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6)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06화
206화 그래도 꽃은 기억한다 (4)
클로이, 아니 정확하게는 클로이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질투의 자아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죽은 자의 육체에 깃들어 그의 기억을 흡수하는 것은 마치 태아가 어미로부터 영양분을 받듯 자연스러웠지만, 그중에 그가 알아서는 안 될 지식들이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귀한 황태자의 기억에는 있어서는 안 될 수많은 지식들.
죽은 자를 되살리거나 그들의 힘을 흡수하는 흑마법과 혈마법의 지식, 거기에 황태자 클로이의 기억 속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절한 수백, 수천 가지의 검술까지.
말라 비틀어진 클로이의 육체로도 당장 검을 잡으면 일류 소드 마스터를 능가하는 검술을 구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 내게 이런 힘이 있는 것이냐.’
강한 것은 좋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강함은 오히려 질투의 자아에게 공허감을 안겨다 주었다.
하나, 이어지는 상황은 질투의 자아가 혼란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형님…… 드디어 육체를 일으키셨습니까.”
눈앞에 있는 찬란한 금발의 사내. 그러나 붉게 충혈된 눈은 그의 정신이 멀쩡하지 않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새뮤얼.
클로이의 기억 속 인물과 비교하면 상당히 성장한 상태였지만, 질투의 자아는 그런 새뮤얼의 존재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새뮤얼은 질투의 자아를 성실하게 보살폈다.
아직 살아 있는 자를 데려와 질투의 자아가 흡수하도록 도운 것이다.
첫 희생자는 거리를 떠도는 부랑자처럼 보였다. 낡은 거적데기를 입고, 덜덜 떨며 돌려보내 달라고 아우성 치는 이였다.
“여, 여기가 어디입니까! 히, 히익! 시체, 시체가! 나는 그저 머, 먹을 것을 준다길래 온 것뿐인…… 으읍, 으으읍!!”
새뮤얼은 그런 부랑자의 사지를 결박하고 입에 재갈을 물려 입을 다물게 했다.
“형님. 황제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육신이 최우선입니다. 부디 이 아우의 충성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목이 마르다.
미라처럼 말라 버린 질투의 자아는 자연스럽게 부랑자의 목을 부여잡았다.
두려움에 떠는 부랑자의 목에 바짝 마른 손톱이 파여 들어가 피가 흘러나온 순간.
질투의 자아는 그대로 부랑자의 피에 깃든 마력을 흡수했다.
메마른 사막에 한 방울 떨어지는 물이 이러할까.
갈증은 끝이 없는데 들이켤 수 있는 물은 한정적이다.
자신의 머릿속에 맴도는 공허감과 의문은 뒤로 하고, 질투의 자아는 게걸스럽게 부랑자의 피를 흡수했다.
건장했던 부랑자의 몸이 점차 말라 비틀어질수록, 클로이의 육체는 점차 생기를 되찾아 갔다.
“아아, 아아아……!”
본능적으로 마력을 돌려, 클로이의 육체가 기억하는 죽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다 빠진 머리카락이 가을철 황금빛 논밭처럼 솟아나고, 사막의 모래처럼 건조했던 피부의 탄력이 살아났다.
이윽고 더 이상 부랑자의 움직임이 없어졌을 때.
질투의 자아는 살아 있음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부랑자의 피를 흡수하는 동안 머릿속을 가득 매우고 있는 공허감이 아주 잠깐이지만 흐려졌다.
그 기분이 너무도 황홀하다.
질투의 자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빠르게 파악하고 행동에 나섰다.
“새뮤얼. 나의 자랑스러운 동생아.”
“아아, 아아아!”
“아직, 배가 고프구나.”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이 합일을 위한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할 이들을 얼마가 됐든 데리고 오겠습니다!”
그때부터 질투의 자아는, 클로이가 되었다.
육체가 기억하는 클로이와는 또 다른, 새로운 클로이가.
* * *
황제가 된다.
클로이의 기억 속에서 찾아본 황제는 모든 인간들의 정상에 있는 존재다.
그러나 황제라는 것은 국민이 존재해야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
그렇기에 국민이 없다면, 황제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황태자의 기억 외, 자신이 알고 있던 흑마법은 황제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이었다.
국민이 없다면 황제도 없다고?
그렇다면 죽지 않는 국민들을 만들면 될 뿐이다.
새뮤얼은 그런 클로이의 말에 감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시, 그 영광스러운 기적을 모든 국민들은 반길 것입니다…….”
클로이는 그대로 자신이 원하는 제국을 만들기로 했다.
그곳에는 인간도, 이종족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리라.
비록, 진짜 클로이가 생각했던 미래와는 너무도 상반되는 세상이 될지라도.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 속에 있다면.
자신의 내면에 감도는 이 공허감이 조금은 줄어들어 있지 않을까.
‘그리되어야 했다. 한데.’
클로이는 눈앞에 있는 존재를 바라봤다.
민무늬 가면 너머로 보이는 로즈베리빛 눈동자.
체형은 적당한 수준에, 전신을 두르고 있는 검은 기운은 죽음의 기운보다도 더 짙은 무언가다.
보기만해도 섬뜩해지는 저 불길한 기운.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저 기운을 보고 있을 때면, 그리고 어둠 너머에 빛나는 로즈베리빛을 볼때면 가슴속 공허감이 더욱 뚜렷해지는가.
‘이해할 수 없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이 현상에 클로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금 이유를 알 수 없는 갈증이 되살아났다.
처음 부랑자의 목을 움켜쥐었을 때, 그 피를 맛보았을 당시만큼.
‘아니, 그때보다도 더욱.’
끊이지 않는 갈증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반드시 잡아먹어야 하는 상대. 그래야만 오롯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눈앞의 민무늬 가면을 쓰러뜨렸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리라.
* * *
‘혼란스러웠던 모양이군.’
검을 잡은 클로이의 모습을 바라보던 셰인의 평가였다.
방금까지 습관처럼 자세를 잡았던 클로이의 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다가, 금방 의지를 되찾은 듯 검을 진정시켰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장이라도 상대를 찢어발기겠다는 살기만이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완전히 분리된 것인가.’
처음 황성에 도착한 셰인은,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질투.
놈이 돌아왔다는 것을.
아무리 태연한 척을 하고 있다지만, 셰인 또한 마음 한편에 흔들림이 남아 있었다.
그만큼 놈은 전생에 셰인을 지독히도 몰아붙였으니까.
때문에 혹여 놈과 마주한 그 순간, 다시금 육체를 빼앗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가정도 있었다.
하지만 직접 본 순간 깨달았다.
놈은 더 이상 자신에게 기생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로군.’
과거로 돌아오고, 처음 클라인과 눈이 마주쳤던 당시.
셰인은 자신의 내면에 더 이상 클라인을 질투하는 마음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 질투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고, 지저분했던 것인지 뼈저리게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셰인의 심상에 놈이 차지할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셰인 또한 평소처럼 마법을 영창했다.
이제는 잔재조차도 없는, 과거의 망령을 죽이기 위해서.
* * *
먼저 움직인 것은 클로이었다.
황제로서 결코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이성과, 피로 갈증을 풀고 싶다는 본능의 싸움 중에 본능이 이겼기 때문이었다.
“후우…….”
낮은 자세로 잡은 검이 움직인다.
라고 인식한 순간, 클로이의 검은 이미 셰인의 코 앞까지 다가왔다.
그러나 바로 앞까지 도달한 검은 채 그 목적을 달성하기도 전에 반투명한 막에 의해 막혔다.
“놈!”
검이 막힌 순간 찾아오는 불쾌감에 클로이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단순히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기에 터뜨린 것이 아니다.
황제로서의 자존심에 금이 갔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상대가 다름 아닌 셰인이었기 때문이다.
기억에는 없어도, 본능적으로 각인되어 있는 과거의 선택이 클로이에게 더 없는 불쾌감을 선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질투의 자아는 셰인을 뛰어넘기 위해 마법을 버리고 검술로서 인류를 멸망시켰으니까.
그런 자신의 검이 막혔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클로이가 일제히 주변으로부터 죽음의 기운을 흡수해 검에 담았다.
마력조차 죽이는 사멸의 검.
그 검에는, 과거 언데드들에게 살해 당한 영웅들의 기술이 담겨져 있었다.
베고, 찌르고, 막는다.
이 단순한 세 가지 동작이 하나로 어우러져 셰인의 방어막을 타격한다.
그럴 때마다 죽음의 기운에 의해 마력이 분해되고 사그라지며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강하군.’
과거, 회귀 전에 비할 바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때의 셰인은 수많은 영혼들을 흡수하고 육체를 상화시킨 상태였으며, 더불어 최악의 흑마법사, 고든의 도움도 받았었으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클로이는 약한가?
아니.
그것은 결코 아니다.
비록 육체적인 능력은 전생에 비해 떨어졌을지언정, 녀석은 검은 분명 기억하고 있다.
멸망에 다다른 인류의 마지막 희망, 용사의 검을.
질투의 자아는 셰인이 가졌던 모든 것을 버렸지만, 단 하나. 버리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셰인이 가진 천부적인 분석력이었다.
질투의 자아는 그런 셰인의 분석력으로 자신에게 죽어 간 영웅들의 검술을 연구했고, 또 자신에 걸맞게 개조했다.
전생에는 다만 클라인의 재능 앞에서 무릎을 꿇었을 뿐.
놈의 분석력보다, 클라인의 성장이 더 빨랐기에 놈은 패배했다.
하나, 클라인의 검술을 분석하고 죽었던 놈은 그때의 깨달음이 여실히 담겨 있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흐음.”
거기까지 상대를 파악하던 셰인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방금까지 그의 앞에 있던 클로이가 자취를 감췄고, 그 대신 붉은 선이 그가 있던 자리로 떨어졌다.
‘반응도 생각보다 빠르군.’
마력탄의 변형식.
태양을 만들어 낸다는 라비아타의 화염 마법이 마력탄에 담겼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다.
“방금, 그건 뭐였지?”
클로이가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밖에서 제법 재미있는 걸 봐서 말이지. 실험해 봤다.”
심상.
아나스타샤와 카르후의 전투는, 앞서 호문쿨루스의 주된 기술인 신격자의 심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이곳까지 오면서, 셰인은 이를 마법에 담기 위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검에 심상을 담는 것과는 다르군.’
어정쩡하다.
심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떠올리고, 그것을 현실에 대입하겠다는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
그에 걸맞은 격을 갖춰야만 하며, 또 그를 위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앞서 카르후가 살아온 맹목적인 투쟁의 삶과, 아나스타샤의 설산속 풍경처럼.
검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나뭇가지처럼 수많은 갈레로 뻗어 나가는 검은 자신을 심상에 맞게 탈바꿈한다.
그러나 마법은 그렇지 않다.
“심상을 마법에 맞춰야 하는가.”
평생을 살아온 자신의 삶을 마법에 맞춰야 한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일방적이라면 필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셰인에게는,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심상들이 존재한다.
오롯이 자신의 것은 아니나.
그들의 영혼이 남기고 간 심상.
그중 하나를 선택해서 마법에 대입하는 것은, 방법만 깨닫는다면 셰인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루치페. 놈이 보던 세상은 과연, 오만하기 짝이 없었군.”
막는 것은 무엇이든 소멸시키는 소멸의 빛.
셰인의 손에 의해 죽은 드래고니안의 심상이, 그의 마법에 담겨 펼쳐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