파앙―!
수많은 죽음의 화살이 클라인의 검에 맞닿는 순간.
화살은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튕겨 나가 다른 경로의 화살과 부딪혔다.
파바바바바바박―!
클라인의 검이 닿는 곳마다 그런 현상이 이어져, 이윽고 수천 발의 데드 샷은 클라인이 그린 경계를 넘지 못하고 자멸했다.
거기까지 다다른 시간은, 고작해야 1초.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수천 발의 데드 샷이 혼자 소멸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윽고 이어지는 수많은 흑마법도 클라인의 옷깃 하나 건들지 못한 채 사그라진다.
그리고.
채 100미터도 남지 않은 거리까지 리치들과 좁혀진 순간.
콰아앙―!
땅을 박차며 클라인이 도약했다.
* * *
클라인의 검이 유려한 검로를 그리며 가장 앞에 있던 리치의 가슴을 스쳐 지나갔다.
그야말로 아차 하는 사이에 마력핵을 파괴당하고 쓰러지는 리치.
―――!!
동료의 죽음에 리치들은 블링크로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이미 클라인의 검은 한 차례 더 휘둘러진 상태였고,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두 두 리치가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남은 리치들도 가만히 당하지만은 않았다.
거리를 벌린 그들은 곧바로 다양한 저주와 공격 마법을 펼치며 반격에 나섰고, 클라인의 검은 다시 한번 유려한 움직임을 보이며 방어에 전념했다.
한 번의 방어 이후 곧바로 이어지는 반격.
하나하나가 리치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과연, 용사다운 자질이구나.”
전생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겪지 않아도, 그저 비슷한 경험만으로도 클라인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신성이 익숙해진 지금, 셰인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클라인은 애초에 하나의 격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을.
여기서 그 격이라는 것은, 신성을 뜻했다.
고작 인간이 신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가.
이 또한 인간들의 신, 아카샤의 그림이었던 걸까? 그렇다면 자신의 회귀도 그가 관여한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셰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장 생각해 봐야 의미도 없을뿐더러, 그 결과를 안다 하더라도 자신이 앞으로 행할 일에는 차질이 없을 테니.
그렇게 셰인이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또 하나의 리치가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셰인은 문득 지난 삶이 떠올랐다.
질투의 자아에 잠식되었던 셰인에게 클라인은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였다.
클라인이 휘두르는 성검.
아마 저것은, 클라인이 가진 격을 일깨우기 위해 마련된 장치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성이 담긴 채 휘둘러지는 클라인의 검은, 세계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세계가 허락하지 않은 힘은 클라인의 검 앞에서 무용지물이었으니.
저 언데드들에게 만약 감정이 있었더라면, 필시 그 감정은 당혹감과 무력감으로 점철됐을 것이다.
전생에 질투의 자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한편 클라인의 뒤로 펼쳐진 전장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죽여, 전부 죽여 버려!
이 빌어먹을 언데드 새끼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함성 소리.
그에 힘입어 기사들도 쓰러진 구울들을 마무리 짓고, 병사들의 템포에 맞춰 전장을 휘저었다.
전체적으로 이쪽에 유리한 방향.
이번 전투로 소모된 언데드의 수도 십수만에 달할 수준이었으니, 매우 성공적인 방어전이었다.
“흐음.”
그리고, 재가 흩날리는 성벽에 선 셰인은 그런 전장의 상황을 지켜봤다.
“당장 보기에는 유리해 보이는군요.”
그때, 그런 그의 뒤로 미미르가 다가왔다.
“황녀님의 곁을 지키셔야 하지 않습니까?”
“제가 말입니까? 농담도.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성장하셨는지 직접 보면 놀라실 겁니다.”
미미르의 말에 셰인도 옅은 미소를 띄웠다.
전장에서 황금빛 마력을 흩뿌리며 리치들을 각개격파 하고 있는 클라인만 성장해 온 것이 아니다.
지난 3년 동안 아나스타샤도 스스로의 단련에 매진했고, 최근에는 직접 군단을 이끌며 깨달음을 얻은 상태.
거기에 더해 아무런 매개체도 없이 오리진을 썼던 예전과 달리, 대지의 정령과 계약한 아나스타샤는 그 누구보다 튼튼하면서도 묵직한 한 방을 가지고 있었다.
‘분노의 군단장과 싸워도 해볼 만하겠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미미르가 물었다.
“이번에는 승리했습니다만, 여전히 좋지는 않군요.”
“그럴 겁니다.”
이번 전쟁에서 적들의 언데드 소모를 상당 수 이끌어 내긴 했지만, 고작 해 봐야 10분의 1정도 꺾은 수준이었다.
이런 전투를 9번이나 더 지속하라고?
웃기지도 않을 소리.
지금 같은 군대의 사기라면 기껏해야 2번에서 3번이 최대다.
거기에 여전히 수도에는 수많은 언데드가 흑마력을 흘려 가며 생자를 찾아 떠도는 상황이지 않은가.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단계였다.
“패밀리어를 다루던 마법사가 쓰러졌습니다.”
“피격당한 모양이군요.”
“예.”
정찰조에 들어가 있던 마법사의 패밀리어가 죽은 탓에, 그 여파로 마력이 꼬여 쓰러진 마법사.
이후 더더욱 정찰이 힘들어질 예정이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만, 회복을 하려면 최소 하루 이상은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말을 하는 미미르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말이 회복이지, 사실 패밀리어로 다루던 소환수가 죽으면 육체적인 상처보다는 정신 쪽 피해가 더 크다.
과연 쓰러진 마법사가 깨어나고서도 이전처럼 정찰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마지막으로 남긴 영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애초에 본론이 이쪽이었는지, 미미르는 쓰러진 마법사가 촬영해 둔 영상구를 셰인에게 넘겼다.
그곳에는, 세르데타인에서 수도 에키온으로 향하는 길목이 찍혀져 있었다.
저 멀리서 높게 솟아오른 황성이 보이고, 그 밑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의 언데드들이 넓게 퍼진 모습이 보였다.
“…….”
그때, 저 멀리 황성에서부터 붉은 기운의 파도가 터져 나와, 수도 전체로 넘실거렸다.
그 장면이 패밀리어 마법사가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황성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
“셰인?”
“…….”
그리고, 셰인은 잠시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다 조용히 중얼거렸다.
“질투.”
그 붉은 기운은, 셰인에게 너무도 익숙한 종류의 것이었다.
* * *
혈향이 만연하는 황실의 복도.
피가 튄 창문을 통해 새벽의 하늘이 붉게 물들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과거의 영광은 어디로 갔을까.
그 편린만이 보이는 복도를 따라, 황태자 새뮤얼이 황제의 처소 앞에 섰다.
끼이이이이―
최근들어 자주 듣는 이 소리가 과거에는 왜 그리 두려웠을까.
새뮤얼은 어딘가 망가진 듯한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침소에 앉아 새뮤얼에게 시선을 보내 오는 황제가 보였다.
그저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절대자의 눈빛.
“아버지. 지난밤, 강녕하셨습니까.”
“…….”
“안타깝게도, 어제의 제국엔 그리 좋지 못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
“반역자들이 세르데타인에 자리를 잡고 농성 중이라고 하더군요. 군대를 보냈습니다만, 녀석들의 저항이 제법 거센 듯합니다.”
“…….”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이제 곧 폐하와 제가 고대하고 고대하던 시간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
“예. 폐하. 드디어, 때가 찾아왔습니다.”
“…….”
두 눈을 부릅뜬 채. 마지막까지도 새뮤얼을 인정하지 못한 황제는, 아무런 말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새뮤얼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 안심하시고, 편히 주무십시오. 아버지.”
이윽고 황제의 손이 힘없이 침대에 늘어졌다.
늙고 주름진 그의 손목에서는 어떠한 맥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가운 침대 위에 눈도 감지 못한 황제는.
이미 지난밤,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사아아아아아―
동시에 거대한 붉은 파동이 새뮤얼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자신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그 압도적인 힘에 의해 잠시 황홀감에 젖어 있던 새뮤얼은, 이내 표정을 갈무리 한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새로운 황제가 이 제국에 평안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붉게 변한 눈을 한 새뮤얼은, 그렇게 성에가 낀 창가로 시선을 보냈다.
붉은 파동이 수도 전체로 퍼져 나가고, 그 기운에 언데드들의 귀곡성(鬼哭聲)이 황성에 들릴 정도로 세상에 울려 퍼졌다.
“제국민들도 새로운 황제의 탄생에 열광하고 있군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