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2)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02화
202화 숲의 왕과 분노 (6)
어둠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아나스타샤가 본 것은 붉은 하늘과, 무너진 황성. 그리고 왕좌에 앉아 검에 가슴을 찔린 채 눈을 감은 셰인의 모습이었다.
“아…….”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아나스타샤는, 문뜩 자신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피로 물든 눈물이었다.
어째서 이리도 슬픈 감정이 든단 말인가.
아나스타샤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셰인을 바라봤다.
셰인은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토록 슬프다.
어째서인가?
한차례 셰인과 영혼이 이어졌던 아나스타샤는 느낄 수 있었다.
저 모습은, 현재 셰인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의 모습이었다.
죽음.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무로 돌아가는 죽음만이 그에게 허락된 안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셰인은 다르다.
그는 지금도 무거운 어깨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유일한 안식처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끔찍한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너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이냐…….”
잔뜩 잠긴 아나스타샤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나스타샤는 수백, 수만, 수천만에 이르는 죽음을 목도했다.
“아아……!”
시작은 화목한 가정집에서 일어난 언데드의 창궐이었다.
좀비로 변한 부모를 피해 산으로 달아난 남매. 그리고 끝내 희망 한 점 남기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죽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개미가 떼죽음을 당하는 장면을 보더라도 안쓰러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란 생물이다.
그리고 그런 개미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죽음, 끝없이 펼쳐지는 인간의 죽음들은, 차마 아나스타샤의 정신으로도 버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룬비다에서 그만한 죽음을 마주하고, 수도에서도 그러한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셰인의 세계가 보여 주는 죽음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 전부엔 누군가의 관여가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죽은 이들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 사내.
아나스타샤가 사랑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떠올린 사람.
셰인은, 수천만의 죽음을 수백, 수천 번 동안 반복하며 그들의 죽음을 복기하고 있었다.
결코 잊지 않겠다는 듯.
태산보다도 무거운 짐이 어깨에 지어지더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덤덤하게.
아나스타샤는 그런 셰인의 표정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건, 덤덤한 게 아니다.
감정이 한계까지 깎여 나가다 못해 더 이상 깎일 게 없어서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저리도 무거운 짐을 들고 당당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량해서,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도 무거운 저 책임감에 파묻혀 있는 이에게, 자신의 손조차 부담이 될 것 같아서. 그게 두려워서.
그래서 울었다.
그것 외에는, 아나스타샤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으니.
그렇게 어둠 속에서.
아나스타샤는 그 사무치는 슬픔 속에서 두 눈을 떴다.
* * *
“아르카네.”
“……!”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 아르카네는 순간 흠칫거렸다.
아나스타샤.
어둠 속에서도 눈에 띄는 푸른빛 머리카락을 지녔던 여인이, 이제는 검은 머리카락을 한 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둠의 정령으로서. 그리고 셰인과 영혼이 연결된 아르카네는 아나스타샤의 상태를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본래라면 죽어 사라졌어야 할 아나스타샤의 영혼이, 아직 셰인에 의해 이승에 붙잡혀 있었다.
저것은 연인을 사랑하는 이의 애정일까, 아니면 이기심일까.
인간에 대해 잘 모르는 아르카네조차 그리 생각했지만, 정작 아나스타샤는 그에 대해 절망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언데드와 비슷한 모습이 되었음에도, 아나스타샤는 어둠 너머.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셰인과 시선을 마주하다, 이내 아르카네에게 말했다.
“……설명은, 나중에 하도록 하지. 우선 상황부터 정리해야겠군.”
“……예.”
“이건 내가 상대하도록 하겠다. 너는 셰인을 도와라.”
“알겠습니다.”
본래라면 셰인의 명령이 아닌 이상 아르카네가 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아르카네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르카네가 자리를 떠나고, 아나스타샤는 황망한 표정으로 서 있는 카르후를 바라봤다.
“좀 늦었군.”
“허, 죽음에서 되돌아왔다? 저자는 신이라도 되는 건가?”
무명에 속해 있으면서 다양한 일들을 겪어 봤던 카르후다.
그러나 죽은 자를 되살리고, 저렇게 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은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던 일.
흑마법의 정점에 있었던 고든마저 저러한 기적은 일으키지 못했다.
“뭐, 이 단단한 대가리로 생각해 봐야 어쩔 수 없군. 뭐가 됐든, 결투를 다시 펼칠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그하핫.”
비록 팔이 한쪽 없어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적어도 아까처럼 누군가에게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카르후는 기꺼이 눈앞의 적과 재차 결투를 펼칠 의향이 있었으니까.
“아버지의 일은 사과하지. 적어도, 이번에는 그런 요행 따위는 없을 거다.”
“…….”
그러면서 카르후가 사나운 기세를 뿜어내자, 일대의 어둠이 알아서 둘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냈다.
셰인 또한, 직접 전투를 끝맺음 지으라는 의미일 터.
아나스타샤는 셰인을 향해 잠시 시선을 보내고는, 카르후의 기세에 맞서 오리진을 끌어올렸다.
아직 셰인의 심상 속 세상에서 본 것들이 다 잊히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느낀 감정은 지금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로지 서로를 죽이기 위한 전투를 위해, 아나스타샤는 조용히 읊조렸다.
“심상이라 했던가.”
앞서 블레이크가 난입하기 전, 아나스타샤는 언뜻 카르후와의 전투 중 심상에 대해 생각했다.
심상에 마력을 담는다.
말은 참 쉽지만, 그게 생각처럼 될 리가 없다.
아무리 상상한다 한들, 상상한 것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러나 카르후가 직접 일으킨 심상과, 셰인의 심상 세계를 직접 보고 느낀 아나스타샤는 조금이지만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심상의 구현을 위해 필요한 것은 총 세 가지다.
첫째는 현실에 대입할 수 있을 만큼의 세밀한 상상력.
둘째는 상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
셋째는 이를 바탕으로 심상 세계를 마력으로 구현화할 수 있는 능력.
언뜻 말로 들어 봤을 때는 믿기 힘들 수도 있다.
고작 상상을 정교하게 하고, 거기에 대한 믿음만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니?
삼류 공상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지 않은가.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이야기가 맞다.
만약, 눈앞에 그걸 실현시킨 존재가 없었다면 말이다.
아나스타샤는 그런 카르후를 바라봤다.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할 수 있는 시간.
그러나 아나스타샤에게 이제 겨우 두 번 보는 카르후는 반드시 죽여야 할 필생의 적이었다.
그런 적에게도 배움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할까.
아나스타샤에게는 다행히 그를 실행시킬 의지가 있었다.
“내 심상은…….”
아나스타샤는 수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카르후만큼은 아니다.
카르후의 모든 삶은 전투로 이루어졌고, 오로지 그 무력 하나만으로 지금의 수준까지 도달한 존재.
그렇기에, 하나의 전투를 이미지화하는 것만으로는 카르후의 심상을 완벽하게 받아칠 수 없다.
다행히도, 아나스타샤는 방금 막 또 다른 심상을 보고 왔다.
보고 배울 수 있는, 그런 심상을.
그리고 죽음 직전에 봤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아주 잠깐의 시간.
한편, 아나스타샤가 집중하는 모습에 카르후 또한 숨을 참았다.
그것은 똑같이 목숨을 건 전사로서 해 줄 수 있는 하나의 배려였고, 또 그의 욕심이었다.
‘여기서 더 강해지려는 것인가.’
앞서 한 번 아나스타샤에게 패배를 직감했던 카르후였지만, 그런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만.
앞서 셰인에게 들었던 말처럼, 어쩌면 그는 오만할지도 모른다.
카르후는 내심 그런 셰인의 말을 인정했다.
맞다. 자신은 오만하다.
패배를 겪었음에도 여전히 적을 향한 투지는 꺾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적이 강하면 강할수록 위기감보다는 승리했을때의 쾌감만을 생각한다.
패배? 그딴 건 당한 이후에나 생각하는 것이다.
강자생존.
그의 삶에서 싸워 이기지 못하면 죽음이요, 살아남는다면 강해지니.
카르후에게 있어 이번 전투 또한, 그가 살아온 삶의 일부일 뿐이었다.
그렇게.
아나스타샤의 눈빛에서 그녀의 심상을 본 카르후가, 사납게 웃었다.
“마치 태산과도 같구나. 그하하핫!!”
* * *
아나스타샤의 삶은 악의로 점철된 삶이었다.
첫 번째 황태자, 클로이의 죽음 이후 그의 죽음에 의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아나스타샤에게 새뮤얼의 악의가 쏟아졌다.
그렇게 추방된 아룬비다에서는 황실에서 겪었던 악의와는 또 다른 형태의 악의가 아나스타샤를 덮쳐 왔다.
황실에서는 겪을 수 없었던, 보다 날 것 그대로의 악의에 노출된 소녀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끝내 그 악의를 피로 물들여 물리쳤을 때.
잠시의 평화 아닌 평화가 이어지고, 그 시간 동안 물러났던 악의는 더욱 덩치를 키워 돌아왔다.
대규모의 오크 군단의 남하.
아룬비다에서 겪었던 악의에 수십, 수백 배는 거대한 악의가 덮쳐 온 것이다.
악의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결코 홀로 이겨 낼 수 없다는 판단하에 도움을 요청한 황실에서도, 여전히 악의는 존재했다.
은밀하면서도 지독한 악의 덩어리가 그녀를 침식시키려 했다.
만약, 셰인의 구원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끝내 그 악의에 파묻혀 죽음을 맞이했으리라.
그렇게 한 차례 이겨 내고 3년이 지난 지금.
이번에는 또 다른 형태의 악의가 들이닥쳤다.
수도의 함락.
아룬비다만큼이나 사랑하던 제국에 거대한 재앙이 찾아온 것이다.
이번에도 아나스타샤는 그 악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럼에도 역부족이었고, 이번에는 진정한 죽음을 목도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번에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그’의 구원이 아나스타샤를 찾아왔다.
그녀에게 있어서 셰인은 무척이나 어릴 적 읽었던 백마 탄 왕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 왕자 또한 거대한 악의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을 뿐.
여유도 없던 그가 억지로 내민 손길이 없었더라면 어떠했을까.
분명 끔찍한 미래만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아나스타샤의 심상은, 혹독한 설산이었다.
단 하루도 멈추지 않는, 악의로 점철된 눈보라가 몰아치는 장소.
그곳은 한 점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는 공간이다.
그곳에서의 아나스타샤는 설산이다.
설산은 칼날과 같은 바람에 의해 여기저기 뜯겨져 나가고, 할퀴어진 상처로 가득하다.
부서지고, 바스라질지언정.
언제나 산은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게 바로 아나스타샤의 삶이었다.
악의에 의해 추락하고 질식할지라도, 도망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설산은, 앞으로도 우뚝 그 자리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꿈꾼다.
언젠가 이 혹독하기만 한 계절이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찾아와 자신을 타고 올라올 사람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들린 거대한 악의를 버텨 내게 해 줄 쉼터가 되어 줄 것이고, 또 그와 함께 따뜻한 봄날을 추억하리라.
그것이, 그녀의 심상이었다.
* * *
아나스타샤가 눈을 뜸과 동시에 카르후와 아나스타샤와 카르후의 위치는 뒤바뀌었다.
찰나의 순간.
서로를 스치고 지나간 직후, 카르후는 평소처럼 웃었다.
“그하하하핫!”
그러면서, 뒤를 돌아본다.
“내 주먹은 언제나 적을 격살해 왔다. 그게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동족이든. 제아무리 바람처럼 빠르고, 강철처럼 단단하더라도 반드시 내 주먹은 놈들의 뚫고 지나갔지.”
“……그런가.”
“하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였군. 내 주먹은 고작 강철을 뚫을 줄만 알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세상을 넓게 봐야 했었거늘.”
“…….”
“끝내 그 거대한 설산을 뚫지는 못했군.”
그와 동시에.
카르후의 양 어깨에서부터 붉은 선이 이어지며, 막대한 양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훗날 제 아비를 죽이고 당당히 분노의 군단장이 되었어야 할 한 웅족 사내의 죽음은,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으나.
삶에 끝에서 바깥세상을 보게 된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