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7)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07화
207화 그래도 꽃은 기억한다 (5)
죽음의 기운을 다루는 클로이는 한쪽에서 은밀하게 모이는 마력을 느꼈다.
그러나 우습게도 그 은밀함 속에 담긴 극악무도한 살기는, 그런 은밀함을 어색하게 만들 정도로 진득했다.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클로이는 땅을 박차 그 자리에서 벗어났고, 그 즉시 붉은 선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치직.
다만 느껴지는 살기와는 다르게, 붉은 선은 그대로 바닥에 검은 점 하나를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어찌 보면 초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별것 없는 마법.
그러나 점차 검은 점을 중심으로 바닥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물도 아닌 대리석 바닥이 부글부글 끓는다?
적중당하는 순간 온몸이 녹아 버리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저건 죽일 수 없다. 아니,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죽는다.’
클로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과 흡사하다.
진짜 클로이의 기억 속에 있는 무수한 강자들조차도, 당장 승부를 낼 수 있을 정도로 그는 스스로의 검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나 저것은 베거나 막으려는 즉시 자신을 꿰뚫을 것이다.
등 뒤가 서늘해졌다.
‘감히……!’
그리고 클로이는 스스로가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더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자신은 저 가면의 사내에게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놈은, 반드시 자신의 밑에 있어야 할 존재였으니까.
왜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클로이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은 황제였으니까.
“그래, 내게서 떨어져 나간 뒤에도 그런 눈빛을 하고 있단 말이지.”
그런 셰인의 말에 클로이는 눈썹을 찌푸렸다.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놈은 마치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듯 말했다.
‘내 기억에는 없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당장 떠올리려 발악을 해도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또다시 은밀하게 모여드는, 그러면서도 농후한 살기가 일점으로 압축되어 날아오려 했으니까.
‘이대로 피하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리 판단한 클로이의 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죽음의 기운이 담긴 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호가 그려지며, 빛살처럼 날아드는 붉은 선을 피해 달려든다.
그렇게 기이한 궤도를 그리던 클로이의 검. 어느 순간 일직선으로 셰인의 방어막을 찔러 나갔다.
카가각―!!
일점집중.
죽음의 기운이 단 하나의 방어막을 꿰뚫기 위해 들어온다.
셰인의 ‘압축’과 ‘증폭’의 룬 마법이 깃들어진 다중 보호막이 쩌적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아주 근소한 차이를 두고 겹겹이 쌓인 18개의 막이 순식간에 꿰뚫리려 한다.
그 직전, 다시 한번 살기를 느낀 클로이가 몸을 빼지 않았더라면 분명 보호막은 꿰뚫렸을 것이다.
‘한계로군.’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클로이의 공격을 막은 보호막은 제 할 일을 마쳤다.
보호막을 거둔 셰인이 자신에게 돌아온 턴을 활용해 손을 뻗었다.
순식간에 생겨난 수십의 붉은 점이 그대로 선으로 변해 클로이를 향했다.
“흐읍!”
빛과 같은 공격에 반응하며 클로이가 정신없이 발을 놀렸다.
유려한 움직임 사이로 붉은 선이 내리꽂혔다.
수십 가닥의 붉은 선이 클로이의 움직임을 뒤따라 움직이듯 날아들었다.
그걸 확인한 클로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예상하고 있다?’
붉은 선이 쏘아지는 공간이 점차 좁혀진다. 마치 클로이가 어디로 갈지 예상이라도 하듯 날아드는 모습.
그 의미는 무엇을 뜻하는가.
상대가 클로이의 검술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혼란스럽다.
클로이는 여태까지 실전을 그리 많이 겪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검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절정에 다다른 소드마스터조차 클로이의 검술을 예측하기란 불가능할 테니까.
이는 단순히 본능적인 깨달음뿐만이 아니라, 생전 클로이의 기억도 가담하고 있는 정확한 진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셰인의 붉은 선은 그런 클로이를 바짝 뒤쫓아 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판단은 짧았고 행동은 그보다 더 빨랐다.
붉은 선이 지나간 자리를 반대로 클로이가 스쳐 지나갔다.
마치 빛을 피해 움직이는 그림자가 그러하듯, 어둠에 융화되어 밤하늘 아래 움직이는 흑표범처럼 셰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큭……!”
그러나 붉은 선은 그마저도 알고 있다는 듯 클로이의 옆구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하나 클로이의 검은 그조차도 도외시한 듯 흔들림 없이 셰인에게 나아갔다.
적을 반드시 꿰뚫겠다는 분명한 의지가 담긴 검.
죽음의 기운이 닥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탐욕’이 깃든 어둠이 셰인의 앞을 막아섰다.
그 어둠에서 튀어나온 것은 아르카네.
양팔을 검으로 변형시킨 그녀가 그대로 클로이의 기운을 막아섰다.
‘어리석은!’
보아하니 주인을 지키는 정령인 듯 보였으나, 자신의 검은 생명을 죽이는 빛.
결코 정령 같은 게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카강―!
“뭣……!”
그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 낸 아르카네가 그런 클로이를 비웃듯 바라봤다.
“어둠의 정령이 죽음에 익숙하지 않을 줄 알았나?”
본디 아르카네는 어둠의 정령. 수백 년 동안 숲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죽음의 기운이 뭉쳐 만들어진 존재다.
물론 본체는 셰인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또 새로이 만들어졌지만, 그렇다 하여 그 근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전생의 놈이었다면 아르카네도 불가능했겠지.’
제국의 수도뿐만이 아니라 제국 전역을 죽음으로 물들였던 질투다.
그러나 이번에 녀석은 깨어난 시점도 그리 빠르지 않았고, 본체인 셰인과도 떨어져 있는 상황.
잃어버린 힘을 일부 복구할 수 있었지만, 여태까지 셰인과 함께 여정을 이어 온 아르카네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웃기지 마라!”
그러나 녀석이 가지고 있는 검술은 당장의 아르카네를 웃돌기엔 충분했다.
카카캉-!
“크읏…….”
옅은 신음과 함께 뒤로 물러서는 아르카네.
아나스타샤에게 부동의 오리진을 배웠다지만, 그대로 더 버텼다간 쓸데없이 마력을 소모할 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크윽……!”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클로이의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아르카네에게 막힌 일격을 위해 무리하게 움직인 후폭풍이 상상 이상으로 컸기 때문이다.
전신이 불덩이처럼 뜨겁다.
마치 녹아내린 강철을 솥째 부어 마신다면 이런 느낌일까.
붉은 선에 관통당한 옆구리에서부터 시작된 끔찍한 열기가 클로이의 전신을 녹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대를 가득 채운 죽음의 기운이 신체 내부에서 멋대로 날뛰는 열기를 제압하며, 육체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사이에도 셰인과 아르카네의 공격은 이어졌지만.
내장이 모조리 타오르는 고통 속.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고통은 클로이의 정신을 번쩍 들도록 만들었다.
제국의 수도를 무너뜨리고 황제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순탄하게 걸어왔던 탓일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당연하다는 듯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눈을 뜬 이후 처음 겪어 보는 격통은 세상이 결코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고, 처음으로 클로이가 진심을 다하도록 했다.
“죽여 주마……!”
일인천검(一人千劍).
전생에 질투의 자아는 고든의 영향을 받아 수많은 기사들의 검을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부드럽던 클로이의 검이 순식간에 거친 짐승처럼 바뀌었다.
이성적인 움직임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살기 가득한 검술.
수차례 그의 진격을 방해하는 붉은 선을 본능에 맡겨 피하고, 점차 다가온다.
하나 도중에 길을 막은 아르카네의 존재에, 또다시 검로가 유(柔)를 되찾는다.
마치 하나의 검에 두 명의 사람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붉은 선과, 앞을 막는 아르카네.
그 순간, 다시 한번 클로이의 움직임이 바뀌었다. 이번에는 아음속의 속도로 사방에서 몰아쳤다.
순식간에 쾌(快)의 정점에 다다른 기사의 움직임. 붉은 선이 뒤쫓기 바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반대편에 있던 클로이가 셰인의 앞에 도달했다.
아르카네조차 반응하지 못하는 속도였다.
“죽어라……!”
이번에야말로 셰인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검이 그의 심장을 노리고 들어왔다.
하지만.
카가가각―!
“그 검술은 모두 내 분석을 통해 얻은 것이지. 이것조차 잊은 모양이군.”
어느새 소환된 붉은빛의 검이 그런 클로이의 검을 막아섰다.
“……!”
붉은빛의 검이 점차 그 빛을 잃는다.
그러나 그 빛이 완전히 사그라지기 전에 새로운 검이 소환되어 클로이를 압박해 갔다.
“네놈!”
한 자루, 두 자루, 세 자루.
이어 열 자루가 되고 열 자루는 곧 수십, 수백에 다다르게 분열됐다.
그 끝에 천 자루의 검이 소환되었을 때.
클로이는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사내가 바로,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검술을 깨우치게 만든 존재라는 것을.
“네놈은 누구냐! 도대체 누구인데 나를 이리 어지럽게 만드냔 말이다!”
“알 거 없다. 이미 나는 너를 버렸으니.”
“감히, 나를……! 고작 한낱 인간 따위가!”
일대를 가득 매운 죽음의 기운이 응축되기 시작하면서, 허공에 천 자루의 검이 소환되어 바닥에 박혔다.
그와 동시에 셰인이 소환한 검들이 일제히 클로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가 분석한 일천 명의 검사들이 다루던 검술은 시간을 초월해 지금 이 순간. 다시금 세상에 펼쳐졌다.
“으아아아아아!!”
클로이가 빛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바닥에 꽂힌 검 중 하나를 쥐어 휘둘렀다.
카강! 카가가가각―!!
이루 말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마다 하나의 검술이 펼쳐진다.
재빠른 검이 날아드는 검을 흘리며 반격한다.
묵직하게 들어오는 검을, 변화무쌍 움직이는 검이 꿰뚫는다.
아직 날아들지도 않은 검을, 빛과 같은 속도로 튕겨 낸다.
범위 내에 들어온 검을 일절의 자비도 없이 날려 버린다.
거대하게 휘둘러지는 대검이 한순간의 찌르기에 꿰뚫렸다.
베고, 찌르고, 막으며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을 쳐낸다.
거대한 대검이 일대의 검들을 모조리 짓눌렀다.
태산도 무너뜨릴 묵직한 검이 주위를 찢어발겼다.
하나의 검이 수십 자루로 늘어나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이윽고 마지막 한 자루의 검이 클로이의 손끝에서 쏘아져 나갔다.
유(柔), 변(變), 쾌(快), 절(絶), 첨(尖), 패(覇), 강(强), 중(重), 환(幻), 비(飛).
세상의 모든 검술이 클로이의 손에서 펼쳐졌다.
마지막으로 그의 손에서 튀어나온 검이, 셰인의 뺨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고 지나갔다.
“…….”
그리고 그런 셰인의 시선 끝에는, 천 자루의 검을 사용해 천 자루의 검을 막아 낸 클로이가 살기 어린 눈으로 셰인을 바라봤다.
“어째서지?”
“무엇이 말이냐.”
“어째서 그 붉은빛과 같은 힘을, 검에 담지 않았느냐.”
클로이의 물음에, 셰인은 오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오만을 싫어한다. 오만은 경계해야만 한다. 평소 그의 행동에 오만함이 얼핏 보일지는 몰라도, 이는 그저 자기 자신을 믿는 것뿐.
결코 적을 얕잡아 보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클로이, 아니. 질투의 자아 앞에서만큼은 오만해야만 했다.
놈이 셰인에게 갈증을 느끼듯, 셰인 또한 놈에게 강한 열망을 느끼고 있었다.
반드시, 압도적으로 이겨야만 한다는 열망을.
그리고 이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야만, 자신의 과오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차이를 알려 주기 위함이지.”
“차이?”
“그래. 그때와 나와…….”
다시 한번. 허공에 수많은 검들이 수놓아진다.
“지금의 내가, 그 무수한 악업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
“이제부터, 보여 주도록 하마.”
그리고 그런 셰인의 천 자루 검에, 심상이 담기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