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5)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05화
205화 그래도 꽃은 기억한다 (3)
반쯤 부서진 황성의 문을 넘고 들어가자, 비릿한 혈향이 두 사람의 코를 찔러 들어왔다.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채, 여기저기 쓸리고 무너진 황성의 홀.
여기저기 남은 갈색의 핏자국은 이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절규를 대신 보여 주는 듯 했다.
“완전히 무너졌군.”
그런 셰인의 한마디에, 아나스타샤도 쓴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복구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리겠군.”
수도가 무너졌다.
이건 단순히 건물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이는 제국을 향한 신뢰 또한 무너졌다는 것이고, 이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큰 허점으로 다가올 터.
당장의 일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결국 이후에는 시간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또각, 또각.
고요한 중앙 홀에 그녀의 발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왔다.
“클로이가 받아들인 이종족 소녀는 처음부터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황제와 귀족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면, 이종족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인간들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물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죽음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성향이 강한 자들은 분명 있었지.”
그중에서도 클로이의 시종이 된 이종족 소녀는 특히 그런 성향이 강했다.
“그래서 교육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럴수록, 새뮤얼의 반대도 심해졌지.”
1년이 지난 시점.
이미 황실에서는 그 소녀를 교정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음에도 클로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여전히 그녀는 인간을 싫어했지만, 그나마 클로이에게는 더 이상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달이 일어났다. 시종이 죽어 버린 것이었지. 사실 그녀의 상태는 왔을 때부터 그리 좋지 못했어.”
수사 결과, 타살은 아니었다.
“수사관들이 말하더군. 이따금, 자유를 찾지 못하는 동물들은 그렇게 시름시름 앓다가 죽음을 맞이한다고.”
어린 시종의 죽음.
그게 클로이에게 얼마만큼의 충격이 되었을지는 아나스타샤도 알 수 없었다.
둘은 어느새 중앙 홀을 지나 점차 위로 향하는 계단 끝에 보이는 문을 넘어갔다.
그곳에는, 과거의 빛을 잃어버린 복도가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클로이는 이곳에서 뛰어내렸다.”
“······.”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지. 클로이는 분명 자애로운 사람이었지만, 또 현명하고 강직한 이였으니까. 그런 이가 고작 1년 정도 곁에 둔 시종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자살했다니, 누구도 믿지 않았지.”
그리고 그중에는, 아나스타샤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는 새뮤얼에게 찾아갔다. 그날, 이상한 걸 보지 못했냐고 물었었지.”
“왜 그런 질문을 하셨습니까?”
“클로이가 죽은 그날 밤. 나는 연무장에서 단련을 끝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당시 분명 클로이와 새뮤얼의 대화 소리를 얼핏 들었었지.”
어렸던 당시의 기억에 따르면, 둘은 분명 언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종의 존재로 인해 두 사람이, 정확히는 새뮤얼의 목소리가 높아졌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어렸던 아나스타샤는 시종의 죽음으로 클로이가 겪게 될 마음고생을 배려해 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때를 회상하던 아나스타샤의 얼굴에는 짙은 후회가 깃들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평소와 달랐다는 걸 깨달아야 했다. 언제나 새뮤얼을 달래듯 말하던, 클로이마저 목소리가 높아져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날. 클로이는 테라스에서 뛰어내렸다.
“그래서 물었었다. 그날, 클로이에게 무슨 말을 했느냐고.”
그렇게 해서 돌아왔던 대답은…….
“별거 아니었지. 그런 시종의 죽음 따위 털어 내고 다시금 황태자에 걸맞는 위엄을 보여야 한다 했었다.”
그 대답은 아나스타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
“오랜만이구나, 아나스타샤.”
그곳에는, 과거 꽃잎이 흩날리던 당시와는 다르게 죽음의 기운만이 가득한 테라스에 서 있는 새뮤얼이 보였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름 장신의 체격에 유려한 몸을 가졌던 그는, 어느새 비쩍 말라 있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청객이여. 새로운 황제를 맞이한 황성에 어서오시게. 새로운 황제께서는 그대 같은 불청객도 마다하지 않는 자애로운 분이시지.”
이지를 상실한, 공허만이 가득한 눈동자가 셰인을 바라봤다.
셰인은 그 눈동자를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똑같군.”
새뮤얼의 눈동자는, 과거 자신이 가졌던 눈동자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질투의 자아에 집어삼켜졌던, 그때 당시와.
* * *
“어째서 이런 참상을 일으킨 겁니까.”
아나스타샤의 물음에, 새뮤얼은 테라스의 난간에 걸터앉아 바깥의 풍경을 바라보며 답했다.
“참상이라. 그래, 너라면 그런 말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게 진정 평화를 위한 일이지 않더냐.”
“평화? 오히려 평화롭게 제국의 수도에 죽음의 기운을 흩뿌린 것은 당신이지 않습니까.”
“죽음이 어째서 평화와 멀다고 생각하는 거지?”
“무슨 궤변입니까.”
“아나스타샤. 인간은 멍청하다. 아주 옛날부터, 높은 사람들은 항상 말해 왔지. 아무리 싸운다 한들, 얻는 것은 없다고. 증오와 분노를 잠재우고, 사랑과 평화를 칭송하라 말했다. 하지만 우매한 인간들은 그 말을 평화에 찌든 멍청이의 헛소리 쯤으로 치부했지.”
“······.”
아나스타샤는 저 말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결국, 힘이 없는 평화는 약자의 변명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그게 지금의 참상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하나, 보아라. 언데드로 변한 이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죽이지 않는다. 미워하지 않는다. 혐오하지 않는다.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그리 존재할 뿐이지.”
“그게, 평화라는 말입니까?”
“그래. 이곳에서는 전쟁도 없지 않느냐. 이것이야말로 합일의 시작이지.”
“아니요, 이것은 그저 공허입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죽음이 있기에 삶이 있고.
미움이 있기에 사랑이 있다.
혐오가 있기에 애정이 있는 법.
그 모든 것이 없는 존재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하다.
“아니, 그들에게는 삶과 사랑, 애정이 있을 것이다. 모든 합일이 끝난다면, 그들은 그 모든 것이 갖춰진 꿈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테지.”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극과 다름없는 곳이 진정한 행복이란 말입니까?”
“그렇다. 비록 만들어졌다 한들, 그 또한 행복이지 않으냐. 불행보단 행복으로 가득한 세상이 좋겠지. 그리하면, 더 이상의 불화도 없을 테니.”
“······.”
“이따금, 너는 그런 눈빛을 했지. 나는 그 눈빛이 부러웠다. 그 눈빛은, 마치 형님을 닮았으니까.”
결코 꺾이지 않을 의지가 깃든 눈빛.
그러나, 새뮤얼은 그 눈빛을 가졌던 자가 어떤 끝을 맞이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너 또한 나를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왕좌에서 보자꾸나.”
그와 동시에, 새뮤얼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새뮤얼······.”
예상했던 대로.
자신과 같은 핏줄을 지닌 이 나라의 황태자가 직접 제국의 수도를 멸망시켰다.
그 사실을 확인한 아나스타샤는 짙은 슬픔과 함께 뒤를 돌아 셰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셰인은.
“역시.”
방금 이곳에 있던 새뮤얼을 분석하며, 자신이 깨달은 부분에 대해 아나스타샤에게 설명했다.
* * *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복도를 지나, 대전 앞에 도착한 셰인은 천천히 문을 열어젖혔다.
전생에 질투의 자아가 육신을 차지하고, 수도 없이 걸어왔던 이곳은 그때보다 죽음의 기운이 날 것 그대로 다가오는 듯했다.
끼이이이이이―
이윽고 문이 열리며 그 너머로부터 죽음의 기운이 밀려나온다.
농후한 죽음의 기운은 금방이라도 생명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울 듯 강렬했다.
그리고 그 너머.
왕좌에 앉은 이의 모습이 보이자, 그 뒤를 따라오던 아나스타샤가 입술을 깨물었다.
“클로이.”
그곳에는 아주 오래 전.
언제나 자애로운 미소를 품고 황성을 거닐던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러나 미소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시체처럼 차가운 눈동자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어서 와라, 불청객들이여.”
“······.”
“짐의 제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제국의 황제 폐하께 예를 보여라!”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클로이를 보좌하듯 서 있는 새뮤얼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분명, 아주 오래 전.
새뮤얼이 꿈꿔 왔던 자신의 미래였을 터.
그리고 그 부서진 꿈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현실에 일어났다.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는 존재, 클로이는 여전히 서 있는 둘을 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너희가 이리 온 것은 허황된 꿈 때문이겠지.”
“허황된 꿈이라. 정작 누가 꿈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군.”
셰인의 말에 새뮤얼이 목소리를 키웠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그런 새뮤얼을 보는 셰인은 마치 하나의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음 이외에는 결코 막을 내리지 않는, 연극의 배우를.
셰인은 새뮤얼에게서 시선을 돌려 클로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네놈까지 이렇게 돌아왔을 줄은 몰랐군. 분명 내 안에는 없었는데. 어떻게 존재하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더냐.”
클로이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셰인은 그런 클로이······ 아니 정확히는.
“돌아왔지만, 기억은 없다는 건가. 하긴, 나라는 주체가 없으니, 내게서 태어난 감정 따위가 자신만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
질투의 자아를 향해 셰인이 말했다.
그런 셰인의 주변으로 어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주변을 가득 채운 죽음의 기운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며, 점차 제 덩치를 키워 나갔다.
“이제 와서 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는진 모르겠지만, 결국 너를 죽여야 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게, 내 죄악을 덜어 낼 첫 걸음이 될 테니까.”
“결국 말로는 되지 않는 것이로군. 좋다. 불신한 자들이지만, 기꺼이 짐의 은총을 내려 주도록 하지. 합일을 이루도록 하라.”
질투의 자아가 클로이의 몸을 일으켜 자세를 취했다.
그것은, 전생에 셰인이 그토록 봐 왔던 질투의 자아가 만들어 낸 검술의 준비 자세였다.
동시에, 대전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던 죽음의 기운이 뭉치기 시작했다.
시체 한 구 없는 장소였으나, 그럼에도 아직 이승을 떠도는 영혼들이 남아 있다.
영혼은 점차 질투의 오리진에 의해 물리력을 갖추며, 대전에 널려 있는 갑옷에 스며들었다.
“골렘이로군.”
“셰인. 놈들은 내가 처리하겠다.”
셰인의 영향을 받은 아나스타샤는 뭉치기 시작하는 영혼들이 보였다.
그들은,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아나스타샤와 함께 했던 제국의 군단에 소속된 기사들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서 있는 자는.
“군단장님. 결국 그리 가셨습니까.”
아나스타샤가 그토록 따르던 군단장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제국에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는 아나스타샤의 직언에도 황실을 지켜야 한다고 했던 군단장과 그의 직속 기사단.
그들의 영혼이 질투의 오리진에 붙잡힌 것을 본 아나스타샤는 두 대검을 소환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