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09)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09화
209화 그래도 꽃은 기억한다 (7)
끝없이 울려 퍼질 것만 같았던 비명 소리가 황성에서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 무렵.
침상에 누워 있던 황제는 눈을 떴다.
영광으로 가득했던 황성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붉게 변한 하늘이 수도를 감쌌고,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렸다.
“어찌…… 이리 되었는가.”
늙고 쇠한 몸은 더 이상 육신을 일으킬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언제나 올곧게 제국을 받쳐야 하는 그의 등은 스스로가 피해 온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휘어졌다.
끝내 제국을 지키지 못한 황제는 서글픈 눈빛으로 문을 바라봤다.
곧 있으면, 저기서 자신이 외면한 진실이 다가올 것이다.
그와 함께 사방에서 몰려오는 죽음의 기운이 진실을 외면한 대가를 맞이하라 손짓한다.
“클로이, 새뮤얼…….”
두 황태자의 어렸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 어떠한 시기 질투도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로운 나날.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날을 회상한다.
황제는 나아가야 하는 존재다.
결코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황제는 과거를 회상한다.
“모두…… 내 잘못이다.”
만약 그때, 새뮤얼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종족 유화 정책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침상에 누운 늙은 노인은 더 이상 황제로서의 위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선택의 시간이 너무도 늦어 버렸다.
자신의 형제, 엘라인의 말을 더 빠르게 들었더라면 어땠을까.
끊임없는 후회가, 외면해 온 진실이 다가온다.
그러던 그때.
끼이이이이…….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너는…….”
“아…….”
오색찬란한 눈빛을 가진 아이가 보인다.
체모 하나 없이, 투명한 피부와 오색의 눈동자를 가진 아이였다.
언데드의 창궐과 함께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황성에, 어쩌다 저리 어린 아이가 살아남아 이곳까지 도달한 것일까.
황제는 그런 아이의 오색 눈동자를 바라봤다.
어느 날부터인가 올리시아가 데리고 다니던 아이였다.
이종족 테러 사태 당시 구출한 아이라고 했던가.
“이리 오거라.”
쇠한 목소리가 침소에 울려 퍼지자, 아이는 잠시 움찔하더니 천천히 다가왔다.
“어찌하여 이곳까지 흘러왔느냐?”
“여기로, 여기로 와야 한다고 했어요…….”
“이곳으로?”
“네…….”
“누가 그런 말을 했더냐.”
“모르겠어요…… 목소리가 들려요.”
“흐음…….”
횡제는 아이를 바라봤다.
비록 늙고 병든 몸이었지만, 그는 황제다. 눈앞에 있는 아이가 평범한 이종족의 아이와는 다르다는 것을 이미 눈치챘다.
“할아버지…….”
“허허, 할아버지라.”
생애 처음 듣는 말이었다.
클로이. 그 아이가 살아 자식을 봤다면 들었을지도 모를, 더 이상 없을 미래에서나 들어 보게 될 명칭.
“그래. 왜 부르느냐.”
“곧, 죽으실 거예요. 도망가야 해요…….”
“…….”
본래라면 무엄하다 꾸짖어야 했을 터이나, 황제는 오히려 침착하게 물었다.
“그것도 누구에게 들은 것이냐?”
“아니에요. 보여요. 할아버지의 죽음이…….”
“보인다라…….”
어쩌면 헛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황제는 허투루 듣지 않았다.
죽음의 기운이 만연하고, 황성에 기거하던 소드 마스터들조차 살아남지 못한 이곳에서 찾아온 아이의 말이니까.
그리고 굳이 그 말이 아니더라도, 황제는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진실로부터 외면한 내가, 이 지경이 돼서까지 살아남으려 해서는 안 되겠지. 아이야. 너는 그 죽음 속에서 무엇을 보았느냐.”
“……믿어 주시는 건가요?”
“믿든, 믿지 않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네가 본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너는 네가 본 것을 믿고 움직이고 있을 테지. 내 물음에 답해 주겠느냐?”
그러자 아이는 꾸물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싸우고 있어요. 검은 머리를 한 두 사람과, 금빛 머리를 한 두 사람이.”
“…….”
“금빛 머리를 한 사람이 다른 금빛 머리의 사람을 집어삼키려고 해요. 전 그걸 막아야만 했어요.”
“네…….”
“무슨 수로?”
“모르겠어요.”
“으음?”
의아함에 아이를 바라보자, 아이는 천천히 자신이 보았던 것을 말했다.
“집어삼켜지는 사람에게 진실을 보여 줘야 해요.”
“진실이라…… 무슨 진실이더냐.”
“할아버지가 피한 진실이요.”
“……!”
평범하지 않은 아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자신이 감춰 온 진실에 대해 거론한 순간, 황제는 결국 두 눈을 감았다.
“……아이야.”
“네?”
“진실이 궁금하다 하였느냐.”
“네…….”
“이게, 네가 말하던 진실이다.”
그러면서, 황제는 자신의 침상에서 낡은 오르골을 꺼냈다.
많은 손때가 탄 오르골.
황제는 오늘 처음 본 오색의 아이에게 그 오르골을 건넸다.
“이게, 진실이에요……?”
“그래. 저 기둥 뒤, 랜턴 아래를 보면 자그마한 버튼이 있단다. 그걸 누르면 통로가 나타나니, 그곳으로 내려가거라. 그리고 이 오르골의 태엽을 돌리거라. 그럼, 내가 외면해 온 진실이 보일 것이다.”
“……할아버지는요?”
“나는, 가지고 가야겠지. 외면해 왔던 시간을 감당하러.”
“…….”
오색의 아이가 황제의 주름 가득한 손을 잡았다.
그러나 이내 자신으로는 황제를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가 말한 기둥 뒤로 다가갔다.
그그그그극―
이내 비밀 통로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의 인기척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황제는 붉은 하늘을 비추는 창가를 바라봤다.
“…….”
곧 다가올 자신의 죽음을, 그는 기다렸다.
* * *
셰인이 담은 심상은 카르후나 아나스타샤의 심상처럼 단단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인의 기억을 토대로 만든 심상이 어떻게 단단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작은 빛조차도 모이면 거대해지듯, 불완전한 심상으로 모인 천 개의 검은 가히 일인군단이라 할 수 있었다.
“……!”
클로이는 깨달았다.
‘다르다.’
홀로 천 개의 검을 감당할 수 있었지만, 천 명이 휘두르는 검은 감당할 수 없다.
심상이 담긴다.
누군가의 평원이. 누군가의 바람이. 누군가의 바위가, 누군가의 나무가, 누군가의 새가, 누군가의 짐승이 날아든다.
“이놈들이……!”
작디작은 심상들. 그러나 그들은 한때 인류를 위해 스스로의 몸을 불사른 영웅들의 검이었고, 그들의 염원은 오랜 시간이 흘러 바로 지금.
자신들의 검을 빼앗은 이에게 되돌아가고 있었다.
가볍고, 빠르고, 무겁고, 느리고.
완성되지 않은 심상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검이 되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검의 증오가, 분노가, 슬픔이, 염원이 클로이를 향해 다가온다.
“이이이익……!”
그리고 천 개이자 하나가 된 검을 앞에 둔 클로이는 두려움을 느꼈다.
죽는다는 공포.
미지에서 오는 공포.
자신의 것이 빼앗긴다는 공포.
그리고.
“이제 끝을 봐야겠지.”
자신을 향해, 알 수 없는 증오와 살기로 무장한 저 로즈베리빛의 사내에게서 느끼는 공포까지.
세포 하나하나에 새겨지도록, 공포가 느껴진다.
“나는, 나는……!”
질 수 없다.
또다시 소멸되고 싶지 않았다.
기억에도 없든 찬란한 황금빛이 가지고 오던 죽음.
그걸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하나가 된 천 개의 검에 대항해 천 개의 검을 펼치는 한 사람이 충돌했다.
―――!!!
1초에도 수십 개의 검이 부딪힌다.
부숴져라.
파괴되라.
부식하라.
죽음을 맞이하라.
죽음의 기운이 일대에 퍼져 나갔으나, 그 죽음에 대항하는 하나가 된 천 개의 검은 무너지지 않는다.
“어째서!!”
그들에게 담긴 심상이 죽음을 거부한다.
죽음의 기운? 그게 어떻단 말인가.
이미 인류를 위해, 정의를 위해, 지켜야 할 무언가를 위해 죽음을 맞이했던 이들에게 죽음은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 지키지 못했던, 해내지 못했던 것을 이루기 위해 한데 뭉친 심상은 하나의 세상이 되어 클로이, 질투의 자아의 시야를 막아 버렸다.
“흐아아아아악!!”
베이고, 찢기고, 꿰뚫린다.
고고하던 황태자의 육신이 하나의 세상과 마주하며 파괴되어 간다.
“감히이이!!”
수백만이라는 죽음의 기운으로 이를 복구해 보지만, 파괴되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
수많은 죽음을 통해 연명하던 추악한 목숨은 기어코 자신을 향하는 천 개의 검을 버텨 냈으나, 그 몸은 성치 못했다.
검을 쥐고 휘두르던 팔은 뜯겨져 나갔고, 다리는 마치 벌레가 지나간 나뭇잎처럼 파였다.
전신의 핏줄이 뜯겨 나간 것처럼 난도질당한 육신까지.
‘복구가……!’
심상이 담긴 검들로부터 입은 부상은 죽음의 기운으로도 빠르게 회복되지 못했다.
더 많은, 더욱 농후한 기운이 필요하다.
또다시 갈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목이 마르다.
더 많은 죽음. 더 많은 절망.
육신을 잃어 약해진 기운이 아닌, 살아 있는 생생한 죽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런 클로이의 시선 끝에는,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새뮤얼이 보였다.
* * *
“아아아아악!!”
또 하나의 연결이 끊겼다.
자유를 갈망하던 영혼이 승천한다.
“샤샤……!!”
아룬비다라는 범죄자 소굴로 내쫓았던 아이가, 이제는 죄를 벌하는 여인이 되어 검을 휘둘렀다.
“크아아악!!”
남은 데스 나이트의 숫자는 이제 반도 채 남지 않게 됐다.
패색이 짙어진다.
완벽한 제국이 무너진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던 새뮤얼은, 찢기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러던 그때.
“새뮤얼……!”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클로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온몸이 난자되고, 배에는 검이 틀어박힌, 가히 시체나 다름없는 클로이가 손을 뻗어 왔다.
“커헉……!”
순식간에 앞까지 도착한 클로이가 그런 새뮤얼의 목을 틀어잡았다.
“네가, 네가 필요하다!”
새뮤얼은 그런 클로이의 눈빛을 바라봤다.
처음, 부랑자의 목을 틀어잡았던 그때 그 눈빛이,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
‘형님……!’
그리고 새뮤얼은, 그런 클로이에게 얼마든지 자신을 내어 줄 수 있었다.
그래. 이 고통조차, 목숨조차 형님이 만든 제국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어 줄 수 있었다.
기꺼이…….
하나,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오색의 빛무리가 그런 새뮤얼을 집어삼켰다.
누군가가 외면해 온 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 * *
처음에는 그저 눈에 거슬렸을 뿐이다.
완벽한 예술품에 작은 흠이 생긴 것처럼.
그저 조금 거슬렸을 뿐.
그렇기에 어떻게든 그 흠조차도 예술품의 하나가 되도록 노력했다.
“오늘도 그렇습니까?”
“예. 전혀 이쪽에 맞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쯧…….”
들려오는 보고에 새뮤얼은 혀를 찼다.
황제의 이종족 유화 정책 천명 이후, 클로이의 곁에 붙게 된 이종족 시종.
그녀의 존재는 클로이의 목에 걸린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끌어들이려 했으나, 매번 실패했다는 소식만이 들려올 따름이다.
“황태자님의 말이 아니라면, 그 어떤 사람의 명령도 듣지 않습니다. 그마저도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면 거절한다고 합니다.”
“후우……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겠군요. 하필 왜 그런 게 들어와서는.”
다른 이종족들은 나름대로 황성에서의 업무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었다.
단지 그 속도가 느리거나,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필요할 뿐.
이미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마당에 그들 또한 현실을 받아들였을 따름이다.
적어도 황성에서 일하면 어디서 구박 받거나 굶지는 않았으니까.
유독 황태자의 시종만이 말썽이었다.
그렇게 수하의 보고를 들은 새뮤얼은 답답한 마음에 방을 나섰다.
지평선의 정원으로 향하던 길.
밤하늘의 달과 별이 유독 밝은 날이었다.
차라리 그의 기분처럼 우중충한 날씨였다면 어떠했을까.
구멍이 뚫린 항아리처럼 물이 콸콸 흐르듯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면 어떠했을까.
그랬다면, 그 장면을 보지도, 알지도 못하지 않았을까?
“형님……?”
밝게 빛나는 달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던 그 순간.
처연하게 빛나는 달은 테라스에 있는 두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는, 찬란한 금발과 함께, 누군가와 입을 맞추고 있는 클로이가 보였다.
“……!”
평소 사랑하던 예술품에 흠이 생겼다.
그 정도는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흠 따위가 아니었다.
균열.
그저 바람이 부는 것만으로도 작품에 큼지막한 틈이 생기는 균열이었다.
“어, 어떻게…….”
이종족 시종과 입을 맞추고 있는 클로이의 모습에, 새뮤얼은 서둘러 몸을 숨겼다.
안 된다.
저래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가장 존경하는 이가―
망가져 버렸다.
새 생명이 찾아오는, 이른 봄의 어느 날 밤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