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7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79화
179화 반격 (3)
셰인을 제외하고 전장의 이변을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클라인이었다.
“어……?”
익숙하지만 어딘가 다르다. 이전보다 훨씬 부드럽고, 단단해진 마력.
방금 막 구울 하나를 정리한 클라인은 마력의 주인을 찾기 위해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붉은빛이 넘실거리는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는 성벽.
그리고 그 위에, 다갈색 피부의 금발 여인이 양팔을 펼치고 있었다.
“이젠 이것도 익숙해지네…….”
여인, 디라일라는 등장과 함께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였다.
그녀를 주변으로 언데드의 등장에 잔뜩 위축되어 있던 원시의 대지 정령들이 환호하며, 디라일라가 인도하는 마력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1장 1절. 대지의 계절. 변형식, 은.”
기세 좋게 다가오던 언데드들의 행렬이 눈에 띄도록 느려졌다.
가장 앞에 서서 언데드들을 포탄처럼 던져 대던 시체 거인의 움직임에 가장 큰 변화가 찾아왔다.
놈들은 마치 대지에 닿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는 듯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2절, 대지의 봉오리……!”
언젠가 나카르 사막에서 펼쳐졌던 풍경이 다시 한번 이곳, 세르데타인 성벽 앞에서 재현되었다.
디라일라의 마법에 의해 은의 기운이 깃든 대지가 수백 마리의 시체 거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르어어어어어어─!!
파마의 기운이 담긴 은은 효과적으로 시체 거인을 속박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리치들이 그런 시체 거인의 속박을 풀어내려 했지만 그들의 흑마법은 마력이 담긴 은을 벗겨 내지 못했다.
──!!
데스 나이트까지 나서려 했지만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디라일라가 나섰다.
“합금식-미스릴……!”
은의 기운이 담긴 대지 위로 미스릴이 덧씌워진다.
마력을 집어삼키는 미스릴은 데스 나이트의 흑마력을 집어삼키곤, 반발력을 뿜어내 데스 나이트들을 튕겨 냈다.
결국 손쓸 새도 없이 수백이라는 숫자의 시체 거인이 은의 대지에 집어삼켜졌다.
“이젠 안 먹어도 될 줄 알았는데…… 으적.”
앞서 성지에서 봤던 지하인들을 참고한 뒤로, 원시 대지 정령들과 교감 능력이 크게 상승한 덕분에 마력의 효율이 이전보다 몇 배는 올라간 디라일라였다.
하지만 이 넓은 전장에서 정확히 수백 마리의 시체 거인만을 집어삼키는 마법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최고급 마석 몇 개를 씹어 먹은 디라일라가 마무리를 지었다.
“……3절. 개화.”
은의 기운이 담긴 대지가 순식간에 창으로 바뀌어 시체거인을 찢어발겼다.
마치 붉은 꽃이 피어나듯, 검붉은 피가 은의 창을 타고 땅에 떨어져 내렸다.
“뭐, 무슨…….”
시체 거인의 폭격이 멈추자, 금방이라도 깨질듯 불안했던 방벽이 다시금 안정을 되찾았다.
하나 마법을 유지하던 마법사들의 평정심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느껴지는 마력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일어난 결과는 대마법사의 위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났으니.
그들은 대지에서 느껴지는 마력을 추적해 이런 광경을 만들어 낸 존재를 바라봤다.
까득, 까득.
그곳에는 지금도 뾰족한 이빨로 마석을 씹어 삼키고 있는 디라일라가 보였다.
“디라일라!”
그런 디라일라를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아르티아였다.
처음에는 클라인을 제외하면 별 연관도 없던 두 마법사는, 이제 친구라는 이름으로 가까워졌다.
“어, 안녕. 오랜만이다, 하하.”
“너…… 어디 있던 거야! 몇 달 동안 연락도 안 되고!”
“멀리 떠난다고 했었잖아.”
“그래도 그렇지, 편지 한 통 정도는 줄 수 있었잖아?”
“사실 복귀한지도 얼마 안 됐어. 이 사달이 났다길래 급하게 달려왔지…….”
“아…….”
아르티아는 어느새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웃고 있는 디라일라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다르게 훨씬 더 자유로워진 분위기였다.
뿐만 아니라 마법 실력도 대단히 늘어났다.
도대체 지난 몇 달 동안 무슨 일을 겪었는지 궁금해질 따름이었지만.
“지금 안부를 물을 시간은 없겠네.”
“뭐어…… 그렇지.”
“기다려 봐. 성장한 게 너만은 아니니까.”
친구임과 동시에 향상심을 느끼게 만드는 디라일라.
그녀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테러 사태 당시 겪었던 참상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서 아르티아 또한 결코 적지 않은 노력을 해 왔다.
그녀의 할아버지이자 마법연합의 총관인 다리안이 독종이라고 질려 할 정도로.
아르티아를 주변으로 파괴적인 마력이 모여들었다.
“그럼 나도 한 발 거들까.”
오로지 파괴만이 담겨 있는 아르티아의 마력을 바라보며, 디라일라도 손가락을 튕기며 주문을 외웠다.
합금식-구리.
피를 머금은 채 수백의 시체 거인을 집어삼킨 은빛 꽃무리의 위로 구릿빛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아르티아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이윽고 마력이 한계치까지 몰린 아르티아의 마법이 발현됐다.
페이탈 일렉트론 스피어(Fatal electron spear).
아르티아의 손끝으로 푸른 전격의 창이 소환됐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압축되고 또 압축된 아르티아의 치명적인 뇌격창이 목표를 정하고 날아갔다.
치지지지지지지──!!
손끝에서 터져 나간 뇌격창은 그대로 시체 거인을 집어삼킨 꽃무리로 향했고, 이내 하늘을 찢을 굉음이 들렸다.
“우, 와…….”
치지지지지직, 지직, 지지지직─!!
이어지는 장면은, 아르티아의 마법을 도운 디라일라도 놀라 입이 멍하니 벌어질 정도였다.
구리로 만들어진 꽃은 대부분의 에너지 손실 없이 다른 꽃으로 뇌격창을 전이하고, 그게 눈 깜짝 할 사이에 수십, 수백 번 반복됐다.
이미 그 경로상에 있던 모든 언데드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 붉게 달아오른 꽃이 폭발하는 순간.
콰과과과과아아앙─!!
성벽에서도 그 파괴력이 전해질 정도의 진동이 느껴졌다.
“……마법사는 전쟁의 재앙이라 했던 말이 떠오르는군.”
기사 중 하나가 그 광경을 목도하고는 그리 중얼거렸다.
적어도 방금 그 마법으로 십수만이라는 숫자의 언데드가 정리되지 않았을까.
세르데타인으로 향하는 길목의 크기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돌격해 오던 언데드들도 밀집된 형태로 다가왔기에, 그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하늘 위에서 본다면 붉은 해일에 새카만 공백이 생겨난 것처럼 보이리라.
“……진짜 뒤지게 많네.”
하지만, 여전히 그 몇 배에 달하는 언데드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마력이 방전되다시피 한 아르티아와, 흑마력에 물든 대지와 교감을 한 대가로 정신적 피로감이 크게 쌓인 디라일라는 이제 더 이상 방금과 같은 포퍼먼스를 보이기엔 힘들 터.
뿐만 아니라, 많은 언데드가 정리되었지만 아직까지 데스 나이트는 건재했다.
방금 디라일라와 아르티아의 합공으로 많은 수가 잿더미로 화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수가 남아 있는 상황.
오히려 죽은 언데드의 사기를 흡수한 데스 나이트는 이전보다 더욱 끔찍한 흑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 언데드 군단의 후방에서 검은 로브 밑으로 붉은 안광을 뿜어내는 무리들이 나타났다.
“리치…….”
이틀 전에 그들을 직접 봤던 아르티아가 신음을 흘리듯 중얼거렸다.
전장에 잿더미가 된 언데드의 사기가 그런 리치들에게 모여들기 시작하자, 심상치 않은 광경이 이어졌다.
잿더미 속에서 아직 남은 살점이 허공으로 모여들어 합쳐졌다.
“쯧, 귀찮게 됐군. 벌써 저걸 다룰 정도가 됐나.”
십수만이라는 언데드의 시체에서 나온 살점들이 총 5개의 살덩어리로 변모했다.
그런 살점은, 마치 고기로 만들어진 심장을 연상케 하는 형상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그러고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맥박이 뛰기 시작하자, 그곳을 중심으로 흑마력의 기운이 파동처럼 퍼져 나갔다.
“크, 크으윽…….”
“아아악, 아빠? 진짜 아빠야?”
“아, 안 돼!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야!”
“흐흐, 웃기지마. 그건 언데드였다고!”
파동에 노출된 병사들의 정신이 오염되어 갔다.
더 이상의 언데드 폭격이 없어지자 방벽 마법을 해제한 몇몇 마법사들이 그런 병사들에게 정화 마법을 걸었다.
문제는 오염에 노출되기 시작하는 병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뒤늦게 디라일라와 아르티아까지 합류해 그런 병사들에게 정화 마법을 펼쳤지만, 정화하는 수보다 오염되는 수가 압도적으로 많아지자 감당이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보다 못한 셰인이 서클을 움직였다.
“나와 산성이 좋은 마법은 아니다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로군.”
계속해서 서클을 움직이며 주변 보급대에서 연녹빛의 기운이 담긴 플라스크를 대량으로 챙겨 온 셰인은 안에 담긴 기운을 흡수했다.
연녹빛 기운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엘프들의 정기.
그 정기들이 셰인의 몸에 깃든 프리실라의 정기에 반응해 셰인의 서클에 섞여 움직였다.
동시에 룬 마법을 발동시킨다.
[정화], [팽창], [중첩].세 가지의 룬 마법이 첨가된 셰인의 마력이 허공에 퍼져 나갔다.
핏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로 생명력이 가득 담긴 햇빛이 흘러나왔다.
새의 지져귐이 들려오고, 물줄기가 흐르는 폭포가 그려진다.
생명력이 풍부한 엘프들의 정기로 그려낸 풍경화.
언젠가 마법학회에서 펼친 적 있던, 정기를 활용한 회복 마법.
그걸 살짝 변형시켜, 병사들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흑마력을 정화시킨다.
조금씩 광기에 물들기 시작하던 병사들의 눈빛이 다시금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허억, 허억!”
“바, 방금 그건 도대체…….”
“으으……!”
겨우 정신 차린 병사들이 아직 오염의 여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무렵.
셰인이 외쳤다.
“클라인!”
“예, 형님!”
어느새 구울을 모두 정리한 클라인이 셰인의 부름에 곧바로 반응했다.
그 옆으로 온 무기를 피로 물들인 알렉스가 함께였다.
“너 마력을 좀 빌려야겠다.”
그 말에 클라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법사가 검사의 마력을 대신 쓴다는 것부터가 금시초문이었으니.
뿐만 아니라 애초에 타인의 마력을 대신 쓰는 것 자체가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이지 않나.
“제 마력을 말입니까? 하지만…….”
망설이는 클라인에게 셰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괜찮다. 난 쓸 수 있어.”
클라인의 마력에는 신성이 담겨져 있다. 셰인은 그 어떤 신성이든 받아들이고 쓸 수 있으니, 그렇다면 클라인의 마력을 대신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아직 저 멀리서 맥박이 뛰고 있는 심장들을 처리하려면, 당장 셰인이 가진 마력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지금 당장도 위협적인 존재지만, 저건 단순한 ‘알’에 불과하다.
만약 알을 깨고 그 안에 있는 녀석이 탄생하는 순간…… 지금 같은 요행으로는 버틸 수 없을 터.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성벽 위로 올라온 셰인은 곁에 선 클라인의 등에 두 손을 올렸다.
“클라인. 최대한 마력을 운영해라.”
“최대한…… 으로 말입니까? 형님,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빈말이 아니었다.
클라인의 마력은 지난 3년 동안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고, 최근 베첼리 왕국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는 더욱 큰 성장폭을 보였다.
오히려 깨달음보다 마력의 총량이 더욱 커진 클라인이었기에, 스스로도 통제가 조금 버거울 정도였다.
그걸 본인도 아닌 타인인 셰인이 직접 운용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클라인.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날 믿으라고.”
“…….”
“나는 마법사다. 철저한 계산 끝에 확신이 서야만 움직인다. 그러니 내 걱정은 말고, 전력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형님.”
결국 고개를 끄덕인 클라인은 억누르고 있던 자신의 마력을 완전히 풀어 버렸고.
그건, 셰인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