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14)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14화
214화 연회 (1)
새뮤얼의 죽음 이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올리시아는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아나스타샤는 정치 쪽으로 넘어간 올리시아를 대신해 언데드 토벌을 시작했다.
여러 일을 도맡아 하고 있던 올리시아와 다르게, 토벌에 전념하기 시작한 아나스타샤는 놀라운 속도로 언데드의 잔당을 처리해 나갔다.
“확실히, 정보의 힘은 대단하군.”
홀로 지휘실에서 보고서를 읽던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한다면 짧게는 반 년, 길게는 1년 정도 걸릴 정도의 작전이었다.
그러나 한 달 정도 시간이 흘렀을 무렵 제국의 수도에서 벗어난 대부분의 언데드는 토벌을 마칠 수 있었다.
“당장 위험한 개체들은 모두 정리했으니, 행정이 굴러 갈 정도는 되겠어.”
이는 셰인이 이끄는 다크 엘프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들은 숲에 숨어든 데스 나이트와 같은 위험 개체를 주로 찾아다녔고, 하루아침에 그 일대 숲의 모든 언데드를 찾아내 실시간으로 보고를 해 왔다.
그런 식으로 신속하게 사냥을 계속하던 결과, 해가 뜬 낮에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약해진 언데드들은 제국의 눈에서 달아나지 못했다.
“많은 신세를 졌군, 셰인.”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셰인은 지난 한 달 동안 아나스타샤의 부상을 다스리면서 여러 행정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었다.
여기에 셰인의 가문인 클레이튼에서 자금을 조달해 준 것은 위기에 처한 제국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되어 주었다.
하나 셰인은 그 모든 것을 베풀었음에도, 무엇 하나 바라는 것이 없는 듯 보였다.
평소처럼 묵묵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할 뿐.
물론 아나스타샤나 올리시아는 이런 호의를 그저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받은 도움에 대해서는 반드시 보답하도록 하지.”
“그 부분은 가주님과 대화를 나누시면 되겠습니다.”
“그래. 그나저나 연회가 이제 얼마 안 남았군.”
“연회 말입니까.”
올리시아는 본격적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대한 연회를 치르기로 했다.
표면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수도에서 일어난 비극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많았다.
“승냥이들이 아주 넘치듯 들어오겠군.”
“일이 빠르게 끝나긴 했지만, 그들의 입장에서는 몸이 상당히 달아올랐을 테지요.”
여기서 셰인이 말한 그들이란, 지방의 귀족들이다.
각자의 영지를 가진 그들은 항상 수도에 있는 중앙 정치 귀족들을 부러워했다.
권력에 가장 가까운 게 바로 그들이었으니까.
때문에 지방의 귀족들은 그저 영지에서 왕처럼 지내는 것에 만족하긴 했지만, 기회가 열린 이상, 그들은 결코 참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미약한 적개심마저 보이고 있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셰인이 말했다.
“싫어하고 계시는군요.”
“맞아. 나는 그들이 싫다.”
비록 그들이 보내 오는 지원 덕분에 전쟁에서 보급이 부족한 상황은 없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훗날 책잡힐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한 보험일 뿐이었다.
그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병력을 내주지는 않았다.
이제야 다양한 핑계를 대가며 접근해 오고 있었지만, 인간적으로 그런 행위는 너무 역겹지 않은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놈들은 수도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타국의 귀족들과 만남을 가졌다고 하더군.”
그 뒤의 내용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혹여 이대로 제국의 수도가 오래도록 복구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자신들의 입지가 위험해 질 테니 그에 대한 대비를 했을 터.
“나도 안다. 모든 귀족들에게 헌신하는 마음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것은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지.”
무조건적인 희생이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그 정도는 아나스타샤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했던 행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국을 위해 수많은 기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내다 버렸다. 그것은 숭고한 희생이었지만, 어쩌면 그들은 죽지 않아도 되었을지 몰라.”
결사대에 포함되어 있던 기사들은 대부분 수도에서 생환했던 기사들이거나, 혹은 자유 기사 신분으로 찾아온 이들이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명예를 위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실리를 위해 찾아온 이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적이 어찌 되었든, 그들은 수도를 탈환하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지방의 귀족들은 무엇을 했지?”
“…….”
“놈들은 아무도 보내지 않았다. 그 사이에 자신들의 알량한 삶을 영위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지.”
그런 그들이 이제는 뻔뻔하게 얼굴을 내밀면서 제국의 한 축이 되고자 한다.
아나스타샤는 그 모습을 너무도 보기가 힘들었다.
자신과 함께 수도로 진격했던 기사들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기에.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그들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결국 자신들에게 힘이 없었기에, 또 너무도 모자랐기에 일어난 일이라고 아나스타샤는 자책했다.
앞으로 함께 제국을 이끌어 갈 그들을 탓하기보다, 스스로를 탓해야만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
“그러나 괜찮다, 셰인. 날 걱정하지 않아도 돼. 결국 이 또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방식일 테니까.”
아나스타샤는 두 주먹을 부르르 떨리도록 꽉 쥐며 결의를 다졌다.
“다시는 제국에 그러한 비극이, 찾아올 수 없도록 만들 것이다.”
“…….”
그리고 셰인은, 그런 아나스타샤의 다짐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이 또한, 그녀가 걸어야 할 길 중 하나였으니.
“제가 곁에서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저, 자신이 곁에 서겠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 * *
“휴우, 그래도 어느 정도 가장 급한 것들은 정리가 되었군요, 황녀님.”
“오스튼 덕분이죠. 저 혼자 처리하려 했으면, 적어도 몇 배는 더 걸렸을 거예요.”
“과찬이십니다.”
그리 말하는 오스튼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나름의 자부심이 있었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오스튼은 정말 적지 않은 일을 해내 왔기 때문이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제국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고, 또 살아남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준비도 철저히 해 왔다.
또한, 아나스타샤에게 수도에서 숭고한 희생을 맞이한 기사들의 위령비도 수도 곳곳에 세우는 등 많은 노력을 해 왔다.
‘그것뿐만은 아니지.’
셰인에게 배웠던 자신만의 마력.
미래를 내다보는 그 능력은, 아직 결코 익숙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오스튼은 자신의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루기 위해 많은 연습과 시뮬레이션을 돌려 왔다.
덕분에 소소한 깨달음까지 얻었으니, 자부심이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일이었다.
“아무튼, 오늘 저녁이로군요.”
“휴우…… 그러게요. 기왕 열리는 연회인데, 제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그녀의 말처럼, 지난 한 달 동안 씻을 시간도 없이, 잠자는 시간마저 쪼개며 살아온 올리시아에게는 황녀의 품격을 찾기 힘들었다.
푸석푸석한 머리에, 갈라진 입술. 짙은 피곤함으로 인해 핏발이 잔뜩 선 눈까지.
제국의 꽃이라 불리던 황녀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어느 누구도 황녀님의 모습에 대해 흠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기록되면 기록되겠지요.”
그런 오스튼의 말에 올리시아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어머나. 후후, 오스튼. 입담이 제법 좋아졌네요?”
“다 누구에게 배운 덕분이죠.”
“누군진 몰라도 참 아름답겠어요.”
“하하하.”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웃음을 뚝 그쳤다.
“그나저나 황녀님. 그 생각은 여전히 바뀌지 않으셨습니까?”
“네. 그 사안은 이번 연회에서 발표할 예정이에요.”
“어려운 길을 걸으시는군요.”
“최근에 느꼈거든요. 아무리 잘 다져진 길이라 하더라도, 자연재해를 만나면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
그러면서 올리시아는 자신의 책상에서 하나의 오르골을 꺼내 들었다.
“그러니 저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길을 원해요. 물론, 저따위가 완벽을 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하지만, 노력은 해 봐야 할 거예요.”
“그러십니까.”
“물론, 오스튼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겠지만요. 후후.”
“저 또한 황녀님의 의지를 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제국에는 오스튼 당신처럼 훌륭한 인재들도 많으니까요.”
“……물론입니다.”
“좋아요.”
이제는 제법 복구가 된 황성 내부로 손님들이 들어온다.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마차를 타거나, 귀한 품종의 말을 타고 들어오는 귀족들.
그들 모두가 수도 바깥에 있는 영주 혹은 그 대리인이었다.
“생각보다 타국의 귀족들도 적지 않게 오는군요.”
“아무리 목숨이 귀중하다고는 해도, 그들 또한 귀족이지 않습니까. 욕심은 끝이 없는 법입니다.”
이미 한 차례 타국의 귀족들을 모아 놓은 상황에서 몰살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른 국가에서는 제국에 귀족들을 보내길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처럼 제국이 내려앉았을 때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제국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스튼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 올리시아는 가볍지만 단단한 의지가 느껴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얕보였네요.”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야겠죠.”
제국에서 혈겁이 일어났고, 타국의 귀족들을 지키지 못한 것은 황족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올리시아 또한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여전히 가슴 한편에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 다르게, 제국이 얕보이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이젠 그녀 또한, 혼자만의 감정으로 국가를 운영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제국이 얕보인다는 것은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제국의 국민들조차 얕보인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그때, 오스튼은 황성의 정문을 통해 입장하고 있는 어느 한 마차를 보며 눈을 흘겼다.
“…….”
“오스튼?”
“그 와중에 특히 반갑지 않은 손님이 눈에 띄는군요.”
“반갑지 않은 손님?”
“고블린 같은 족속들이 찾아왔습니다.”
올리시아는 그의 시선을 따라 창가로 향했다.
그곳에는, 오스튼의 가문.
베첼리 왕국 소속 베른슈타인 후작가의 마차가 당당히 가문의 깃발을 휘날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 * *
연회는 과연 성대하기 이를 데 없이 펼쳐졌다.
연회의 총 기간은 열흘.
특별한 이유로 만들어진 연회였기에, 그 기간 또한 길게 이어졌다.
성대한 파티를 기대하고 황성으로 들어온 귀족들은 하나같이 검은 의상을 입은 황성의 사람들을 보며 당황해했다.
“검은 옷을 하나 정도 챙겨 두라는 건 이런 의미였나.”
“확실히, 마냥 웃고 떠들기에는 시기가 좋지 않지요.”
“위대한 영웅들이 제국을 지켜 내지 않았습니까. 그들을 위한 시간일 것입니다.”
“으음…….”
“물론, 해야 할 일이지요. 이런 자리에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허허.”
지방의 귀족들은 겉으로는 하하호호 겸연쩍게 웃으며 내부로 들어섰다.
그러나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이거, 쉽지 않겠군.’
‘처음부터 이렇게 나온다는 건가.’
‘소문으로 듣던 황녀와는 행동이 다르군. 아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래도 우리는 전쟁에 충분히 역할을 했다.’
‘결국, 중앙의 정치 귀족이 될 우리를 언제까지 이렇게 대할 수는 없을 것이야.’
올리시아로선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연회에 추가한 연출이었으나, 귀족들의 생각은 그러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리라.
본래 찔리는 사람이 더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의 그런 생각은 반드시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이 또한 연회의 준비를 담당한 오스튼이 만들어 둔 장치였으니까.
오스튼은 이런 식으로 지방 귀족들의 기를 초반부터 죽이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허, 대단하군.”
“듣기보다 강단이 있는 분이셨어.”
“소문에 의하면 베첼리 왕국 후작가의 자제가 1황녀 측에 붙어 있다던데.”
“어쩌면 그자의 작품일 수도 있겠군.”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들었건만. 만약 생각대로라면 대단한 인물이겠어.”
“예상했던 것만큼 일이 쉽게 흘러가진 않겠지.”
한편, 타국에서 온 귀족들은 지방에서 온 귀족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캐치했다.
또 동시에 고작 한 달 밖에 안 되는 시간 안에 이만큼 황성을 복구한, 아니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게 변한 황성의 분위기에 감탄을 지우지 못 했다.
그렇게 넓은 황성의 홀에 하나둘씩 귀족들이 자리에 앉기 시작했을 때.
옅은 불빛만을 남긴 채 서서히 주변의 불빛이 채도를 낮춰 갔다.
이윽고 유일하게 남은 빛은, 외로이 홀의 단상을 비추고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한 걸음씩 들려오는 진중한 발걸음 소리.
귀족들은 하나같이 구두 소리가 들려오는 계단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어둠 속에서 검은 드레스 차림을 한 올리시아가 내려오고 있었다.
푸석했던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옅은 화장기와 함께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은 장례용 베일에 감싸여 처연하게 빛났다.
거기에 장식을 극도로 줄였음에도,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는 결코 그녀를 가볍게 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깊은 슬픔과 결연한 의지가 함께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바로 옆 사람의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의 침묵이 홀에 내려앉았다.
그 자리에 모인 귀족들은 올리시아가 단상에 올라설 때까지, 그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한 채 그런 그녀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