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90)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90화
190화 정의와 마녀 (6)
거대한 실험관 내부로 새하얀 화염이 넘실거렸다.
그곳에는 10년 전에 사망했다고 알려진 전대 저지먼트 기사단장, 린트베르크 K 로버트가 들어가 있었다.
“……단장님.”
“그래, 아네이스. 오랜만이구나. 이제 9년 정도 시간이 흘렀나? 정말 많이 컸군.”
“……10년이에요.”
“그런가. 벌써 10년을 채운 것인가.”
10년.
무려 10년만에 다시 보게 된 그녀의 양아버지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었다.
맨 주먹으로 바위도 깨부술 것 같았던 근육은 모두 빠져 버렸고, 퀑한 눈빛은 마치 시체와 같았다.
앙상한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는 가슴에, 다리도 걸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얇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운 듯한 말투와는 다르게 그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감정이 없었다.
마치 오르골처럼 정교한 기계 장치가 대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전부, 죽었어요.”
“그래. 그렇군. 베나타와 대니얼. 녀석들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그의 얼굴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과연 그들을 친구라고 생각하긴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뇌라는 입력 장치에 기록된 정보를 그대로 되새기는 것뿐일까.
아네이스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묻고 싶은 걸 묻기로 했다.
“왜…… 이런 일을 하신거예요.”
“음. 내가 원망스럽더냐.”
“……모르겠어요.”
“원망해도 된다. 내게 남은 것은 이 방법밖에 없었고, 나는 그걸 수긍했으니.”
“질문에 답해 주세요.”
“……그래. 어려울 건 없지. 오랜만에 너와 하는 대화이지 않느냐. 모두 설명해 주마.”
그러면서, 로버트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를 아네이스에게 맞추며 말했다.
“왜 이런 일을 했느냐. 우선 이 질문에 답해 주마. 마녀와 황제에겐 유일한 정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유일한 정의요.”
“그래. 이곳까지 오면서 너도 깨달았겠지. 황실에서는 정의를 위해 악의를 실행시켰다.”
“…….”
“아네이스. 주변에서는 몰랐겠지만, 너와 같은 ‘종류’인 나는 알 수 있었다. 너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지.”
“백염이요?”
“아니.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거다.”
“……!”
살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의 능력.
사실 아네이스는 그걸 능력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저주에 가까웠으니까.
무엇이든 의심하고, 무엇이든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저주였다.
“언제부터 알고 계셨어요.”
“처음부터. 내가 너에게 했던 거짓말을, 너는 곧바로 알아차렸지.”
“…….”
처음이라면. 분명 도적떼의 침략으로 인해 친아버지의 품속에서 구조되었을 당시다.
그때 로버트는 아네이스에게 도적떼로 인해 마을이 붕괴됐다고 했지만, 어렸던 아네이스는 그 말이 거짓임을 금방 깨달았다.
“네가 알고 있었다시피, 그건 도적떼의 침략 같은 게 아니었다. 황실에서 일으킨 일이었지. 나처럼, 백염을 만들어 낼 재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
“자국의 정의를 위해 자국민을 죽였다. 이런 일이 비단 너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제국의 찬란한 역사 뒤로, 몇 번이나 반복되어 왔던 일이었지.”
하지만 이러한 역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 황제는 만족하지 못했던 것이다.
“백발의 아이는 십여 년에 한 번 나타난다. 하지만, 그조차도 확실치는 않지.”
혹시라도 불의의 사고로 인해 아이가 나타나지 못한다면, 저지먼트 기사단의 존재도 불안해지는 것이다.
“황제는 그 사실이 못내 불안했지. 이전까지는 유야무야 넘어갔지만, 첫 번째 황태자가 죽은 이후 황제는 달라졌다. 불안한 제국의 정세를, 보다 확실하게 지키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황제는 은안의 마녀, 호문쿨루스를 불러 지금보다 더 안정성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아네이스였다.
통로를 통해 백염을 사용해 온 저지먼트 기사단.
그들의 영혼을 하나의 육신으로 모아서, 영혼의 그릇을 극대화시킨 존재.
그렇게 된다면, 통로의 역할을 하는 백발의 아이는 기존보다 몇 배는 더 긴 수명을 가지게 될 터.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마녀의 농간에 불과했지.”
황태자의 죽음 이후, 호문쿨루스는 불안감을 느낀 황제에게 찾아가 은밀하게 제안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 더욱 제국을 안정시킬 방법을.
애초에 마녀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로버트가 중년의 나이가 다 되도록 통로의 역할을 하는 아이들의 수명을 최대한 연장시키는 한편, 황제에게는 로버트를 비상용으로 남겨 두라는 말로 설득시켰다.
그러나 정작 로버트 또한 아네이스라는 그릇을 만들기 위한 밑재료였을 뿐이다.
“어째서인지 마녀는 그 어떤 영혼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그릇을 원하더구나. 나는, 너에게 이식되기 위해 만들어진 그릇이었지.”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나라고 바보는 아니다. 언젠가 내 최후가 다가온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수십 년의 시간을 살면서 마녀의 본심을 파악했다.”
어째서 마녀가 그만한 영혼의 그릇을 원하는지는 로버트도 몰랐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마녀와 황제의 목적이 서로 달랐다는 것이고.
로버트는 언젠가 이 파국이 찾아올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딱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지.”
로버트가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공허한 눈으로 그렇게 말했다.
일이 어떻게 되든, 황제는 호문쿨루스를 치우지 못한다.
첫 황태자의 죽음 이후, 황제는 제국의 안위를 최우선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저지먼트 기사단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호문쿨루스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또한 없을 테지.”
“…….”
아네이스는 자신의 능력, 평생토록 저주라고 생각해 온 그 능력에 집중했다.
어째서일까.
평소 그렇게 아네이스를 괴롭히던 그 능력은, 아네이스에게 로버트의 말에 대한 진실을 알려 주지 않았다.
“아네이스. 이미 네 영혼에는 저지먼트 기사단원들의 영혼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로 뒀다간, 분명 너는 너 자신을 잃고 말 거다.”
로버트가 말했다.
“내 백염을 흡수하고, 내 심장에 검을 꽂아 넣어라. 그게 유일하게 네가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제가 살 수 있는 방법이요.”
“그래. 유일한 정의가 되어, 내가, 그리고 수많은 백발의 아이들이 그러했듯 제국을 지켜라.”
“…….”
“그게, 정의다.”
여전히 자신의 능력은 로버트의 말에 대한 진의를 판별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르르르릉─
그때, 지하 수로가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누군가의 전투가 벌여지고 있는 걸까.
아네이스는 잠시 지상의 상태와, 이곳까지 함께 들어와 준 셰인과 클라인을 떠올렸다.
“제가 그 힘을 얻게 되면.”
“…….”
“마녀도 죽일 수 있나요.”
“그게 네가 생각하는 정의라면. 쉽지 않겠지만, 가능은 하겠지.”
“…….”
아네이스는 퀑한 로버트의 눈을 바라보았다.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수차례 힘없이 눈꺼풀을 들었다 올리는 눈빛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아네이스의 검이, 뽑혀 들렸다.
* * *
“전대 단장이라는 남자는 조금 귀찮았단다. 이래저래 눈치가 좋았거든.”
과거를 회상하듯 말하는 호문쿨루스.
“제국에서 유일하게 그 나이까지 살아남은 백발의 아이. 녀석은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키워졌는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행동에 거침이 없었지. 나나 황제가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로버트는 황실과 호문쿨루스 사이에 있던 이들을 파헤치려 했고, 또 호문쿨루스의 목적을 파악하려 했다.
호문쿨루스의 입장에서는 퍽 난처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 길고 길었던 호문쿨루스의 계획을 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부성애라도 생겼던 모양이야. 통로로 쓰이던 재료들이 모두 소진되고, 내가 그릇으로 점찍어 둔 아이를 사용해야겠다는 거짓말에 그대로 넘어가 자기 자신을 통로로 쓰라고 말했지.”
어차피 아네이스를 그릇으로 쓸 생각이었던 호문쿨루스는 애초에 그녀를 그런 식으로 소모할 생각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로버트도 아네이스의 그릇으로 넓힐 개조가 필요했던 상황.
이후부터는 호문쿨루스의 생각대로 흘러갔다.
로버트는 자진해서 통로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아네이스의 그릇을 넓힐 재료가 되었고.
호문쿨루스는 천천히 때를 기다렸다.
“수백 년도 더 기다린 마당에 뭔들 못하겠어. 그런데, 갑자기 이 사달이 나 버렸지 뭐야.”
무명의 계획은 그런 호문쿨루스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고.
그녀는 다급히 아네이스를 불러 올 수밖에 없었다.
백염의 안개를 펼치면, 당연히 아네이스가 찾아올 터였으니.
“이제 그릇이 제 아비의 심장을 가르고, 백염을 흡수하기만 하면 된단다. 이미 그렇게 룬 마법을 짜 놨거든.”
“백염의 안개. 단순히 아네이스를 부를 역할로 만든 게 아니로군.”
“그래, 맞아. 과거, 그 아이가 처음으로 백염을 다룰 수 있도록 룬 마법을 몸에 새기면서, 암시도 함께 걸어 뒀었지. 아마 지금쯤이면 제 아비의 앞까지 도달하지 않았을까? 기사단원들을 모두 죽이고, 그들의 영혼을 흡수하면서. 마치 본능처럼 말이야.”
입을 다문 셰인을 보며 호문쿨루스는 그런 셰인에게 비웃듯 말했다.
“물론, 이렇게 완벽하게 보이는 계획이긴 했지만, 차질이 없던 건 아니었단다. 로버트, 그 남자가 나도 모르게 깜찍한 짓을 해 뒀지 뭐야.”
로버트는 언젠가 찾아올 파국의 시간에 대비하기 위해 하나의 묘수를 떠올렸다.
“결과적으로, 내 목적은 그 아이가 넓어진 그릇과 함께 넘쳐 나는 영혼을 해소시키기 위해 폭주하는 것이란다. 그래야만 폭주가 끝난 뒤, 텅 빈 그릇을 내가 쓸 수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셰인은 전생의 아네이스를 떠올렸다.
철혈의 아네이스.
죄의 무게가 가볍든 무겁든, 오로지 죽음으로 모든 정의를 심판하는 여인.
그녀는 존재는 모든 죄인들 앞에서 공포의 상징이었고, 무명조차 그녀가 머무는 지역에 공격을 지양할 정도였으니.
당시 아네이스가 보였던 무력은 그만큼 대단했다.
“물론 내 영혼을 옮기려면, 그릇에 담긴 영혼은 완전히 빠져야 한단다. 그리고 그건, 그 남자도 잘 알고 있었지.”
그렇기에, 로버트는 아네이스의 영혼을 어떻게든 보호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해 왔었다.
“감쪽같이 속았지 뭐니? 황제의 명령으로 흑마법사들을 토벌할 때, 녀석들의 연구 일지를 모조리 빼돌려 버린 거야. 만약, 대니얼 그 아이가 없었다면 나도 속았겠지.”
그러면서, 호문쿨루스가 품에서 자그마한 실험관을 꺼내들었다.
그 안에서 벌레 한 마리가 실험관 내부에서 꿈틀거렸다.
“‘기억을 먹는 벌레’란다. 고대 시절, 어느 한 야만 부족이 몬스터를 노예로 부릴 때 사용했던 거야. 안타깝게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개체지만. 다른 차원에서 온 생물이거든.”
“…….”
“물론 인간과 같은 지성체에게는 기억을 지우는 용도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 아네이스, 그 아이는 로버트가 방비해 둔 기억을 잊고 있을 거란다.”
그러면서, 호문쿨루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어떠니. 내 이야기는? 나도 참 주책이지. 내가 원래 이렇게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니거든. 그런데…….”
고혹스러운 미소와 함께 셰인을 위아래로 훑는 호문쿨루스의 눈빛에서는 참을 수 없는 우월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진짜가 준비한 너에게, 내가 완벽해지는 그 과정을 설명하는 건 참을 수 없이 짜릿하단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니. 무려,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참아 온 기쁨인 것을.”
그 쾌감으로 인한 저릿함에 다리를 오므린 그녀가 미소를 지을 때.
“유감이군.”
“그렇지. 너에게는 유감일 거야.”
“아니.”
“……?”
“그 수백 년의 계획이, 우연찮은 기회로 무너진 게.”
“뭣…… 너, 너! 그걸 어떻게!”
그러면서 셰인은 자신의 한 손에서 꿈틀거리는 벌레를 보였다.
호문쿨루스의 실험관 내에 들어 있던 벌레와 완벽히 똑같은 개체.
그걸 본 호문쿨루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더 이상 구할 수 없는 개체라. 그야 그렇겠지. 이 벌레들이 살던 곳은 몽마들의 차원이었고, 그곳은 이미 멸망했으니.”
하지만, 이 벌레를 알아볼 몽마들은 존재했다.
예를 들면, 바로 얼마 전에 셰인이 만났던 서큐버스라던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