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86)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86화
186화 정의와 마녀 (2)
셰인과 클라인이 마녀에 의해 강제로 공간이동이 된 이후.
홀로 남은 아네이스는 자신의 앞에 선 언데드를 바라봤다.
눈두덩이에 푸른 귀화를 피워 올린 언데드.
아네이스를 향해 치켜든 그 언데드의 검엔 백색의 화염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어떠니? 내 작품은. 일반적인 언데드처럼 보이겠지만, 내가 만든 건 밖에 있는 저급한 것들과는 결이 다르단다. 따로 이름도 붙여 놨지.”
레버넌트(Revenant).
살가죽만 남아서 미라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저것은, 마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었다.
하지만 마녀가 기대했던 평가와 다르게, 아네이스는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헤르타 아저씨.”
“응?”
“저 자세는, 헤르타 아저씨의 자세야.”
“음, 제법 눈이 좋구나? 바로 알아차리다니 말이야. 적어도 검은 맞댄 이후에나 알아차릴 줄 알았는데.”
자신의 예상과 다른 아네이스의 답변에도 마녀는 신경 쓰지 않고 고혹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얗고 매끈한 마녀의 손이 레버넌트의 턱을 쓸고 지나갔다.
“헤르타라…… 그래, 내 작품이 되기 전에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
“……작품.”
“그렇단다. 나름 심혈을 기울였지. 새로운 그릇을 만들려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한 법이니까. 꽤 오랜 시간이었거든.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워진 계획이었으니까.”
“…….”
“그러니,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아 줬으면 해.”
그리 말하며, 마녀는 은빛 눈동자로 방긋 미소를 지었다.
신이 만들어 낸 조각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미소는 장소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아 마치 혼자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보여 주겠니? 새로운 그릇이 될 자격을.”
그 말과 함께, 레버넌트가 움직였다.
* * *
텅 비어 버린 눈구멍. 안구 대신 자리한 푸르른 귀화에서는 아네이스를 향한 명백한 적의가 자리했다.
검을 뽑아 든 아네이스와 레버넌트의 검이 허공에 맞부딪혔다.
일반적인 언데드와는 다르다.
검을 맞붙자마자 아네이스는 마녀가 했던 말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검을 맞대자마자, 두근거림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심장 소리가 아닌, 언데드에게서부터.
레버넌트는 언데드임에도, 심장이 뛰고 있었다.
눈이 파이고, 온몸의 지방과 근육이 사라져 살가죽만 남은 스켈레톤처럼 생겼지만 심장이 뛰고 있던 것이다.
‘살릴 수 있을까.’
1초 정도 그런 고민이 아네이스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쓸데없는 생각.’
당장 저 마녀를 죽일 수 있는가는 둘째 치더라도, 아네이스는 눈앞의 헤르타조차 상대하기 버거웠다.
저지먼트 기사단은 제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인재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천재들만 모인 곳이지 않나.
헤르타 또한 아네이스보다 훨씬 오랫동안 저지먼트 기사단에 있던 인물이었고, 어지간한 기사단의 단장 자리를 차지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실력자였다.
카강―!
그러나 아네이스의 실력도 결코 만만하진 않았다.
아네이스는 지난 몇 년 동안 쉴 새 없이 실전을 치러 오면서 극적으로 실력을 향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네이스의 정신은 당장의 전투보다 그와 함께 지내 왔던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오, 네가 단장님이 데리고 온 꼬맹이냐?’
‘어이, 단장. 진짜 이거 단장 자식 아니요? 어째 머리색부터 억양도 무감정한 게 똑같은데.’
‘어어, 이거 왜 이래! 미안해, 미안하다니까!’
‘거 말실수 좀 할 수 있지. 대뜸 그렇게 검을 휘둘러? 단장 그 성격 좀 죽이쇼. 애가 보고 뭘 배우겠어.’
‘그나저나 이 꼬맹이도 검을 휘두르는 게 자세가 좀 나오는데? 어디서 배웠나?’
‘응? 오는 길에 단장을 보고 따라 했다고? 키야, 이거 물건일세.’
‘꼬맹아. 모르는 게 있거나 막히는 느낌이 들면 찾아와라. 실전처럼 알려 줄 테니까.’
검을 맞댈수록, 그와 함께 지내 왔던 기억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마치 강제로 누군가가 기억을 주입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불쾌감이 아네이스의 검에 실렸다.
검과 검 사이에서 불똥이 튀기며 새하얀 안개 사이에 주홍빛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헤르타와 함께했던 다양한 기억들이 아네이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첫 살인을 끝낸 아네이스를 어딘가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모습.
처음으로 작전에 투입되어, 훌륭하게 한 사람의 역할을 해냈던 아네이스에게 대견하다며 어깨를 두드리던 모습.
양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무감정하게 이쪽을 바라보던 모습까지.
수십, 수백 번의 공방이 오갔다.
아네이스는 몇 번의 공격을 허용해 이곳저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기억의 흐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녀의 양아버지이자 전대 단장인 로버트의 죽음 이후, 헤르타는 더 이상 아네이스에게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 나날이 더욱 늘어나고, 기억의 흐름이 보여 주는 헤르타와의 추억은 점차 그 양이 줄어들었다.
끝내 아룬비다로 떠나기 직전, 몇 년만에 헤르타가 아네이스에게 말을 걸던 장면까지 이어졌다.
‘여, 꼬맹이. 아룬비다로 간다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뭐 하러 가? 거긴 범죄자밖에 없는 곳인데.’
‘정의가 뭔지 궁금하다고? 참나. 별걸 다 궁금해한다.’
‘나? 글쎄. 정의라…… 옛날엔 알았던 것 같은데. 이젠 더 이상 모르겠네.’
‘부럽다, 인마. 나도 그런 자기 탐구 시간 좀 가지고 싶은데 이놈의 인생은 그럴 시간을 주질 않네.’
‘아무튼…… 잘 다녀와라. 꼬맹이.’
성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는 자신을 꼬맹이라고 불렀다.
아룬비다로 떠나기 직전에 봤던 헤르타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아네이스는 평소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도 관심이 없었다.
삶에 목적도 뚜렷하지 않았고, 그저 정의를 따라 움직이기만 해 왔던 것 같다.
그렇게, 아룬비다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 앞에서 헤르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을 때.
푸욱―
그 헤르타의 심장에, 아네이스의 검이 박혀 들어갔다.
“어머나, 이겼네? 축하해. 역시 넌 그릇으로서의 자격이 있구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후후, 또 예민하기까지 하고. 기뻐하렴? 이곳은 모두, 그릇인 널 채우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니까. 날 만나고 싶다면, 앞으로 나아가면 된단다. 그럼 방금 네가 한 질문에 대답해 줄 테니.”
마녀는 그 말을 남기고, 새하얀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
홀로 남은 아네이스는 바닥에 쓰러진 레버넌트, 헤르타를 바라봤다.
푸른 귀화가 사라진 눈구멍에서는 더 이상 그녀가 알던 헤르타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 * *
셰인과의 연결이 끊어진 이후, 클라인은 계속해서 지하 수로를 걸었다.
지하 수로를 가득 채웠던 새하얀 안개도 사라진 지 오래고, 클라인은 자신의 기감에 걸리는 목표를 향해 걸어 나갈 따름이었다.
중간중간 셰인을 몇 차례 불러 봤지만, 답변은 없었다.
지하 수로는 셰인이 미로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복잡다단했다.
한 번은 아예 벽을 부술 기세로 검을 휘둘러봤다.
결과적으로 성공하긴 했지만, 마치 통짜로 만들어진 강철문을 부수는 것처럼 힘이 들었다.
아무리 클라인이 품고 있는 마력이 많다고는 해도, 언제 적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력은 아껴 두는 게 좋았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클라인은 자신의 기감에 걸린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은 지하에 이런 곳이 있을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커다란 공동이었다.
천장의 구멍으로부터 들어오는 붉은빛이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그 아래로 수십 개의 마리오네트들이 반파된 채 쓰러져 있었다.
클라인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공동 일대로 기감을 축소시켜 집중했다.
농밀한 황금빛 마력이 쓰러져 있는 마리오네트들을 스치고 지나가기 무섭게.
클라인은 검을 들어 좌측을 막았다.
카강─!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음에도, 그쪽에는 팔과 다리가 검으로 이루어진 마리오네트의 공격이 날아들어 있었다.
“……!”
마치 숙련된 암살자의 움직임처럼 긴밀하고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인기척은커녕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았으니.
만약 주변에 퍼뜨려 둔 마력을 통해 움직임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이만큼 빠르게 반응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뭐지?’
단숨에 검을 튕겨 마리오네트의 팔을 베어 낸 클라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부가 텅 비어 있을 줄 알았던 녀석의 팔 내부에는 인간의 근육을 떠올리게 만드는 무언가가 들어 있던 탓이다.
‘흑마법? 아니, 흑마력은커녕 마력도 느껴지지 않아.’
무색무취에,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마리오네트는 소리 없이 그림자에 스며들었다.
그 모습에 클라인은 다시금 자세를 취했다.
주변에 반파된 마리오네트들은 움직일 기세가 없다.
그림자 속에 숨어든 마리오네트의 움직임을, 주변에 퍼뜨린 마력의 변화에 반응했다.
그러자 녀석도 클라인에게 기습을 먹이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어섰기 때문일까.
이내 놈이 반대편 출입구로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고서야 클라인은 검을 아래로 내렸다.
“기묘한데.”
그제야 공동을 제대로 살펴볼 여유가 생긴 클라인은 파괴된 마리오네트들을 경계하며 주변을 훑은 뒤, 한쪽 벽면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그림자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문과, 5개의 제단이 있었다.
제단 아래로 보이는 제각각의 문양들.
클라인은 그중 하나를 어디서 봤는지 금방 떠올렸다.
자신을 기습했다가 도주한 마리오네트의 이마에 새겨져 있던 것과 같은 문양이다.
“그런 걸 다섯 개 찾아서 내려놓으라는 건가?”
당장의 상황만 봐서는 그런 것 같았다.
그 외에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았던 클라인은, 그대로 마리오네트가 사라진 방향으로 향했다.
* * *
“흐흥…… 역시 쉽지는 않겠는걸?”
클라인을 비추는 수정 구슬을 바라보던 마녀는 고혹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댔다.
몸에 착 맞는 검은 드레스의 자락이 의자 밑으로 흘러내렸다.
“이렇게나 막대한 마력이라니…… 영혼도 무척이나 깨끗해. 도대체 정체가 뭘까? 흐응…… 이런 그릇도 나쁘진 않을 테지만, 당장은 욕심이겠지.”
그리 말하던 마녀는 다른 수정 구슬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또 다른 레버넌트와 전투를 시작한 아네이스가 있었다.
“그래, 지금으로서는 당장 저걸로도 충분해.”
마녀의 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진짜’가 될 수 있는 거야. 수백 년의 기다림 끝에…….”
“그렇다고 하기엔 이미 실패한 전적이 있는 것 같군.”
“…….”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마녀는 잠시 두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어머. 숙녀가 혼자 사는 곳에 약속도 없는 손님이 찾아왔구나?”
“숙녀라고 하기엔 너무 음습한 곳에 살고 있지 않나?”
“그것도 선입견이란다. 미녀에게 햇빛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모르는구나?”
“확실히, 미인에 속하긴 했지. 너의 본체는.”
“…….”
셰인의 한마디에 마녀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내려앉았다.
아니, 분위기만이 아니라 실제로 마녀의 본거지에서부터 알 수 없는 압력이 셰인을 덮쳐 왔다.
“수백 년의 세월이 흘렀지…… 너의 말마따나 이 지저분한 지하에서, 그 여자의 눈을 피해 있었단다. 인간들 사이에 껴서, 작은 마을이 도시가 되고, 도시가 커져 왕국이 되는 과정을 봐 왔단다.”
주변에 멋대로 어질러져 있는 시약병이나 수정 구슬 혹은 서류 따위가 난잡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대로 멸망할 줄 알았던 왕국이 더욱 거대해져 하나의 제국으로 발돋움을 하는 것도 봐 왔고.”
“생각보다 오랜 도주 생활이었겠군.”
“도주 생활이라…… 그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마녀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다르단다. ‘우린’ 달라. 신이 두려워 숨어 버린 그 겁쟁이와는 다르단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그 여자와 다르게 죽음을 무릅쓰고 몇 차례의 실패를 겪었고, 이제 나 홀로 남게 되었지. 그런데, 그 긴 시간이 지나도록 그 여자는 우리 앞에 나타나기는커녕 흔적도 보인 적이 없었단다.”
마녀의 은빛 눈동자가 셰인을 꿰뚫을 기세로 쳐다봤다.
“그러니까 답해 주지 않겠니? 너와…… 그 여자의 관계를.”
동시에, 마녀의 본거지 곳곳에 숨겨져 있던 고대의 룬 문자가 빛을 내기 시작했다.
셰인이 배웠던 룬 문자보다 더욱 고차원적인, 신의 기적이 담긴 룬 문자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