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83)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83화
183화 처음 배운 정의
“그래서 황성으로의 진입이 실패했다는 말이로군.”
“네. 그런데 나와서 들어 보니, 저희끼리 갔다면 필시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것 같네요.”
늦은 오후.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 너머로 아른 거리고 있을 시간, 지휘부에서는 여전히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주제는 당연히 수도의 탈환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에 갇혀 있던 당시, 올리시아가 생존자들과 함께 이미 상의했던 것이기도 했다.
언데드가 창궐한 도시에서 살아남은 만큼 그들은 모두 대단한 실력을 소유하고 있던 이들이었고, 수도를 그 상황까지 몰아붙인 흉수를 직접 처단하기 위해 움직일 계획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계획 단계에서 무산되었다.
“저지먼트 기사단의 백염이 황성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고 있었습니다.”
수도의 생존자 중 한 명이 그리 말했다.
“새하얀 안개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백염이었지.”
때문에 직접 수도로 쳐들어가자는 의견은 묻혔다.
내부에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마력을 쓰지 못하는 백염의 안개 속에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황성으로 향하려면 먼저 그걸 해결해야겠군. 흐음…….”
그러면서 아나스타샤가 저지먼트 기사단에 소속된 아네이스에게 시선을 보내 봤지만, 아네이스도 고개를 가로저을 따름이었다.
이미 그에 관한 것은 올리시아가 수도에 있던 당시 아네이스를 만난 이후 이미 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아네이스도 그에 관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아룬비다에서 막 도착했던 그녀도 현 상황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혹시 그 외에 특이 사항은 없었나?”
아나스타샤의 질문에 수도의 생존자들은 다 같이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그러던 중, 중년의 여성 마법사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제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마력 측정기가 갑자기 말썽을 부렸었지요.”
“음?”
“처음에는 단순 고장인가 싶었지만, 다른 측정기들도 다 같이 말썽을 피우더군요. 한데, 그 측정기들의 방향 바늘이 일정한 곳의 반대편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마력에 민감한 마력 측정기가 반대로 돌아가는 현상.
그렇다면, 그건 황성의 진입을 막고 있는 저지먼트 기사단의 백염과 연관된 게 아닐까.
“그 직후에 사건이 터진 탓에 여태 잊고 있었습니다만…… 어쩌면 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군요.”
황성의 지도가 펼쳐지고, 마법사는 측정기의 바늘 방향이 피하던 위치를 찍었다.
“이곳입니다.”
“황성의 지하를 가리키고 있군. 지하, 지하라…….”
황성의 지하에는 최고급 술을 보관하기 위한 술 창고와 재판장이 존재한다.
그 외에는 재판에 들어가게 될 이들이 대기할 방과 잡다한 창고 정도.
별달리 특별할 게 없는 장소였다.
“지금으로서 신용할 수 있는 정보는 이것뿐인가…….”
하지만 겨우 이 정도 정보만으로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황성에 진입하는 것은 큰 위험 부담이다.
그때, 아네이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뭔가 생각난 거라도 있나?”
“네…… 옛날에, 수도의 지하에 갔던 적이 있어요.”
“음?”
“그곳이 황성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기사단 사람들이 눈을 가리고, 지하로 갔었어요.”
“이번에도 지하로군. 그렇다면 보다 믿을 만한데. 혹시 그 지하에서 뭘 했는지는 기억나나?”
그 질문에 아네이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보였다.
“저지먼트 기사단이 되기 위한 의식을 치렀다고 했어요. 그런데 의식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그런가…… 도대체 아바마마께서는 우리에게 뭘 숨기고 계셨던 건지.”
이어지는 아네이스의 증언으로, 결국 수도 탈환 작전에 지하로 들어갈 인원들을 추리기로 했다.
그 중에는 백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아네이스와,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마력을 무력화시키는 장치에 대항한 적이 있던 클라인이 포함되었다.
물론, 셰인은 비공식적으로 따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현재 수도 인근 영지들은 어떻지?”
“병사들의 소집도 끝났고, 무장까지 완료했다고 합니다.”
“도착하기까진 이틀에서 사흘 정도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작전 개시도 그 시점으로 맞추도록 하지.”
올리시아는 이곳 세르데타인에 남아 다른 영지에서 오는 병력을 총 지휘하는 역할을 하기로 했고, 아나스타샤는 수도 탈환 부대를 지휘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차적으로 필요한 회의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준비가 시작됐다.
남은 생존자들은 그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 아나스타샤는 수도 탈환에 들어갈 인원들과 함께 진입 경로를 파악했다.
올리시아는 수도 밖으로 나온 언데드들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섬멸할 계획을 준비했다.
각자가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아네이스는 함께 지하로 내려갈 클라인과 짧은 회의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회의라고 해 봐야, 지하에 대해서는 아네이스도 자세히 아는 게 없던 탓에 그리 유익한 시간은 되지 못했다.
“…….”
조용히 창가를 바라보고 있던 아네이스는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오랜만이야. 전 약혼자.”
“음. 그렇군.”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것은 셰인이었다.
“무슨 일이야?”
“아까 회의에서 했던 말과 관련해서 찾아왔다.”
“미안하지만, 딱히 기억이 나는 건 없어.”
“그 기억을 되살릴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 거지?”
“방법?”
“그래.”
뜬금없이 지워진 기억을 살려 주겠다는 말에 아네이스는 별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방법이 있다면, 응. 되찾고 싶어.”
“조금 불쾌할 수도 있다.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에서 그와 관련된 다른 기억들도 살아나니까.”
“그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다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까?”
“그렇겠지.”
“……그게 정의를 위해서라면, 난 괜찮아.”
정의.
저지먼트 기사단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신념으로서 아네이스는 셰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럼, 시작하지.”
셰인의 두 눈이 요사스러운 빛을 발했다.
* * *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6살의 전후이지 않을까.
“괜찮다. 다 괜찮을 거야.”
꿈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이미 수백, 수천 번도 더 들었던 목소리.
어떻게든 듣는 상대로 하여금 안심을 유도하고자, 부드러운 목소리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무 일도 없을 거란다. 아네이스. 모두 괜찮을 거야.”
다부진 근육을 가졌던 양아버지와 달리, 서점을 운영하시던 친아버지의 품에서는 유달리 종이 냄새가 자주 났었다.
하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비릿한 냄새. 그게 피 냄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는 말과 다르게 친아버지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품에 안긴 아네이스의 몸에 진득한 피가 묻어 나왔으니까.
친아버지의 괜찮다는 말과 함께 밖에서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평화로웠던 마을에 익숙하지 않은 비명 소리였다.
아네이스는 친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괜찮다는 말을 내뱉는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괜찮다, 괜찮다, 모두 다 괜찮다.
그 거짓을 입에 담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봤다.
유달리 피부가 하얗던 친아버지의 얼굴빛이 더욱 하얗게 변해 가고.
괜찮다는 말을 중얼거리던 그의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됐을 무렵.
그저 두려움에 휩싸인 6살짜리 어린 소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조금씩 체온을 잃어 가는 친아버지의 품속에서 그가 했던 거짓말을 되새기는 것뿐.
점차 메말라 가는 친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갔던 것들을 떠올렸다.
고통을 억누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다 말하던 목소리.
흔들리는 눈동자 속에서 숨길 수 없던 자식을 향한 걱정.
핏기가 사라져 가는 입술.
그리고 간헐적인 떨림을 멈추지 못하던, 아네이스를 꽉 끌어안은 팔까지.
그 모든 것은, 거짓을 숨기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친아버지의 품에서 며칠 동안 방치되었던 소녀는 부패하기 시작한 친아버지의 시체 냄새가 풍기는 곳에 갇혀 있었다.
어린 소녀가 다시 햇빛을 볼 수 있던 것은, 한 중년의 남자가 소녀와 시체가 갇혀 있던 마룻바닥을 뜯어낸 이후였다.
“……살아 있구나, 아이야.”
아네이스처럼, 백발의 머리카락을 지닌 양아버지와의 첫 만남이었다.
* * *
“운이 없었구나.”
진실.
“인근의 도적들이 마을을 덮쳤단다.”
거짓.
“훈련을 끝마치고 돌아오는 길, 너희 마을을 발견했단다.”
거짓.
“너희 마을을 그렇게 만든 도적들은 지금 인근 영주의 수배령을 받았지.”
거짓.
“지금 당장은 안전할 거다.”
진실.
“당분간 지낼 곳이 필요할 텐데…… 우리를 따라오겠느냐? 어쩌면 그게 좀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반반.
어린 소녀였던 아네이스는 자신과 같이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중년의 남자를 바라봤다.
훗날 자신의 양아버지가 될 사람.
어째서일까, 그의 눈동자에서는 적지 않은 걱정이 느껴졌다.
잊히지 않는 친아버지의 눈빛에서 봤던, 그 감정이었다.
어린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소녀는 저지먼트 기사단장의 양녀가 되었다.
* * *
그녀의 양아버지는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다.
소녀가 평생 본 적도 없던 휘황찬란한 공간을 마음대로 거닐었으며, 그가 지나갈 때면 주변의 모든 이들이 경외의 감정을 내보였다.
모두, 소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뿐이었다.
소녀는 점차 나이가 들었다.
친아버지처럼 말랑말랑했던 손은 셀 수 없이 검을 휘둘러 왔던 탓에 굳은살이 가득해졌다.
10살을 막 넘긴 소녀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그저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양아버지는 그런 그녀를 딱히 말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굳은살이 찢어져 피가 흐르는 손에 붕대를 감겨 주며 이런 말을 해 줄 따름이었다.
“약한 자는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단다, 아네이스. 나도 그렇고, 네가 겪었던 일처럼 말이다.”
약한 자는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
어린 소녀가 듣기에는 지독하리만치 현실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아네이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친아버지의 죽음 이후, 거짓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그녀는 양아버지의 저 말이 거짓 하나 없는 진실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검을 휘둘렀다.
언젠가, 자신이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게 될 날이 올 때까지.
“근데 정의라는 건 뭔가요?”
“악한 자들로부터 약자들을 지키는 거란다. 우리가 그러는 것처럼.”
하지만 어째서일까.
정의에 가장 가까운 저지먼트 기사단장이 말하는 정의에는.
항상 거짓이 끼어 있었다.
* * *
평소처럼 검을 휘두른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날이 무뎌진 훈련용 검이 아닌, 시퍼렇게 날이 선 진검이라는 것이고.
상대는 차가운 목각 인형이 아니라, 베이면 뜨거운 피를 뿜어내는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카하악…….”
목이 베인 사형수가 공기 빠지는 소리를 내며 죽음을 맞이했다.
울컥울컥.
심장의 펌프질에 따라 사형수의 목에서부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비릿한 냄새. 그리고 미지근한 액체가 얼굴에 튀자, 아네이스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그녀의 등에, 누군가가 닿았다.
“잘했다, 아네이스.”
이번에는 정확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아버지였다.
“방금 너는, 정의를 실현한 것이란다.”
상대는 17명이나 죽인 살인범이며, 그 대상은 자그마한 마을의 주민들이라고 한다.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그 말은 진실이었다.
“수많은 가정이 방금 죽은 저 남자의 손에 파탄이 났단다.”
소녀가 처음 배운 정의라는 것은.
누군가의 죽음이었다.
“이제, 너도 어엿한 저지먼트 기사단의 일원이 될 준비가 된 것 같구나.”
그리고 며칠 후.
문제의 지하로 이끌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