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87)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87화
187화 정의와 마녀 (3)
그때는, 전생의 셰인이 나카르 사막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다음 임무를 위해 움직였을 당시였다.
나카르 사막에서 상당한 공을 쌓았던 셰인은 무명의 간부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곧바로 다음 임무지로 향했다.
당시의 셰인은 나카르 사막에서 무명의 조직원이었던 아르바슈 삼총사에게 배신당하고, 실이 끊긴 인형처럼 모든 감정이 사라진 상태였다.
그나마 남아 있던 삶의 목표는 무명에서의 인정이었고, 쉴 틈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셰인은, 다음 임무지에서 ‘그 여자’와 만났다.
“어머. 너는…… 역천의 운명을 타고났구나?”
은빛 눈동자를 가진 여성.
그녀는 스스로를 ‘최후의 마녀’라고 소개했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오히려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해도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의 만남으로 이어진 형태는 학살에서부터 비롯되었으니까.
무명에서는 최후의 마녀에 대해 영입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척살하는 방향으로 잡았었다.
그러나 마녀는 애초에 무명과 연관될 생각이 없었고, 셰인과 그의 동료들이 찾아온 즉시 학살을 벌였다.
무명 내에서도 내로라할 강자들이 한줌의 고깃조각으로 화했고, 홀로 살아남은 셰인만이 마녀의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그것은 셰인이 가진 분석 능력이 뛰어난 덕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마녀의 ‘흥미’를 끌어당겼다는 이유가 더 컸다.
무명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주변에 무명의 눈과 귀가 없어진 상황.
셰인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도 잊어버린 채, 무심코 입을 열었다.
“저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십시오.”
그리고 마녀의 대답은.
“아, 그건 좀.”
명백한 거절이었다.
* * *
본론부터 놓고 본다면 셰인은 마녀에게 몇 가지 룬 마법을 전수받을 수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초 중 기초에 불과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녀의 기준이었고, 인간들 세계에 퍼진 룬 마법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고등한 기술이었다.
당시에도 셰인의 분석력은 남달랐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신격’이 담긴 룬 마법은 배우지 못했는데, 이는 마녀가 걸어 둔 제안 때문이었다.
“흐음…… 널 보면 굉장히 특이하단 말이지?”
“무슨 말씀입니까.”
셰인이 마녀의 밑에서 한 달 정도 지냈을 무렵.
나른한 햇빛을 받아가며 동화에 나올 법한 나무 집에서 마녀는 방금까지 셰인이 정성을 다 해 완성한 차를 한 입 기울고는 말했다.
“지금만 보자면 그저 이해력이 좋은 애송이에 불과한데…… 어째서 너에게 이토록 역천의 운명이 느껴질까?”
“…….”
그런 마녀의 혼잣말에 셰인은 뭐라 답해 줄 수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그저 그런 범재에 불과했으니까.
일평생 동생 클라인과 비교되어 온 삶이었다. 그런 그는 자신이 무엇 하나 특별할 게 없는 하잘것없는 존재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마녀는 그런 셰인에게 관심을 가졌고, 모든 감정이 죽어 버린 셰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망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탐구에 대한 지극한 욕심이었다.
“‘신격’이 담긴 룬 마법을 배우고 싶니?”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렴.”
“무엇입니까?”
“내 실수 하나를 바로잡아 줬으면 좋겠구나. 그것들과 너의 운명이 아주 엷게 이어져 있단다. 언젠가 그들을 만나거든, 네가 바로잡아 주렴.”
“……알겠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마녀가 셰인의 부탁을 다른 방향으로 거절한 줄만 알았다.
그야 그녀는 스스로의 실수가 무엇인지 제대로 된 설명도 해 주지 않았으니까.
훗날 무명의 간부가 되고, 무명이 가지고 있던 마녀의 정보를 파악한 뒤에야 그녀가 말했던 실수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그땐 이미 질투의 자아에게 집어삼켜진 후였지만 말이다.
대신, 그녀는 셰인에게 한 가지 도움의 손길을 내어 준 적이 있었다.
언젠가 자신의 실수와 마주하면 쓰라고 했던, 비장의 한 수를.
* * *
신격이 담긴 룬 문자를 보자마자, 셰인은 볼 것도 없이 검붉은 불꽃을 일으켰다.
백염과 탐욕의 오리진이 깃든 불꽃은 그대로 일대에 몰아치는 룬 문자의 마력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켰다.
동시에 몰려오는 마력의 파도를 유유히 심장으로 유도시킨 셰인은 순식간에 마법을 일으켜 반격했다.
불과 물, 번개와 대지로 이루어진 네 가지 속성의 마법이 유려한 그림을 그리며 마녀에게 날아들었지만, 마법은 공중에서 허무하게 분해되고 말았다.
“제법 재미있는 힘을 쓰는구나? 그런데…… 여기서는 무리란다. 그 누구도 내 ‘성’에는 날 해할 수 없어.”
마녀의 말처럼.
그녀가 머무는 공간에는 빼곡하게 신격이 담긴 룬 마법이 박혀 있었다.
하나하나가 침입자를 죽이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 마법이기에, 아무리 셰인이 방어에 전념한다 한들 그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과거, 진짜 마녀를 만났을 때는 이보다 더했기에, 셰인은 눈앞에 있는 ‘가짜’가 하는 말이 오만이 아님을 깨달았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하지만…….’
굳이 이곳에서 쓸 힘은 아니었다.
아마 예민한 클라인이라면, 이곳에 도달했을 때쯤 남아있는 전투의 흔적만으로도 ‘가면의 남자’와 셰인의 유사성을 눈치챌 테니까.
그래서 셰인은 방법을 달리했다.
“마녀는 유독 자신의 공간에서 싸우길 좋아하지. 그리고 그 여자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런 걸 내게 건네줬던 건가.”
“음……?”
그러자 셰인의 주변으로 룬 마법이 아른거리며 떠올랐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던 룬 마법.
이것은 셰인이 직접 일으킨 것이라기보단 건네받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일회성 마법이라 해야 할까.
전생의 마녀가 셰인의 영혼에 새긴 룬 마법이 밖으로 튀어나오며 일대를 뒤엎자, 눈앞에 있는 ‘가짜’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너, 그 마법은……!”
[이차원 공간 전이].눈 깜짝 할 사이에 확장된 룬 마법은, 그대로 마녀와 셰인을 집어삼키고는 이내 짧게 점멸했다.
룬 마법이 내뿜던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방금까지 둥둥 떠다니던 물건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따름이었다.
* * *
저벅, 저벅.
일정한 간격으로 퍼져 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외로이 지하 수로에 퍼져 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첫 레버넌트인 헤르타를 죽이고도 아네이스는 수십 차례 또 다른 저지먼트 기사단원을 만나야만 했다.
매번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지만, 전투가 끝난 후에는 피곤하긴커녕 이전보다 좋아진 컨디션이 아네이스의 발걸음을 이어 가도록 만들었다.
마치 누군가가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그려진 길을 따라가듯 나아가기를 얼마.
또다시 나타난 레버넌트가 아네이스의 앞길을 막아섰다.
이번에 나타난 인물도 역시, 아네이스가 알고 있던 이었다.
“……베나타.”
황실의 문장이 박힌 화려한 갑옷 위로, 얼굴 가죽만 남긴 채 푸른 귀화를 흘리고 있는 이를 향해 아네이스가 말했다.
베나타.
저지먼트 기사단의 부단장으로, 그녀는 아네이스가 태어나기 전부터 저지먼트 기사단에 있었던 여인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었을 때도, 현 단장인 올리버 G 대니얼을 제외한 그 어떤 단원보다도 뛰어남을 증명했던 기사.
아네이스의 기억 속 베나타는 묵묵한 여인이었다.
말수가 적고 단원들 또한 그녀에게 쉽사리 말을 걸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네이스는 오히려 그런 베나타가 편하게 다가왔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필요한 일만 해내는 사람.
타인의 감정에 무덤덤한 아네이스에게 때로 그녀는 마치 단단하면서도 포근한 집처럼 느껴질 때가 더러 있었다.
그런 그녀도, 가끔 사람다운 감정을 내비칠 때가 있었다.
카아앙─!
무겁다.
이곳까지 오면서 겪어 왔던 헤르타, 그리고 다수의 기사단원들의 검과 다르게, 베나타의 검은 그녀의 묵묵한 성격만큼이나 무거웠다.
그렇다고 검이 느린가?
그건 또 아니다.
저 묵직한 검의 찌르기는 쾌검만큼이나 빨랐고, 또 치명적이었다.
아네이스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고, 다년간의 실전을 통해 실력을 극대화시켰다고는 하더라도, 한평생 제국의 정의를 지키기 위해 살아왔던 베나타만큼은 아니다.
본래의 아네이스였더라면, 베나타의 일검을 막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리라.
그녀는 명부상실 3급의 마스터였고, 제국에서도 몇 없는 강자였으니까.
콰아아아앙─!!
단 일격만으로 뒤에 펼쳐진 지하 수로가 굉음을 내며 반파됐다.
무슨 마법적 장치를 해 둔 것인지 수로가 무너지진 않았지만, 단 한 수에 일대가 쑥대밭이 된 것이다.
공격을 겨우 막은 팔이 덜덜 떨렸다. 근육을 포함해 내부가 진탕이 되어 버렸다.
수십 차례 이어져 온 결투로 인해 너덜거리는 검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아네이스는 고통 한 점 보이지 않는 얼굴로 태연하게 그런 베나타의 검을 막아 내고 있었다.
기억이 강제로 주입되었다.
‘……음. 별거 아니다. 그저, 오늘 따라 열심히 단련하고 계시는군.’
‘단장님은 항상 스스로를 단련하는 데 게으른 적이 없으셨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바위 같은 분이시다.’
‘왜 이런 곳에서 보고 있냐고?’
‘……그저 지나가다 보였을 뿐이다.’
‘……! 이, 이 수건은…… 그래, 빨래가 끝나서 가지고 가던 길이다.’
‘나, 나는 당장 쓰지 않으니 괜찮다…… 아네이스, 네가 단장님께 가져다드려라.’
‘내, 내 이름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건 그냥 네가 가져다드린 거다.’
항상 근엄한 그녀였지만, 전대 단장이자 아네이스의 양아버지인 로버트에게는 부끄러움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로버트에게 연정이 있던 게 아닐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숨기고, 언제나 먼 발치에서 로버트를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아주 가끔, 샤워를 마친 아네이스와 마주치게 되는 날에는 자신의 방으로 불러 와 아네이스의 머리를 만져 주고는 했다.
오랜 시간 검을 잡았던 투박한 손은 아네이스에게 왠지 모를 포근함을 가져다주었다.
기억에도 희미했던 먼 옛날.
친어머니의 손길이 떠오르고는 했다.
콰아아앙─!
다시 한번 아네이스가 베나타의 검을 막아 냈다.
아니, 막아 내지 못했다.
기어코 검이 부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미처 흘리지 못한 여파가 아네이스를 구석에 처박았다.
“커헉……!”
내상이 심해진 걸까.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고 호흡이 곤란하다.
흐릿해져 가는 시야.
그러나 아네이스는 두 동강이 난 자신의 검을 버리고, 새로운 검을 뽑아 들었다.
앞선 전투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가져올 수 있던 기사단원의 검이었다.
그는 헤르타가 평소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던 사내였다.
또 그 사내에게 베나타는 누님이었고.
동생의 검으로 누님을 겨눈다.
아네이스는 그런 자각을 하지도 못한 채, 다시 한번 베나타의 앞에 섰다.
이번에는 아네이스가 먼저 움직였다.
그에 따라 베나타가 반응했다.
그러자 아네이스의 흐릿한 시야에 베나타의 검이 움직이는 경로가 보였다.
정확히는, ‘예측’했다.
가까스로 그 경로를 회피하고, 아네이스의 검이 처음으로 베나타에게 유효한 타격으로 들어갔다.
허리가 깊게 베인 베나타가 뒤로 크게 물러서고, 아네이스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몸에 채찍질을 가하며 그런 베나타를 뒤쫓았다.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으나, 베나타는 노련하게 아네이스의 검을 위로 걷어차고는, 그대로 뒤돌려차기를 했다.
불의의 일격에 아네이스가 다급히 한쪽 팔을 들어 올렸다.
빠각─!!
불길한 소리와 함께 아네이스의 한쪽 팔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조금만 더 힘이 들어갔다면, 순수한 완력만으로 왼쪽 팔이 뜯겨져 나갈 뻔했다.
상상 이상의 고통이 팔을 통해 어깨에서 뇌로 이어졌지만, 아네이스는 여전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베나타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왜. 우릴 떠나셨지.’
양아버지, 로버트의 장례식장에서 평소 무덤덤했던 베나타의 표정이 무너졌다.
평소 표정이 많았던 다른 단원들도 무표정한 상황에, 유일하게 베나타만이 다른 표정을 띄운 것이다.
당시의 아네이스는 그런 베나타를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던 중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빛에서는, 옅게나마 아네이스를 향한 원망이 담겨져 있었다.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아네이스는 베나타의 얼굴에 담겨 있던 원망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주륵.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니, 검 끝에 맺힌 핏방울이 떨어졌다.
끝내 베나타의 심장을 뚫고 지나간 검의 끝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었다.
아네이스는 묻고 싶었다.
왜 저를 원망했어요?
라고.
하지만 푸른 귀화가 사라진 베나타의 텅 빈 눈구멍에서는, 어떠한 답도 들을 수 없었다.
저벅, 저벅.
아네이스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여태까지그래 왔듯, 의문을 삼킨 채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걸었다.
그 끝에는.
“……왔구나.”
현 저지먼트의 단장, 올리버 G 대니얼.
그가 반으로 가른 듯 절반만 미라화가 된 채 붉은빛이 내려오는 수로에 앉아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