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8)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78화
178화 반격 (2)
붉은 해일을 목도한다면 이런 풍경일까.
성벽에서 전방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입술을 꽉 깨물며 다가올 전투를 대비했다.
넘실거리는 붉은 기운을 머금은 언데드의 행렬이 끝없이 펼쳐진다.
“신이시여…….”
평소 신에게 기도 한 번 해 본 적 없던 병사들도, 지금만큼은 애타게 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이틀 전에 있던 승리로 끝없이 올라갔던 사기는 압도적인 적의 숫자 앞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지휘관들도 별다르지 않았다.
그들 또한 이 정도로 압도적인 숫자의 적을 맞이하는 것은 생소한 경험이었으니.
다만 병사들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표정을 관리했다.
가뜩이나 떨어져 있는 병사들의 사기에, 지휘관의 절망 어린 표정만큼 치명적인 것은 없었으니.
“정말 압도적인 숫자로군.”
하얀나무 모험단의 단장, 말셀러스의 평가도 그리 다르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모험단으로서 명성을 쌓아 왔던 말셀러스도 저만한 숫자의 언데드를 상대한 경험은 전무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붉은 해일을 뒤로한 말셀러스는 자신의 앞에 도열해 있는 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나의 단원들이여. 어떤가. 저들이 두려운가?”
“아닙니다!”
정의로운 성격의 단장을 닮아, 그의 모험단원들도 하나같이 기죽지 않은 모습으로 답했다.
말셀러스는 자신의 자랑스러운 단원들을 보며 두 눈을 붉혔다.
“역시, 나의 단원들이다! 전투에 앞서, 짧게 말해 주마. 우린 구원자다. 우리의 앞에 있는 무고한 시민들을 구원해 줄 구원자다!”
그러면서 말셀러스는 끝없는 규모의 언데드 군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들도 얼마 전까지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토끼 같은 자식들과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 매일같이 바깥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아버지. 혹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고 손님들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요리사. 매일 아침 강아지와 산책하며 뛰어는 아이들!”
목소리에 마력이 담긴 말셀러스의 외침은 어느새 그의 단원들뿐만 아니라 주변의 병사들의 시선도 끌어모았다.
“저들 모두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우리가 하는 것은 단순한 살육 따위가 아니다. 우리는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구원자들이다! 그러니 이번 전투에 자부심을 가져라.”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 있던 지휘관들도 어느새 말셀러스에게 시선을 보냈다.
“가자, 형제들이여. 오늘만큼은 우리의 검이 저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신의 은총이 될 것이니!”
“우오오오오!!”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단장님!”
커다란 박수갈채와 함께 하얀나무 모험단의 단원들이 소리치자 거기에 호응하듯 주변의 병사들도 소리쳤다.
“젠장,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고!”
“와아아아아아아!!”
“제국에 자유를!”
“희망을!”
“구원을!”
바닥까지 떨어졌던 병사들의 사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한 말 몇 마디일 뿐이지만, 진심으로 정의를 숭배하는 말셀러스 단장에게는 그걸 가능케 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확실히, 여러모로 대단하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셰인도 말셀러스가 가진 웅장한 영혼을 지켜봤다.
사실 말셀러스를 포함해 그가 이끄는 하얀나무 모험단은 그리 대단한 수준의 무위를 지니지는 못했다.
평균 이상은 분명했지만, 특이점은 지나지 못한 그런 수준.
헤르메스 모험단처럼 역사가들이 기절할 만큼의 발견을 해 왔던 것도 아니었고.
라비아타처럼 압도적인 무력을 행사하지도 못 했다.
그들의 자랑이라고는 뛰어난 협동심을 바탕으로 이뤄 낸 수많은 의뢰들 뿐.
하지만 말셀러스가 가진 영혼은 산전수전 다 겪은 중년의 나이임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백의 색을 가졌고, 그런 영혼이 뿜어내는 기세는 주변인들을 감화시키기 충분했다.
저것은 세인이나 클라인도 가지지 못한 그만의 재능인 것이다.
‘몇 번이고 도움을 받았었지.’
아룬비다에서도 그러했고, 무명의 이종족 테러 사건 당시에도 말셀러스 단장은 가장 앞에서 나서길 주저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그가 전생에는 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것일까.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던 셰인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제 와서 상관없을 전생을 떠올리기보다,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하는 게 중요했다.
“하아, 아슬아슬하게 끝냈네요.”
그때, 뒤에서 아르티아가 다가왔다.
그녀는 이틀 전과 다르게 굉장히 피곤한 기색이었다.
“세상에 병사들도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릴 정도로 푹 쉬었는데…….”
“고생했다.”
“네, 고생했죠. 당연히 고생했죠! 그만한 숫자의 대포에 인챈트를 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세요?”
피곤함 때문인지 유난히 표독스러워진 아르티아가 셰인을 째려봤다.
“덕분에 병사들의 생존률이 조금은 올라갔겠군.”
“……그렇게 말하면 제가 더 쏘아붙일 수가 없잖아요.”
“고생한 만큼 효과는 있을 거다.”
“그래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한껏 자신의 고생을 어필하던 아르티아는 성벽에 배치된 새로운 대포들을 바라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고작 마력 광산을 얻었다고 이 정도의 돈지랄이 가능한 건가요?”
방금까지 아르티아가 하고 왔던 작업은, 성의 포문에 붙어 있는 대포들에 인챈트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인챈트라는 게 아무런 물건에다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마력을 잘 받아들이는 재질이 대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셰인은 가문의 자금을 활용해 준비해 둔 수십 개의 인챈트가 가능한 대포를 준비했다.
다른 영지에서는 많아 봐야 한두 개 정도 구비해 둔 물건을, 이번 전쟁을 위해 수십 개나 공수해 온 것이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은 거의 없지. 대부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은 그저 돈이 부족해서 그런 것뿐이다.”
“살면서 마법연합 총관의 손녀를 돈으로 질리게 하다니. 대단하네요.”
정말 질렸다는 표정으로 그리 말하는 아르티아였지만, 사실 속으로는 내심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되어서도 아직 돈을 풀지 않는 귀족들도 발에 채일 정도라는 사실을 그녀도 모르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대포에 인챈트를 하기 위해 바삐 움직인 것은 아르티아만은 아니었다.
셰인 또한 마찬가지로 아르티아와 함께 대포에 인챈트를 하느라 지난 이틀 동안 제대로 된 잠도 자지 못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그런 셰인을 옆에 두고 쉴 수 없던 아르티아도 함께 고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제 시작이로군.”
어느새 대포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온 언데드 대군.
셰인은 개전의 시작을 알리는 뿔피리와 북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뿌우우우우우──!!
둥, 둥, 둥, 둥!
* * *
언데드를 감싼 붉은 기운은 크게 봤을 때 두 가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나는 언데드들을 강화하는 능력이다. 좀비들은 머리가 잘리고도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고, 구울은 더욱 날쌔게 움직일 것이며, 시체 거인은 몸의 반쪽이 날아가더라도 고깃덩어리 주먹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열 하나의 리치들이 집중해서 만든 흑마법을, 백만이 넘는 숫자의 언데드들이 그대로 효과를 받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질투의 자아가 만든 커넥트 로드(Connect road)다.
셰인이 판단하기에, 이것은 전자보다 더욱 성가신 능력이었다.
앞서 리치들을 활용해 언데드를 조종했던 이전과 달리, 커넥트 로드는 수많은 언데드의 정신체를 하나로 모아 질투의 자아와 연결된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리치와 같은 지휘자를 죽이는 것으로 언데드의 힘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모든 언데드를 죽이거나 질투의 자아를 죽이지 않는 이상 언데드들은 계속해서 군사적인 움직임을 취할 것이다.
그것도 결코 지치는 일이 없는 언데드들이.
‘이전처럼 클라인을 통한 한 방은 보여 주기 힘들겠지.’
그야말로 24시간 동안 전쟁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단순히 5분만 싸워도 온몸에 피로감이 쌓이는 게 바로 인간이거늘, 이런 전투를 하루 종일 이어 가야 하는 것이다.
괜히 지휘관들의 감정이 요동쳤던 게 아니다.
퍼버버버버엉─!!
그러던 그때, 수십의 대포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셰인과 아르티아의 인챈트가 적용된 대포가 내뿜는 포탄이 포물선이 아닌 일직선으로 언데드 군단을 향해 날아갔다.
지지지직─!
삿된 힘을 불태우는 번개의 힘이 담긴 포탄이 선두에 서 있던 시체 거인의 몸을 관통했다.
질투에 의해 강화된 언데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체 거인은 이전처럼 포탄을 막지 못했다.
셰인의 ‘관통’ 룬 마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시체 거인을 그대로 관통하고 지나간 포탄은 경로상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땅에 닿자마자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퍼진 포탄의 잔해가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끊임없이 불꽃을 토해 내는 대포.
그만큼 언데드의 수가 줄어 가는 듯했지만, 문제는 압도적인 숫자에 있었다.
“진짜, 끝이 없군…….”
거기에 언데드들도 언제까지고 당하지만은 않았다.
시체 거인들의 피해가 커지기 시작하자, 검붉은 기운을 두른 언데드 기사들이 선두에 나섰다.
데스 나이트였다.
황실의 인장이 박힌 갑옷을 입은 그들은, 제국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이었다.
데스 나이트들이 날아오는 수십 발의 포탄을 향해 도약했다.
카가각─!
수십의 데스 나이트가 검을 휘두르자 언데드를 학살하던 포탄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검붉은 오러가 담긴 데스 나이트의 검기가 포탄을 꿰뚫은 것이다.
언데드들의 반격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일정 거리까지 다가온 수백 마리의 시체 거인이 거대한 손으로 주변의 언데드를 움켜쥐고는, 이내 자세를 잡아 성벽을 향해 던졌다.
개중에는 거대한 바위나 나무 따위도 포함되어 있었다.
콰앙, 콰아앙─!
단단함을 자랑하는 세르데타인의 성벽 위로 바위와 썩은 나무가 날아와 처박혔다.
하늘을 비상하던 언데드들은 성벽을 넘어 들어왔다.
“대비하라!”
“언데드가 날아온다!”
“피해!!”
재수없이 바닥에 처박힌 언데드들은 한 줌의 썩은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지만, 몇몇 운 좋게 살아남은 언데드들은 주변의 생자를 찾아 움직였다.
즉사한 좀비들과 다르게, 그런 좀비들 사이에 껴서 날아온 구울들은 대부분 멀쩡했다.
그런 구울들이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을 살육하기 시작하자, 대기하던 기사들이 움직였다.
때아닌 좀비 폭격에 아나스타샤가 외쳤다.
“방벽을 쳐라!”
그 명령에 따라 마법사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웠다.
성벽 전체를 감싸는 반투명한 보호막이 쳐지자, 시체거인의 투척으로 날아오던 언데드들이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우읍……!”
“웨에에엑!!”
사방에 퍼져 나가는 육편에 비위가 약한 몇몇 병사들이 바닥에 토악질을 해 댔다.
“젠장, 뭣들하고 있어! 저기 죽은 놈들이 일어나고 있잖아! 어서 공격해!”
“으으으, 이런 씨발!”
“이딴 게 무슨 전쟁이야……!”
생전 들어 본 적도 없는 공격이 병사들을 정신을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포격은 계속해서 이어졌으나, 그것도 오래 이어지진 못했다.
쉴 새 없이 불꽃을 내뿜던 대포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게 주춤했던 언데드 군단이 점차 다가올수록, 시체 거인이 내던지는 투척물은 더욱 늘어났다.
“크으윽, 이제 방벽이 한계입니다!”
끊이없이 날아오는 투척물을 막던 방벽도 슬슬 한계를 드러내는지, 방벽에 거미줄처럼 금이 퍼져 나갔다.
이를 유지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코피를 흘려 가며 집중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역부족.
어느새 피범벅이 되어 버린 방벽은 금방이라도 깨질 것처럼 불안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언데드들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고, 시체거인의 거대한 발이 성벽을 향하려던 찰나.
“제1장. 대지의 주인.”
전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