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15)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15화
215화 연회 (2)
올리시아는 자신의 등장과 함께 떠들썩하던 홀에 침묵이 내려앉는 걸 바라봤다.
개중에는 올리시아도 익히 아는 지방의 귀족들도 더러 있었다.
‘아르민, 로이드, 바르다…… 참 여러 귀족들이 왔군요.’
짧은 사이에 그들의 얼굴을 모두 알아본 올리시아는 속으로 비소를 지었다.
저들 중 누군가는 한때 새뮤얼과 자신을 두고 저울질을 하던 사람들도 있었고, 새뮤얼의 몰락과 함께 자신에게 다가왔던 인사들도 있었다.
한때 자신의 측근이었던 이도 있었고.
하지만 저들 중 어느 누구도 수도를 복구하는 데 아무런 병력도 보내지 않았다.
그런 이들이 자신이 내뿜는 분위기에 주춤하고 있다.
그것을 눈으로, 또 피부로 느끼던 올리시아는 내면에서 들끓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상황에 집중했다.
“황성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바람에 날아갈 것 같으면서도 서늘한 목소리가 홀에 울려 퍼졌다.
“이렇듯, 손님을 초대하고 분위기가 밝지 못한 점, 부디 양해 바랍니다. 지금은 제국의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으니까요.”
제국의 비사를 모르는 이들은 이 자리에 없었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먹구름이 지나가고 비에 젖은 땅이 단단하게 굳듯, 제국은 다시금 이 대륙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진중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 담긴 뼈와 같은 말에 대해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타국의 귀족들도 보는 눈이 있고, 귀가 있는 법.
그들은 제국의 지방 출신 귀족들이 올리시아의 말에 불편해하고 있음을 금방 깨달았다.
“또한, 제국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이렇듯 찾아와 주신 귀빈 여러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국은 현재 어려운 길에 서 있습니다. 어려울 때 찾아오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인 법. 우리 제국은 여러분을 친구로서 모실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타국 출신의 귀족들이 흔들릴 차례였다.
붉게 충혈된 눈.
피로가 여실히 느껴졌음에도 그 눈동자 안에는 황제로서의 기질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수차례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눈빛이었다.
‘가히 눈빛이…….’
‘역시 소문과 달라도 너무 다르군.’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라. 자기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가?’
‘다른 건 몰라도 저 황녀만큼은 쉽게 볼 수 없겠구나.’
그들의 입장에서 이렇듯 중요한 연회에 대표로 나온 올리시아는 황제로서 가장 가까운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부터 이런 심계를 보여 주니, 얕보려야 얕볼 수가 없었다.
반대로 지방의 귀족들은 애써 자신들이 느끼는 감정을 부정했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이런 풍경이 아니었으니까.
‘황제로서의 덕목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사람이 몇 달 만에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저렇게 나와도 결국 달라질 건 없다.’
‘그래. 결국 제국에서는 우리가 필요하지.’
‘저 모습이 과연 언제까지 가겠어?’
하지만 그들은 고작 이 정도로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중앙 정치 귀족의 꿈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올리시아에 대한 풍문은 풍문은 들었던만큼, 쉽게 겁부터 먹진 않았다.
다만 풍문으로 들었던 것과 다른 모습에 잠시 당황했던 것뿐.
다시금 표정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 올리시아는 그런 귀족들의 감정 변화를 빠르게 포착했다.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손님맞이를 하겠습니다. 오늘은 먼 길까지 오면서 쌓인 여독을 푸시고, 편안한 시간을 가지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이 자리에 남아 있을 생각은 없다는 듯, 올리시아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것을 마지막으로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 황녀인 그녀가 마지막으로 숙이는 고개일 것이다.
* * *
“휴우. 여간 피곤한 게 아니네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피곤한 시간이었다.
수많은 귀족들을 눈앞에 두고, 그들의 정보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그 순간에 맞게 정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선 하나, 몸가짐 하나조차 책잡힐 일이 없도록 온 신경을 기울이는 것 또한 가뜩이나 피곤한 올리시아에겐 힘든 일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황녀님.”
그런 올리시아를 맞이한 인물은 오스튼이었다.
그 또한 황성의 사람들처럼 검은 정장을 입은 채 올리시아에게 물잔을 건넸다.
“고마워요, 오스튼.”
“별말씀을.”
물을 마시며 잠시 한숨 돌린 올리시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오스튼을 향해 말했다.
“분위기는 예상대로예요. 귀족들의 태도는 역시 기대할 게 없었네요.”
“그래도 얕보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입니다.”
“오스튼이 각본을 잘 짜 뒀기 때문이겠죠.”
어쩌면 귀족들이 이쪽을 얕보는 사이 한 방 먹여 줄 수도 있겠지만, 본래 이런 정치 싸움에서는 상대에게 얕보이는 것보다 아예 공격할 엄두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최상의 결과였다.
‘아바마마도 그건 힘들어하셨지.’
클로이의 죽음 이전, 역대 황제 중 가장 지지율이 높았던 전대 황제조차도 중앙 정치 귀족들을 완벽히 다스리지는 못했다.
그렇기에 오스튼은 올리시아에게 이번 위기가 오히려 체계를 더욱 확고히 할 역전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지방에서 올라온 귀족들의 수가 많다고 한들, 노회한 중앙 귀족들만큼은 아닐 테니까.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중앙 귀족들을 상대해 왔던 올리시아에게, 확실히 지방의 귀족들은 상대하기 쉬워 보였다.
“표정이 훤히 보이더라고요.”
“그거 참. 반가운 소식이로군요.”
“아무튼, 오늘은 이쯤으로 해 두죠.”
“예. 본격적인 싸움은 내일부터입니다.”
“그럴 리가요. 지금부터죠. 서류와의 싸움은.”
“……하하, 그렇지요.”
연회의 가벼운 일정이 오늘 하루의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그녀에게는 해야 할 일이 넘쳐 났으니.
일이 이중으로 늘어났지만, 올리시아는 오히려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 * *
올리시아가 남기고 간 말처럼, 황성의 홀에 모인 귀족들은 오랜만에 만난 지인 혹은 새로운 모임을 가지며 대화의 장을 열었다.
각 테이블마다 모인 귀족들의 이야기 주제는 당연히 방금 막 나온 올리시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개중에는 아나스타샤를 거론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아나스타샤 황녀는 어찌 된 것일까요?”
“그렇게나 말입니다. 공으로 친다면 오히려 올리시아 황녀보다 아나스타샤 황녀가 더 높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이번 황성을 탈환하는 데 혁혁한 공을 쌓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틈새 시장을 노리는 자들이었다.
당장 올리시아가 황제에 가장 가깝긴 했지만, 아나스타샤 또한 자격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치에 빠삭한 올리시아보다 아룬비다에 박혀 살아왔던 아나스타샤가 더 조종하기 쉽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말한 것처럼 가능성이 없던 것도 아니다.
‘차라리 여기서 두 황녀의 권력 다툼으로 간다면…….’
‘자리를 잡기에 더 편해질 수도 있다.’
굳이 말하자면 이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쪽에 붙어서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배하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이 또한 정치적인 계산하에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애당초 지방에서 영지를 다스리는 귀족들이었다.
때문에 패배한다고 해 봐야 어차피 본전이었고, 승리한다면 모든 것을 갖는다.
그러니 시도해 볼 만하지 않겠는가?
“그래도 얼굴을 좀 보여야 할 텐데요.”
“아예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군요.”
“몇 차례 접견을 신청했습니다만, 모조리 거절당했었지요.”
“풍문으로 듣자 하니 클레이튼 가문의 장남을 곁에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크흠…… 클레이튼 가문이라…….”
클레이튼 백작가.
귀족들에게는 여러모로 껄끄러운 가문이었다.
기껏 수도 탈환 당시에 돈을 끌어모아 생색내기를 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클레이튼 가문의 재력 앞에서는 태양 앞의 반딧불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귀족들 사이에서 클레이튼 가문은 오히려 방해물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클레이튼 가문에서 만들어 낼 변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러고 보면 클레이튼 가문은 어디를 지지하고 있을까요?”
“당장으로서는 확신하기 힘들겠습니다. 애초에 가주 스스로가 누군가를 지지하는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아 왔으니까요.”
“쯧…… 박쥐나 다름없군요.”
“쉿. 그래도 황성에서 두 황녀 다음으로 발언권이 강한 가문입니다.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시길.”
“큼큼. 아니 뭐. 꼭 누구 들으라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허허, 제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저 밤 말을 들을 쥐가 있을지 노파심에 그런 겁니다.”
잠시 얼기 시작한 분위기를 돌리고자, 한 귀족이 이야기의 주제를 되돌렸다.
“그래도 당장 생각해 보자면 클레이튼 가문은 아나스타샤 황녀 쪽에 가깝지 않겠습니까? 가문의 장남이 붙어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그리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아나스타샤 황녀의 움직임이 너무 소극적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무언의 제스처일지도 모릅니다. 실상 클레이튼 가문을 뒤에 두고 있으니,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지할 귀족들을 속으로 재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지요.”
“호오…… 그건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로군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른 경로로도 알아 봐야겠습니다.”
“그렇지요. 길은 많을수록 좋으니 말입니다. 허허헛.”
과연 누가 박쥐일지는 모를 일이었다.
* * *
그렇게 다음 날 아침.
숙소에서 머물던 귀족들은 이른 아침, 분주하게 움직이는 황성 사람들의 발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코에는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음식의 냄새가 맡아졌다.
“으음?”
“아침부터 어디서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는 거지?”
그렇게 밖으로 나온 귀족들은 어제와는 사뭇 달라진 황성의 풍경에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지 못 했다.
“이, 이게?”
“허어…….”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어제와 대비되는 정원의 분위기였다.
밤에는 어두워서 잘 몰랐지만, 낮이 되자 보이는 지평선의 정원은 파릇파릇한 꽃들과 정원 나무들이 자리해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꼭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군.”
“그러고 보니 들어 본 적 있소. 메자이아 대수림 속 엘프들의 거주지가 이렇듯 생기가 넘친다던데.”
“그러고 보니 제국은 엘프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중이라고 했었지?”
“왜 안 그러겠소. 마석 광산부터가 제국의 소유로 넘어가 있는데.”
“흐음…….”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격식 있게 차려져 있는 수많은 테이블이었다.
어제도 연회라는 이름으로 음식들이 호화로웠지만, 상당히 절제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부족하진 않았지만, 또 너무 넘치지도 않는.
그러나 낮이 되고 열린 연회는 그 분위기가 달랐다.
반질반질 빛나는 칠면조 요리부터 시작해 다양한 음식들이 넓게 차려져 있었다.
“분명 황성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기대 이상이로군.”
“제국은 그래도 제국이라는 것이지.”
“하기야, 땅이 좀 넓은가? 인재는 찾아보면 나오는 법이오.”
지방의 귀족들은 생각 이상으로 잘 꾸며진 분위기에 기가 죽었고, 타국의 인사들은 어제처럼 황성의 분위기에 취함과 동시에 분석에 들어갔다.
‘적어도 경제 부분에서 밀리지는 않겠군.’
‘듣자 하니 이미 수도도 복구하는 작업에 들어가고 있다던데…….’
‘이만한 돈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클레이튼 가문이로군.’
그렇게 짧은 감탄과 함께 시작된 연회.
차분한 음악 소리가 정원을 가득 채워 나가며, 숙소에서 나온 손님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음식의 맛이며 들려오는 음악까지 풍요로우니 타국의 귀족들은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한편 지방의 귀족들은 연회를 즐기는 한편, 생각 이상으로 호화로운 분위기에 당황했다.
‘이만한 재력이면…….’
‘적어도 이쪽으로 부담을 줄 수는 없다는 건가?’
‘또 클레이튼 가문이로군.’
황성의 건재함은 결국 선택권이 늘어난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상대가 아쉬워야 본인들이 더 우위를 점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정작 황성은 크게 아쉬움이 없어 보였다.
‘그렇다 해도…….’
‘결국 사람이 없으면 불가능하지.’
‘부족한 인력은 돈으로 긁어모은다 하더라도, 정치를 위한 귀족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아직은 괜찮다.
그리 생각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가슴속에 싹트는 불안감을 외면하면서 화려한 연회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귀족들의 식사가 끝나 갈 무렵, 황성의 고용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성에 오신 귀빈 여러분, 환영합니다.”
“식사 후 디저트는 이 길을 따라가면 나옵니다. 부디 편안한 시간을 즐겨 주세요.”
고용인들이 안내한 방향을 따라 걷던 귀족들은, 이어지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 했다.
그곳에는, 하나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