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8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89화
189화 정의와 마녀 (5)
아네이스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현 저지먼트 기사단의 단장, 올리버 G 대니얼을 바라봤다.
올리버의 모습은 처참했다.
사자 갈기와도 같던 풍성한 머리카락은 어디 가고, 듬성듬성 남아 흉물스럽게 변했고.
태산과도 같던 몸의 절반은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꼭,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 같구나.”
대니얼은 하나 남은 팔을 들어 검을 움켜쥐었다.
“일일이 설명하기엔 어렵겠군. 적어도 너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러면서, 대니얼은 자조 어린 웃음을 지었다.
천하를 호령할 것 같은 자신감과 호쾌함을 보이던, 예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렇게 영락해 버린 이상 뭘 숨길 게 있을까. 아니, 오히려 이건 내가 녀석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저열한 복수일지도 모르지.”
“…….”
“검을 들어라, 아네이스. 예전처럼, 한 수 가르쳐 주마.”
그 말에, 아네이스는 기계처럼 검을 들었다.
“크큭…… 그래, 그거면 된다. 그럼, 보여 주도록 하마. 어쩌다 제국의 영광이…… 이런 꼴이 되어 버렸는지.”
채앵!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반쯤 레버넌트화가 된 대니얼의 검이 아네이스의 검과 맞부딪혔다.
그와 동시에, 아네이스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이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자신의 기억이 아닌 다른 이의 기억이 머릿속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 * *
대니얼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싸구려 삼류 연극에 나올 법한 등장인물이라고.
어릴 때부터 재능을 보인 세 명의 친구가 있었다.
시간이 흘러 각각 재능의 차이는 곧 실력의 차이로 벌어지고.
그 사이에서 열등감이 태어났다.
빛나는 재능을 가진 친구는 전 저지먼트 기사단장, 로버트였고.
그런 로버트를 좋아하던 친구는 베나타였으며.
그리고 베나타를 좋아하며, 로버트에게 열등감을 느꼈던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
대니얼이었다.
하지만 대니얼은 그런 자신이 싫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호쾌한 웃음으로 스스로를 포장해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로버트에게 느껴지는 열등감은 대니얼의 가슴 한편을 항상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니얼도 현실을 아는 어른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고, 로버트의 성공을 기원했다.
-차라리 내가 감히 넘볼 수도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간다면, 이런 마음도 먹지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했다.
베나타에 대한 마음도 접고 싶었다.
-차라리 저 둘이 만난다면 나도 완전히 마음을 접을 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마음가짐은 실제로도 제법 잘 먹혀들었다.
대니얼은 어느 순간부터 로버트에게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게 되었고, 베나타를 봐도 숫기 어린 청년마냥 심장이 두근거리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마음에 걸었던 최면에 불과했다.
그것도 아주 손쉽게 깨질 최면.
“베나타가, 나를 좋아한다고?”
“그래, 인마.”
로버트가 저지먼트 기사단의 단장이 된 이후.
소소한 파티가 끝나고 오랜만에 술을 절제하지 못한 대니얼은 무심코 로버트에게 그런 말을 하고 말았다.
사실, 당시의 대니얼에게 두 사람의 마음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두 사람의 지지부진하던 관계를 이어 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접고 싶었을 뿐.
하지만, 대니얼은 이어진 로버트의 대답에 처음으로 스스로가 건 최면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안 돼.”
“뭐? 왜?”
“나는…… 그럴 수 없으니까. 그럴 자격이 없어.”
감정의 고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대답.
대니얼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국의 정상에 존재하는 저지먼트 기사단의 단장이 됐으면서, 왜 자격이 없단 말인가.
그때부터 대니얼은 자신에게 건 최면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고, 그의 열등감은 그동안 억눌러 왔던 것을 되갚아 주기라도 하듯 덩치를 키워 갔다.
이윽고 파국은 찾아왔다.
어느 날 실종된 로버트.
황실에서는 로버트가 비밀 임무를 수행하던 중 사망했다고 처리했다.
그러던 와중, 저지먼트 기사단에 소속된 선배의 은밀한 부름에 대니얼이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긴 장소는 깊디깊은 지하였다.
그곳에서, 대니얼은 황실의 어둠을 보았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어둠은 강해진다던가.
이윽고, 대니얼은 은빛의 눈을 가진 여인과 마주했다.
그리고──
* * *
“별로 놀란 기색은 없군…….”
입가로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닦은 대니얼이 어딘가 안심되는 표정으로 말했다.
피가 흐르고 있으니, 아직 자신은 인간임을 확인했기에 그런 듯했다.
“그 표정도 꼭 네 아비를 닮았어.”
“…….”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들어가서 봐라. 조연은, 여기서 빠지도록 하지.”
그런 대니얼의 가슴에는, 아네이스의 검이 박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베나타의 검이었다.
대니얼은 자신의 검을 아네이스에게 건넸다.
“가져가라.”
“…….”
대니얼의 검을 받은 아네이스의 상태도 썩 좋지는 못 했다.
허벅지와 옆구리가 크게 베이고, 입고 있던 갑옷도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깻죽지도 조금만 더 베였더라면 아예 팔을 쓰지 못할 뻔했다.
대니얼은 그런 아네이스에게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방금 대니얼의 기억 속에서 봤던 지하의 복도.
아네이스는 대니얼에게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복도를 향해 나아갔다.
아네이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니얼은 자신의 가슴에 꽂힌 검을 피 묻은 손으로 쓰다듬었다.
“지금도, 내 일방적인 사랑일 뿐이군.”
이럴 줄 알았으면 고백이라도 한번 해 볼 것을.
아니.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대니얼이 말했다.
“그럴 자격도 없었군…….”
대니얼의 푸른 귀화가 서서히 빛을 잃어 가다, 이윽고 꺼졌다.
텅 빈 눈구멍이 허공을 응시했다.
* * *
터벅, 터벅.
지하 복도를 걷는 아네이스는 기시감을 느꼈다.
방금 대니얼의 기억 속에서 봤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은 이 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었다.
며칠 전, 셰인이 일깨워 준 과거 기억 속의 풍경.
지금보다 어렸던 자신은 이 길을 걷고 있었다.
“…….”
이곳까지 오면서 아네이스는 자신이 처치한 저지먼트 기사단원들을 떠올렸다.
그녀의 기억 속 그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들이 말하는 정의가 곧 정의인 줄 알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이따금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정의로부터 ‘거짓’을 느끼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믿고자 했다.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메자이아 대수림에서 황실의 기사단을 본 직후부터였다.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거짓은 아네이스가 받아들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한 번 금이 가기 시작한 믿음은 거미줄처럼 그 영역을 넓혀, 깨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단계까지 도달했다.
복도를 걷고 있음에도, 금이 간 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기분.
한 걸음, 한 걸음.
쩌적, 쩌적.
실금이 더욱 퍼져 나가는 믿음 위를 걷던 아네이스는 결국 목적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랜만이구나, 아네이스.”
전 저지먼트 기사단장이자.
자신의 양아버지였던, 로버트가 있었다.
* * *
마녀에게 버려진 호문쿨루스들은 인간들의 세계로 숨어들었다.
신은 그녀들에게 삶을 허락했지만, 정작 그녀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마녀에 의해 만들어진 실험체에 불과했기에, 그 수명은 명확했다.
그렇기에, 그녀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주어진 수명에 만족하고 죽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할지.
물론, 마녀의 성격을 그대로 타고난 호문쿨루스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여기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짧은 수명만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엔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호문쿨루스 중에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존재가 다른 호문쿨루스들의 영혼을 이어받고, 그녀들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연구에 들어갔다.
“새로운 영혼을 만드는 건 안 돼.”
자신들을 만든 마녀도 완벽한 영혼은 만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신과 세계가 이미 그녀들을 주시하는 중일 터.
때문에 그녀들은 방향을 바꿔, 기존에 있던 영혼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방향성은 나쁘지 않았다. 성과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완벽하진 않았다.
타인의 영혼은 이미 주인이 존재하는 것. 온전히 호문쿨루스의 영혼이 담길 그릇은 되지 못 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을 무렵.
어느 날, 호문쿨루스는 특이한 인간을 발견했다.
새하얀 백발에,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어린 소년.
소년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손에서부터 새하얀 불꽃을 생성할 줄 알았던 것이다.
평범한 불꽃이 아니었다.
불꽃에 닿은 마물들은 마력을 잃었고, 시름시름 앓았으니까.
마을에서 소년은 영웅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소년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없던 얼굴에서는 생명력마저 옅어져 갔고.
끝내 영혼이 텅 비어 버린 시체가 되었으니까.
그야말로 우연에 불과했던 발견.
호문쿨루스는 마치 빈껍데기와도 같아진 소년의 시체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이거라면, 완벽한 그릇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 *
“우연이었단다. 아직 왕국에 불과했던 제국에서, 나처럼 백발의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던 건.”
의자에 앉은 호문쿨루스는 점차 실금이 넓어져 가는 이차원의 공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시의 제국…… 아니, 왕국의 왕은 고민이 있었거든. 땅은 넓지만, 지키기엔 한계가 있던 거야. 그런 와중에, 마력을 완벽하게 차단시키는 정체불명의 아이들이 제국 이곳저곳에서 발견됐던 거지.”
물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수십 년에 한 번 발견될까 말까 한 수준.
당시의 왕은 전국에서 그런 아이들을 수배했고, 마녀는 왕국에 들러붙어서 아이들을 개조하며 자신의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그 결과 왕국은 저지먼트 기사단을 탄생시켰고, 확실하게 제국으로 발돋움할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단다. 그 아이들은 섬세해서, 섣불리 힘을 남발했다간 영혼이 모두 닳아 없어지기 마련이거든.”
호문쿨루스의 말에 셰인은 자연스럽게 아나스타샤를 떠올렸다.
그녀 또한 은발에 가까운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백염이 아닌 부동의 오리진을 사용하긴 했지만.
홀로 오리진을 사용할 줄 알았던 그녀 또한 전생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빈껍데기가 되어 버리지 않았던가.
셰인은 그것을 정령이라는 통로를 통해 물리력을 갖추도록 만들었다.
반면, 호문쿨루스는 다른 선택을 했다.
“통로가 필요하다. 그건 나도 떠올린 발상이었단다. 다만, 통로의 주체가 달랐지. 나는 백발의 아이들을 통로로 만들었거든.”
백염을 만들어 낼 연료는 타인의 영혼.
백발의 아이는 통로로 만들었다.
그러고는 다른 사용자, 즉 저지먼트 기사단과 백발의 아이를 연결시킬 룬 마법을 새겨 넣은 뒤.
기사단의 마력에 백염이 섞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내구도에는 한계가 있었지. 얼추 10년 정도?”
타인의 영혼을 연료로 사용하고, 백염을 생산시키는 통로 역할을 하던 아이들의 수명은 길어 봐야 15년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게, 제국은 백발의 아이들을 찾아다녔다.
때로는 노예로 사거나, 영입하거나, 그 모든 게 막힐 때는.
“제법 과한 방법을 쓰기도 했지. 도적떼의 공격인 것처럼 꾸미고, 백발의 아이만 쏙 건져서 데리고 오는 거야.”
아네이스가 겪었던 것처럼 하거나.
“그게, 제국이 말하는 ‘정의’였단다. 후훗, 재미있지 않니? 정의를 위한 악의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