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0)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00화
200화 숲의 왕과 분노 (4)
붉은 주먹이 날아든다.
이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아나스타샤가 대검을 들어 카르후의 주먹을 막아 냈다.
콰아앙─!!
“······!”
대포알을 막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부동의 오리진을 두르고 있음에도 아나스타샤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려났다.
스스로의 몸이 밀려 본 경험이 거의 없던 아나스타샤의 두 눈이 커졌다.
“후우······.”
과연, 저게 심상이라는 것인가.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
스스로가 가진 심상을 한계까지 단련하고, 거기에 마력이 깃들어 탄생한 기적.
아나스타샤는 방금 막 카르후의 주먹을 막아 낸 자신의 검을 바라봤다.
제국의 황녀가 쓰는 검이니만큼, 제작에 있어 재료를 아끼지 않고 만든 명검이다.
겉으로는 투박해 보일지언정 귀한 재료가 들어간 이것은 설사 진짜 대포에 맞는다 하더라도 상처 하나 남지 않을 터.
그런 명검이, 부동의 오리진에 감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르후의 주먹에 의해 움푹 파이고 말았다.
“그하하핫. 그래, 이 느낌이다. 내가 그토록 상상해 오던 그 느낌이야!”
붉은 기운을 두른 카르후가 굉소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상상으로만 그려 왔던 그림이 현실로 다가오자, 아직 전투에서 승리한 것도 아니건만 카르후는 전신에 번지는 환희에 몸을 떨었다.
“어떤가, 인간. 너의 방패는 내 창을 막을 수 있겠나?!”
“······.”
“크흐흐, 말은 필요 없다 이건가. 아무래도 좋다. 이제야 결투가 제법 공평해진 것 같으니까.”
그에 카르후가 광오한 웃음과 함께 다시금 돌진해 왔다.
휘둘러지는 대검에 회피하고, 기이하게 각도가 꺾이는 것마저 피해 낸다.
또다시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찾아내는 전투가 이어질 때, 카르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또 뭔가 달라졌군!”
그의 말처럼.
아나스타샤의 움직임엔 어느새 이전에 찾아볼 수 없던 신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이전에는 피할 것 없던 물소의 돌진 같았다면, 이제는 수풀 사이에서 적의 방심을 기다리는 독사와 같았다.
묵직하고 큰 움직임이 극도로 줄어들면서, 거리는 줄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천천히 변화하는 그 모습은, 수없이 많은 결투 속에서 살아남은 카르후가 아니었더라면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기묘했다.
“쯧.”
그리고 아나스타샤는 그런 카르후의 반응에 혀를 찼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아룬비다에서 남하 사건이 있기 전에도 아나스타샤는 부동의 오리진을 남발하지 않았다.
정말 위험한 순간이 아니라면 아나스타샤 또한 철저하게 안전을 기하며 전투를 해 왔다.
단지 셰인에게 오리진에 대해 배운 뒤로 그럴 필요가 없어졌을 뿐.
‘오랜만이라 그런가 조금 어색하기도 하군.’
그런 생각과 다르게, 아나스타샤의 움직임은 저돌적이면서도 노련한 곰처럼 적을 격살하는 카르후를 철저하게 저지하고 있었다.
“노련한 방패인 줄로만 알았건만, 알고 보니 뛰어난 전사였군. 그하하하핫!”
견재하듯 날아온 대검을 피하며 카르후가 웃었다.
기존 아나스타샤의 전투법과 다르게, 카르후 또한 이 치열한 수 싸움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르후가 적응하면 적응할수록. 아나스타샤의 움직임이 다시 한번 변주를 거쳤다.
간신히 대검의 사거리 내에서 진입할 각을 본 카르후가 몸을 앞으로 들이미는 순간, 방금 막 위로 솟구쳤던 아나스타샤의 대검이 역수로 잡히며 그대로 내려 찍혔다.
콰앙!
“······!”
카르후는 자신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 대검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또?”
이번에는 공격 하나하나에 허와 실이 가득하다.
방금도 만약 본능이 시키는 대로 구르지 않았더라면 거리에 파는 사과 꼬챙이처럼 되었을 것이다.
카르후를 상대하면서도, 아나스타샤는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떠올렸다.
“셰인, 이 자리에 네가 없더라도 너의 도움을 받고 있구나.”
이런 아나스타샤의 전투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언젠가, 셰인은 아나스타샤를 오리진에 대해 가르치면서 말했다.
[오리진은 무적이 아닙니다, 황녀님.]언젠가 아룬비다에서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 그 전투를 모두 지켜본 셰인이 했던 말이었다.
아나스타샤의 전투는 저돌적이다.
부동의 오리진이 가진 내구성과 파괴력을 믿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셰인 또한 전생에 질투의 자아가 어떤 최후를 맞이했는지 잘 알고 있지 않았던가.
끝내 셰인은, 질투의 자아는 오리진을 무력화시키는 클라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심장을 꿰뚫렸다.
그러면서 셰인은 말했다.
[냉정하게 말해서, 황녀님은 안주하고 계십니다. 황녀님의 한계는 거기까지가 아니지 않습니까.]당시 그 말을 들었던 아나스타샤는 마치 뇌가 뒤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안주했다.
그 말처럼, 아나스타샤는 어느 순간부터 부동의 오리진을 사용하며 자신의 한계를 무의식중에 단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셰인의 말처럼, 아나스타샤는 더 성장할 여지가 있었다.
오히려 차다 못해 넘칠 정도다.
어렸던 시절, 황성에 있을 당시 그녀의 성장 속도는 모든 기사들이 놀랄 정도였으니까.
그날부터 아나스타샤는 바쁜 시간도 쪼개 가며 과거 배움을 청했던 시절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다양한 준비를 해 왔다.
바로 지금을 위해서.
* * *
그런 아나스타샤를 상대하던 카르후는 전투가 더욱 어려워졌음에도 더욱 웃음을 지었다.
언뜻 견제만 하는 이 전투가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조바심이 날 수도 있건만, 그럼에도 웃는다.
끊이지 않는 집중 속에서 찰나에 보이는 빈틈은 그야말로 삶과 죽음의 경계선.
직접 몸으로 움직이는 결투가 아닌, 치열한 신경전은 오히려 적과의 정신적 교감에 더욱 큰 영향을 끼쳤다.
‘역시 대단하군.’
카르후는 그런 아나스타샤의 움직임을 관측하며 그녀의 생각이 읽히는 듯했다.
그것은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적을 찢어 죽이겠다는 살의였다.
얼마나 끔찍한 살의였는지, 살의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카르후마저 전신의 털이 빳빳하게 서는 느낌이었다.
“그하핫······!”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 대검의 사거리는 카르후에게 너무도 성가신 것이다.
일반적인 대검을 휘두르는 이들과는 다르게, 아나스타샤는 부동의 오리진으로 인해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검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빈틈이 없다는 말이었다.
“어쩔 수 없구먼. 이대로 하루 종일도 싸울 수 있지만, 슬슬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 것 같으니까!”
결국 카르후는 자신의 부족함을,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강함을 인정했다.
이대로라면 서로의 집중력과 정신력, 체력 싸움으로 이어질 터.
그러나 그렇게 하기엔, 아나스타샤의 집중력은 너무도 뛰어났고, 체력전으로 시간을 끌자 하니 말 그대로 시간이 없었다.
적어도 카르후는 몇 년이고 기다려왔던 이 전투가 제삼자에 의해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끝내 계산을 마친 카르후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아까까지 종이 한 장 차이로 아나스타샤의 대검을 피해 내던 카르후가 이번에는 검격을 쳐냈다.
물론 그 대가는 적지 않았다.
아무리 타고난 내구성과 긴 시간 단련된 주먹이지만, 부동의 오리진에 감싸인 대검을 쳐내는 것은 미친 짓이었으니.
쾅!
콰앙-!
한 번 쳐낼 때마다 손에서 들려오는 비명도 무시해 가며 카르후는 연신 아나스타샤의 대검을 쳐냈다.
그걸 지켜보던 아나스타샤도, 카르후의 목적을 머지않아 깨달았다.
묘하게 달라지는 검의 밸런스.
카르후는 지금, 맨주먹으로 아나스타샤의 두 대검을 부러뜨릴 심산이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손이 어떻게 되든,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과연 검이 버틸까, 카르후의 주먹이 버틸까.
당연히 평범한 주먹은 결코 검을 막을 수 없겠으나, 카르후의 심상은 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단순히 부동의 오리진을 꿰뚫는 게 목적이 아니다.
아나스타샤의 단단한 방비를 뚫겠다는 의지.
그 자체가 카르후의 심상에 반영되니, 아나스타샤의 대검에 점차 데미지가 누적되어 갔다.
쩌적-
다시 한번 카르후는 전신을 뚫는 쾌감을 느꼈다.
상상한 그대로가 현실에 이루어진다.
그 결과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다.
정확히 같은 자리, 같은 지점을 두들기던 끝에, 아나스타샤의 대검에 미약한 실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한 아나스타샤의 표정도 함께 굳어 갔다.
아무리 다양한 전투법을 섭렵하고 익혀 왔던 아나스타샤라고는 하더라도, 카르후와 육탄전을 벌여 이길 가능성은 없음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끝이다!”
카르후의 주먹에 휘감긴 붉은 오러가 더욱 압축되어 아나스타샤의 대검에 정확히 명중한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대검의 중앙에서 시작된 실금 사이로 균열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너머로 카르후가 본 것은.
깨져나간 대검 너머에서 미약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아나스타샤였다.
“······!!”
카르후와 마찬가지로, 검의 마지막을 깨달은 아나스타샤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검의 손잡이를 놓았다.
투척하다시피 날아간 대검. 그리고 그 짧은 사이, 아나스탸샤의 손목의 갑주 안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축소], [중첩]x5로즈베리 눈동자를 지녔을 누군가의 룬 마법이 해제됨과 동시에.
또 한 자루의 거대한 대검이 그녀의 손에 쥐어졌다.
“무슨······!”
카르후의 본능이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이미 좁혀지기 시작한 거리를 이제 와서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여태까지 그래 왔듯 막거나 쳐내야 하나?
이 또한 불가능.
이미 아나스타샤의 반대편에 들린 또 다른 대검이 다른 방향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결국 마지막까지 수 싸움에서 밀린 카르후가 사납게 웃으며 패배를 인정하려던 그 순간.
그의 등 뒤로부터 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자신과 마찬가지로 공격 이외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아나스타샤를 향하고 있었다.
“블레이――”
그 익숙한 기운이 떠오름과 동시에, 카르후가 입을 연 순간.
그 거대한 기운은 아나스타샤의 오리진을 꿰뚫고 들어갔다.
* * *
하늘을 찢을 듯한 굉음과 함께 피어오른 흙먼지가 일대를 가득 채웠다.
이내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며 그런 흙먼지가 자취를 감췄을 때.
카르후는 저 멀리 날아간 아나스타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 했다.
마치 죽음이라도 맞이한 듯, 미동조차 없는 모습.
그때, 그런 카르후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흐흐. 멍청한 자식을 구하겠답시고 아껴 뒀던 힘까지 끌어다 썼군.”
카르후의 양아버지이자, 분노의 군단장. 블레이크가 모습을 드러내자, 카르후는 쓰러진 아나스타샤에게서 시선을 떼고 뒤를 돌아봤다.
“어이, 아버지.”
“뭐냐, 망할 아들놈아.”
“누구 마음대로 끼어들었지?”
진득하기 그지없는 살기 어린 카르후의 말에 블레이크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하, 뒤져 가는 놈을 구해 줘도 난리군.”
실제로, 아나스타샤는 블레이크의 공격에 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검을 놓지 않고 끝내 카르후의 오른팔을 가져갔다.
거칠게 뜯겨 나간 카르후의 어깻죽지는 이미 바닥을 구르고 있는 상황.
만약 블레이크의 난입이 없었더라면 뜯겨져 나간 것은 팔이 아니라 그의 머리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카르후는 블레이크에게 조금의 감사함도 없었다.
“빌어먹을. 난입을 할 거면 깔끔하게 하던가. 이게 뭐하는 짓이지? 내가 그렇게 두려웠나, 아버지?”
“뭐?”
“뭘 숨기고 그래. 저 인간한테 빈틈이 없던 건 나한테나 그랬던 거고. 아버지라면 죽여도 이미 여러 번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이제야 나타난 건, 그리고 내 팔이 날아가도록 내버려둔 건 생색이라도 내려는 건가?”
카르후는 멍청하지 않았다.
분명 블레이크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본래 전투라는 것은 누군가 난입하기 마련이다.
여태까지 카르후가 목숨을 건 결투에서 이러한 난입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고작 그 정도로 카르후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그만큼 목말라 했던 결투였음에도.
블레이크는 카르후를 구해 주기보단, 적을 죽이고 카르후의 힘을 약화시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려는 목적만 있었을 뿐.
결투의 승패와는 전혀 관련도 없는 이유로 이 결투를 끝낸 것이다.
그게, 카르후의 심기를 건드렸다.
평생 제대로 화를 내 본 적이 없던 카르후의 분위기를 깨달은 블레이크의 표정 또한 차가워졌다.
그래도 주워서 기른 자식이라고 적당히 내버려 두고 살았더니.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려 하지 않나.
그렇게 블레이크가 입을 열려던 바로 그때.
“아나스타샤.”
낮게 깔린 목소리와 함께, 둘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그 시선 끝에는, 어느새 쓰러져 있는 아나스타샤의 앞에 서있는 검은 머리 청년의 뒷모습만 보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일대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고 무엇일까.
두려움을 모르는 둘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몸을 떨리게 만드는 이 살기는.
그렇게 갑자기 나타난 존재가 등을 돌렸을 때.
“너, 너는······!”
새하얀 민무늬 가면을 본 블레이크의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리고 가면 너머의 로즈베리 눈동자의 주인은.
이내 끔찍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살기와 함께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