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the Hero’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17)
용사의 형으로 산다는 것 217화
217화 연회 (4)
“오스튼. 널 보기 위해 이곳까지 내가 찾아왔다고. 그런데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는군.”
제법 큰 덩치에 귀족다운 차림새 하고는 다르게 천박한 웃음을 짓고 있는 남자.
그의 등장에 셰인은 오스튼을 바라봤다.
“……제 가문의 둘째입니다. 베른슈타인 알케이어.”
그런 셰인의 예상처럼, 그는 오스튼의 형이었다.
다만 오스튼은 그런 형을 소개하면서도 상당히 귀찮아하는 기색을 보였다.
“확실히, 너는 가문에서도 특별하군.”
“…….”
알케이어는 후작가 가문이라는 명성에 맞지 않게 어딘가 좀 품위 없게 보였다.
“베첼리 왕국의 기사들은 어느 정도 예식을 아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 가문이 조금 그렇습니다.”
그렇게 둘의 짧은 대화를 지켜보던 알케이어가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날 두고 왜 너희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거지? 오스튼. 멋대로 날 소개했으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려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클레이튼 R 셰인이다.”
“클레이튼? 클레이튼…… 아, 아.”
그제야 셰인의 몸을 위아래로 바라보던 알케이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거 실례했소. 저 모자란 동생 옆에 있기에 과분한 분이셨군.”
“글쎄. 누가 과분한 건지.”
그래도 들은 게 있는 모양인지, 알케이어는 순순히 셰인에게 예를 표했다.
하지만 타고난 성정이 그런 것인지. 그는 이내 불만스럽다는 듯 셰인을 바라봤다.
“그건 그렇고. 실례는 이쪽이 먼저 했다지만 초면부터 다짜고짜 반말은 좀 아니지 않소? 나는 베첼리 왕국의 후작가, 베른슈타인 가문의 차남이오. 예를 지켜 줬으면 좋겠군.”
“…….”
셰인은 그런 알케이어를 잠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평소 셰인이 오만한 성격이긴 하지만, 함부로 타인을 얕잡아 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예 관심이 없을 뿐이지.
다만 기본적으로 제국의 귀족들은 타국의 귀족들보다 한 직급 높게 치는 경향이 있는데, 그걸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러는 것도 우스웠기 때문이다.
물론 셰인도 알케이어에게 존대를 바라지는 않았다.
일단 위치만 보자면 서로 어느 정도 비슷했으니까.
“베른슈타인 가문은 여러모로 대단하군.”
“음? 하하핫! 그리 생각한다니 다행이로군!”
아무래도 생각보다 머리가 나쁜 모양이다.
그렇게 셰인이 이 멍청이를 어떻게 상대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던 찰나.
“알케이스. 여기 있었더냐?”
“음? 형님. 여긴 뭐 하러 왔지?”
“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찾아왔다. 그런데…….”
새롭게 나타난 인물은 여러모로 훤칠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알케이어처럼 경박한 웃음을 머금고 있지도, 어정쩡한 예식을 두르고 있지도 않았다.
정확히 판에 박은 듯, 귀족 같은 사내였다.
“오스튼. 여기 있었구나. 한참 찾아다녔건만.”
“내가 먼저 찾았소, 형님.”
“가문의 일에 누가 먼저랄 게 있겠느냐.”
“끄응…….”
서로 가문에서 어느 정도 알력이 있는 것일까.
두 사람은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을 두른 것처럼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반면 새롭게 나타난 인물은 오스튼에게 적대감을 내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이구나, 오스튼.”
“오베른 형님.”
“그래, 나다.”
그의 이름은 베른슈타인 오베른.
베른슈타인 가문의 장남이었다.
* * *
셰인을 포함한 네 사람은 테라스에서 자리를 옮겼다.
황성에 있는 접객실 중 하나.
방에 들어온 알케이어는 접객실의 분위기를 쭉 훑어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뭐, 내 방보다는 아니지만 상당하군.”
방으로 들어온 알케이어는 마치 셰인과 오스튼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자신의 방에 장식되어 있는 예술품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쯤해라, 알케이어.”
“그건 내 마음 아니오, 형님?”
“……부끄러우니까 그만 하라는 거다.”
“내가? 하! 누가 베른슈타인의 차남을 그런 눈으로 본단 말이오? 어처구니가 없군.”
“저 벽에 걸려 있는 미술품은 이미 세상을 떠나 존재하지 않는 거장, 윌리엄 가문의 초대 가주가 그린 초상화다.”
“뭐, 뭐? 윌리엄 가문? 아니, 형님. 나를 멍청이로 아는 거요? 그 가문은 조각사로 유명해지지 않았소!”
“후우…… 지금은 그럴지 몰라도 과거에는 아니었다. 윌리엄 가문의 초대 가주는 그림도 그렸어. 화가보다는 조각가로서의 명성이 높았을 뿐이지. 그림의 수준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몇 점 존재하지도 않아서 부르는 게 값이란 말이다.”
“…….”
평소 똑똑한 척하는 오베른이 영 재수 없긴 했으나, 그가 틀린 말을 한 적을 본 적이 없던 알케이어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수치심 때문인지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여전히 얼굴에서는 불만이 묻어 나왔다.
한편, 오베른은 셰인을 바라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서 미안하오.”
“……괜찮다.”
“그럼 다행이오. 그나저나 대륙에서도 유명한 클레이튼 가문의 장남을 보게 되어 영광이오.”
“반갑군.”
알케이어와는 다르게 오베른은 셰인의 짧은 말투와 단답형 대답에도 전혀 기분이 상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나와 동생이 두 사람의 일정에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우려되오.”
“그리 급한 사안은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 말지. 그나저나 오스튼을 찾아온 것인가?”
“그렇소.”
“내가 이 자리에 있더라도 상관없겠지?”
“……그리하셔도 무방하오.”
“아니, 형님. 왜 자꾸 저 인간한테 그리 저자세로 나오는 거요? 우리도 후작 가문 아니오!”
잠시간의 침묵 사이에 쪽팔림이 가시고 불쾌감이 올라왔기 때문일까.
또다시 알케이어가 도중에 끼어들었다.
“제발. 내가 대화하는 도중에 끼어들지 말라고 몇 번이나 경고했을 텐데?”
“하! 끼어들고 아니고는 내 마음이지! 분명 내가 먼저 찾았다고 했을 텐데?”
“……거듭, 미안하오. 잠시 동생과 짧게 대화를 나누고 와도 괜찮겠소?”
“마음대로 해라.”
“양해해 주어 고맙소.”
그러면서 오베른은 알케이어를 끌고 접객실 옆에 붙은 방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알케이어가 반항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결국 오베른의 억센 손길에 끌려가다시피 나갔다.
“……실례했습니다.”
“그래도 전부 멍청하진 않은 모양이군.”
“전부 알케이어와 같았으면 가문이 남아 있었겠습니까.”
“지금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던데.”
“후우…… 부정할 수 없군요.”
오스튼의 본가인 베른슈타인 후작가는 베첼리 왕국에서 유서 깊은 가문으로도 유명하지만, 최근 들어 힘이 제법 빠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긴 세월 동안 왕국의 위상을 높여 왔던 가문이니만큼 여전히 입김은 강한 편이다.
“저들이 왜 찾아왔을 것 같나?”
“짚이는 게 몇 가지 있긴 합니다만…….”
“대충 내가 생각하던 거랑 비슷한 거 같군.”
“면목이 없습니다.”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넌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까.”
전생에 셰인의 육체를 차지했던 질투의 자아에게 있어서, 클라인은 굉장히 위협적인 적이었다.
그러나 클라인보다 더 위협적인 인물은, 다름 아닌 오스튼이었다.
전생의 오스튼은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고 셰인의 조언 없이도 스스로 마력을 깨우친다.
머리에 모이는 마력.
하늘과 닿아 있는 그 마력은 예지에 가까운 능력을 오스튼에게 가져다주었고, 지금보다 훨씬 자유자재로 다뤘다.
그러다 보니 번번이 클라인을 죽이거나, 인간의 군세에 중요한 요인을 암살, 혹은 회유하는 과정이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었다.
그런 오스튼이 이제는 아군에게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전생에 셰인의 앞에 클라인을 데려다 놓은 것도 오스튼이었기에, 결과적으로 봤을 때 오스튼은 셰인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뭘 하든, 너는 제국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다. 그리고 나는 이미 너를 잡아 두기 위한 준비도 끝마쳤지.”
“…….”
총명한 오스튼은 그런 셰인의 말에 담긴 의미를 곧바로 이해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오베른과 알케이어가 접객실로 돌아왔다.
“이거, 대화 도중에 실례했소. 우리 때문에 이렇게 자리를 가졌는데, 괜한 시간만 버리게 만들었군.”
“내 시간이 귀하긴 하지.”
오베른의 말에 셰인도 부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셰인의 시간은, 남들보다 훨씬 많은 일에 쓰였으니까.
“클레이튼 가문의 시간은 1분 1초가 금과 은으로 이루어졌지. 알케이어. 뭣하느냐.”
“……미안하오. 내가 멋모르고 설쳤구려.”
안에서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알케이어의 자세에서는 조금 더 예의를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셰인도 그런 알케이어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보고 있던 오스튼이 말했다.
“그래서, 형님.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음…… 예전처럼 말을 더듬지 않는구나.”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라…….”
오베른은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는 오스튼을 바라보며 속으로 옅게 혀를 찼다.
‘더 빨리 알아봤어야 했거늘.’
어려서부터 자신과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말조차 더듬거리던 막냇동생이었다.
거기에 기사의 나라, 베첼리 왕국의 후작가의 핏줄을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술에 대한 재능도, 마력도 피워 내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머리가 돌아가는 게 제법 빨라 보였지만, 그게 전부였다.
후작가의 위신을 생각하면 굳이 필요가 없던 인물.
과거의 오베른은 자신의 막냇동생을 그 정도의 가치로만 판단했었다.
그래도 어려서부터 머리가 나쁘진 않았으니, 아카데미에 보내어 다른 가문의 보좌관 정도로 만족시키고 내보내려 했건만.
들려오는 이야기는 상상 이상이었다.
‘연합국 아카데미에서 그렇게 들어가기 힘들다던 지휘학과를 상위권 성적으로 들어가고, 그 황녀의 보좌관이 되다니.’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딱히 신경을 쓰진 않았다.
연합국 아카데미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게 좀 의외긴 했지만, 어정쩡하게 똑똑하면 자신의 곁에 두기에도 애매했으니까.
단순하게 힘만 숭배하고 까부는 알케이어보다 오스튼이 뒤에서 수작질하는 게 더 귀찮을 거라 판단했던 오베른은 딱히 오스튼을 다시 가문에 부를 생각이 없었다.
‘설마하니 올리시아 황녀의 위상이 이렇게 높아질 줄은 생각지도 못했군.’
황녀의 보좌관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제법 놀라긴 했으나, 그래 봐야 올리시아 황녀는 당시에 제국의 황태자, 새뮤얼에게 명백히 밀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 외에는 별다른 존재감도 없었기에, 적당히 어디 타국의 귀족과 정략혼을 할 줄 알았건만.
이제는 사실상 다음 황제가 되지 않았던가.
‘이대로 녀석을 내버려 두기엔 너무 아깝다.’
더불어 이번 토벌 작전뿐만이 아니라 오스튼이 제국의 행정에서 맡고 있는 부분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히 살인적이라는 말조차 부족한 업무량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다음 황제와 가장 가까운 인물로 소문이 난 상황.
‘저 정도면 당장 우리 가문의 위신을 세우기에는 부족하지 않다.’
그렇기에 오베른은 제국까지 찾아왔다.
“본론부터 말하마. 가문으로 돌아오거라.”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거절하지요.”
“뭐?”
이어지는 말에 오스튼의 말에 오베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가문을 버리겠다는 말이냐?”
“제가 가문을 가진 적도 없는데 뭘 버린다는 말입니까?”
“그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가문에서는 너를 필요로 한다. 가주님께서 직접 내게 말씀하신 거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거절합니다.”
“…….”
“애초에 제가 왜 그 말을 듣고 가문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당장 오스튼이 가문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뭐가 좋겠는가?
다음 대 황제가 될 유일한 인물의 오른팔로 있으며, 이는 곧 제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사람이라고 봐도 좋았다.
당장 여러 귀족들만 하더라도 오스튼의 눈치를 어마어마하게 보고 있지 않던가.
물론 오스튼이 그 정도로 속물은 아니었지만, 당장의 가치만 따지고 보면 그랬다.
“그래, 내가 생각을 잘못했구나.”
사실 이건 오베른의 입장에선 당황할 만도 했다.
셰인이야 전생의 기억도 있었기에 오스튼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오스튼을 어린 시절부터 봐 왔던 오베른은 오스튼이 가문의 말을 거역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면서도 말을 더듬는 모습으로 자신감 없이 살아왔던 오스튼이다.
그래서 가문의 명령에 따를 줄 알았고, 과거에는 그게 당연했던 일이었다.
‘어쩌면, 이게 본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오베른도 이대로 오스튼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일단…… 너의 뜻은 알겠다. 그래도 가문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다오.”
그러면서 오베른은 셰인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알케이어와 함께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고.
셰인은 가감 없이 자신의 감상평을 말했다.
“아까 평가를 정정하지. 저것들은 병신인가?”
차마 그 말에 반박할 수 없던 오스튼은 그저 낮은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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