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19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199화
199화 숲의 왕과 분노 (3)
클라인은 세르데타인에서 셰인이 일으켰던 기적을 떠올렸다.
대지에서 뿜어져 나온 황금빛 마력이 붉은 하늘을 꿰뚫고 다시금 내려왔을 때.
아주 잠깐이지만, 클라인은 누군가와 이어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아주 옅고, 희미한 기운. 하지만 포근하다.
매우 작은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난 며칠 동안 당시의 경험을 되새기던 클라인은 자신이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유리병에 갇혀 바깥세상을 알지 못했던 작은 물고기가 드넓은 바다를 몰랐기에 할 수 있던 착각이었다.
자신은 고작 하나의 먼지라고 느껴질 정도로, 거대하고 심오한 존재감.
그렇기에 도리어 클라인은 상대를 작다고, 희미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착각을 깨닫고 나서야 보이는 게 달라졌다.
유리병의 너머로 얼마나 넓은 세상이 펼쳐졌는지 깨달은 작은 물고기는 그 자그마한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보를 파악하기엔 시간이 너무도 부족했다.
‘하지만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면…….’
그런 클라인의 고민을 들은 말셀러스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방법은 어렵지 않았다.
하얀나무 모험단의 새하얀 오러는 나무줄기처럼 서로와 연결되며, 모든 것을 공유한다.
마력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생각, 움직임, 의식 아래 무의식의 행동마저 공유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는 빈틈이 많다. 두 사람이라면 더 줄어든다. 세 사람이라면 말 할 것도 없다.
그게 만약 수십 명이 된다면 어떨까?
하얀나무 모험단원들의 개개인은 대단한 강자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가 되어 강해지고, 클라인 또한 거기에 편승하기로 했다.
“으으음……!”
“후우…….”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클라인이 티끌이나마 깨달은, 유리병 너머 넓은 세상의 이치를 공유한 단원들의 표정에는 힘겨움이 담겼다.
클라인의 경험이 마치 자신들이 겪은 것처럼 생생하다.
분명 오러의 공유가 끊긴 후에는 그 감각을 조금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깨달음.
그 깨달음이, 심상이 모이고 모여 클라인의 검에 담기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아주 미약하나, 클라인이 마주했던 거대한 존재의 의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주 미약한 신성.
그러나 이 세계에 군림하는 유일신의 심상이 가져오는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크오오오오─!!
짐승과도 같은 피어를 내지르는 숲의 왕.
그런 그의 몸을 타고 올라간 벤자민이 뇌영의 오러가 담긴 검을 내질렀다.
카앙-!
“큭!”
기세 좋게 뻗어 나간 것과 별개로, 벤자민의 검은 숲의 왕이 두른 기운이 내뿜는 반발력에 의해 튕겨져 나왔다.
그러나 벤자민은 오히려 그 반발력에 몸을 맡기고 숲의 왕에게서 떨어졌다.
그런 벤자민의 눈에 아주 작은, 실금이 생긴 막이 보였다.
지직, 우르르르르릉─!!
그 직후, 우레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다시 한번 낙뢰가 떨어졌다.
최고급 마석을 지팡이에 꽂아 넣어, 마력을 모조리 끌어모은 아르티아의 일격.
다시 한번 붉은 하늘이 점멸하며, 벤자민이 만들어 낸 실금 위로 낙뢰가 더욱 거대한 틈을 만들어 냈다.
쩌적, 쩌저적─
정수리에서부터 시작된 실금이 내려앉으며 점차 얼굴로, 목으로, 이윽고 가슴까지 내려온 그 순간.
다시금 제 색을 찾은 붉은 하늘 아래, 새하얀 백염이 사나운 포효를 내지르듯 쏘아져 나갔다.
일점의 찌르기.
카가가가각─!!
질투의 오리진으로 생겨난 막이 일순 아네이스의 백염에 저항하는 듯싶었지만, 마력을 배제하는 백염의 앞에서는 무력했다.
결국 끝끝내 버티지 못한 질투의 오리진이 깨져 나가고, 양옆으로 디라일라의 마법이 그런 숲의 왕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제약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찬란한 황금빛을 머금은 클라인의 성검이었다.
그렇게 클라인의 검이 아네이스가 뚫은 질투의 오리진을 관통해 숲의 왕의 가슴으로 향하는 그 순간.
“아하하, 생각보다 강하네. 그 사람의 말대로 말이야.”
어디선가 유쾌한, 그러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한 혼돈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근데, 역시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히 나눠진 흑백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앨리스가 허공에서 나타나 손가락을 튕기자.
쩌적─
현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 * *
무명은 치밀하다. 하지만 단점 또한 명확했다. 그들은 능동적이지 못했다.
이는 무명의 제1군단장으로서의 삶을 경험해 봤던 셰인이 단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처음 세운 계획대로 강행하는 것은 셰인도 인정할 정도로 정교하고, 또 강력했지만 그게 전부다.
모든 군단장들은 어지간하면 합심하는 일이 없었고,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그러니 한쪽에서 일어난 이변을, 다른 군단에서 알아차리기란 쉽지가 않았다.
애초에 그만큼 관심도 없었고.
그들은 그저 자신이 따르는 우두머리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뿐, 나머지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다.
과거의 셰인은 그게 ‘그자’의 오만함이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는 그에 걸맞게 한 차례 인류를 멸망시켰으니까.
하지만 신격을 깨닫고, 클라인의 마력에 깃든 신의 의지를 일부나마 분석한 셰인은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왜 각 군단장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한지, 더 나아가 다른 군단장의 죽음에도 무심한지 알게 되었다.
요는 단순했다.
‘그자’는 이 세상에 관여할 수 없다.
세계의 의지가, 세상의 유일신, 아카샤가 이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는 ‘그자’는 인류의 멸망을 바라고 있었다.
‘그런 놈을 죽이려면, 직접 놈이 존재하는 차원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과연, 그곳에 가서 그자를 죽이는 게 가능할까.
어쩌면 죽이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그러나 죽이지 않으면 또 언제 그의 악의가 세상에 뿌리를 내릴지 모르지 않나.
단순히 군단장을 죽이는 것으로는 끝낼 수 없다.
결국 셰인은 그런 그를 죽여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는 전적으로 클라인의 존재가 필요로 했다.
그러나 클라인은 아직 전생의 전성기에 도달하지 못했다.
아직 그만큼의 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도 한몫하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전생의 클라인은 주변의 사람들이 죽고, 희생당하는 것을 직접 두 눈으로 겪어 왔다.
그 강인한 정신이 깎이고 깎여, 예리한 한 자루의 검이 될 수 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군.’
그러나 이번 생에서는 그럴 일이 없었다.
셰인은 전생의 클라인이 겪었던 그 절망을 다시금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클라인의 성장은 분명 전생에 비해 더딘 편이 있었다.
셰인의 계획에 그 속도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해서, 셰인은 절망 대신 절박함을 선택했다.
“흐흥…… 꽤 재미있을 거 같아! 그런데 죽은 신격자의 혼혈에게 다시금 신격을 부여하는 건 나한테도 쉬운 일이 아닌데.”
세르데타인의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셰인은 묵묵히 앨리스가 하는 말을 들었다.
“애초에 해 본 적도 없고. 그게 가능한 건가?”
“네가 그런 말을 하니 신기하군.”
“음~ 나도 내 ‘개변’을 필멸자에게만 써 봤거든.”
그리 말하던 앨리스가 시뮬레이션을 돌리듯 생각에 잠겼다.
“아마 힘들 거야. 아무리 나라도 죽은 존재를 되살린다거나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내 ‘개변’이 세계의 의지를 일부 거스를 수 있는 건 맞아. 그래도 그 한계는 존재한단 말이지?”
혼돈의 정령인 앨리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개변’이라는 능력을 통해 현실을 뒤바꾼다.
누군가의 기억을 뒤바꾸거나, 혹은 맑은 날씨를 뒤집거나, 또는 흙을 금으로 바꾸는 등.
그러나 그런 앨리스의 능력에도 한계는 분명했다.
세계의 의지가 정해 둔 ‘선’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소모되는 힘은 곱절로 커진다.
“그러니까, 죽은 신격자의 혼혈을 되살리는 건 나로서도 불가능해. 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 발상 자체는 즐겁다는 듯 앨리스가 말하자, 셰인은 손가락을 튕겼다.
“굳이 살리는 게 아니더라도 신격자의 의지를 불러오는 것은 가능하다.”
“응?”
“애초에 신격이라는 건 죽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지 않나?”
“음…… 그렇지?”
앨리스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세상에 봉인되어 있는 요람에는 신격자들이 남긴 흔적들이 존재하니까.
“황성에 있는 숲의 왕도 비슷하다. 그는 언데드가 되어 살아났음에도,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인다. 상당한 제약이 뒤따르지만.”
“오호……?”
무언가 닿을락 말락. 점점 정답에 가까워지는 느낌에 앨리스가 점차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신격자를 되살린 것도 질투의 오리진이지만, 그 신격자의 의지를 막는 것 또한 오리진이지. 그걸 살짝만 바꾼다면.”
“제대로 된 의지가 생긴다, 이거지?”
“물론. 그리 오래 유지되진 않을 거다. 어쨌거나 죽음을 맞이했으니. 하지만 신격에 담긴 ‘심상’은 짧은 시간이나마 이성을 유지하도록 만들 거다.”
“이야기만 들어도 재미있는데……?”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앨리스에게는 그마저도 새로운 자극이 되었다.
죽은 신격자의 신격을 일부나마 되살린다라!
이 또한, 세계의 의지에게 반하는 혼란이지 않은가.
셰인은 자신이 파악한대로, 앨리스의 흥미를 쉽게 이끌어 냈다.
* * *
흑백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녀의 손가락이 튕겨지자, 황금빛 오러로 물든 하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늘뿐만이 아니라 주변 사물의 모든 것이 유리창처럼 실금이 그어지고, 그 균열은 이내 깨져 나갔다.
“어어?!”
“이건 또 무슨 사술이냐!”
“대기, 대기!”
디라일라와 벤자민, 하얀나무 모험단원들이 일제히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클라인 또한 일행들에게 합류하는 과정에서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러자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숲의 왕이 그 거대한 덩치를 버티지 못하고 무릎 꿇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이상해.’
분명 가슴을 꿰뚫은 감각은 손에서 전해졌다.
그러나 수차례 목숨을 건 전투를 해 왔던 클라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적을 죽였을 때, 그리고 언데드를 안식으로 되돌렸을 때의 그 확신이, 손끝에서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일행들이 다 모인 공간.
주변은 어느새 새카만 어둠으로 가득했다.
“어,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모르겠어. 아무런 마력도 감지되지 않았는데…….”
가장 먼저 상황을 파악한 것은 마법사인 디라일라와 아르티아였다.
둘은 빠르게 일대에 마력을 흘려보내 봤지만, 특별히 수상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일행들이 주변에 경계를 놓지 않고 있던 그때.
“빠바밤! 신사 숙녀 여러분! 앨리스의 무도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무것도 없던 검은 공간에 갑자기 마력등이 등장하며 주변을 환하게 밝혔다.
분명 어둠만이 자리했던 땅에 부드러운 흙이 깔리고, 거대한 원형 돔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놈은 누구냐!”
벤자민의 외침에 앨리스가 활짝 웃었다.
“흠흠! 저는 이번 쇼의 담당을 맡게 된 앨리스라고 합니다! 진행자라고 불러 주세요?”
“진행자……?”
“자! 본격적인 게임의 시작에 앞서, 한 가지 퀴즈를 내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신격자라는 존재를 아시나요?”
그녀의 물음에 일행들은 입을 다문 채 여전히 경계 어린 눈빛으로 앨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나타났는지, 혹은 무명의 함정은 아닌지 파악하기 바빴던 것이다.
디라일라와 아르티아는 은밀하게 마력을 모으기 시작했고, 클라인도 소모한 마력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워워. 다들 진정 좀 하세요. 아무래도 퀴즈에 대한 답을 모르는 것 같군요?”
“하하핫! 신화시대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자들이지. 각자의 심상을 극한까지 단련시켜, 스스로의 격을 쌓아 하늘 위로 승천할 준비를 하던 존재이지 않나?”
“오, 역시 모험가들은 아는 지식도 많네요!”
하얀나무 모험단장, 말셀러스가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해 대답하자 앨리스는 활짝 웃었다.
“맞아요. 저기 있는 숲의 왕은 한 신격자의 피가 이어진 자랍니다. 신화시대라면 모를까, 고대시대에는 나름 강자에 속한 이였죠.”
“…….”
“그는 전투를 좋아했답니다! 서로의 목숨을 걸고 하는 전투에서, 스스로가 살아 있음을 깨닫는, 전사의 영혼을 가진 존재였죠!”
“훌륭한 전사의 덕목이었겠군!”
앨리스는 잔뜩 호응하고 있는 말셀러스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그러나 그 전사의 영혼이, 지금은 눈물을 흘리고 있네요~.”
“오, 위대한 전사가 무슨 일로 눈물을 흘리는 거지?”
“죽음 이후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던 전투가, 수백 년의 안식을 깨고 일어난 전투가 너무도 형편없이 끝났기 때문이랍니다!”
“…….”
그 말에서 불안함을 느낀 일행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는 이 콜로세움의 진행자로서, 저런 전사의 눈물을 그저 지켜만 볼 수 없었어요!”
“음…… 훌륭한 전사라면 승패를 담담히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나?”
“물론! 맞는 말이랍니다. 하지만, 아직 승패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이런 말을 들어 보신 적이 있나요?”
“무슨 말?”
“페이즈 투! 스타트!”
그 말과 동시에, 마법을 준비 중이던 디라일라와 아르티아가 앨리스를 향해 마법을 전개하고, 클라인과 아네이스가 검을 뽑아 들어 돌진할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그와하하하하하하하핫─!!]무릎 꿇고 쓰러진 줄로만 알았던 숲의 왕이, 머리가 울리도록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력을 터뜨렸다.
셰인이 앨리스와 합작한, 때 아닌 시험이 시작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