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04화
204화 그래도 꽃은 기억한다 (2)
“첫 시작은 아바마마께서 발표한 이종족 유화 정책이었다.”
아나스타샤의 씁쓸한 목소리가 허공에 퍼져 나갔다.
현 제국은 나름 이종족에 대한 보호 체계가 잡혀 있는 국가였다.
이는 황제의 성정 때문이었는데, 황제는 신이 탄생한 종족인 인간이 가장 우월한 종족이며, 따라서 이종족을 적대시하는 것은 그들을 두려워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거의 노예나 다름없었던 이종족들이 정식으로 제국의 국민으로 받아들여졌고, 제국에 소속된 연합국의 국가들도 하나둘씩 이종족에 대한 유화 정책을 펼쳤다.
“아바마마께서는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황실에 이종족들을 고용하라 명하셨지.”
물론 많은 반대가 잇따랐다.
당시의 이종족 노예는 상업적으로도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황제를 포함, 제국의 황태자마저 유화 정책을 밀어붙이고 나서자, 귀족들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나나 올리시아도 그에 대해 딱히 반대를 하진 않았다. 대부분의 황족은 찬성하는 분위기였지.”
단 한 명.
이를 반대하는 새뮤얼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처음부터 새뮤얼도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아래를 굽어살피는 것은 황족의 의무. 그러니 당시 이종족 노예들을 살피는 것 또한 의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다만, 새뮤얼에게 있어서 굽어살피는 것과, 옆에 끼고 산다는 것은 결이 다른 이야기였다.
“노예 제도를 폐지하는 것은 찬성했으나, 적어도 이종족이 황실 내부로 들어오는 것은 반대했다. 그 의견은 첫째 오라버니와 대립하는 내용이었지.”
그러면서, 아나스타샤가 이어서 말했다.
“그게, 새뮤얼과 클로이의 첫 대립이자, 마지막이었다.”
* * *
“이종족을 황실에 들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형님의 시종으로 두겠다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새뮤얼의 새된 목소리가 테라스에 울려 퍼졌다.
정원에서 한가로이 사랑을 지저귀던 새들도 놀라 침묵하고, 지나가던 시종들도 큰 소리에 놀라 바삐 걸음을 옮겼다.
클로이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새뮤얼에게 물었다.
“새뮤얼. 무엇이 그리 불만이더냐.”
“형님의 깊은 뜻을 어찌 이 아우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시종만큼은 거두어 주십시오!”
“이유를 설명해 주거라.”
“아무리 황족의 의무가 아래를 굽어살피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가장 밑에 있는 자를 곁에 두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언뜻 시종이라 하면 그 직책이 낮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적어도 제국의 황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황실에서 황태자를 보좌하는 시종은 못해도 고위 귀족의 자제.
즉, 고귀한 핏줄을 보좌하는 자리이니만큼 그에 걸맞은 지위가 필요한 법이다.
“너의 말도 맞다, 새뮤얼. 하지만 아무리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본다 한들, 그곳에서 일어나는 세세한 일은 모두 살펴볼 수 없는 법이다.”
아무리 눈이 밝은 새라고 하더라도, 땅속 벌레들의 생존 싸움은 알아볼 수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클로이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사는 자를 자신의 곁에 두기로 결심했다.
하나 새뮤얼은 그런 클로이의 선택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클로이는 황제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다.
그런 존재의 가장 가까운 이가,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종족의 노예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연합국의 아카데미로 유학을 가십시오. 그곳에는 귀족들과 평민들이 섞여 살지 않습니까?”
“평민 중에서도 귀족들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그보다 밑에 있는 자들이야.”
당시의 연합국 아카데미는 입학 조건이 까다로웠다.
때문에 클로이의 목적에는 맞지 않았고, 새뮤얼은 가장 이상적인 빛이 오물에 더럽혀지는 것을 참고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재고해 주십시오. 차라리 이 새뮤얼의 시종을 갈아치우겠습니다. 제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또 형님께 보고하겠습니다. 그래도 되지 않습니까!”
“아니, 내가 직접 보아야 한다, 클로이. 사람은 결코 직접 겪고 눈으로 보지 않는 한 깨달을 수 없음이야.”
결국 클로이의 뜻은 굽혀지지 않았다.
새뮤얼은 그런 클로이의 선택이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결국 그 이상 몰아붙일 방법이 없었다.
이럴 때의 클로이는 황제가 와서 말린다 해도 듣질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항상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고, 그를 바탕으로 성장하던 것이 바로 클로이라는 사내였다.
끝내 클로이를 설득할 수 없던 새뮤얼은 한 차례 뒤로 물러섰다.
“형님께서는 틀린 선택을 하지 않으신다. 그러니, 틀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비록 클로이와 반목했던 새뮤얼이지만, 그는 여전히 클로이를 존경했다.
그래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그저 지켜만 보는 것이 아니다.
클로이가 들인 시종을 눈여겨보고, 그 누구보다 황태자의 시종에 걸맞은 존재로 탈바꿈시킬 예정이었으니.
하지만 그런 새뮤얼의 계획은 첫 시도에서부터 무산이 되었다.
* * *
“당연하지만 아바마마와 클로이의 뜻과는 다르게, 당시 인간들을 향한 이종족들의 불신은 작지 않았다.”
이종족 노예.
던전이나 혹은 요람에서 갓 태어난 아기들은 아카샤의 대봉인의 여파를 적게 받는다.
그렇게 모험가나 용병들은 그런 요람에서 갓 태어난 아이들을 납치하고 노예로 길러 왔다.
당시의 이종족들은 몬스터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으니, 그들이 살아온 삶이 어떠했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으리라.
당연하지만 황실에 초청된 이종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 대부분은 경외감이 느껴질 정도로 화려한 황성의 분위기에 기가 죽었지만, 한 이종족 소녀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어린 혈기에 맞물려, 인간들을 향한 증오가 두려움보다 거대했기 때문이다.
아나스타샤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황제 폐하께서 계신 자리에, 클로이를 향해 침을 뱉었지.”
“……자살 행위로군요.”
황제의 앞에서는 고개도 허락 없이 들어서는 안 된다.
그런 장소에서, 황태자를 향해 침을 뱉다니.
“본래라면 그 소녀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이종족들도 참살을 당함이 마땅했지.”
인륜적으로는 해선 안 될 일이었으나, 그런 문제보다는 무너진 황제의 위엄을 잡는 것이 보다 더 중요했다.
“하지만 클로이가 그런 황제에게 청을 올려 유혈 사태를 막았다.”
하지만, 그 상황을 도저히 눈 뜨고 지켜볼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다.
* * *
이종족 노예를 황태자의 시종에 걸맞은 존재로 만든다.
그런 새뮤얼의 계획은 시작부터 무너져 내렸다.
‘애초에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감히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존재에게 침을 뱉다니!
당장 갈가리 찢어 들개의 먹이로 줘도 시원찮을 이종족 노예를 개조한다는 발상은 근본부터가 잘못된 일이었다.
“당장 이 미친년을 찢어 죽여 아바마마와 형님의 권위를 되살려야 합니다!”
“하하, 역시 화를 내러 왔구나.”
클로이는 자신의 방에 찾아온 새뮤얼을 바라보며 태평하게 웃었다.
그 자리에는 방금 새뮤얼이 삿대질을 해 가며 죽일 듯 바라보고 있는 이종족 노예 소녀 또한 함께 있었다.
다만 처음과 다르게 입에 재갈이 물리고, 양손이 포박당한 상태였다.
“새뮤얼. 너의 생각을 내 모를 리가 없지 않느냐. 저 아이를 시종의 자리에 걸맞도록 교육할 생각이었겠지.”
“……!”
평소 새뮤얼에게 공감해 주던 덕분에 클로이는 어렵지 않게 새뮤얼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클로이의 모습에 새뮤얼은 감탄했으나, 그건 잠시뿐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건……!”
당연히 황태자에게 침을 뱉으며 저주받을 일족이라며 망발을 저지른 저 소녀 때문이지 않던가.
“직접 봐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느냐?”
“당연합니다!”
“그렇지. 너 또한 너만의 완벽한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저 아이를 본 순간 달라졌지. 내가 일전에 했던 말이 기억나느냐.”
“…….”
[아니, 내가 직접 보아야 한다, 클로이. 사람은 결코 직접 겪고 눈으로 보지 않는 한 깨달을 수 없음이야.]며칠 전에 클로이가 했던 말이다.
“직접 보니 깨닫게 되지 않더냐. 사람은 직접 겪어 보고,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종족이다.”
“……그 말을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하나, 그렇다 하더라도 감히 형님께 그따위 행동을 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무얼. 너는 황제와 황태자의 권위가 고작 그 정도로 꺾일 것으로 보이더냐?”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하핫. 그래. 그러니 직접 보거라. 아바마마와 나의 뜻은 고작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클로이는 여전히 이쪽을 향해 두려움과 적의가 담긴 이종족 소녀에게 향했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눠 보겠느냐.”
“…….”
하지만, 입에 재갈이 물린 소녀는 클로이를 노려만 볼 뿐,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 꼴을 보고 있으려니 새뮤얼은 피가 거꾸로 도는 것만 같았지만, 클로이를 봐서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싫다면 어쩔 수 없구나. 일단, 입에 재갈을 물린 것은 용서해 다오. 내 이야기를 들어 준다면, 그걸 없애 주도록 하겠다.”
“…….”
“이 망할 년이 감히 형님의 말씀을 무시해!”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계속되는 소녀의 무시에 새뮤얼이 고함을 치자, 클로이는 그런 새뮤얼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켜보라는 듯 말했다.
“저 아이도 귀가 있다. 나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저 생각에 정리가 필요할 뿐이야. 기다려 보거라.”
“끄응…….”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새뮤얼은 다시금 입을 다물었고, 클로이는 이종족 소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선, 나는 네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네가 내게 그런 짓을 한 이유가 있겠지. 그 증오를 나는 부정하지 않으마.”
“…….”
“분명 네가 한 행위는 분명 너에게 타당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결코 잘한 일이 아니다. 너는 분명 이기적이었다.”
“……?”
“그저 그때의 분노를 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종족의 아이들까지 위험에 처하게 했단 말이다. 분명 너 또한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너는 그런 일을 저질렀다. 그것은 이기적인 행동이야.”
“우이이아!”
그러자, 재갈을 문 소녀가 소리쳤다.
그에 클로이는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그녀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 주었다.
그러기가 무섭게 소녀가 소리쳤다.
“웃기지마! 인간! 너희는 모른다. 아무것도!”
“그래, 나는 모른다. 그러니 알려 주거라.”
“…….”
“너와, 그리고 너희에게 일어났던 일은 분명 부당했겠지. 하지만 그 부당함을 알리고 싶은 것이 아니냐. 우리 인간은 말로 하지 않으면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니 말해 보거라.”
“우리는…….”
그러면서, 소녀의 말이 이어졌다.
* * *
그날 저녁.
새뮤얼은 평소처럼 황실의 테라스로 향해 난간에 앉아 있는 클로이를 찾아갔다.
“어떻더냐. 그 아이가 했던 말들은.”
“…….”
“황실이 운영하는 정보 기관만으로는 듣지 못한 일이지 않았더냐? 이렇듯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저 아래서 벌어진다. 그러니 직접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형님의 뜻을 아우가 몰랐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그녀가 시종의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 테지. 하지만 무엇이든 시작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지 않으냐. 오늘 우리가 몰랐던 일을 알게 된 것처럼.”
“…….”
그런 클로이의 말에, 새뮤얼은 고개를 푹 숙였다.
결국, 자신 또한 언젠가 형님의 큰 뜻을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이종족 소녀의 죽음과 동시에, 클로이의 자살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더라면.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왔으리라.
결국, 찾아올 수 없는 시간일 뿐이었지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