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1)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01화
201화 숲의 왕과 분노 (5)
세상에 어둠이 찾아왔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가운데, 카르후와 블레이크는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살기를······?’
그중에서도 블레이크의 충격이 대단했다.
살면서 수많은 적들을 상대하고, 살기를 뿜어내는 법에 대해 배웠다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는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죽음을 겪어 봐야 저런 경지에 다다르는가.
그리고, 왜 저런 경지에 다다른 인물을 자신들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다양한 의문이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가면의 사내에게서부터 터져 나온 어둠, 탐욕의 오리진이 주변을 잠식하며 아나스타샤를 집어삼켰다.
‘뭐 하는 짓이지?’
블레이크는 가면의 사내, 셰인이 하는 짓을 지켜봤다.
보아하니 방금 자신이 쓰러뜨린 여인과 관계가 깊은 듯 보였는데, 왜 저 끔찍한 어둠으로 여인을 집어삼키는가.
그러던 블레이크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탐욕······? 놈의 능력이 왜 지금?”
너무도 짙은 살기에 알아보는 게 늦었지만, 저것은 분명 자신이 알던 ‘탐욕’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저 가면의 사내는 도대체 누구길래 ‘탐욕’의 능력을 쓰고 있는 것일까.
‘놈이 제자라도 들였나? 아니.’
웃기지도 않는 소리.
블레이크는 탐욕의 군단장과 여러 차례 만나 본 적이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능력의 기교는 저쪽이 우위에 있었다.
거기에 애초에 ‘탐욕’은 제자를 들인다고 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블레이크의 머리가 잠깐 복잡해졌지만, 이어지는 카르후의 말에 그는 생각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죽여야 할 놈이군.”
아직 블레이크를 향한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나스타샤의 육신을 집어삼킨 존재가 더 거슬렸다.
가뜩이나 결투를 방해받은 것만으로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분노가 차오르는 상황.
카르후는 이 분노를 눈앞의 적에게 풀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줄곧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셰인이 입을 열었다.
“참으로 이상하지. 오만한 놈은 끝내 오만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내 손에 죽음을 맞이했지만, 정작 오만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오만하여 이토록 자기 목을 내어 주니. 이 어찌 이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슨 소리냐.”
“기왕 올 거였으면 나태와 자애도 데리고 왔어야지. 모든 것을 쏟아붓고 처음부터 시작할 준비를 했어야 했다. 고작 이 정도로 인류가, 그리고 나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 같았나.”
“······!”
그러자 블레이크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자애는 무명에 속해 있음에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존재다.
그러나 나태는 애당초 존재하질 않았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수도가 침략되기 전에야 정해진 나태의 군단장을 놈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네놈이 그걸 어떻게······.”
그러나 셰인은 그에 답하지 않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맞지도 않는 오만을 몸에 두른 죄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다. 그리고, 죽음이 축복이라 여겨질 고통을 너희 영혼에 새겨 주마.”
그와 동시에 가면 속 로즈베리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온 살기가 블레이크와 카르후를 향해 덮쳐들었다.
* * *
블레이크의 일격에 당한 직후,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죽음을 마주했다.
부동의 오리진으로도 막을 수 없던 파괴력.
한없이 경계하고 흘려야만 하는 공격에 가슴을 그대로 직격당한 아나스타샤는 심장이 파괴되는 고통을 느꼈고, 짧은 주마등이 스쳐 지나갔다.
첫 번째 황태자, 클로이가 살아 있던 행복했던 시절.
새뮤얼의 수작에 의해 클로이를 암살했다는 의심을 받고 나락으로 추락했던 인생.
그렇게 도착한 아룬비다에서의 첫날 밤.
축축한 피로 물든 침대에서 살아남겠다 다짐했던 그때.
몬스터의 위협과 인간의 악의 속에서 끊임없는 투쟁으로 쟁취한 아룬비다.
그러나 순탄할 리 없는 그 인생에 찾아온 가장 큰 위기까지.
지금 보면 참, 쉴 틈 없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이쯤이면 생의 끈을 놓고 편해지고 싶어질 만도 했지만, 아나스타샤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죽음이 두렵기보단, 아직 다 이루지 못한 것들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한 제국이 다시금 우뚝 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언데드가 되어 영면에 취하지 못한 수도의 주민들에게 안식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아나스타샤.]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름답게 빛나는 로즈베리 눈동자를 가진 사내.
어느 날 아룬비다에 찾아와 기적을 가지고 온 존재.
이제는 자신이 사랑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사람.
클레이튼 R 셰인.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갖고, 평화로운 나날 속에서 언젠가의 위기들을 회상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젠가 그의 영혼 속에서 보았던 그를 속박하고 있는 죄악들로부터, 자유를 되찾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미래가 되어버렸으니.
그 한이 아나스타샤를 괴롭게 만들었고, 끝내 두 눈을 뜨도록 만들었다.
그곳은.
“여긴······.”
붉은 하늘, 폐허가 된 황성.
그리고 왕좌에 앉은 채 빛나는 검에 의해 가슴을 꿰뚫린.
셰인이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 * *
살기가 폭사된 순간, 카르후는 자신의 심상으로 어둠을 찢어발겼고, 블레이크는 분노의 오리진을 활용해 대항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어둠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
“······무슨!”
어둠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파괴된 게 아니다.
잠시 물러난 거다.
어째서?
먹어치워야 하니까.
다만, 블레이크와 카르후의 힘은 탐욕의 힘으로도 섣불리 먹어치울 수 없었다.
카르후의 꿰뚫고자 하는 심상은 셰인의 ‘탐욕’마저 파괴시킬 것이고, 같은 오리진으로 이루어진 블레이크의 ‘분노’와 상쇄된다.
한 차례 죽음의 극복 속에서 쌓여진 블레이크의 힘은 셰인의 탐욕마저 넘는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잠시 물러났던 어둠이 다시금 밀려들었을 때, 카르후의 심상이 담긴 주먹은 더 이상 ‘탐욕’을 물리치지 못했다.
남은 한쪽 팔마저 뜯어 먹히기 직전, 카르후는 겨우 탐욕의 아가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카르후의 온몸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뒤로 물러선 블레이크의 표정은 카르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 어떻게 고작 탐욕 같은 게······!”
자신의 ‘분노’마저 집어삼켜지는 광경에 블레이크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탐욕’이나 ‘분노’와 같은 힘들은 모두 무명의 정상에 있는 존재가 하사한 동격의 힘이다.
그렇다 보니 군단장들은 서로에게 능력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순수한 본인의 기량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블레이크가 알고 있던 ‘탐욕’은 이런 식으로 싸우지 못했다.
그저 먹기만 할 줄 아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먹보.
본인의 기량은 그 거대한 덩치를 제외하면 볼품없는 존재다. 하지만 ‘능력’을 다루는 수준 하나만큼은 여타 다른 군단장들보다 압도적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다른 군단장들과의 전투가 성사될 수 없는 놈이건만.
어떻게 ‘탐욕’이 자신의 ‘분노’를 집어삼킨단 말인가?
“······.”
하나 블레이크는 자신의 의문을 풀 방법이 없었다. 셰인이 다시금 침묵으로 일관한 채 어둠을 흩뿌렸기 때문이다.
“크으······! 웃기지 마라!”
속수무책으로 밀리고 있던 블레이크가 고함을 터뜨리며 ‘분노’에 마력을 담아 일권을 내질렀다.
지난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있는 동안, 블레이크는 매시간, 매초마다 전신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면 마음은 편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타들어 가고 회복되는 과정에서 블레이크는 기절마저 쉽게 하지 못했다.
그런 블레이크의 ‘분노’가 담긴 주먹은 세상을 불태울 기세로 타오르며 셰인의 ‘탐욕’과 부딪혔다.
하지만 이번에도 블레이크의 ‘분노’는 또다시 ‘탐욕’에 집어삼켜졌다.
그 광경에 블레이크는 믿기지 않아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블레이크의 ‘분노’에 담긴 힘은 나카르 사막에서 셰인에게 당한 검은 화염에 의해 생겨난 힘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화염을 직접 만들어 낸 셰인이, 그런 블레이크의 ‘분노’에 담긴 화염을 분석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결국, 탐욕으로 먹어치우면 될 일.
거기에 애초부터 셰인의 오리진은 다른 누군가에게 하사 받은 것이 아닌, 스스로 직접 깨달은 것이다.
‘완전히 먹어치워 주지.’
어둠에 대항하는 블레이크를 바라보는 셰인의 눈빛에서는 일말의 살기만이 남아 번들거렸다.
결코 곱게 죽일 생각 따위는 없었다.
죽기 전까지도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고, 탐욕에 집어 삼켜진 그 영혼은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소멸될 것이다.
블레이크는 그런 셰인의 눈동자와 마주한 순간, 세포 하나하나에 깃든 고통이 일깨워지는 듯싶었다.
본 적도 없는 존재이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겪었던 그 끔찍한 고통을 선사한 이가 누구인지 깨달은 것이다.
“으으, 으아아아······!!”
아무리 전투에 익숙하고 고통에 익숙하다 하더라도, 전신이 타들어 가는 고통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발작에 가깝게 블레이크가 날뛰는 사이.
카르후는 자신의 심상을 더욱 형상화시켰다.
이미 한 차례 아나스타샤의 부동의 오리진도 뚫어 본 카르후다.
‘내가 뚫지 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심상이라 하더라도 만능은 아니다.
단순히 아나스타샤의 ‘부동’을 꿰뚫는 것만 하더라도 카르후는 몇 년 동안 심상을 단련해야만 했으니까.
그런 마당에 당장 눈앞에 있는 셰인의 ‘탐욕’을 상대하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하나 한 번이 어렵다면 두 번째는 쉬운 법.
카르후의 주먹을 감싼 붉은 기운이 조금씩 잡아먹히면서도 물리치길 반복했다.
셰인은 분노의 군단장인 블레이크보다, 그의 양아들인 카르후를 눈여겨봤다.
자신이 분석하는 속도를 놈의 심상이 따라잡고 있는 것이다.
과연, 전생에 제 아비를 죽이고 당당히 분노의 군단장으로서 군림했던 적이 있던 만큼의 재능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카르후도 밀리기 시작했다.
만약, 며칠 전의 셰인이었더라면 카르후를 상대하는 데 좀 더 고전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력으로 이루어졌다 한들, 심상은 그리 단순하게 집어삼킬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하나 셰인은 호문쿨루스의 영혼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마력으로 이루어진 심상을 다루는 법에 대해 깨우치지 않았던가.
아직 그 깨달음이 온전히 녹아 있진 않았으나, 당장 카르후 또한 신격에 다다르는 심상을 이룬 것은 아니었다.
동시에, 셰인은 카르후의 심상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깨달음을 다시 한번 복기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속도가 점차 불어나고 있으니.
그런 셰인을 상대하는 카르후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옆에서 고통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블레이크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전투를 이어가면서도 블레이크 쪽을 쳐다본 카르후가 기함했다.
‘이빨?’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이빨이, 그것도 검은 화염에 타오르고 있는 이빨이 블레이크의 옆구리를 뜯어먹고 있었다.
“주인님께서 분노하셨구나. 그리고, 나를 분노하게 하였구나.”
하지만, 그런 카르후의 시선은 다시금 정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머리카락에 로즈베리 눈동자를 지닌 한 소녀가 검으로 변모한 팔을 휘둘러 왔으니까.
카앙―!!
단단하다.
소녀의 검은 마치 아나스타샤의 ‘부동’처럼 단단하기 짝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검으로 변한 사지는 하나하나가 위협적이다.
비록 아나스타샤와 다르게 거리 자체는 좁힐 수 있었으나, 그랬다간 자신의 양아버지처럼 전신이 어둠에 의해 뜯어먹힐 터.
아나스타샤의 죽음에 분노한 아르카네는 사정없이 검을 휘둘렀다.
적어도 아르카네에게 있어 아나스타샤는, 자신의 이름이 지어 준 존재.
셰인이 아버지라면, 그녀에게 아나스타샤는 어머니였다.
그런 어머니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순간. 아르카네는 순수한 분노가 정신을 지배하는 것을 느꼈다.
카르후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
“아르카네.”
어둠 속에서, 익숙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