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98)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98화
198화 숲의 왕과 분노 (2)
붉은 하늘 아래로 섬뜩한 빛을 흘리는 대검이 휘둘러진다.
긴 리치의 대검이 마치 어린아이가 휘두르는 작대기처럼 가볍게 움직였다.
‘역시…… 섣불리 파고 들어가기가 힘들군.’
두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아나스타샤를 바라보며 카르후가 입술을 훑었다.
단단한 육체를 가진 카르후의 성격대로라면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을 가감 없이 펼쳤겠지만, 아나스타샤에게만큼은 그게 통하지 않았다.
뼈를 주고, 뼈를 취해야 하는 상대.
그럴 용기가 없는 게 아니었다. 단지 고대하고 고대하던 이 전투를 좀 더 느긋하게 즐기고 싶을 뿐.
게다가 아직 하이라이트는 나오지도 않은 상황이지 않나.
‘애초에 내 뼈와 저쪽의 뼈가 같은 가치를 가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카르후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두 주먹만으로는, 저 여자의 몸에 제대로 된 치명상은 입힐 수 없다는 걸.
3년 전.
지금보다 더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던 아나스타샤의 힘을 떠올리며 카르후의 입술이 비틀렸다.
튼튼한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타고난 근력이 있었다.
뛰어난 마력 적응력을 가졌다.
단지 그것만으로, 카르후는 져 본 적이 없던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아직 위의 세 조건이 갖춰지기 직전.
항거할 수 없는 적에게 대항하고, 끈질긴 전투 끝에 적의 피로 몸을 적셨을 때의 환희를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살아왔다.
‘빌어먹을 아버지는 점점 겁쟁이가 되었지.’
자신을 입양한 양아버지.
분노의 군단장, 블레이크.
카르후는 그가 은근히 자신과의 결투를 피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언젠가 무리에서 쫓겨날 사자가 자식을 경계하듯.
블레이크 또한 카르후를 은연중으로 피해 다녔던 것이다.
그 뒤로는 모든 게 무료했다.
흑백의 머리를 가진 꼬맹이, 앨리스와 어울려 다닌 것도, 그 꼬맹이가 몰고 다니는 혼돈이 그나마 지루한 삶에 활력을 찾아 줬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최근에는 뭐가 그리 바쁜지 얼굴을 보기가 힘들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후웅─!
또다시 간발의 차이로 빗나간 공격.
그럼에도 카르후는 섣불리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저것은 거대한 검임과 동시에 둔기다.
반대편에 들린 무기를 휘둘러 기존의 경로를 바꿔 기습적으로 들어오는 공격은 치명적이다.
‘이미 몇 번이고 당했던 공격이다.’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고, 신중을 기하며 기회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린다.
방금 빗나갔던 공격이, 어느새 뒤편으로 휘둘린 또 다른 대검과 맞부딪치면서 역동적으로 경로가 바뀌어 카르후를 향해 날아든다.
‘지금!’
한쪽 팔의 관절이 뒤로 향한 지금, 아무리 아나스타샤라 하더라도 이미 휘두른 검의 경로를 바꾸기엔 불가능하다.
노련한 아나스타샤가 이런 실수를 할 리가 없다.
함정임이 뻔히 보임에도, 자신의 본능이 그리 외쳐 대고 있음에도 카르후는 무시하고 아나스타샤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퍼어어억─!!
카르후의 주먹이 아나스타샤의 명치를 노리고 정확히 파고 들어갔다.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아나스타샤의 몸이 뒤로 쓰러지는가 싶은 그 순간.
콰직─!!
그런 카르후의 관자놀이에 아나스타샤의 팔꿈치가 틀어박혔다.
“커흑……!”
“카학……!”
압도적인 무력이 동시에 둘을 떼어 놓았다.
바닥을 구르길 몇 차례.
먼저 일어난 것은 아나스타샤였다.
“우웨엑……!”
압박을 받은 위가 위액을 토해 냈다.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때와 다르게 영혼을 소비하는 오리진이 아니기에 데미지가 들어오는 줄 알았으나, 방금의 공방을 통해 깨달았다.
아나스타샤가 3년 동안 성장했던 것처럼, 카르후 또한 성장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오러일진대, 부동의 오리진의 일부를 그대로 뚫고 들어온다.
어떤 마법을 쓴 것일까.
아나스타샤는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카르후를 노려봤다.
“그하, 끄흐하하학……!”
그런 그가, 한쪽 눈으로 피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나스타샤의 팔꿈치가 눈에까지 영향을 준 것인지, 그는 비틀거리면서도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 그래. 이런 전투를 바라 왔다. 그래야만, 이겼을 때의 황홀감이 나를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르게 해 줄 테니 말이야.”
“머리를 한 번 맞더니 헛소리를 늘어놓는군. 네놈이 갈 곳은 하늘 위가 아니라, 고통으로 가득할 지옥이 될 거다.”
“그하, 그하하핫!! 그렇다면 그 지옥에서 또 나와 싸울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겠군!!”
그리 말하던 카르후가 자리를 박차며 일어섰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지. 암, 아니고말고……! 난 아직 이승에 남아 적을 쳐죽여야 하거든!”
터진 안구로부터 피가 흘러나오는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두 주먹을 쥐었다 피던 카르후가 재차 말했다.
“그날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수없이 많은 가상 전투를 치렀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너를 쓰러뜨릴 그림을 그려 봤지만 번번이 실패하더군.”
“시간을 끌 셈인가?”
“크흐흐, 틀린 말은 아니지. 난 이 전투를 길게 이어 가고 싶으니. 하지만 들어 보라고.”
그러면서 주먹을 꽉 쥔 카르후의 주먹 위로 오러가 피어났다.
“몇 번이고 혼자 그리던 그림 속에서조차 너를 쓰러뜨리는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려 나갔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윤곽이 잡혀 가더군.”
“…….”
“처음엔 내가 헛꿈을 꾸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어. 인간, 그걸 아나? 과거 신화시대에는 신격자라는 존재들이 세상에 넘쳐 났다더군.”
“흔한 이야기지.”
“그하핫, 그래. 제법 흔한 이야기지. 그저 어릴 때나 들을 법한 이야기야.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더군.”
그러면서 카르후는 남은 한쪽 눈을 감았다.
지금도 그리려면 그려진다.
자신의 주먹이, 아나스타샤의 복부를 뚫고 나가는 그림이.
그녀의 피에 젖어 전신을 가로지르는 환희가.
방금 주고받았던 그 공방을 통해서, 마지막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오러는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력은 곧 세상의 만물에 깃들어, 형상을 취하고 물리력을 형성시키지. 그렇다면 극도로 단련된 심상은 어떻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군.”
“그하하, 그래. 너라면 그리 말할 것 같았다. 네가 보던 세상이 이런 건가? 심상을 물리화시키는 것. 그 뚫리지 않는 몸은, 과연 내가 그린 심상으로도 뚫리지 않는 것이냐?”
“심상이라…….”
그러면서, 아나스타샤 또한 숨을 고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아나스타샤를 바라보던 카르후가 이빨을 보이도록 웃었다.
“유명한 창과 방패의 이야기가 떠오르는군. 그하핫, 이 카르후를 감당할 방패여. 어디 한번 버텨 보아라. 나는 반드시, 너를 꿰뚫고 살아남아 그 환희를 느껴야만 해야겠으니. 그하하하핫─!!”
동시에 자신의 심상을 씌운 카르후의 주먹이 강렬한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 *
숲의 왕이 터뜨린 포효와 함께, 가장 먼저 움직인 사람은 벤자민이었다.
뇌영을 발동시킨 벤자민의 신형이 푸른 번개와 함께 사라져 어느새 숲의 왕 발치에 근접했다.
치지지지직─!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휘둘러진 검이 거대한 발목을 노리며 들어갔다.
저 거대한 덩치를 한 번에 처리하기란 요원한 일이니, 먼저 움직임에 제약을 두겠다는 계산이었다.
카앙─!
“크윽?!”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벤자민의 검은 숲의 왕에게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갔다.
검붉은 막이 생겨나 그의 검을 막은 것이다.
‘단순한 흑마력이 아닌 건가?’
뇌영은 그저 속도를 빠르게 해 주는 오러가 아니다.
뇌(雷)의 기운이 담긴 오러. 즉, 파마의 힘이 담겨 있다는 말이다.
언데드에게는 특히나 효과적이란 말인데, 눈앞에 있는 숲의 왕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냥 못 패면, 묶어서 패면 그만이지!”
그때, 디라일라의 목소리와 함께 ‘지평선의 정원’이 울기 시작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지와 공명을 시작한 디라일라의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제1장 1절. 대지의 계절. 변형식, 은.”
대지 위로 은은한 은빛 마력의 입자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뇌의 기운과 마찬가지로, 파마의 힘이 담긴 디라일라의 마력이 일대에 퍼져 나갔다.
“2절, 대지의 봉오리!”
세르데타인에서 시체 거인을 상대했을 때처럼, 대지가 꾸물꾸물 숲의 왕을 타고 올라갔다.
숲의 왕은 자신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대지를 보며 잠시 흥미롭다는 듯 봤으나, 한 차례 발을 구름과 동시에 디라일라가 머리를 붙잡았다.
“아아악?!”
대지와 이어져 있던 공명이 한순간 끊기며, 여파가 디라일라에게 들이닥친 것이다.
“어, 어떻게…… 큭!”
잠시 당황하던 디라일라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재차 마법을 펼쳤다.
디라일라가 땅을 한 번 박차자, 그녀의 발로부터 흘러나온 마력이 숲의 왕의 주변으로 거대한 기둥을 생성해 냈다.
“변형식, 구리!”
기둥 위로 디라일라의 마력이 뒤덮이고, 동시에 붉은 하늘 아래로 먹구름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 아래로 떨어지는 아르티아의 낙뢰. 붉은 하늘이 일순간 새하얗게 변했다.
벤자민의 뇌영이 일점에 집중됐다면, 아르티아의 낙뢰는 숲의 왕의 전신을 두드렸다.
하지만.
“미친…….”
낙뢰로 인해 생긴 흙먼지가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을 때, 그 자리에는 한 치의 그을림도 없이 멀쩡히 서 있는 숲의 왕이 보였다.
그 모습에 디라일라는 기가 질렸다는 듯 신음을 흘렸지만, 아네이스는 그런 분위기도 무시한 채 달려 나갔다.
아네이스의 내부에 응축되어 있는 백염이 그녀의 검을 타고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쿠오오……!
숲의 왕 또한 자신에게 날아오는 백염의 검기를 바라보며 손을 휘저었다.
10미터에 다다르는 거대한 덩치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렵하게 움직인 주먹은 그대로 백염의 검기를 후려쳐 터뜨렸다.
아네이스가 잠깐 만들어 낸 틈.
그사이에 벤자민은 주변에 아직 남은 아르티아의 낙뢰가 남긴 뇌기를 흡수하고는 그대로 숲의 왕의 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목표는 놈의 정수리.
‘어떤 보호막이라도 빈틈은 있다!’
처음에는 숲의 왕이 두르고 있는 불길한 기운에 자신의 공격이 완벽하게 막힌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다.
방금 아르티아의 낙뢰로 인해 숲의 왕이 두른 기운에도 빈틈이 느껴졌다.
노련한 벤자민은 바로 그 틈을 어느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런 벤자민의 살기를 느낀 숲의 왕이 거칠게 몸을 흔들며 움직이려던 그때, 또다시 아네이스의 백염이 날아들었다.
오러로 이루어진 백염을 수차례 날리고 있음에도 아네이스의 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조금씩 거리를 좁히며, 벤자민이 만들 빈틈을 향해 나아간다.
이윽고 벤자민이 숲의 왕의 머리에 도달했을 무렵.
아네이스가 뛰쳐나가 숲의 왕의 심장을 노리며 도약했다.
아무리 정체불명의 기운으로 전신을 보호하고 있는 숲의 왕이라 하더라도, 백염이 집중된 검을 완벽히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
위와 앞에서 들어오는 공격뿐만 아니라 양 측면에서는 어느새 디라일라가 일으켜 세운 대지의 손이 날아들었다.
허공에서도 뇌기가 일렁이는 것이, 아르티아의 마법까지 준비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일행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마력을 검에 집중하고 있던 클라인이 눈을 빛냈다.
클라인의 주변으로 모여든 말셀러스와 그의 모험단원들이 클라인과 오러를 연결했다.
새하얀 선이 나무의 줄기처럼 엮이고 엮여 클라인에게 모여들고.
그를 통한 교감이 이어진 순간, 폭발하듯 땅을 박차 도약한 클라인이 숲의 왕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